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이 좋아서 2> 하승민 소설가와의 온라인 대화

D-29
소설 쓰는 하승민입니다.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은 주인공 염지아가 자신의 다른 인격 윤혜수에게 빼앗긴 19년을 추적하는 내용입니다. 저와 함께 염지아의 잃어버린 19년을 탐색해보실까요.
안녕하세요. 하승민입니다. 오늘부터 29일간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에 대해 온라인 대화가 시작됩니다. 무척 오랜만에 책을 꺼내 책상에 올려두었습니다. 많은 얘기 나눠보아요.
안녕하세요 작가님. 흥미진진한 전개, 밑줄그을 문장이 가득했던 적품이라 아껴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평범하지 못한 사건을 겪었던 지아의 또다른 인격인 혜수. 그녀가 결국 원했던 것은 평범한 삶이었다는게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누구나 행복이 삶의 목표지만 어쩌면 평범한 행복이 가장 손에 얻기 어려운 거 같습니다. (깨닫기도 어렵구요) 가슴 아픈 현대사와 더불어 다중인격 설정은 작가님이 처음부터 계획한 것이였을까요. 아니면 이야기를 쓰시는 과정에서 탄생한것 인지 , 다중인격을 설정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나나파님.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평소 작은 아이디어나 상황이 떠오르면 그 내용에 살을 붙여나가면서 이야기의 얼개를 만들고, 그렇게 도입부부터 결말까지 정리가 되면 비로소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물론 글을 쓰고 자료 조사를 하면서 세부적인 내용은 많이 바뀌지만요.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은 다중인경 설정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처음 떠올린 아이디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중인격을 가진 사람이 오랜 시간동안 다른 인격에게 자아를 뺏긴다면?' 입니다. 그렇다면 '오랜 시간이란 어느 정도의 시간인가'를 고민했고, 처음에는 1, 2주 정도로 생각했어요. 그 사이에도 많은 일이 벌어질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만약 그랬다면 스피디한 액션 스릴러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동시에 평범했을 것 같아요. 해리성 정체성 장애를 다룬 이야기는 많으니까요. '그렇다면 기억을 잃어버린 시간이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면 안 되나?' 라는 질문을 다시 해 보았고, 그 순간 이야기가 얼개를 잡았습니다. 무덤을 파는 첫 장면과 지아가 묻고 있었던 시체의 정체가 이 질문과 함께 떠올랐어요. 청춘을 잃어버린 중년의 여성이 어린 시절 자아를 잃게 될 정도의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했을 때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지아가 어느 정도 한국 근현대사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도 생각했거든요. 흔히들 말하는 '잃어버린 몇 년' 같은 식의 수사도 지아의 삶과 닮아 있었고요. 1980년에 벌어진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끼어들었습니다. 나나파님은 기억에 남는 장면 같은 것이 있으신가요? 어떤 장면일까요? 이유는? 궁금합니다.
인격을 뺏긴 '오랜시간'이 이 작품과 주제의 무게를 더 실어준거 같습니다. 특이 첫 무덤을 파는 장면에서 미스터리 요소가 있어서 끝까지 너무 궁금했어요. 그래서 빨리 읽고 싶었지만 곱씹을 문장들이 많아서 중간 중간 일부러 스톱했습니다. ^^ 제가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많네요. 모든 등장인물이 평범하지 않았고, 모든 장소가 평범하지 않았던 이유 같습니다. 진희든 육사골목이든 낙타든, 모두 이질감이 느껴지지만 어딘가 이방인처럼 존재할것 같아 기억이 남습니다. 그 중 늙은 재필의 모습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도 시대의 피해자이긴 하지만 지아의 인생을 망친 장본인이라고 생각되어지거든요. 요양원의 노인이 재필이라는게 충격으로 느껴졌고 , 깊은 여운을 던져주었습니다. 요양원에서 죽어가는 늙은 노인을 바라보면 늘 생각이 많아지지만, 재필은 더더욱 그랬습니다. 작가님은 등장인물 중에 누굴 가장 좋아하시는 지 궁금하네요. 저는 모두 좋지만 병준이 애정이 가네요. 극의 환기도 시켜주고 나름의 논리도 있어서 미워할수 없는 캐릭터에요. 실수를 해서 극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장치도 되는거 같구요. 작가님이 작품 캐릭터를 만드실때 주변인물을 참고하시는지 상상으로 만드시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소름 돋는 장면은 언니,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 라고 진희가 묻고 그 대답으로 그럼 난 뭘 잘못했는데 라고 혜수가 말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사실 지아만 피해자라고 생각했는데 그 대답으로 혜수가 가장 피해자일지 모른다고 느껴졌습니다. 혹은 모두가 피해자. ) 이 대사들로 가치가 전복되면서 혜수의 입장이 되며 눈물이 났었습니다.
