한 강 작가의 소설집 [여수의 사랑]

D-29
소설집 속 '작가의 말'로 대신합니다. - 이 길 뿐일까, 하는 끈질긴 의문을 버리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던 기억이 난다. 되돌아나가기에는 너무 깊이 들어왔다고, 꺼질 듯 말 듯한 빛을 따라 계속해서 걸어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자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안도감이 찾아왔었다. 물에 빠진 사람이 가라앉지 않기 위해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썼고, 거품을 뿜으며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 때마다 보았다. 일렁이는 하늘, 우짖는 새, 멀리 기차 바퀴 소리, 정수리 위로 춤추는 젖은 수초들을,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그들의 어머니인 이 세상에게 갚기 힘든 빚이 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싱글챌린지는 자신이 직접 정한 책으로 29일간 완독에 도전하는 과정입니다. 그믐의 안내자인 제가 앞으로 29일 동안 10개의 질문을 던질게요. 책을 성실히 읽고 모든 질문에 답하면 싱글챌린지 성공이에요. 29일간의 독서 마라톤, 저 도우리가 페이스메이커로 같이 뛰면서 함께 합니다. 그믐의 모든 회원들도 완독을 응원할거에요. 계속 미뤄 두기만 했던 책에 도전해 볼 수 있는 싱글챌린지! 자신만의 싱글챌린지를 시작하고 싶은 분들은 아래 링크로 접속해 주세요. https://www.gmeum.com/gather/create/solo/template
싱글챌린지로 왜 이 책을 왜 선택했나요?
한 강 작가의 작품과 문체를 참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초창기 작품을 찾아 읽는 건 또한 대단한 즐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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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사랑] 처음 읽으면서는 작가의 의도가 잘 파악되지 않아 그믐에 싱글챌린지를 시작하며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으니 언뜻 보입니다. 과연 이것이 이 소설을 쓴 작가의 의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두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을 계획한 아버지로 인해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오물로 뒤덮인 채 시멘트 바닥에서 깨어난 정선과 두 살 무렵 여수발 서울행 열차에서 발견되어 고아원을 전전하다 다섯 살에 만난 양어머니와 그녀의 친척들과는 데면데면한 관계를 이어가며 마음 둘 곳을 찾아 전국을 헤메는 자흔은 참으로 닮은 듯 다릅니다. 가혹하고 치명적인 상황을 어릴 적에 겪은 이의 삶이 어떻게 어떤 식으로 망가져 버렸는지 얼마나 돌이키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는지 작가는 그대로 보여 줍니다. 어항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듯한 금붕어의 모습에서 위안을 얻고 싶어하는 자흔과 짠물과 구토로 범벅이 되어 깨어나 평생 그 냄새와 고통을 밀어내며 사는 정선은 누군가를 품어줄 수가 없습니다. 큰 상처를 가진 사람은 상처 있는 사람을 위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상처 입은 사람끼리 모여 서로의 상처를 핥으며 살도록 모아 놓는 것 같습니다. 결국 그녀들은 낫지 않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입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요.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요. 스물 네 살의 한 강 작가는 이미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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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주] 동생이 마을 어디에 쓰러져 있다는 소리를 전해 듣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어머니와 의붓아버지가 장에서 돌아오실 때까지 지물포를 지켜야했던 인규는 열심히 달려 동생에게 갔지만 이미 사망한 후입니다. 동네 아이들에게 맞아 죽은 동생의 죽음에 대해 복수도 슬픔도 모두 잊고 새롭게 삶을 꾸려가려는 어머니와 의붓아버지의 행동을 지켜보던 인규의 싸늘함이 무섭습니다. 그날 저녁 동생을 에워싸고 때리고 또 죽음까지 몰고 갔음에도 사과 한 마디 없던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복수를 실행하는 인규는 동생 진규를 절대 잊지 않으리라 마지막까지 진규를 기억하리라 다짐하며 살아갑니다. 자궁암 진단을 받고도 수술을 차일피일 미루는 이유가 아마도 수술 후의 후유증이나 고통 때문이리라 지레 짐작하던 인규는 어느 날인가 어머니의 전화를 받습니다. '...... 진규야, 거긴 춥지 않냐.' '진규야, 진규야! 수술은 못 한다. 수술은 할 수 없어!' '다시 너를 낳고 싶다 진규야!' '다시 너를 낳고 싶구나, 돌아오겠느냐? 나에게 돌아오겠느냐?' 진규가 죽고 난 후 진규의 물건들과 옷은 물론 사진까지 모조리 태워버리고 의붓동생까지 낳고 키우며 동생을 잊고 사는 듯 하냥 행복해 보였던 어머니의 목소리에 인규는 혼란스럽습니다. 자궁적출술을 받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속마음을 알아버립니다. 그래서 어쩌면 인규는 이번에는 어머니를 잃지 않기 위해 병원 복도에서 질주를 합니다. 인규의 질주는 더 일찍 도착해 동생을 살리지 못한 자책감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고도 쓰러질 지경이 되어야 겨우 진정이 되는, 그렇게 달리고 나서야 하루를 시작하는 인규의 모습은 어릴 적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보여줍니다. 어린 아이의 경험은 그게 무엇이든 인생 전부에 엄청난 영향을 끼칩니다.
