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이 좋아서 2> 하승민 소설가와의 온라인 대화

D-29
망각이란 단어로 인해 생각이 많아진 하루였습니다. 자신으로 살면서 고통을 견디면서 살아야할지, 망각한채 다른 자아로 살아가면서 평온한것 .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일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는 무엇일까. 라는 존재론적이야기와도 맞닿아있으면서 저의 오랜 관심사 이기도 했습니다. 나왼너오를 읽고도 좋았지만은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니, 생각할 거리를 많이 만들어주네요. 나왼너오를 만나게 되서 즐겁습니다.
나왼너오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데요, 혹시 국내 사회파 소설에서 다뤄줬으면 하는 사건이나 역사적 배경이 있을까요? 저는 요즘 형제복지원, 선감원, 서산개척단 같은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저도 형제복지원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서 인터뷰랑 찾아본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사건을 담당한 검사님이 쓴 책 브레이크 없는 벤츠도 읽고 있는중이에요. 시대와 주체는 다르지만 악인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빼앗고 착취하는 거 같습니다.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북한수용소 이야기에 관심이 있습니다. 탈북자의 인터뷰로 만든 다큐멘터리도 인상깊에 보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지배당하고 복종하게 되는 것은 인격을 파괴하는 일이라고 저는 정의할 수 있을거 같아요. 또 또 오대양사건 같은 종교를 바탕으로 한 집단 자살 문제에 관심이 있네요. 무엇떄문에 모든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수 있는지 , 그들이 옳다고 믿는 신념이 얼마나 강력한지, 또 그것을 어떻게 행사해 나가는지. 관심사 입니다. 작가님은 위에 말씀해주신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각도로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지 궁금하네요!
'숨은 가해자' 키워드가 될 것 같습니다. 나왼너오도 이 맥락 하에 있는 소설이었지요. 2차 대전 이후 나치 부역자에 대한 이야기는 꾸준히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벌써 70년이 넘은 사건인데도요. 100세 가까이 된 부역자를 아직도 처벌하고 역사 바로잡기에 힘을 쏟고 있고요. 위에 말씀드린 사건들은 아직 청산이 되지 않은 일이고, 그때까지 누군가 다뤄야 하는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데뷔하면서 장르소설은 시대상을 담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어요. 물론 재미가 최우선이겠고요.
나왼너오의 지아는 만화를 봤지요. 변신소녀 만화요. 주문 하나로 원하는 걸 불러내고 모습을 바꾸는 존재. 다른 자아에게 몸을 빼앗겨버리는 지아는 그런 만화 속 주인공들이 부러웠겠지요. 취미는 내 욕망의 반영이라 생각하는데요, 독서 외에 다른 취미는 어떤 것들이 있으신가요?
취미는 욕망의 반영이라니 , 저는 정말 취미가 없어서 걱정이에요. 매일 일정한 루틴으로 일하고 운동하고 술마시고 강아지산책하고요. 가끔 취미가 필요할거 같아서 뜨개질을 해보거나 덕질을 해보려고 하지만 자꾸 이탈하네요. 수제맥주 만들기를 배워볼까하다가도 귀찮기만 하고.. 작가님 말씀 듣고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저는 어릴때부터 저에게 관대하지 못했던거 같아요. 뭐 먹을래. 라고 물으면 아무거나. 라고 말하는 사람이 저였던거 같고. 뭘 좋아해. 물으면 너는 뭘 좋아해. 되물으면서 맞추려고 했던거 같아요. 아마 저의 어린시절의 경험때문에 그런거 같아요. 작가님의 취미는 무엇인지, 욕망이 반영되어있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나왼너오에서 처음에 지아가 남자였다고 했는데 남자로 정했다가 여자로 바꾸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제가 평생 하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을 해보려고 했어요. 단순히 그것을 못해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가령 놀이기구는 엄청 무서워하는데 꼭 한 번은 타봅니다. 협동하는 운동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사회인 야구를 했고, 맞거나 때리는 거 정말 싫어하는데 종합격투기도 했구요. 좋아서 하는 건 마술(미술이 아닙니다)과 음악 정도겠네요. 언젠가 마술을 소재로 한 소설도 쓰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작가님은 도전의식도 있고 모험심이 있으신거 같아요. 저도 놀이기구 무서워하는데 안타고, 운동도 혼자 하는것만 하고요. 대신 모든것을 글쓰는 것으로 푸는거 같아요. 음악도 빗소리를 듣거나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것 위주로 듣는데.. 쓰다보니 너무 재미없는 사람같네요. 근데 작가님 마술을 하시다니!! 와~! 하시는 거 보고 싶어요! 손놀림이 빨라야하는거 아닐까요. 언젠가 북토크 같은 자리에서 보여주시면 너무 좋을 거 같아요. ^^ 그리고 하작가님은 마술 소재의 이야기를 어찌 푸실지 기대가 됩니다.
