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저편

D-29
하루키 작품을 다시 손에 넣었다. 이제 흐루키에게서 벗어나야 하는데 약간 관성이 붙고 중독된 것도 같다. 그래도 일단은 나는 그의 작품에서 영감을 가장 많이 얻어 진정한 내 글을 쓸 수 있었다. 나와 잘 맞는 작가이다. 그건 무시할 수 없다. 얻을 수 있는 것도 다 얻을 것이다.
어둠의 저편인데 어둠이 저편으로 잘못 썼다. 그래도 계속 나가자.
인간이 하는 짓거리는 그 기준이 모호하고 자기 멋대로 기준을 변경한다. 내부 고발자는 내부에서 서로 이간질하다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도 있고 아니라고 해도, 비슷한 것으로 한국이 국제법을 어겼다고 미국에 꼬질르면 그는 오히려 용기 있는 내부고발자가 아니라 반역자로 비난을 받거나 처벌 받는다.
일본인의 잘 표현하지 못하는 성향 유튜브에서 일본에서 10년 차로 생활하고 있는 젊은 여자에게서 들은 얘기인데 일본인과 한국인이 근본적으로 차이 나는 것을 말했는데 그게 내게 다소 충격이었고 새롭게 다가온 거라 그것을 글로 표현하지 않을 수 없어 여기에 적는다. 물론 이런 것도 다 일본에 대한 내 관심과 사랑이 심해 그럴 것이다. 나와 약간 비슷한 게 많은 사람들이라 뭔가 공감이나 연민 같은 게 작용했으리라. 사람은, 상대가 자기와 같아 어쩔 수 없이 맘대로 못하는 걸 보고, 이유 없이 괜히 눈물이 나면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자동으로 생기는 것 같다. 이게 실은 인간의 보편적 감정인데 약간 자기 마음을 들들 볶으며 좋아하는 사람에게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하는 사람을 일본에서는 좀 병이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고 한다. 꼭 칭얼대고 응석 부리는 애 같다는 거다. 한국 사람들은 뭔가 끓어오르는 흥과 주체못하는 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인데 실은 인간은 한국 사람에 더 가깝다고 본다. 한국인은 잘 끓어오르는데 식기도 잘한다. 냄비근성이다. 그러나, 불닭볶음면을 개발해 세계적으로 히트 치고, 매운 고추를 매운 고추장에 찍어 먹는 못 말리는 민족이라 그런지, 한번 끓어오르면 그게 걷잡을 수 없이 번지기도 한다. 그래 그것으로 당한 경험도 있어 한국의 위정자들이 이런 한국인의 근성에 겁을 덜컥 먹는 것도 사실이다. 그전에도 각종 민란이나 민주화 시위도 있었지만, 근자의 것으로, 2002년 월드컵 붉은 악마와 2016년 촛불 집회로 정권이 바뀐 것을 가장 비근한 예로 들 수 있다. 이렇게 인간은 마음의 작용으로 시도 때도 없이 변한다. 그것을, 실은 다 겉으로 드러내는 게 더 정신건강에 좋은 것 같다. (여자를 옭아매는 코르셋으로 대변되는) 히스테리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것도 중세에 여자들을 종교적으로 옥죄는 문화 때문에 여자들이 욕구 불만, 집단 히스테리라는 정신적인 병을 앓은 것이다. 이런 감정은 억누르는 게 아니고 어떤 식으로든 겉으로 드러내는 게 좋다고 본다. 안 그러면 한꺼번에 폭발해 큰 사달이 날 수 있다. 이걸 분출 잘하는 게 한국인이고, 일본인은 참고 억누르려는 성향이 강하다고 본다. 일본인 스스로도 자기들을 세상에서 가장 소심한 국민이라고 말한다. 이건 이글과 직접 관련 없는 여담으로, 한국도 이런 성향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그걸 또 자기 스타일로 여겨, 그런 유의 노래를 곧잘 듣는 사람도 있다. 나도 물론 자주 들으면서 내 마음을 달랜다. MSG워너비의 <바라만 본다> 라는 노래인데, 한 여자를 향해 그저 바라만 보는, 짝사랑하는 소심한 한 남자의 눈으로 노랫말을 쓴 것인데, 그의 심정이 이 노랫말을 통해 너무나 잘 나타나 있다. “...얼마나 그리고 그리워 해야 내 맘 너의 곁에 닿게 될까 매일 하루 종일 너의 생각에 사무쳐 너무 보고 싶다.” 짝사랑이라는 가슴 찢어지는 사랑을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절대 쓸 수 없는 노랫말이다. 내 사랑이 그녀도 알아 자기만 바라봐, 그녀가 행복에 겨워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그녀는 알지도 못하는 나만의 일방적인, 다가가지 못하는 그저 바라만 보는 사랑이라 고구마를 물 없이 먹은 듯 너무나 답답하고 애절한 사랑이다.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노래 가사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의 입을 빌려 대신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깊이 공감 가는 노래다. 이 노래는 커버로 씨야의 이보람도 잘 부르는데 (아니, 어쩌면 더 잘 부르는 것 같다. 맑고 또렷하고 청아한 목소리로, 이보람은 슬픈 노래에 가장 특화된 가수라고 생각한다.) 이보람은 나와 같은 A형인데, -난 MBTI도 INTP로 글쓰기에 안성맞춤 기질이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 약간 슬픔에 젖은 목소리로 부리는 <바라만 본다>를 듣고 있으면 마치 내가 그 주인공이 된 것 같아, 바로 그 노래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언제 들어도 절대 질리거나 싫증 나는 법이 없다. 