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 예전엔 안 이랬잖아. 어른들한테 예의 바르게 행동할 줄 알았지."
"무슨 예의? 아, 엿 같은 소리 들어도 입다물고 앉아 있는 거? 그게 예의라는 건가? 예의가 없는 건 아빠 가족들이었어. 정신 차려, 엄마. 형수로 부르는 게 뭐가 문제냐고? 그걸 몰라서 물어? 삼촌이 지금껏 엄마를 어떻게 대했는데. 엄만 그게 아무렇지도 않았어?"
"말 가려서 해."
"엄마가 말 가려서 하라고 말했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엄마 시어머니랑 시동생이었어."
엄마는 어둠 속에서 헛웃음을 지었다.
"희령 가고 나서부터 너, 변한 것 같아. 네 할머니가 너한테 어떤 영향을 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꼭 원수인 것처럼 대하고 있어."
"그렇지 않아."
두통이 심해져서 말을 할 때마다 머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맞서면서 살 수는 없어, 지연아. 그냥 피하면 돼. 그게 지혜로운 거야."
"난 다 피했어, 엄마. 그래서 이렇게 됐잖아. 내가 무슨 기분인지도 모르게 됐어. 눈물은 줄줄 흐르는데 가슴은 텅 비어서 아무 느낌도 없어."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피하는 게 너를 보호하는 길이라는 말이야."
"날 때리는데 가만히 맞고 있는 게 날 보호하는 거야?"
"맞서다 두 대, 세 대 맞을 거, 이기지도 못할 거, 그냥 한 대 맞고 끝내면 되는 거야."
"내가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 그걸 엄마가 어떻게 알아?"
엄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착하게 살아라, 말 곱게 해라, 울지 마라, 말대답하지 마라, 화내지 마라, 싸우지 마라. 귀에 딱지가 앉도록 그런 얘길 들어서 난 내가 화가 나도 슬퍼도 죄책감이 들어. 감정이 소화가 안 되니까 쓰레기 던지듯이 마음에 던져버리는 거야. 그때그때 못 치워서 마음이 쓰레기통이 됐어. 더럽고 냄새나고 치울 수도 없는 쓰레기가 가득 쌓였어.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나도 사람이야. 나도 감정이 있어." ”
『밝은 밤』 최은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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