대략적인 윤곽만 잡아 둔 상태라 저도 마술을 소재로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 궁금하네요. 지금은 작업 중인 소설 끝내고 진득하게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오프라인 북토크 자리도 갖고 그러려면 더 유명해져야겠어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아가 남자에서 여자가 된 이유는, 시체의 정체와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지요. 여성인 쪽이 좀 더 그 상황에 몰입하게 만들어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성별을 바꾸고 보니 애초에 제가 쓰면서 묘사를 남자로 했을뿐 정체성은 여자에 가깝게 쓰고 있었더라구요. 원래 그렇게 될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요. 소설을 쓰면서 가끔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는데 등장인물 정리하고 시놉과 트리트먼트 작성하고 신 별로 간략한 묘사까지 끝내놓은 상태에서도 쓰면서 미심쩍은 순간이 와서 다시 수정하려고 보면 아주 초창기에 했던 작은 고민이 이어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을 정하지 못 한 상태로 무작정 전개시키고 있었던 거지요. 쓰면서 답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나왼너오의 경우에는 결말부에서 느껴지는 애틋함이 전체적인 설정을 바꾸게 했고요.
네 , 작가님 말씀에 너무 동의가 됩니다. 엄마라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일같거든요. 지아가 당했던 부당한 일도, 혜수가 해낼수 있던 일도 여성이기에 더 와닿았던 거 같습니다.
이번에는 '장소' 얘기를 해볼까요. 소설 속 묵진이라는 도시는 몇 가지 실재하는 도시를 혼합해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입니다. 항구도시 특유의 거친 모습과 혜수가 숨겨놓은 19년이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독자분들이 느끼는 묵진이라는 공간은 어떤 곳이었나요? 현실에서 방문했던 인상적인 나라, 도시, 마을이 있나요? 혹은 방문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왜일까요?
묵진은 포항이 떠오르긴 했어요. 육사골목같은 홍등가가 아직 포항에도 남아있거든요. 한편으로는 소멸도시 느낌도 들었고요. 혜수의 19년과 잘 어울렸습니다. 콘크리트에서도 그렇고 묵진도 그렇고 작가님은 가상의 도시를 인상적으로 묘사하시는데, 실재 공간 보다는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주로 사용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현실에서 방문했던 도시중에는 홍콩이 인상적이었던 거 같아요. 빈함과 부함이 동시에 이렇게 극대화로 공존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쪽은 공사중이고 그 밑에 노숙자들이 있고, 또 한쪽은 명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해외 스타들의 별장이 즐비한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작가님이 방문했던 나라중 인상 깊었던 도시도 궁금합니다!
