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3. <증오의 시대, 광기의사랑>

D-29
전쟁이 훑고 지나간 육체를 똑같이 냉정하게 바라본다. 초상화가라기보다는 머리사냥꾼의 눈으로. 죽음을 열망하는 1920년대 아이콘으로 그린 베를린 밤 문화의 여왕인 댄서 아니타 베르버가 빨간 원피스를 입은 모습도 눈을 크게 뜨고 응시한다.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강렬하네요....
정말 강렬하네요...
헨리 밀러는 정처 없이 떠돌고, 운좋게 얻은 프랑을 들고 곧바로 매춘부에게 달려가고, 아는 미국인이 와서 술값을 내주길 기다리며 셀렉트나 로통드에 죽치고 앉아 있는다. 그렇게 닥치는 대로 아무 여자나, 아무 술이나, 아무 침대나 받아들인다. 헨리 밀러는 이제 마흔 살인데 사실상 지칠 대로 지쳐 있다. 결국 소설이 완성되는 때가 온다. 1931년 8월 24일의 일이었다. 뉴욕에서 온 아내 준이 그 원고를 읽더니 깜짝 놀란다. “당신은 모든 것을 자기만의 편협한 남성적 관점으로만 보고 있어. 당신은 모든 것을 섹스 문제로 만들어. 그런데 그런 문제가 전혀 아니야. 중요한 건 희귀하고 아름다운 거라고.”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그 이전,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수요일 8월 14일과 내일 광복절 8월 15일에는 1932년을 읽습니다. 오늘은 201쪽 문헌학자 빅토르 클렘퍼러(Victor Klemperer, 1881~1960)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이야기부터 225쪽 프랑스 작가 루이페르디낭 셀린(Louis-Ferdinand Céline, 1894~1961)까지 읽습니다. 내일 광복절은 225쪽 리 밀러의 이야기부터 243쪽 헨리-준-아나이스의 이야기까지 읽습니다. 이렇게 1932년이 끝나고 1933년 파국이 시작됩니다.
빅토르 클렘퍼러는 유대인 문헌학자.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의 삶을 일기 형식으로 남기는 생애사 집필 실험을 한 지식인으로도 유명하고, 구사일생으로 생존하고 나서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서 나치 치하 언어에 대한 연구로도 유명합니다. 독재자의 언어에 대한 책이나 칼럼에 선행 연구로 무조건 나오는 지식인이 바로 빅토르 클렘퍼러입니다. (저도 이름만 들어서 알고 있는 지식인인데, 이렇게 날 것의 삶을 들여다본 건 이 책이 처음입니다.)
셀린은 중요하게 언급되는 프랑스 현대 작가 가운데 한 명이죠. 저는 그의 삶이 그냥 싫어서 작품을 읽은 적은 없어요. :( 대표작으로 꼽히는 『밤 끝으로의 여행』도 국내에 번역되어 있고, 그의 문학 세계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꼽히는 초기작 등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밤 끝으로의 여행
제멜바이스 / Y 교수와의 인터뷰제안들 13권. 작가이기 이전에 의학도였던 셀린의 의학 박사 학위논문이면서 일종의 소설로 읽히는, 즉 작가 셀린의 씨앗을 엿볼 수 있는 <제멜바이스>와 셀린 전작의 전환점이라 할 소설 'Y 교수와의 인터뷰'를 함께 묶어 루이페르디낭 셀린의 방대한 작품 세계를 미리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밤 끝으로의 여행을 아주 오래 전에 읽어서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무지 어둡고 무거운 책이었던 기억이에요. 이런 작가들의 삶을 안다는 게 책을 읽기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겠어요. 레마르크도 고등학교 다닐 때 처음 읽고 제 인생 처음 사랑이 칼바도스를 마시는 개선문의 라비크였었는데…. 환상이 깨졌네요.
