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 낙원의 이론을 쓸 때 전체적인 스토리랑 결말을 다 생각하고서 썼는지 아니면 써가면서 생각했는지 궁금해요!
<한국 소설이 좋아서 2> 정선우 소설가와의 온라인 대화
D-29
사유
정선우
전체적으로 구상을 따로 하지 않고, 한 편 한 편 써 가면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하루살이처럼 4권 초반까지 무료 연재를 했을 때 출판사와 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완결까지 시놉시스를 써보았습니다. 이 시놉시스에서 세계관이나 권력 구도, 연표 등 설정은 거의 그대로 반영되었으나, 전개는 상당히 틀어졌습니다.
차기작인 ‘함박꽃식당’도 마찬가지인데요. ‘낙원의 이론’보다 효율적으로 집필하고 싶다는 생각에 시놉시스부터 작성하였으나 본문으로 들어가자마자 틀어지고 말았습니다. 중간에 전개에 맞춰 시놉시스를 수정해도, 본문을 쓰기 시작하면 몇 문장만에 또 틀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안 맞는 시놉시스만 여러 개 가진 하루살이가 되었습니다.
nuii
작가님! 혹시 윤환이의.. 꼬옥 끌어안고 자야 하는 잠버릇은 그대로일까요 아니면 그것도 고쳐졌을까요? 고쳐졌다면 토끼 인형의 행방은 어디로...가 되었는지도 궁금해요!
그리고 윤환이 방은 여전히 우당탕탕 질서의 방일까요??ㅎㅎ
정선우
정윤환은 자신이 계속해서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으로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불면증이 심각했고, 꼭 지켜주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한 유은우를 대신할 토끼 인형이라도 꼭 끌어안고 자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끝에서 정윤환은 모함에서 뛰어내려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끊임없이 스스로를 미워하던 패턴을 끊어내고 한결 성숙해졌습니다. 때문에 이제 언제 어디서든 잘 잡니다.
정윤환에게 끌어안는 대상은 유은우가 아닌 이상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토끼 인형은 단지 유은우와 체구가 비슷해 끌어안고 자는 용도였을 뿐 특별한 의미가 없는 물건이라, 기숙사에서 짐을 뺄 때 버렸습니다.
정윤환의 집무실은 여전히 엉망진창입니다. 그래서 본인 집무실에 잘 안 갑니다. 주로 서재희의 집무실에서 일을 합니다. 서재희의 집무실은 깔끔하고, 서재희가 오며 가며 정윤환의 일도 처리해 주기 때문에, 정윤환으로서는 여러모로 서재희 곁에 딱 달라붙어 있는 게 편합니다. 물론 신뢰하는 친구 가까이 있는 게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요. 유은우를 자주 볼 수 있는 건 덤입니다.
정윤환은 임시정부 건물과 가까운 곳에 오피스텔을 구했으나 워낙 출장이 잦아 함선에서 자는 날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오피스텔은 깔끔합니다. 어지를 시간이 없었거든요.
공영
안녕하세요 정선우 작가님, 작품 정말정말 재미있게 읽은 독자입니다!! 저도 앞선 질문처럼 추가 외전을 바라보며...ㅎㅎ 재희랑 은우 결혼식 장면이 아른거리네요. 혹시 외전으로 다룰 계획이 없으시다면, 결혼식은 어떤 형태로 진행했으며, 정윤환과 김서혁을 비롯한 주변인들이 참석했을지의 여부 또한 여쭙고 싶습니다.
정선우
공영님, 반갑습니다.
결혼식이 궁금하시군요. 웨딩드레스를 입은 유은우가 너무 예쁘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똘똘 뭉친 서재희와, 그런 서재희가 치밀하게 세워온 결혼식 계획을 한번 쓱 훑어보고 네가 좋으면 나도 좋다고 선선히 수락하는 유은우에 의해, 결혼식은 비공개 소규모로 진행됩니다. 다만 비공개로 진행하고 싶다는 주장과 반대로, 서재희는 결혼식 전후로 관련 기사를 어마어마한 물량으로 내보냅니다. 유은우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은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지만, 내 여자라는 것만은 세상에 똑똑히 알리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습니다. 유은우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며 서재희가 경계해야 할 남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유은우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입니다. 만인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을 독점한다는 건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에요.
결혼식에 정윤환과 김서혁, 차예원도 참석합니다. 차예원은 자신의 배우자인 안기헌과 함께 찾아옵니다. 차예원은 청첩장을 받은 순간부터 까탈스러워지기 시작하여, 식장에 도착하고서는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상황이라 옆에 있는 안기헌만 죽어납니다. 차예원은 결혼식에 엄선되어 참석한 인사들을 꼼꼼히 훑어보고, 새삼 서재희의 위치를 실감하며 그와의 결혼이 얼마나 큰 권력을 가져다주는지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자신의 안목이 정확했음을 확인 사살하자, 옆에 앉아 있는 안기헌이 꼴도 보기 싫어집니다. 안기헌은 영문도 모르고 차예원에게 표정 좀 풀어라, 여기가 결혼식장이냐 장례식장이냐 핀잔을 주다가 뼈도 못 추립니다.