다시 본래의 글로 돌아가서, 일본은 또 상대에게 미움을 받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하다. 그래 연인끼리도 연락을 잘 안 한다. 내가 연락할 때, 마침 그가 운전하고 있어 위험한 상태거나 중요한 회의를 하고 있거나 강의를 듣고 있을 수도 있고 조용히 영화를 보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연락을 못하는 것이다. 대신 한국은 시시콜콜하게 “지금 뭐 해?” “밥은 먹었어?” “뭐 먹었어?” “맛은 어땠어?” 하면서 별것도 아닌 것으로 연락을 수시로 취한다. 그러나 일본은 이렇게 하면 상대에게 미움을 살까, 안 한다는 것이다. 그래 상대가-그들의 표현대로-내 병적인 마음을 (사랑하니까 궁금해 수시로 연락하는 거) 접하고 나를 미워하면 어쩌나, 해서 참고 있다가 갑자기 상대로부터 이별을 통보받고 혼자 울고불고한다는 것이다. 마음을 중간중간 표현해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야 하는데, 그걸 회피해 연인끼리도 소통이 잘 안 되어 나중에 한꺼번에 폭발해 이별로 이어진다고 한다. 그녀는 또 일본에 왜 이렇게 바람피우는 걸 쉽게 생각하고 너도나도 많이도 하는지 그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데, 일본에서 바람을 많이 피우고 불륜이 많은 것도 자기 마음을 더 잘 표현할 수 있고 상대도 나에게 살갑게 대해주는 제3자가 나타나 그에게 마음을 쉽게 빼앗겨 바람으로 이어지고, 한류 드라마가 인기가 있는 것도 한국 남자 배우가 상대 여배우에게 자기 마음을, “여기서 자기는 공주고 나머진 다 자기를 돕는 시녀 같아.” “내 눈에 다른 사람들은 다 지워지고 자기만 보여.” 같이 오글거리는 것도 잘 표현하고, 상대 여배우도 남자에게 거침없이 세게 표현하는 것에 매료되어 그렇다는 거다. 진심으로 믿고 마음을 깊이 나누는 상대가 아니라서 뭔가 채워지지 않아 그 공허를 메꾸기 위해 여러 상대를 전전하며 헤매는 거 아닌가. 어장 관리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란다. 어디 마음 둘 곳 없어 정처 없어 떠도는 것이다. 결국 나도 상대에게 좀 무뚝뚝하고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편이고, 겨우 표현한다 해도 글로 이렇게나마 끼적이는 게 전부인데, 이런 것이 일본인과 많이 닮아 그들 마음이 너무 잘 이해가 되고 동정심도 생기고 나를 보는 것 같아 연민까지 들어 일본인을 그렇게나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한다.
한국인은 자기 목적이 정당하면 그 방법이나 절차를 무시하는 것 같고, 일본인은 그 방법도 정당하지 않으면 괴로워하는, 약간 결벽증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인간만이 가진 것 인간에게만 기질과 마음과 기억이 있다. 동물도 기질(성깔, 그러나 결국 본능)은 있을 수 있는데, 인간만이 의지와 방향을 갖고 그것으로 자기를 구현하려고 한다. 인간을 가장 잘 특징 짓는 건 이 기질과 마음과 그 궤적의 흔적인 기억(추억)이다. 인간은 기질이 있어 자신을 가장 특징지으며 산다. 이 기질로 인해 인간의 큰 궤도가 주로 결정된다고 보는데, 인간엔 또 마음(감정)이라는 게 있어 일탈인 탈선을 통해 어디로 튈지 모른다. 이게 인간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로 만드는 요인이다. 인간은 사실 불안하고 불완전해서 절대자를 만들어 섬기고 불행과 행복의 시소를 타면서 모순과 아이러니 속에 있지만, 인생의 큰 줄기인 기질 대로 살다가 갑자기 마음(감정)의 작용으로 중간에서 생을 중단할 수도 있다. 자기 생을 이만 마감하는 것이다. 기질은 한 인간에게 다소 운명적이지만, 감정으로 그것을 얼마든지 배신할 수 있다. 고정과 변화를 오르락내리락한다. 기질은 꾸준하고 마음은 일시적이다. 그러나 마음이 인간으로부터 영영 떠나는 일은 없고 다시 돌아와 붙어산다. 인간의 가장 큰 미덕인 이성에 의지해 살아야지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감정의 지배를 받으며 감정이 그 몸에서 분리될 때는 그의 생명이 다할 때뿐이다. 인간은 이성보다는 마음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빙산에서 겉으로 드러난 일부만이 이성이고, 그 밑에 묻혀 안 보이는 거대한 부분이 감정이다. 듣기 좋게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감정의 동물이라고 하는 편이 더 설득력 있다. 이성적으로 행동하려는 것도 결국, 알고 보면 자기 마음 좋아지려는, 행복해지려는 수단에 불과하다. 기질과 마음은 서로 견제하기도 하고 돕기도 한다. 지지고 볶으며 싸우기도 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타협하기도 하면서 어떻게든 맞춰 살아간다. “산목숨은 어떻게든 살아야지.” 붙어 있으면 진저리를 치는데, 떨어지면 또 서로 그리워한다. 기질은 자기 생긴 대로 살려고 하지만 그 경로를 마음이 있어 이탈할 수도 있다. 기질과 마음의 길항작용(拮抗作用)으로 수놓아진 자기만의 인생길을 되새기고 기억(추억)하는 게 인생 아닐까? 이 타고난 본성과 성정인 기질이 한 인간을 가장 특징짓게 하고, 마음으로 인생을 변화무쌍하게 창조적으로 꾸미며 나중에 나이 들어, 아니 중간중간 그 기질과 마음의 행로를 기억하며 정리하기도 하고 인생철학으로 결론지으며 후회하고 미소 짓는 게 인간의 삶, 인생 아닐까.
