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아메리카나1> 혼자 읽어볼게요.

D-29
귀엽다. 청춘이네.
한번은 방과 후에 만나서 축구 하는 얘기를 하다가 그의 친구들 중 한 명이 물었다. '이페멜루가 허락한 거야?" 그러자 오빈제가 넙죽 대답했다. "응, 그런데 한 시간만 놀다 오래." 그녀는 그가 원색 셔츠를 입듯 자신들의 관계를 대담하게 드러내고 다니는 게 좋았다. 때로는 자신이 너무 행복한 게 아닌가 걱정도 됐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우울에 잠겨 오빈제에게 트집을 잡거나 거리를 뒀다. 그러면 그녀의 기쁨은 안절부절못하며 밖으로 도망칠 구멍을 찾듯 그녀 안에서 날개를 파닥거렸다.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112,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이페멜루, 걔는 처음부터 너만 쳐다봤어." 기니카는 이렇게 말하곤 자기가 괜찮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이페멜루가 힘 하나 안 들이고 자기 남자를 훔쳐 갔다며 농담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쾌활함은 억지이자 두꺼운 가면 같은 것이었으므로 이페멜루는 죄책감과 과잉 보상 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혔다. 단짝이자 지금껏 자신과 한 번도 싸운 적 없는, 예쁘고 성격 좋고 인기 많은 기니카가 신경 쓰지 않는 척할 수밖에 없게 된 건 옳지 않았다.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113,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그녀는 자신보다 기니카가 더 잘 맞는 짝임을 오빈제가 깨닫는 상상을 했다. 그렇게 된다면 이 기쁨, 그녀와 오빈제 사이에 존재하는 이 연약하고 희미한 감정은 사라질 것이었다.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119,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오빈제의 어머니는 직설적이면서도 상냥했고 심지어 다정하기까지 했지만 오빈제와 똑같은 일종의 거리감, 세상 앞에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길 꺼리는 성향이 있었다. 그녀는 아들에게 군중 한가운데에서도 어떻게든 편안하게 자신만의 세계 안에 머물 수 있는 능력을 가르친 것이었다.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122,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그들이 식탁에 앉아 가리와 수프를 먹는 동안 이페멜루는 우주 고모가 말한 대로 "평소처럼" 있으려고 무진 애썼지만 '평소에' 자신이 어땠는지 더 이상 확신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이곳에 있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 오빈제와 그의 어머니와 함께 분위기에 녹아들 수 없다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124,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문장 메모 남기면서 난 맨날 이런 거(외로움, 부러움, 부끄러움, 소심함)에만 반응하는 것 같아서 부끄러워졌다... 아나 완독파티 때 다자이 오사무한테 질린 게 꼭 나한테 질린 거 같은 거였냐고. 나도 더 멀리 보고 싶고, 더 논리적인 게 궁금했으면 좋겠다. 근데 그냥 서운하고 슬프고 외로운 거에 반응한다. 수학 문제를 풀어야겠어.
네가 너 자신을 조금 더 소유하게 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거야.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127,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읽을 때는 멋지다고 생각하고 인덱스를 붙여뒀는데 북클럽 모임을 하고 나니 조금 덜 멋지게 보인다. 오빈제의 어머니가 너무 환상 속의 어머니라 의도적 멋부림으로 느껴졌다. ㅅㅌㄹ님이 나눠주신 이야기가 떠오른다. 욕망과 목표는 살아가면서, 나이 들어가면서 매번 달라지지 암암. 좋은 엄마는 이런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셨다며. 내 미래는 어떨까 모르겠다.
그는 그녀의 특별함이 마치 자신의 훌륭한 취향을 반영한다는 듯이 뿌듯해하는 어조로 말하곤 했다.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138,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그녀는 우주 고모의 핀잔에 상처를 받았다.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인 둘 사이의 친밀감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다. 우주 고모의 조급함, 전에 없던 성마름은 이페멜루가 이미 알고 있어야 마땅한데 몇몇 모자란 점 때문에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183,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이페멜루의 상처도 알겠지만 우주 고모의 성마름도 알겠다. 이페멜루가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 느껴진다. 그 자신감과 솔직함이 세상을 쉽게 보는 것 같다고도. 사실 그냥 내가 그렇다고 느낀다. 요즘 어느 캐릭터에 마음을 줄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그냥 가장 불쌍하고 억울한 캐릭터에 쉽게 나를 동화 시켰는데, 이젠 그게 아닌 것 같다. 어른이고 나이를 먹어가니 책임져야 하는 게 당연한데... 그런데 그 위치가 자꾸 어색해서 큰일이다. 나의 불행만 보며 그 속에 갇혀 살지 않도록 정신을 잘 차려야겠다.