[야간 열차] 마치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온가족이 누우면 바닥이 다 가려지는 방 한 칸, 그 한 편을 가족 중 한 명이 병으로 차지하고 십 년이 넘는 세월을 누워만 지낸다면 어떤 마음일까요. 그 환자가 내 쌍둥이 동생이라면 그 무게는 또 어떻게 달라질까요.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을 간병인으로 생활하며 느낀 점은 집안이든 병원이든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면 온가족이 아프다는 사실입니다. 그 통증의 크기나 모양은 다를지라도 모두 아픕니다. 그리고, 병으로 인한 고통보다도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으로 환자는 더욱 괴롭습니다. 골목을 뛰어다니며 함께 우유 배달을 하던 중, 내가 앓아 누운 바로 그 날 혼자 두 사람 몫을 하느라 이 골목 저 골목을 뛰어 다니다가 어느 길목에서 굴러 떨어진 쌍둥이 동생이 겨우 숨만 붙어 살아가는 모습을 매일 아침 저녁으로 마주하며 살아가는 동걸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는 어휘는 '야간 열차'입니다. 어디에서 몇 시에 타면 어디를 거쳐 몇 시에 어디까지 가는지 너무도 소상히 알고 있는 동걸이 정작 야간 열차를 못 타는 이유는, 떠나버리면 다신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동걸은 결국 동생을 죽음을 겪고 나서야 홀가분한 마음으로 야간 열차에 오릅니다. 어디로 떠나도 다시 돌아올 거라는 확신을 가졌을 거라 생각됩니다. 도망치고 싶은 현실은 삶 속에 참 자주도 찾아옵니다. 그러나 정작 모든 걸 뒤로 하고 떠나본들 어딘가에 도착해 보면 나를 괴롭혔던 그 모든 걸 어깨에 짊어지고 온 경우가 많습니다. 동걸은 어쩌면 그걸 일찍 깨달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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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빛] '...... 서쪽으로 가면 말이다, ..... 해가 지는 쪽으로 한없이 배를 저어가면 말이다. ..... 온종일 해가 지고 있는 나라가 있다는구나. ...... 그곳의 하늘은 푸른 빛이 아니라 발갛게 익은 숯불 빛깔이라는구나. ......거기가 바로 ...... 서방 십만억토...... 라는 곳이라는구나. ....... 거기에 가면 말이다, 무엇이든지 자기가 원하는 대로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수가 있다는구나. 넌, ...... 재인이 넌 거기 가면 무엇으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할래?' - 오래 감춘 비밀을 재인에게 발설한 것만으로도 짐을 덜었다는 것처럼, 해쓱하던 그의 얼굴에는 한결 생기가 돌았고 평온마저 깃들여 있었다. 재인은 저 넋 나간 형에 대한 서글픔과 연민과 염오가 뒤범벅이 되어 한동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럼 형은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어?' 라는 재인의 물음에 '무엇으로든, 나 아닌 것으로,' 라고 대답한 재헌은 결국 배를 몰고 서쪽으로 떠나 모래를 움켜쥔 채 죽어 발견되었습니다. 재인이 학교에서 그리다 망친 그림을 보며 했던 재헌의 말이 있습니다. '안 돼, 이건 너무 탁색이라 누구라도 고칠 수 없어. 마르지도 않았는데 겹칠을 해서 보풀이 잔뜩 일어났잖아. 다시 그려야 해.' 유화는 탁색을 쓰더라도 잘 마르기만 하면 얼마든 덧칠이 가능하고 새로운 그림을 덧씌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헌은 그의 삶을 새롭게 그려나가지 못했습니다. 그에게 달라붙은 삶의 얼룩과 흔적들은 마를 틈 없이 그의 숨통 위에 겹겹이 쌓여만 갔으니까요. 재헌의 망가짐을 지켜봐야만 했던 일곱 살 어린 동생 재인의 심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너무도 마음 아픈 소설입니다. 재인이 지난 세월을 잘 말리고 아름다운 색을 덧씌우며 잘 살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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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한 자신에게 주는 축하의 메시지를 적어주세요.
