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이 좋아서 2> 하승민 소설가와의 온라인 대화

D-29
작가님은 도전의식도 있고 모험심이 있으신거 같아요. 저도 놀이기구 무서워하는데 안타고, 운동도 혼자 하는것만 하고요. 대신 모든것을 글쓰는 것으로 푸는거 같아요. 음악도 빗소리를 듣거나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것 위주로 듣는데.. 쓰다보니 너무 재미없는 사람같네요. 근데 작가님 마술을 하시다니!! 와~! 하시는 거 보고 싶어요! 손놀림이 빨라야하는거 아닐까요. 언젠가 북토크 같은 자리에서 보여주시면 너무 좋을 거 같아요. ^^ 그리고 하작가님은 마술 소재의 이야기를 어찌 푸실지 기대가 됩니다.
대략적인 윤곽만 잡아 둔 상태라 저도 마술을 소재로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 궁금하네요. 지금은 작업 중인 소설 끝내고 진득하게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오프라인 북토크 자리도 갖고 그러려면 더 유명해져야겠어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아가 남자에서 여자가 된 이유는, 시체의 정체와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지요. 여성인 쪽이 좀 더 그 상황에 몰입하게 만들어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성별을 바꾸고 보니 애초에 제가 쓰면서 묘사를 남자로 했을뿐 정체성은 여자에 가깝게 쓰고 있었더라구요. 원래 그렇게 될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요. 소설을 쓰면서 가끔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는데 등장인물 정리하고 시놉과 트리트먼트 작성하고 신 별로 간략한 묘사까지 끝내놓은 상태에서도 쓰면서 미심쩍은 순간이 와서 다시 수정하려고 보면 아주 초창기에 했던 작은 고민이 이어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을 정하지 못 한 상태로 무작정 전개시키고 있었던 거지요. 쓰면서 답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나왼너오의 경우에는 결말부에서 느껴지는 애틋함이 전체적인 설정을 바꾸게 했고요.
네 , 작가님 말씀에 너무 동의가 됩니다. 엄마라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일같거든요. 지아가 당했던 부당한 일도, 혜수가 해낼수 있던 일도 여성이기에 더 와닿았던 거 같습니다.
이번에는 '장소' 얘기를 해볼까요. 소설 속 묵진이라는 도시는 몇 가지 실재하는 도시를 혼합해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입니다. 항구도시 특유의 거친 모습과 혜수가 숨겨놓은 19년이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독자분들이 느끼는 묵진이라는 공간은 어떤 곳이었나요? 현실에서 방문했던 인상적인 나라, 도시, 마을이 있나요? 혹은 방문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왜일까요?
묵진은 포항이 떠오르긴 했어요. 육사골목같은 홍등가가 아직 포항에도 남아있거든요. 한편으로는 소멸도시 느낌도 들었고요. 혜수의 19년과 잘 어울렸습니다. 콘크리트에서도 그렇고 묵진도 그렇고 작가님은 가상의 도시를 인상적으로 묘사하시는데, 실재 공간 보다는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주로 사용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현실에서 방문했던 도시중에는 홍콩이 인상적이었던 거 같아요. 빈함과 부함이 동시에 이렇게 극대화로 공존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쪽은 공사중이고 그 밑에 노숙자들이 있고, 또 한쪽은 명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해외 스타들의 별장이 즐비한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작가님이 방문했던 나라중 인상 깊었던 도시도 궁금합니다!