(전략) 그녀를 정말로 사로잡은 것은 광고였다. 그녀는 광고에 나오는 삶, 행복으로 가득한 삶을 갈망했다. 거기서는 모든 문제의 찬란한 해결책이 샴푸와 자동차와 포장 식품에 있었다.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193-194,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이페멜루는 기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설사 했더라도 차마 우주 고모랑 바살러뮤가 잘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고모가 '익숙한 것'이라는 조건 하나로 만족했다는 사실이 그녀는 슬펐다.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200,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나도 이게 슬프다. '사람은 대체로 낯선 행복보다 익숙한 불행을 선택한다.'라는 말을 어디서 주워 듣고 자주 떠올리며 불안해하고 걱정한다. 나이를 조금 더 먹고 있어서 그럴까. 예전에는 지는 거라고 포기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마냥 슬펐다. 아직도 슬프긴 하지만 이제는 그 상황이 더 이해된다.
"그럼 미국에는 머리 땋은 의사가 한 명도 없다는 거야?" 이페멜루가 물었다. "난 그냥 들은 대로 말하는 거야. 지금 우리는 외국에 있잖니. 성공하고 싶으면 하라는 대로 해야 돼." 또 나왔다. 우주 고모가 담요처럼 자기 주위에 두르는 이상한 순진함이. 고모랑 대화를 하다 보면 때때로 고모가 고의로 자신의 일부를, 그것도 가장 중요한 부분을 먼 곳에 두고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오빈제는 그것이 이민자의 불안에서 비롯된, 지나치게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202,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아메리카나1>의 가장 주목할 점은 흑인 머리에 대한 일화가 주요하게 자꾸 언급이 된다는 거. 몽골에 갔을 때 꾸밈노동에 대해서 룸메이트와 의견 대립이 가장 있었는데(난 꾸밈노동이다, 룸메이트는 아니다), 흑인들이 머리를 릴랙서로 펴고 영양분을 다 죽이고 두피가 상하고 이걸 당연하게 필수적으로 하는 걸 보면 나한테 주어진 꾸밈노동은 훨씬 미미하긴 하겠다... 그럼에도 여성에겐 꾸밈이 노동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나한텐 내가 느끼는 미에 대한 압박이 왜 이리 강할지. (꾸밈 압박이 있는 직종도 아니다.) 꾸미는 과정은 또 왜이리 피곤할지. 무시하고 럽마셀프도 못하고, 예쁜 거 나도 좋은데 , 난 안 예뻐서 자꾸 억울하고..꾸밈을 위한 활동들이 버겁고 시간 아깝고.. 난 (미적)능력도 없는데 노력도 싫다고 투덜대는 사람인 것 같고 어휴에휴다.
제일 빨리 마시는 테리사는 빈 맥주 캔을 하나씩 마룻바닥에 굴려 댔고 나머지 얘들은 배꼽이 빠져라 웃어 댔다. 그렇게 재미있는 얘기도 아니었기에 이페멜루는 의아했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 웃어야 하는지 어떻게 아는 걸까?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211,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예전에 이페멜루가 태어나서 한 번도 볼링을 쳐 보지 않았다고 말했을 때에도 재키와 앨리슨은 어떻게 볼링 한번 쳐 보지 않고도 정상적인 인간으로 자랐는지 궁금하다는 듯 엘리나와 똑같은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었다. 그녀는 지금 자기 삶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냉장고, 화장실, 얄팍한 친밀감을 공유하면서. 느낌표 속에서 사는 사람들. "굉장하다!" 그들이 자주 하는 말이었다.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216,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당시의 그녀는 미국인의 친절이 끝나는 경계선을 마주할 때마다 당혹감을 감추느라 힘들었고 팁 문화 역시-총액의 15 내지 20퍼센트를 웨이트리스에게 주는-일종의 뇌물이 아닌지, 강제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뇌물 공여 제도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p.219,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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