하루키 소설엔 헉교에 안 가고 어린 나이에 대신 책을 읽는 소녀가 많이 나온다. 그들은 하루키가 어릴 적에 하고 싶은 캐릭터였지만 용기가 없어 자신은 못하고 대신 자기의 분신으로 그렇게 만든 것 같다. 하루키는 학교를 별로 안 좋아한다. 상상력이 없어 그렇단다.
작가의 뜨거운 화두에 대한 정의 뭔가 작가가 내가 궁금하던 것을 정의 내리려고 하는데,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대개는 별거 없는 경우가 많다. 그냥 평범한 얘기거나 다분히 자기만의 한 생각을 말할 뿐이다. 그래도 유명한 작가라서 기대를 했는데 자기만의 한 가지, 너무나 개인적이어서 그 의미를 정확히 모르는, 혼잣소리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내가 그 말에 오해가 있거나 하는 것도 있겠지만, 내 느낌엔, 이러는 건 뭔가 명료하게 규정하는 것에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들고일어날 수도 있어- 조심성이 너무 있어 모호하게 말하는 것도 있겠지만 자기의 정의가 실제 아직은 명확하지 않거나 그게 자기만의 발견인지라 자기 딴엔 뭔가 대단하고 흥분되는 것이어서 그 정의를 숨기면서 그것과 약간 관련 있는 것만, 혼자만 아는 소리로 작게 말하는 것, 같을 때가 많다는 거다. 자기가 힘들게 찾아낸 걸 쉽게 발설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강력한 반영이다.
나이가 어릴 땐 평균적으로 살기 위해 자기가 못 하는 걸 어느 정도 올려놓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나이가 이미 많을 땐 자가 못하는 것보단 잘하고 즐거운 것에 올인해 거기에 빠지는 게 백번 낫다.
호락호락을 뛰어넘으려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말은 이미 부자보다 더 돈을 벌려고 그들을 이기려고 감히 덤비는 경우에 쓰는 말이기도 하다. 흙수저가 금수저 대열에 끼려는 객기 같은 것. 그리고 이미 닦아놓은 곳에 자기가 뭔가 변혁 바람을 일으키려고 덤빌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기존의 것이 엄청난 힘으로 버티고 있다는 말을 할 때 그것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체 게바라가 혁명을 꿈꾸었지만, 그는 너무나 견고한 기존 벽에 부딪혀 자기 꿈을 실현하지 못했을 때도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 예로 잘 쓰인다. 이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걸 알고 거기에 덤비는 것하고 그냥 무데뽀로 덤비는 것하고는 근본부터 다른 것이다. 알고 덤비는 것하고 모른 채 그냥 무데뽀로 덤비는 것은 그 결과에서 당연히 확연한 차이가 날 것이다. 남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다. 그게 이미 견고한 성이라서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깊고 넓게 연구하고 그래 잘 알게 되고 자기가 거기에 뛰어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그걸 공략하기 위해 반드시 그리고 맘껏 즐기면서 한다면 승산은 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 목표도 자기가 엄청나게 바라면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미 각오를 단단히 하고 그 험난한 곳에 뛰어들어야 한다. 자기희생이 너무 크면 그냥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고 만다. 긴 안목을 갖고 자기를 챙기고 자기를 잘 관리하면서 힘을 비축하고 뛰어들어야 한다. 그리고 뛰어든 다음엔 절대 초심을 잃어선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고 그저 또 하나의 세상은 역시 만만치 않고 호락호락하지 않음의 한 사례로 기록될 뿐이다.
여자는 관심이 부모에게서 남편으로 다시 자식으로 옮겨간다. 뭔가 의지하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것 같다.
여자는 남자에게 의지받고 기대고 싶은 심정이 있는 동시에 모성애라고 그를 챙기고 감싸주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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