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3. <증오의 시대, 광기의사랑>

D-29
오늘(8월 27일) 읽을 분량에도 나오는 하로 슐체보이젠과 리베르타스는 국내에서 반나치 활동을 전개했던 '붉은 악단(Die Rote Kapelle)' 그룹의 리더였습니다. '붉은 악단'은 널리 알려진 뮌헨에 근거를 둔 대학생의 반나치 활동인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으로 유명한) 조피 숄(뒤에 등장합니다)과 백장미단의 활동에 비해서 이데올로기적 이유 때문에 (소련 스파이라는 딱지를 붙였었더라고요) 독일 통합 이후에 좀 더 적극적으로 재조명되고 있나 봐요. 국내에서도 붉은 악단의 활동에 대한 책은 그 조직원이었던 카토 본트여스 판 베이크의 평전이 번역되어 있을 뿐, 다른 책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못 찾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의 독재를 타파하려는 대학생 저항 단체 ‘백장미’의 활약상과 희생을 그린 실화소설이다. 소설가 잉게 숄은 백장미의 리더인 한스 숄의 누나이자 백장미의 일원인 소피 숄의 언니이다.
조피 숄 평전 - 백장미,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히틀러의 광기와 그늘 아래 놓였던 나치의 독일, 자유와 행복을 위해 싸웠던 ‘백장미 조피 숄’의 일대기. 열렬한 히틀러 유겐트였던 한 소녀가 반나치 투쟁에 목숨을 걸기까지의 스물두 해, 짧은 일생을 당시의 시대상과 교직시켜 복원해낸 평전이다.
카토 본트여스 판 베이크 - 난 내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반(反)나치' 저항 운동을 벌이다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은 레지스탕스 카토 본트여스 판 베이크. 이 책은 카토 본트여스 판 베이크의 짧은 생애를 되돌아보면서 가족들이 보관해 온 그 소중한 자료들과 당시 생존자들의 대면 조사를 통해 카토의 생애를 콜라주 형식으로 재구성해낸다.
1934년 7월 14일 어느 더운 날에 홀연히 새로운 연인 한 쌍이 이 책 안으로 항해해 온다. 벌써 초저녁의 반호숫가, 느릿느릿 해가 저물고 북북서에서 처음으로 서늘한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스무 살의 리베르타스가 비키니에 통이 넓은 빨간 바지를 입고서 친구 리하르트 폰 라파이의 요트 ‘하이주루’ 뱃머리에 서 있는데, 난데없이 갈대숲에서 보트 한 척이 이쪽으로 다가온다.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그 이후,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저 이 부분 좀 이상해서 문장을 올렸습니다. 비키니는 디자인도 이름도 모두 1946년에 나온 거 아닌가요? 1934년에 어떻게 비키니를 입을 수 있는 걸까요?
아, 그리고 파리에서 폴란드인 괴짜 화가인 타마라 드 렘피카도 결혼한다. 1년 전 자기를 숭배하는 대부호 라울 쿠프너 남작에게 결혼하기에 적절한 때가 아니라고 선언했으나 이제 이성적이 된 것이다(우연히 쿠푸너 남작의 은행 잔고를 보았다). 따라서 합리적인 결혼이요, 좋은 취향에 따른 결혼이었다. 타마라는 귀족적인 매너를 지닌 쿠프너 남작을 아버지처럼 존경한다. 다만 살이 너무 쪘다고 생각한다. 이 부부는 시몬 드 보부아르와 장폴 사르트르처럼 성적 만족은 부부 침실 밖에서 찾기로 합의를 보았다.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그 이후,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어쨌든 스탈린은 제니아와 불륜을 시작했다. 향수 탓이기도 했고, 언제까지나 혼자서 잘 수는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동안은 그렇게 잘 흘러간다. 그러다가 1938년이 되면 모두들, 그러니까 스탈린의 애인 제니아도, 제니아의 남편 파벨도, 나데즈다의 언니 안나도, 안나의 남편 스타니슬라스도 스탈린의 부하들에 의해 살해된다.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그 이후,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몇 년 뒤 두 사람은 실제로 하나의 무덤에 같이 묻히게 된다. 메릴랜드주 록에 있는 가톨릭교회 묘지인 성 마리아 묘지에. 모비석에는 피츠제럴드의 작품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멋진 마지막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에 맞서 노를 저으면서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행복한 생각이고 결코 우울한 게 아니다. 이 노 젓는 사람들은 발터 벤야 민이 말한 역사의 천사와 같다.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는 동시에 다른 쪽을 바라본다. 바로 뒤를 바라보는 것이다.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411-412,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투홀스키가 스웨덴 망명지에서 베로날 과다복용으로 자살한 12월 21일에, 클라우스 만도 취리히 근교 퀴스나흐트에 있는 부모님 집에서 베로날을 복용한다. "그러나 마지못해, 그저 그것이 마침 방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더이상 원하지 않는다."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425,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1934년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스콧 피츠제럴드에게 직언을 한 해다. 피츠제럴드가 편지에다 왜 글을 쓰지 않는지, 아내 젤다와 젤다의 정신분열 발작 때문에 자기가 얼마나 힘든지 거듭 토로했을 때, 오랜 절친인 헤밍웨이는 이렇게 답한다. “세상 사람 중에 특히 자네는 일할 때 규율이 필요한 사람인데 자네는 자네 일을 질투하고, 자네와 겨루려고 하고, 자네를 망가뜨리는 사람과 결혼했지. 물론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처음 봤을 때 나는 젤다가 미쳤다고 생각했네. 그런데 자네는 젤다를 사랑했기에 모든 것을 더 복잡하게 만들기만 했지. 물론 자네가 술꾼이기도 하고. 자네는 조이스보다도 심한 술꾼이네.”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그 이후,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헤밍웨이의 말년을 생각해보면 좀 아이러니하게 들리는 충고입니다.
