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책상 모니터에 쪽지가 하나 붙어 있는데, 거기에 "써라" 라고 적혀 있습니다.
글이 잘 안 써지는 건 그냥 글 쓰기가 싫은 상태라고 생각해서, 네... 일단은 그냥 씁니다.
그래도 몇 마디 덧붙여보자면, 잘 써지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의 방향이나 현재 태도, 환경 같은 것들이 어긋나 있는 상태가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장치를 몇 개 갖고 있는데요
1. 뭐라도 씁니다. 다른 글, 아무 문장이나요. 환기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 혹 쓸 거리는 있는데 진도가 잘 안 나가는 상태라면, 타이머를 씁니다. 요즘 작가분들이 많이 쓰시는데... 사각형 모양에 돌리면 빨간 부분이 나오면서 줄어드는 제품이 있습니다. 구글 타이머로 많이 알려져 있어요. 그걸 30분이든 한 시간이든 돌려놓습니다.
3. 산책합니다. 걸으면서 생각할 때도 있는데, 그냥 산책에만 집중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부러 글과 저를 잠깐 단절시켜 놓아요. 지난밤에 썼던 글이 아침에 보면 전혀 다른 느낌인 경우가 있으실 텐데, 그런 효과를 기대하는 거예요. 돌아와서 자리에 앉으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갑자기 보이고 그렇습니다.
4. 위에 거 다 했는데도 안 되면, 그래도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 가만 있어 봅니다. 딴 짓은 하지 않고요. 그냥 가만히 있습니다. 이게 꽤 힘들어요. 문득 생각이 날 때가 있습니다.
답변이 됐을지 모르겠네요. 저는 하루에 여덟 시간은 자리에 앉아 있으려 하고 나중에 다 지우더라도 최소 3천자를 쓰려고 합니다. 둘 다를 만족하지 못 하면 그날 일은 끝난 게 아니라는 생각으로요. 매일매일 몇 자나 썼는지는 엑셀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목표 분량에 따라 작업이 끝나는 일정이 나와요. 아직까지는 스스로 정한 목표일자를 어긴 적은 없습니다.
<한국 소설이 좋아서 2> 하승민 소설가와의 온라인 대화
D-29
점선면
나나파30
하루 3천자... 거기다 엑셀 관리까지!! 더 놀라운건 목표일자를 어긴 적이 없다는 점이네요 ... 그리고 잠이 오지 않을때 스 머프와 피너츠라니 (웃으면 안되는데 웃음이... ㅠ) 회사는 그만두셨지만 정말 또다른 일이네요.
작가님 성향자체가 부지런하시고 루틴으로 움직이시는거 같아요. 저도 많은 자극이 되었습니다.
작가님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작가로써 이루고자하는 성공의 기준이 있으신지도 궁금해요.
점선면
현실적인 목표는 딱히 없고 계속 쓰겠다는 의지는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계속 쓰려고 하면 현실적인 목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생계 때문이지요. 그래서 당장은 대중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소설이 필요하긴 합니다. 다행히 대중성을 의식하는 작업과 본래 쓰려는 방향성이 크게 어긋나지 않아 별 신경 안 쓰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아래 주신 질문과 연결될 것 같아 함께 말씀드리면, 돈에 대해 남다른 생 각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 생각하는 바가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일, 가능하지요. 저희는 매 순간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돈이 가져다주는 가치가 어떤 신념을 넘어서지 못하겠고, 누군가에게는 돈의 가치가 신념을 쉽게 뛰어 넘겠고요. 트롤리 딜레마의 중간 단계에 돈을 집어 넣으면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한 사람의 목숨과 세 사람의 목숨. 특정한 상황 하에서의 돈은 세 사람의 목숨을 구할 가치를 갖고 있겠고요.
그래서 결론이 뭐냐, 라고 하면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일반적으로는요. 하지만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이 중요하다 생각은 합니다. 저울의 맞은 편에 올려 놓을 수 있는 건 지폐가 아니라 다른 인간이 되어야 하겠지요.
점선면
나나파님은 글 쓰기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서, 남은 기간 동안 관련해 궁금하신 점들 말씀주시면 제가 아는 한에서 답변 드릴 테니 편하게 질문 부탁드려요.
저도 작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지라 많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공부한 것들 공유해드릴게요!
나나파30
말씀만으로도 너무 감사합니다. 작가님이랑 대화하면서 느낀것으로도 충분한거 같아요. 많이 생각하고 깊게 고민하고 열심히 쓰고, 안되도 쓰고 ㅎㅎ
이제 이 대화가 며칠 남지 않아서 너무너무 아쉬워요. 최근 제가 읽은 소설중에 개인적으로 1.2.3 등이 콘크리트 . 나왼너오. 당신의 신은 얼마거든요. 최근에 돈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당신의 신은 얼마의 주인공들도 참 흥미로웠어요.
돈 때문에 사람이 어디까지 할수 있을까. 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그게 최소 얼마일까.
(가령 100만원으로 죽이는 사람도 있을거고, 1억은 줘야 사람을 죽이는 사람도 있을거고요. 그 기준은 처지마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사람을 돈으로 환산할수 있을지. 없다고 해야하지만 있을지도 모른다는 슬픈 생각도 들어요.)
작가님이 은행관련 일을 하셨다고 하니 돈에 대해 남다른 철학이 있으실거 같아요. 그리고 사람을 돈으로 환산하는게 가능할지. 돈이 계급이나 마찬가지인 시대에 아니라면 왜 아닌지 궁금합니다!
바이향
안녕하세요 작가님^^
개인사정으로 어제밤부터 읽기 시작한 늦깎이 독자입니다. 위에 대화들을 훑어보다 제 더듬이가 스포일러가 짐작된다는 신호를 보내와서 스톼~압!!하고 책부터 읽고 있고 현재 162쪽을 넘기는 중입니다^^ 25%정도 읽었는데 벌써 여러번 놀랐습니다ㅎㅎ 아직 남아있는 책장이 많아 신이 나기도 하면서 얼른 읽고 위에 대화들도 읽고 싶은 맘도 큽니다. 어서 읽어보겠습니다!!
점선면
안녕하세요 바이향님. 모임이 닷새 정도 남아서 빨리 따라잡으셔야겠어요!
짐작하신대로 위에 스포일러가 더러 있습니다. 그런데 후반부 내용을 짐작하실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에요. 제 생각에는 어떤 대화가 있었는지 쭉 읽어보셔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그믐에 매일 들어와서 새로 올라온 글 살펴보고 있으니 궁금하신 점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주시고, 혹 위에 있었던 대화 읽으실 것이 아니라면 제가 지금 진도에 맞춰 생각해보실 만한 질문 드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는 "지아처럼, 여러분이 만약 19년만에 정신을 차렸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어떤 기분이 들까요?" 라는 내용으로 대화한 적이 있습니다.
바이향
수상한 서재 시리즈 중에 <암보스>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더 반갑네요.
나나파30
아니... 벌써 끝이 나네요. 이런 공간을 통해서 작가님과 대화할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나왼너오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더 알게되고, 작업방식도 이야기해주셔서 재밌었습니다. 작가님이 던진 물음을 통해서 저도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할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작가님. 다음번에 다른 작품으로 또 이야기나누고 싶습니다!
점선면
정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제 소설을 가지고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처음이라 많이 사유할 수 있는 기회도 되었어요.
다음 소설도 잘 준비해서 찾아뵙겠습니다. 또 그믐 통해서 소식 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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