우와. 포항도 참고했던 곳 중 하나입니다. 가상의 도시를 설정하는 이유는, 그 도시들에 제가 필요로 하는 지역이 정확히 존재하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일전에 특정 인물을 설계하기 위해 여러 인물을 섞는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공간 설정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가령 진짜 포항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다면 도시 자체가 너무 넓고 인구도 많아서 지아가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는 일이 벌어지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좀 더 사회파 성향이 강한 소설을 쓰게 된다면 진짜 도시를 배경으로 하게 될 겁니다. 홍콩 좋지요? 정치적으로도 이슈가 되고 있어 요즘 계속 눈이 갑니다. 내년에 출간할 소설에 중국 얘기가 좀 나와요. 홍콩이나 베이징, 상하이 쪽은 아니구요. 그보다 조금 서쪽. 제가 좋아했던 도시는 이스탄불이요. 동서양 중간 지역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이국적인 느낌이 강했어요. 튀르키예에 있는 다른 도시들도 그랬구요. 요르단과 모로코 같은 사막 지역도 좋았습니다. 낙타 타는 건 좀 힘들고 화장실도 불편하고 잠자리도 좋진 않지만 사막 한가운데 떨어져서 별을 보고 있으면 잘 왔다 싶은 생각이 절로... 같은 사막이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다른 우유니 사막도 환상적이었고요. 위에 말씀드린 내년에 출간할 소설에는 인도 얘기도 나오는데 인도도 정말 좋았습니다. 정말 고생 많이 했고 온갖 부류의 사람들을 다 만나고 왔지만 여행이 아니면 언제 그런 경험을 하겠어요. 생각해보면 저는 이야기가 있는 도시를 좋아하나 봅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나왼너오를 어떤 경로로 알게 되셨을까요? 혹은 제가 쓴 다른 책은요. 그믐에서 출간한 [한국 소설이 좋아서2]가 '좋지만 알려지지 않은 소설'을 다루고 있는데, 이 알려지지 않은 책을 어떻게 접하게 되셨는지가 궁금하네요.
저같은 경우는 작가님의 콘크리트라는 작품을 먼저 읽고 나왼너오도 찾아보게 된 케이스입니다. 콘크리트는 황금가지라는 출판사를 통해서 알게되었고요. 좋지만 알려지지 않은 소설이라니, 제가 느낀 바로는 유명하고 잘 알려진 소설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제목에 대해 궁금함이 드는데요. 작품을 읽어보니 제목이 왜 나왼너오인지 어렴풋이 알거 같기도 한데, 콘크리트도 그렇고 제목을 지으실때 어떻게 지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이 제목이었을까요?
제목은 마지막에 짓습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표지 디자인 작업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생각할 수 있어서요. 그야말로 이야기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거라 고민해서 정하는데, 제목 생각하고 있으면 좀 재밌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소설 쓰는 것보다는 쉬워서... 콘크리트는 배경이 된 마을, 사람들의 행동이 얼마나 단단하게 고착되어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 한 단어를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 제목을 참 좋아하는데 주위에서 아스팔트로 착각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은 소설 거의 마무리 할 즈음에 생각난 문장이었습니다. 거울 보는 장면에서요. 내가 왼손을 내밀면 거울은 오른손을 돌려주겠구나, 그것이 지아와 혜수의 관계겠구나. 그래서 소설 전반의 내용을 설명해줄 수 있는 표현이라 생각했습니다. 초기에 지아는 오른손잡이고 혜수는 왼손잡이라는 설정도 있었는데 그건 불필요한 것 같고 클리셰 같기도 해서 삭제했습니다. 이 제목도 좋아하는데 어떤 분들은 로맨스 소설이라고 생각하시더라구요. 최근에 안전가옥이라는 출판사에서 '당신의 신은 얼마'라는 경장편도 출간했는데요, 코인 이야기입니다. 코인 가격에 따라 악행을 저지르게 되는 사람 이야기인데... 숫자를 신처럼 모시는 주인공에게는 신앙도 결국 비용이고 가격이겠구나 하는 생각에서 지어보았습니다. 보통 출판사에서 제목 가지고 토론도 많이 하고 제안도 준다고 들었는데 저는 아직까지는 그런 적이 없네요. 출판사에서도 마음에 들어서 그냥 놔둔 거라 생각하고 혼자 좋아하고 그랬습니다.