ㅋㅋ 아니, 마초 아저씨... 이런 조언까지 하셨군요 ㅎㅎㅎㅎ
@장맥주 @오구오구 헤밍웨이도 참 오지랖이 넓었구나, 했습니다. :)
@YG @오구오구 1930년대라서 술 때문에 망한 작가들 이야기가 나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2020년대 작가들 이야기를 훗날 누군가 쓰게 된다면 분명히 약 때문에 망한 작가들 이야기가 꽤 나올 것 같아요. 마약이든, 신경정신과 약이든 간에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수요일 8월 28일은 1937년에 있었던 일을 읽습니다. 445쪽 뉴욕에 정착한 쿠르트 바일과 로테 레냐가 1937년 1월 19일에 다시 결혼하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466쪽 1937년 9월에 영국 런던에서 결혼하고 다시 미국으로 망명하는 아도르노 이야기까지 읽습니다(덤으로 바일과 레냐의 미국 생활도 언급됩니다).
오늘 읽을 부분(451~454쪽)에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부부 얘기가 나옵니다. 이 부부도 피해가지는 못하네요. :)
결국 베라는 남편에게 진실을 말한다. 자기를 배신한 것을 들었다고. 히틀러의 마흔여덟번째 생일인 4월 20일에 블라디미르는 뻔뻔하게 이런 거짓말을 한다. “똑같은 소문이 내 귀에도 들어왔소. 그런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의 더러운 낯짝을 갈겨주겠소. 어쨌든 사람들이 신나서 나에 대해 떠들어대는 혐오스러운 짓을 나는 전혀 신경쓰지 않소. 그리고 당신도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오.”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그 이후,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나보코프, 너마저...
9월 17일에 아나이스 닌은 임신 6개월인데도 임신중절수술을 해줄 의사를 구하는데, 베를린에서 도망 온 유대인 의사였다. 그 의사가 의료기구로 몸안에 있는 생명을 죽이려고 하는 동안에 “베를린에서 벌어지는 유대인 박해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유혹했다”고 아나이스 닌은 일기에 쓴다. 그러니까 한 남자의 도움을 받고 있는 드문 순간에도 권력을 과시한 것이다(아나이스 닌은 실제로 “유혹”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아나이스 닌은 자기가 낳은 죽은 여자아이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런 다음 병원에 찾아올 잠재적인 아빠들을 맞이하기 위해 화장을 하고 실크 재킷을 입었다. 처음에 헨리 밀러, 그다음에는 오토 랑크, 그다음에 남편 위고 순서였다. 헨리 밀러는 곧 『남회귀선』이 출간될 거라는 소식을 들려주었다. 그러자 아나이스 닌은 이렇게 말했다. “내게 훨씬 더 흥미로운 탄생이네.” 헨리 밀러가 가고 나자 아나이스 닌은 남편 위고와 함께 병실에서 샴페인을 한잔 마신다.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그 이후,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상상해보라/한때 당신의 것이었던 모든 여성이/당신의 침대로 오는 것을.” 마르가레테 슈테핀이 절망에 가득차 일부다처제의 극치를 실천하는 애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에게 보낸 소네트의 첫 구절이다. 그러나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는 데 능숙하고, 아예 상상하지 않는다.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그 이후,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에바 헤르만은 이 상황을 자기 방식대로 해결하려 한다. 먼저 포이흐트방거와 동침하고, 그다음에 헉슬리와 동침하고, 그다음에 다시 쥐빌레 베드포드와 동침하는 것이다. 그러자 포이흐트방거는 일기에 이렇게 적는다. “에바 때문에 기분이 몹시 상함.” 리온 포이흐트방거는 다른 사람을 갖고 노는 것은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이 자기를 갖고 노는 기분이 드는 것은 싫어한다.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그 이후,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가톨릭교도는 이혼이 아니라 결혼이 무효화된 후에야 재혼할 수 있기 때문에 홀른슈타이너는 빈 가톨릭 대교구 법원장으로서 핵심 역할을 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수상 쿠르트 슈슈니크가 결혼 무효 소송을 신청하는데, 1935년에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수상은 베라 폰 체르닌후데니츠 백작부인과 결혼하려고 한다. 그런데 베라 폰 체르닌후데니츠 백작부인은 레오폴트 푸거 폰 바벤하우젠 백작과 결혼한 몸이자 둘 사이에 자녀 넷을 두고 있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적어도 4중의 결혼으로 보이는데, 그럼에도 요하네스 홀른슈타이너는 수상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그 이후,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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