우와. 포항도 참고했던 곳 중 하나입니다. 가상의 도시를 설정하는 이유는, 그 도시들에 제가 필요로 하는 지역이 정확히 존재하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일전에 특정 인물을 설계하기 위해 여러 인물을 섞는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공간 설정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가령 진짜 포항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다면 도시 자체가 너무 넓고 인구도 많아서 지아가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는 일이 벌어지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좀 더 사회파 성향이 강한 소설을 쓰게 된다면 진짜 도시를 배경으로 하게 될 겁니다. 홍콩 좋지요? 정치적으로도 이슈가 되고 있어 요즘 계속 눈이 갑니다. 내년에 출간할 소설에 중국 얘기가 좀 나와요. 홍콩이나 베이징, 상하이 쪽은 아니구요. 그보다 조금 서쪽. 제가 좋아했던 도시는 이스탄불이요. 동서양 중간 지역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이국적인 느낌이 강했어요. 튀르키예에 있는 다른 도시들도 그랬구요. 요르단과 모로코 같은 사막 지역도 좋았습니다. 낙타 타는 건 좀 힘들고 화장실도 불편하고 잠자리도 좋진 않지만 사막 한가운데 떨어져서 별을 보고 있으면 잘 왔다 싶은 생각이 절로... 같은 사막이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다른 우유니 사막도 환상적이었고요. 위에 말씀드린 내년에 출간할 소설에는 인도 얘기도 나오는데 인도도 정말 좋았습니다. 정말 고생 많이 했고 온갖 부류의 사람들을 다 만나고 왔지만 여행이 아니면 언제 그런 경험을 하겠어요. 생각해보면 저는 이야기가 있는 도시를 좋아하나 봅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나왼너오를 어떤 경로로 알게 되셨을까요? 혹은 제가 쓴 다른 책은요. 그믐에서 출간한 [한국 소설이 좋아서2]가 '좋지만 알려지지 않은 소설'을 다루고 있는데, 이 알려지지 않은 책을 어떻게 접하게 되셨는지가 궁금하네요.
저같은 경우는 작가님의 콘크리트라는 작품을 먼저 읽고 나왼너오도 찾아보게 된 케이스입니다. 콘크리트는 황금가지라는 출판사를 통해서 알게되었고요. 좋지만 알려지지 않은 소설이라니, 제가 느낀 바로는 유명하고 잘 알려진 소설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제목에 대해 궁금함이 드는데요. 작품을 읽어보니 제목이 왜 나왼너오인지 어렴풋이 알거 같기도 한데, 콘크리트도 그렇고 제목을 지으실때 어떻게 지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이 제목이었을까요?
제목은 마지막에 짓습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표지 디자인 작업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생각할 수 있어서요. 그야말로 이야기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거라 고민해서 정하는데, 제목 생각하고 있으면 좀 재밌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소설 쓰는 것보다는 쉬워서... 콘크리트는 배경이 된 마을, 사람들의 행동이 얼마나 단단하게 고착되어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 한 단어를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 제목을 참 좋아하는데 주위에서 아스팔트로 착각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은 소설 거의 마무리 할 즈음에 생각난 문장이었습니다. 거울 보는 장면에서요. 내가 왼손을 내밀면 거울은 오른손을 돌려주겠구나, 그것이 지아와 혜수의 관계겠구나. 그래서 소설 전반의 내용을 설명해줄 수 있는 표현이라 생각했습니다. 초기에 지아는 오른손잡이고 혜수는 왼손잡이라는 설정도 있었는데 그건 불필요한 것 같고 클리셰 같기도 해서 삭제했습니다. 이 제목도 좋아하는데 어떤 분들은 로맨스 소설이라고 생각하시더라구요. 최근에 안전가옥이라는 출판사에서 '당신의 신은 얼마'라는 경장편도 출간했는데요, 코인 이야기입니다. 코인 가격에 따라 악행을 저지르게 되는 사람 이야기인데... 숫자를 신처럼 모시는 주인공에게는 신앙도 결국 비용이고 가격이겠구나 하는 생각에서 지어보았습니다. 보통 출판사에서 제목 가지고 토론도 많이 하고 제안도 준다고 들었는데 저는 아직까지는 그런 적이 없네요. 출판사에서도 마음에 들어서 그냥 놔둔 거라 생각하고 혼자 좋아하고 그랬습니다.
뒤숭숭하고 우울한 날입니다.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런 시간이 한동안 이어질 것 같습니다. 언젠가 저도 그 좁은 내리막길을 걸었던 적이 있을 겁니다. 언젠가 다시 그 길을 걷게 될 겁니다. 흉터 같은 것이 깊숙하게 남은 채로요. 명복을 빕니다. 위로를 전합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저도 하루종일 멍- 했습니다. 눈을 감아도 사고 장면이 어른거리기도 했어요. 저도 종종 그길에 갔던 적이 있기때문에 공포감이 몇배로 다가온거 같습니다. 얼마나 끔찍한 일일지.. 저또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 궁금한 것은, 그믐은 어떻게 알고 들어오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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