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말인데 틀리다
늙은이가 빨리 죽어야 할 텐데 하는 말과, 젊은 놈이
늙은이한테 “그래 맞아 늙었으면 별 도움도
안 되니 죽는 게 더 나아.”라고 말하면 화를 낸다.
결국 같은 말인데, 대머리가 자기를 ‘빛나리’라고
하는 것하고 남이 자기를 부를 때 ‘빛나리’, 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같은 말인데도
앞의 것은 그냥 넘어가지만 뒤의 것은 버럭 화를 낸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이런 것 같다.
전자는 이미 자기가 알고 있고 준비를 단단히 한 상태이고,
후자는 별안간 준비 안 된 상태에서 들어 당황하고
상처를 받아 화를 내는 것이다.
앞의 것은 내가 이런 말을 입 밖에 낼 테니 준비하라, 한 후
한 말이고, 뒤의 것은 그런 것 없이 느닷없이 들은
말이라 받아들이는 게 다른 것이다.
자기가 전자를 스스로 떠들면서 다니는 것도
남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 것에 대비해
미리 들어두는 것일 것이다.
충격을 덜 받기 위해.
맷집을 기르기 위해.
우리에게 없는 밤
D-29
Book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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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곳에만 힘을 쓰자
여자가 팔자가 사납다, 드세다, 하는 건
잘 넘어갈 일도 여자가 그것을 괜히
가로막아 잘 될 일도 그게 안 되어 힘들게 산다는 말이다.
팔자가 유연하면 안 될 일도 지혜롭고 자연스럽게
넘어가 잘 되는 것이고 좋은 일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대응해 복이 넘친다는 말이다.
그냥 큰 흐름은 지켜보는 게 낫다는 말이다.
거기에 그걸 막겠다고 나서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고 쓸데없는 것에 힘을 줘 일을 그르친다는 것이다.
실은 인간이 마음 같아선 다 자기 의지와 뜻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큰 흐름을 보고 자기의 에너지를 집중해
급소를 치라는 말이다.
힘의 안배를 잘하라는 말이다.
선택과 집중을 하라는 것이다.
인간은 수시로 변하고 그때그때 다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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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에 가두기
뭐를 하는 데 있어 뭐를 고려하지 말라고 하면,
정작 후자의 그 뭐를 더 고려하게 된다.
대중은 “아, 그 뭐라는 게, 중요한가 보다.
여기서 굳이 고려하지 말라고까지 하는 걸 보니.” 하며
후자의 뭐에 대해 생각을 멈추지 못한다.
일반 대중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하면 할 일은 안 하고
정작 코끼리만 신경 쓰게 되는 것이다.
누가 죄를 지어 기소됐다고 뉴스에 나왔는데 조사해보니 나중에
무죄로 밝혀져 기소가 기각되었어도
그는 계속 죄를 지은 인간으로 남는 것이다.
전체 맥락을 파악해야 하는데 그것과는 별로 상관도 없는
그 전체의 한 조각만 너무 인지하는 것 같다.
누가 어떻다고 하는 것은 그게 일반 대중에겐 맞다.
별로 생각할 여유가 없는 대중은 그걸 따른다.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였다, 고 하면 사람들은 그걸 따른다.
그래 그렇게 굳어졌고 나도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다.
쇼펜하우어가 다른 것에 더 중점을 두는 연구를 했어도
그는 이미 그 프레임에 갇혔다.
그런데 실은 그는 다만 순수하게 사실만 밝혔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기대나 희망, 그런 건 아예 배제한 채
자기가 그래도 이게 더 맞는 것 같은 것을 외부세계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밝히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삶의 진실만을 말하기로 작정했을지도 모른다.
자기 내부로부터 올라오는 생각을 여과 없이
내보내기로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그는 그 염세주의에서 벗어날 생각으로,
그걸 견디기 위해, 그 안에서 뭔가 흠집을 찾아내기 위해
더 집요하게 치열하게 그걸 물고 늘어졌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기대한 것보다 더 나으면 욕을 덜 하듯이
알고 보니 삶은 그렇게까진 염세적으로 생각할 건 못 되고
절망 중에 희망도 가끔 보인다는 것을 기대하기 위해
그렇게 세상을 나름대로 평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느 작가가 결정론적으로 비관적인 글을 쓴다.
그러면 대중은 그런 것이다.
그가 실은 그게 아니고 그것으로 운명을 헤쳐
다른 작은 희망을 말하려 했어도 그가 겉으로는
그런 것처럼 보이면 그는 비관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다.
대중은 그것 외에 다른 걸 생각할 수 없다.
그들은 그것 말고도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에게 흥미 있고 자기를 자극했던 것만
고려해 넣고 그런 걸 또 찾아 나선다.
그의 전체가 어떤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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