[진달래 능선] 누구에게나 뚜렷하게 남은 어릴 적 기억 하나쯤은 있을 것입니다. 정환이 집을 떠나오며 보았던 진달래 능선이 그러했습니다. 가족으로부터 도망치는 정환의 발을 잡아 당길 듯 삼킬 듯 덤겨들 듯하던 진달래의 환영.... 또한, 사랑하는 딸을 잃고 나니 세상 아름답던 풍경이 재보다 못하게 된 황씨의 모습에서 한 순간의 크나큰 충격이 만드는 파문은 사라지지 않고 깊은 주름으로 우리 삶에 남겨진다는 걸 깨닫습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사람의 '쓸모'에 대해 몇 번 언급합니다. '저래 보여도 예전에는 이 근방에서 제일 좋은 집이었다우. 나무도 어찌나 무성한지 정원이 아니라 숲속 같았지. 저 양반도 그때는 쓸 만한 사람이었는데.....' 이제 가끔 나무나 뽑아 불에 태우는 황씨에 대한 부동산 중개인의 말입니다. '어떠냐, 나두 아직 꽤 쓸모 있는 사람이지' 정임과 어머니의 사진을 찾아 정환에게 쥐어준 숙모의 표정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아니라면 지금 나는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동생 정임과 어머니를 찾기 위해 사방을 찾아다니며 지쳐가는 정환의 생각입니다. 1990년대에 20대를 지낸 제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당시의 사람들은 모두 '쓸모' 있기 위해 애썼던 것 같습니다. 사회는 사람을 원했고 사람들은 자리가 나면 비집고 들어가 자신을 자리에 맞추던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에도 가족은 우리 자신을 불안불안한 자리에 눌러 앉히는 원동력이자 멀리 떠나지 않게 잡아주는 테두리였지 싶습니다.
[어둠의 사육제] 사육제는 사순절 이전 행사입니다. 예수의 고난을 따르는 사순절을 대비(?)해 고기 잔치를 벌이는 축제(!)입니다. 솔직히 소설의 내용과 사육제라는 단어의 연관성을 찾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누군가 다가와 '아무 조건 없이 내 아파트를 명의 이전해 줄테니 집 없는 네가 가져라'라고 하면 우선 상대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덥석 받아 챙겨야 된다고 생각하는 속물로서, 임신한 아내의 죽음으로 받은 보상금으로 구입한 아파트를 거져 주겠다는 명환도 그걸 왜 내가 받냐고 거절하며 도망치듯 떠나는 주인공도 살짝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보상금이 아내도 아내 뱃속의 아기도 살릴 수 없는 것처럼 그들과 함께 묻혀버린 명환의 미래 또한 살려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의 죽음을 야기한 이가, 명환이 그토록 꿈꾸던, 그저 성실하고 가정적인 어느 가정의 가장이라는 사실이 그런 그와 그의 가족을 보금자리에서 내쫓듯 이사시켰다는 사실이 명환은 아내와 아기의 죽음만큼이나 못견딜 일이었을 거라는 걸 깨닫습니다. 가족에게 외면 당하고 인숙언니에게 배신 당하고 밖에서 훤히 보이는 이모님 댁 아파트 베란다에서 잠을 자게 된, 스물이 되었을까 싶은 주인공에게는 이제 타인의 간섭이라면 그게 공짜로 얻게 되는 고급 아파트라도 받고 싶지 않았을 것도 싶습니다. 아파트를 넘기고 죽으려하는 명환의 의도를 파악한 후에는 더욱, 내 의지가 아니고서는 타인의 삶에 조금도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주인공의 강한 결심도 옅보입니다. 그런데 왜, 제목이 [어둠의 사육제]인지는 의문으로 남습니다.
아직 [붉은 닻]이라는 작품이 남았습니다만 시간 관계상 그건 제 SNS에나 포스팅해야할 것 같습니다. 9월 말 저로서는 중요한 시험이 있고 일을 하고 있는데다 모처럼 한국에 들어온 아이와 아이의 친구를 위해 제주 여행을 다녀오느라 책 읽는 속도를 포스팅이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역시나 저는 한 가지 밖에 못하는 싱글테스커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제껏은 물론이고 앞으로의 작품 활동이 엄청 기대가 되는 한강 작가입니다. 한국이, 한국 문학계가 한강 작가의 존재에 대해 저처럼 자부심을 느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강 작가는 한국 문학계가 잘 키워야하는 대단한 싹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뭐, 안 키워줘도 알아서 잘 클 나무이긴 합니다. 한강 작가를 열렬히 응원합니다. 이 책에 대한 저의 선택이, 이미 알려진 그리고 알려지기 시작한 많은 작가들의 초기 작품을 다른 분들도 찾아 읽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글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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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이번이라고 뭔가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희망할 근거는 없었다.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어느 여성도 셰익스피어의 비범한 재능을 갖지 못했을 거예요.횡설수설하는 사람들은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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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세계문학선] #01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함께 읽기[그믐밤] 8. 도박사 1탄, 죄와 벌@수북강녕[브릭스 북클럽]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커다란 초록 천막》 1, 2권 함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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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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