이 책을 읽으면서 광복절을 맞다 보니 갑자기 벽돌 책 한 권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흠모하는 국문학자 권보드래 선생님의 역작 『3월 1일의 밤』(돌베개)인데요. 너무 매력적인 책인데, 많이 알려지지 않았거든요. 우리 앞으로 읽을 벽돌 책 후보 가운데 하나로 살포시 올려둡니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문학과 역사를 넘나들며 근대를 보는 지평을 넓혀 온 고려대 국어국문과 권보드래 교수가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그간의 연구와 기록을 한 권에 담았다. 1910년대 전 세계로 무대를 넓히고 당시의 신문 및 잡지, 재판기록, 문학작품, 국내외 선학자들의 연구와 시각자료 등을 재료 삼아 1919년 3월 1일의 한반도를 복원한다.
우와. 대단한 책이네요. 소개 감사합니다.
그리고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는 8만 프랑을 주고 바로 이곳에서 바로 지금부터 인생을 즐기려고 한다. 레마르크는 이혼한 전처 유타 잠보나와 새로운 애인 루트 알부에게 이 집에 빨리 이사 들어갈 수 있게 준비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래서 두 여인은 레마르크가 은행에 가기 위해 베를린에 다녀오는 동안 이불보와 가구를 산다. 1931년 가을만 해도 아직은 별문제 없이 독일 은행 계좌에서 스위스 은행 계좌로 전 재산을 송금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제3의 공모자, 바로 레마르크의 매니저이자 전 애인 브리기테 노이너가 이 일을 도왔다. 세 여성 모두 꽤 오랫동안 이 남자와 사이가 좋았던 걸로 보여 기쁘다.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그 이전,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금요일 8월 16일부터는 1933년을 시작합니다. 이 부분은 나치와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1933년에만 할애되어 있습니다. 몰락이 어떻게 시작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죠. 오늘은 247쪽 수술하고 나서 스위스에서 1월 1일에 눈을 뜬 마르가르테 슈테핀(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애인)의 이야기부터 274쪽 파리로 망명하는 출판인 쿠르트 볼프의 이야기까지 읽습니다. (볼프는 카프카의 책을 낸 출판인입니다.)
사랑은 극복 불가능한 고독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시도야. 네가 하려는 시도는 진지하고 아름다워, 이보다 더 나은 축하의 말은 못 찾겠어. 그렇지만 너의 좋은 시도가 좋은 결과를 낳으리라고 예언하지는 못 하겠어. 너의 다음 결혼식 때도 오늘과 다른 말은 하지 못할 거야. 설사 그것이 우리의 결혼식이라도.” (클라우스 만이 파멜라 베데킨트에게)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144쪽,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레마르크는 누이에게 결혼을 알리는 편지에서 사랑 얘기는 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보려고 해. 다른 사람을. 나 자신은 그렇게 될 수 없으니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심리학 교육을 받은 우리 현대인들로서는 늦어도 이 시점에서는 알 것이다.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150~151쪽,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요즘 시대에 사랑이요? 당신은 사랑하고 있습니까? 요즘 누가 아직도 사랑이라는 걸 합니까?”(작가 투홀츠키)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165쪽,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발터는 연인이 곁에 있는 것보다 연인을 그리워하는 것을 더 좋아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떠오르게 했다.”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170쪽,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쿠데타의 기술>은 1931년 봄에 출간되는데, 프랑스어판으로만 나온다. 이 책에서 말라르테는 히틀러가 쿠데타의 형식이 아니라 의회의 타협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게 되리라는 것을, 말라파르테의 표현을 빌리자면 “실수로 생긴 독재가”가 되리라는 것을 예언한다.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173쪽,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마르그리트는 비트겐슈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찾을 수가 없다. 농가의 방에서 비트겐슈타인이 놓고 간 성경을 발견할 뿐이다. 사랑의 찬가인 고린도전서 13장에 편지를 숨겨놓았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된 관계인 마르그리트에게 너무 지나친 요구였다. 게다가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 파트너와의 관계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192쪽,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상실감은 엄청난 절박감을 낳았고, 하나의 전쟁이 끝나기는 했지만 곧바로 다음 전쟁이 올 수 있다는 예감은 더이상 잃어버릴 시간이 없다는 감정을 모든 이에게 불러일으켰다.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온갖 막장 드라마 속에서 마주치는 이런 문장들이 (예술가들의 기이한 애정행각 모음집이 아니라) 모자이크로 만들어가는 시대상을 읽고있다는 걸 잊지않게 해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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