잘 만들고 싶어서 욕심이 났던 인물은 장진희입니다. 대부분의 인물들은 작가가 내면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장면들이 한번씩 있거나, 필요하다면 그런 장면을 넣을 수 있는 반면에 장진희는 그럴 수가 없는 인물이었어요. 등장인물의 시선을 통해서 진희의 뒤틀림, 억울함, 분노 같은 것을 표현해줘야 했기 때문에 외향 묘사도 열심히 하려 했고요. 캐릭터는 대부분 상상의 산물인데, 온전히 상상에서만 나오지는 않았고 다른 창작물의 캐릭터나 주변인물의 성격이 조금씩 섞여 있기는 할 겁니다. 우선 등장인물을 설계할 때 성격을 묘사하는 키워드를 많이 넣어둬요. 냉철, 억울, 분노, 신중 같은 단어들로요. 성격을 이해할 수 있는 상황 묘사도 정리해둡니다. 가령 지아 같은 경우 '사람들이 많은 엘리베이터는 타지 않는 사람' 같은 캐릭터 설명을 정리해뒀었네요. 혜수는 '식당에 가면 구석자리를 선호'하는 사람이겠고요. 소설에 그런 장면이 등장하지는 않아도 도움이 됩니다. 그런 뒤에는 상황을 설정하고, 그 상황에서 이 인물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상상합니다. (방에서 혼자 연기도 해보고요...) 참, 인물들마다 배우를 한 명씩 대입해둡니다.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고 소설을 쓰는 중간 쯤에요. 그떄쯤이면 어느정도 인물은 구체화되어 있고, 그 인상에 가장 알맞은 배우를 찾아보는데요. 혹시 나왼너오에 등장하는 인물 중 이 배우가 어울리겠다 싶은 사람이 있었을까요?
장진희 부분 읽을때는 몸이 막 같이 아팠어요. 작가님이 말씀하신 감정이 오롯이 읽으면서 전해져서 그런가봅니다. 진희는 표현대로 안에서부터 기생충이 갉아먹은 여인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방에서 혼자 연기를 하신다니, 진희 연기는 어땠을지! 잠깐 배우를 생각해봤는데, 지아나 혜수는 폭넓은 나이때를 소화해야해서 처음에는 김혜수를 생각했다가 (차이나타운에 분장이 좋아서 이기도 하고 팬이기도 해서.) 아니면 이정현배우나 배두나, 한효주 배우가 하면 잘어울릴거 같아요. 연기를 정말 잘해야할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얼굴에 선악이 함께 존재하는 여배우였으면 좋겠어요. 규식은 바로 오징어게임에 허성태 배우가 떠올랐어요. ^^ 병준은 좀 잘생겼으면 좋겠어요. ㅎㅎ 허당인데 반대로 좀 반듯하게 생기면 더 재밌을거 같아요. 인물들을 배우에 대입하신다니 어떤 캐스팅을 하셨을지 궁금하네요. 더불어 영화는 언제쯤 만들어질까요? 너무 재밌을거 같은데! 글읽으면서 위트있는 문장이 정말 많았는데 '그리운 것들이 명치를 통과했다.' '개집은 거실구석에 사생아처럼 놓여있었다.' '클레임 한번 신사스럽게 건다' ;젖은 휴지처럼 영혼이 찌그러졌다. ' 등등 적으면 끝도 없지만, 이런 문장들은 그냥 떠오르신걸까요. 아니면 다 쓰고 다듬는 편이신지 궁금해요 .