뒤숭숭하고 우울한 날입니다.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런 시간이 한동안 이어질 것 같습니다. 언젠가 저도 그 좁은 내리막길을 걸었던 적이 있을 겁니다. 언젠가 다시 그 길을 걷게 될 겁니다. 흉터 같은 것이 깊숙하게 남은 채로요. 명복을 빕니다. 위로를 전합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저도 하루종일 멍- 했습니다. 눈을 감아도 사고 장면이 어른거리기도 했어요. 저도 종종 그길에 갔던 적이 있기때문에 공포감이 몇배로 다가온거 같습니다. 얼마나 끔찍한 일일지.. 저또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 궁금한 것은, 그믐은 어떻게 알고 들어오셨는지요?
콘크리트 제목 정말 좋은거 같아요. 근데 아스팔트라고 저도 착각했던 적이 있던거 같습니다. ㅎㅎㅎ 그믐은 작가님 인스타보고 들어왔어요. 그믐이라는 곳에 대해 전혀 몰랐는데 이번기회로 알게되서 너무 좋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대화도 나누고, 다른 작가님들의 멘트 들도 둘러보았는데 재밌는 공간인거 같습니다. 작가님은 작가님이 쓰신 작품과 닮은 부분이 있을까요? 어떤 부분이 어떻게 닮았는지 궁금하네요.
아! 제 인스타를 보고 계시는군요. 소설 쓰기 시작하면서 함께 시작한 것인데 작업 관련된 내용만 주로 올려서 심심하지는 않나 걱정이었습니다. 요즘은 산책하면서 찍은 사진도 가끔 올리고 있어요. 운동을 거의 못 하는데 걷는 건 좋아하거든요. 소설과 제가 닮은 부분은... 콘크리트는 회사에 다니면서 썼던 글인데요, 일종의 도피 수단이었습니다. 인터뷰 등에는 IT 회사 다닌 것만 나와 있는데 마지막 직장은 금융권이었어요. 신규 은행 설립하는 일을 담당했는데 거의 매일 새벽 한두 시에 일이 끝났습니다. 퇴근해서 집에 와도 머리는 계속 돌아가고 있으니 잠이 오지 않고... 자려고 약을 먹고 술을 마시고... 스머프나 피너츠 같은 만화를 보면서 멍하게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목표는 '현실적이면서도 현실과 가장 동떨어진 어떤 장소와 상황'을 만들어 보는 거였습니다. 그곳에 온전히 몰입해 있으면 '역삼동에서 신규 은행 설립 업무를 하는 나'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머리로 생각은 하지만 밖으로 보여줄 수는 없었던 내밀한 욕망, 본래 내것이었는지 외부에서 주입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결국 내 안에 있는 악한 지점 같은 것들을 끄집어내야 했습니다. 마냥 즐긴 건 아니었구요, 하지만 분명 도피처로서의 역할은 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안티 하승민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쏟아내고 나서 잠이 들었습니다. 나왼너오는 주인공인 지아에게 몰입하다보니 여기저기 제 인장이 묻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우유부단, 소심, 짜증, 분노, 포기 같은 지점에서요. 평소에는 유쾌하려고 노력하는데 분명 제 속에는 그런 면도 있으니까요. 소설을 쓰다 보면 그런 작은 감정들이 증폭되다 폭발하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됩니다. 감정이 폭발한다고 해서 글이 잘 써지는 것은 아니라, 그럴 때 걷습니다. 인스타에 올릴 사진도 찍고... 최근에 쓰는 책들에는 감정보다는 평소 하는 생각들이 많이 반영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글을 써야겠다는 방향성이 잡히는 것 같기도 해요. 감정과 생각을 모두 담을 수 있는 글, 하지만 작가는 보이지 않고 독자가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신규은행 설립업무라니 저는 상상도 못할 일이군요.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워보이는데. 그래도 그 업무의 도피로 콘크티트가 써졌다니! 대단하세요. 그런 작품을 또 쓰시려면 극단의 상황으로 몰고 가시는건 아닐지도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하네요. 이런 자리를 통해서 몰랐던이야기를 듣게 되어 참 좋습니다. 최근에는 좀 마음이 편해지셨나요? 글만 쓰시게 되어서 집중되고 잘써지시는지도 궁금하네요. (저도 예전에 장사를 했었는데 잠깐 쉬는 시간에 나와서 쓰는 글이 그렇게 휴식같을 수가 없었거든요. 분명 몸은 힘든데 왜 그럴까요? 왜 잘써졌을지.)