김서혁은 유은우에 대한 감정을 완전히 정리했기 때문에 진심으로 축하하지만, 정윤환은 상황이 다릅니다. 기분이 아주 복잡합니다. 어엿하게 축하해 주리라 매일매일 열심히 다짐한 건 어디로 가고, 입이 까끌까끌하니 음식도 잘 안 들어가는 데다가 자꾸 가슴이 답답합니다. 피로연에서 정윤환은 빈속에 잘하지도 못하는 술을 많이 먹습니다. 인사하러 온 서재희의 등을 장난으로 마구 때리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막상 유은우는 잘 쳐다보지도 못합니다. 너무 예뻐서요. 나중에 취해서 구석에 박혀 우는 정윤환을, 가까이서 주시하고 있던 소연주와 이선규가 재빨리 수습합니다. 다음날 정윤환은 소연주와 이선규 신혼집에서 깨어납니다.
재희선배
'만인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을 독점한다는 건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에요.'
중앙학교 시절 (철저한 의도였지만) 만 인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이 재희였는데, 은우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재희가 그런 사람들을 견제하게 된다는 것 보니 뭔가 신기하고 감회가 새롭네요ㅋㅋㅋ 은우를 소유해서는 안 되지만 내 여자라는 걸 세상에 널리널리 알리겠다는 결심으로 똘똘 뭉쳐있었을 재희 생각하니 귀엽습니다...!
공영
단행본 기준 1~4권 중, 작가님의 최애 권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권 별로 분위기라던가 상황도 천차만별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집필할 때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있으시다면 그것도 좋습니다^_^///
정선우
가장 수월하게 쓴 건 3권입니다만, 1~3권이 고루 즐거웠습니다. 무료 연재를 하며 독자들과 함께 달렸거든요. 한 해 동안 혼자 쓰는 즐거움과 함께 읽는 행복을 동시에 누릴 수 있었습니다. 4권부터는 혼자 쓰고 혼자 읽어서 조금 외로웠습니다. 특히 1~3권에서 벌인 사건을 수렴해야 했기에 작업도 한층 까다로웠습니다. 대신 힘든 만큼 쓰고 나서 가장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집필할 때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비슷한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갈음합니다.
- 가장 몰입해서 쓴 장면은, 유은우와 정윤환의 모의 전투입니다.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장면을 손으로 따라잡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썼습니다. 적확한 묘사를 위해 공을 들였다기보다는, 워낙 급류처럼 몰아치는 장면이다 보니 쓰는 속도가 빨라야 고조된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 꼭 쓰고 싶었던 부분은 사해에서 정윤환이 자신을 희생하는 순간입니다. 글을 처음 시작할 때는 그리지 못했던 장면이나 이야기의 중반쯤 닿았을 때 정윤환이라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완성된다는 생각이 들어 미리 몇 문장 써두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란 게 정해진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아서 때때로 그 장면을 과연 쓸 수 있을까 염려스럽기도 했습니다. 결국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지점에 다다라 제대로 쓰기 시작했을 땐, 이 장면을 쓸 수 있어서, 정윤환이 이런 결정을 해주어서 정말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쓰고 난 직후 만족감이 가장 컸습니다.
해서리
안녕하세요 작가님!
낙원의 이론 너무 좋아하는 독자입니다><
작가님께서 낙원의 이론이란 책을 어쩌다가 구상하게 되셨 는지, 어디서 영감을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더불어 낙원의 이론을 구상부터 완결 집필까지 대략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작가님 차기작도 너무 기다리고 있어용💕
정선우
해서리님, 반갑습니다.
낙원의 이론을 좋아해 주시고 차기작을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특별히 영감을 받거나 구상을 하지 않았습니다. 폭우 속 전투 장면이 떠올라서 일단 써서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그 뒤는 쓰면서 확장했습니다.
낙원의 이론 본편 집필은 2년 4개월가량 소요되었습니다. 유료 연재 완결 후 외전 3편 집필과 종이책 출간을 위한 교정을 제외한 기간입니다.
리리
안녕하세요 작가님! 작품에 순식간에 매료돼 4권까지 완독하게 되었는데 읽다보니 작가님의 표현들이 되게 와닿고 울컥하더라고요... 평소에 떠오르는 예쁜 표현들을 기록해두시는 편인가요? 아니면 집필하면서 상황을 떠올릴 때 자연스레 떠올라 써내리시는 건가요? 작가님 글에 웃고 울고 여러 감정들을 느끼다 보니 궁금해졌어요! 그리고 특별히 애정하는 대사나 표현이 있으신가요? 좋은 글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선우
리리님, 표현이 와닿았다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리리님의 감상이 제게 선물이에요.
평소에 표현을 떠올리는 편은 아니고 쓰면서 그때그때 생각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마지막 문장입니다.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열악하더라도 선택으로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주요 인물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실낱같은 빛을 주도적으로 선택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 선택의 기반에 사랑이 있습니다.
천화
안녕하세요 작가님! 혹시 김서혁이 유은우를 이성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은 건 언제, 어떻게였을까요?
정선우
천화님, 반갑습니다.
김서혁이 본격적으로 유은우에 대한 감정을 고민하게 된 시점은 서재희와 정윤환과 함께 병실에서 유은우를 마주했을 때가 아닐까 해요. 그때 유은우는 김서혁 앞에서 서재희를 감싸는데요. 이때 김서혁은 난생처음 묘한 감정을 느낍니다. 이후, 유은우에게 이성적으로 유일해지고 싶다고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미 늦었다는 것 또한 빠르게 결론을 내립니다. 유은우가 김서혁에게 직접적으로 ‘날 좋아하냐’고 묻지 않았다면 아마 김서혁은 표현하지 않고 그대로 제 감정을 묻었을 거예요. 유은우가 물었기 때문에 김서혁이 대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