영상화 관련된 내용은 저도 잘 모르는데 보통 기약이 없는 것으로 알아요. 영상화 확정이 된 것처럼 홍보하던 책들도 사정을 알고보면 판권만 팔린 경우가 많더라구요. 시나리오, 제작사, 투자사, 감독, 배우까지 모두 정리되고 크랭크인 해야 진짜 영상화 되는구나 생각할 정도... 그마저 다 찍어놓은 영화를 개봉도 못 하는 일도 있구요. 일단 나왼너오도 판권은 팔렸답니다. 배역은 출간 전에 황금가지 편집장님과 함께 각자 픽을 골랐어요. 앞이 저 뒤가 편집장님. - 지아 혜수 : 문소리, 김혜수. 말씀주신 배우 분들도 너무 좋네요... - 규식: 조진웅, 기주봉. 나왼너오를 쓴 것이 오징어 게임 방영 전이었는데, 허성태 배우님도 딱 좋네요! - 진희: 장진희, 오나라. 사실 진희 캐릭터 구상하면서 장진희 배우님 이름도 같이 가져왔답니다. - 관훈: 명계남, 정재영. - 병준: 박해일, 박해일. 적어놓고 나니 괜히 기분이 좋습니다. 이미 영화 한 편 본 것 같고...
말씀주신 문장들 포함해서 소설에 쓰인 문장들은 많이 고민하고 다듬었어요. 상황을 감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묘사를 찾아내려고 많이 애썼고요. 잘 전달이 됐을지 모르겠습니다. 문장은 여전히 고민이 많은 영역입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3년을 좀 넘어가는데, 앞으로도 계속 고민할 것 같네요. 위트있는 문장이라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왼너오는 기본적으로 스릴러, 미스터리 구조인데 혹시 최근에 재미있게 보셨던 국내 스릴러, 미스터리 소설이 있을까요? 혹은 최근 관심이 가는 다른 장르가 있다면? 스릴러와 미스터리를 즐겨보시는 분들의 관심사가 궁금합니다.
작가님의 캐스팅도 너무 좋네요. 영화로 만들어지길 꼭 기원합니다. 네 미스터리 스릴러 물을 좋아합니다. 나왼너오는 그 미스터리 스릴러 외피에 안에는 깊은 상처와 고통이 있었고 그게 현대사와 맞닿아있어서 굉장히 묵직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저는 원래 일본소설을 자주 읽었어요. 컨셉이나 전개가 좋고 재밌어서요. 일본장르소설은 대부분 드라마로 제작되는 경우도 많으니 소재도 살펴볼수 있어서기도 합니다. 최근에 진범인 플래그를 봤는데 범인이 누군지 너무 궁금하게 잘 만들어놨더라구요. 떡밥도 잘 던지고요. (일드 진범인 플래그가 원작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요즘 침대 머리맡에 있는 소설은 정혁용 작가님의 침입자들인데, 최근작은 아니지만 최근에 읽고 있는데 너무 재밌습니다. ^^ (작가님작품 만큼은 아니지만요. 그리고 콘크리크 최고입니다. ㅠㅠ) 최근 관심사라면 문윤성작가님의 완전 사회를 보고 SF장르에도 관심이 가고, 베르나르베르베르작가님의 강연을 듣고는 전생에 관한 부분도 관심이 더해졌습니다. 최근에 과학잡지를 구독해볼까 고민하고 있어요. 작가님은 혹시 구독하시는 잡지나 추천해주실만한 잡지가 있을까요? 작가님이 인상 깊게 보시는 국내 스릴러 미스터리 소설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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