회사 다니면서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반발심 같은 것도 작용하지 않았나 합니다. 이 시간에 내가 할 수 있었을 다른 작업들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것도 있었을 테구요. 저를 포함해 많은 분들이 군대 있을 때 보초 서면서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하던데 본업 외에 다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다들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임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요즘 마음가짐이 어떠냐면, 마음은 오히려 전보다 더 무겁습니다. 예전에는 작업을 마무리하고 발표했을 때 회사 뒤에 숨을 수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이런 마음이 부담이 되는 게 아니라 어떤 의무감이나 목표에 가깝습니다. 제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라 더 신경 쓰게 되고요. 글쓰기도 일처럼 하고 있는지라 주제가 바뀌었을 뿐 상황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일로부터 저를 분리시켜야 했다면, 이제는 글에서 저를 분리시켜야 하는 순간들이 생깁니다. 생각을 끊는 일이 쉽지가 않네요. 하루 목표한 분량과 시간을 채우고 나면 책을 읽거나 영화, 드라마 같은 것들을 봅니다. 여전히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스머프와 피너츠도 보구요 :)
오늘의 질문. 좀 어려운 질문일 수도 있고, 독자분들보다는 작가가 더 많이 고민해야 하는 내용이긴 합니다만.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은 흔히 말하는 장르소설입니다. (장르소설과 순수문학, 혹은 본격문학이라는 구분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있어 쓰고는 있는데요. 언젠가 이 구분이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은 있습니다.) 장르소설과 본격문학 각각의 가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둘을 가를만한 명징한 기준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나왼너오는 어느 지점에 서 있을까요?
매체의 발달로 장르와 순수의 차이가 점점 없어지는 거 같아요. 순수문학은 글로만 표현할수 있는 상상의 세계라고 생각되어지는데, (예를 들어 인간의 심리를 아름답고 상상을 자극하는 문장으로 쓰더라도 이제는 어느정도 기술적으로 만들어질수도 있다고 봐요. ) 장르소설은 글이나 문장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이야기에 중점을 두는거 같습니다. 요즘은 바탕이 되는 이야기 하나로 여러 분야의 표현수단으로 발전 시킬수 있으니 좋은거 같아요. 저는 문장과 묘사로 가득한 순수문학이 요즘은 더더욱 읽기가 어렵더라구요. 그렇다고 아주 막(?) 쓴 장르문학도 읽기가 어렵고요. 그런 의미에서 나왼너오는 중간에 있는거 같아요. 이야기도 재밌으면서 문장도 좋고요! (제 생각에는 김영하 작가님 정유정작가님 등 인기가 있는 작가님들이 대부분 이 중간에 존재하는거 같습니다.) 최근 웹소설이나 웹툰이 점점 더 인기인데 이처럼 응원받아야하고 공감받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되지만 거기에 생각할 거리나 좋은 영향을 끼치면 더더욱 좋다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순수문학은 점점 사라져서 결국에는 무형문화재 처럼 존재하게 될거 같은 느낌도 들어요.
작가님이 글 안써질때 이겨내는 방법, 잘써지는 방법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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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무라카미 하루키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앨리슨 벡델 - 펀 홈시무라 타카코 - 방랑소년 1저메이카 킨케이드 - 루시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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