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이 좋아서 2> 하승민 소설가와의 온라인 대화

D-29
말씀주신 소설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재미있을 것 같아요. 드라마 얘기가 나와서, 저는 엑스파일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닥터 후도 좋아하고요. 소설은 특별할 것 없이 백년 동안의 고독이나 고래 같은 소설 좋아하는데... 욘 린드크비스트 같은 작가도 상당히 좋아하구요. 북유럽 소설들 좋아했습니다. 요 네스뵈, 스티그 라르손이요. 쓰고 보니 취향이 평범하네요. 남들 좋아하는 작가를 저도 좋아하는데 대중이 좋아하는 작가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스티븐 킹은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 작가님도 역시... 다들 좋아하시는 김언수 작가님과 정유정 작가님 좋아하구요. 백민석 작가님, 천명관 작가님, 편혜영 작가님... 김애란 작가님... 쓰다보니 어째 스릴러 미스터리 작가님들은 별로 안 계시는데 제 취향이 그런 것 같습니다. 잡지는 아주 아주 오래 전에 페이퍼라는 잡지를 구독한 적이 있었는데 그 후로 잡지를 보지는 않네요. 요즘은 '과학하고 앉아있네' 같은 팟캐스트를 자주 듣습니다. '안될과학' 같은 과학 관련 유튜브도 챙겨 보는 편이구요. 참, 저 다음에 나올 책이 SF예요. 내년 여름 쯤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지금 쓰고 있는 것도 SF. 지금까지 썼던 책과는 좀 다른 분위기라 반응이 어떨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SF 장르를 많이 안 읽어보셨다면 전 다카노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 추천드려봅니다. 13계단이라는 사회파 추리소설을 쓰신 분이기도 한데, 둘 다 재미있을 거예요. 읽어보셨을 것 같기도 합니다.
고래나 백년 동안의 고독같은 소설의 어떤 부분과 작가님의 글이 접점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저는 에피라는 과학잡지에 관심이 가긴하는데, 팟캐스트를 듣는 것도 방법이긴 하겠네요. 말씀하신 제노사이드와 13계단 모두 보았는데 제노사이드의 아버지의 연구 행적을 추적해가는 라인이 무척 인상 깊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좀 두꺼워서 힘들고 어렵긴 했지만요. 그나저나 작가님이 쓰신 Sf라니 너무 기대됩니다!! 당신의 신은 얼마, 이 작품도 지금 아껴읽고 있는데, 어서 여름이 왔으면 좋겠네요. ^^ 새작품이 빨리 나오는것 같은데 이번 SF는 구상하고 쓰시는데 얼마나 걸리셨는지 궁금하네요.
1년에 한 권씩 책을 내는 것이 목표라 거기에 맞춰 글을 쓰고 있습니다. 구상에 걸리는 시간, 집필에 걸리는 시간을 따로 말씀드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제가 그 둘을 구분해 작업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구상이 다 끝나고 소설을 쓰기 시작해도 다시 구상을 해야할 때가 있고... 자료 조사도 중간에 해야할 때가 있고요. 그러다 소설 쓰기를 중단하고 다시 구상에 들어갈 때도 있고요. 이번에 쓴 SF는 대략 500만자를 썼다가 구성을 완전히 뒤집고 다시 쓴 적이 있습니다. 거의 처음부터 다시 쓰다시피 했어요. 콘크리트와 나왼너오도 그런 경험이 있는데, 두 소설 모두 중간에 등장인물의 성별을 바꾼 적이 있습니다. (최초 구상 당시에 지아가 남자였던 적이 있답니다.) 아무튼 그런 작업들을 모두 포함해서 1년 이내에 한 권씩 쓰려고 노력 중입니다. [당신의 신은 얼마] 같은 경우는 작년에 장편 SF 쓰면서 같이 썼어요. 쓰는 데 걸린 시간은 세 달 정도 됩니다. SF 쓰면서 [당신의 신은 얼마]를 구상했던 터라 생각할 시간은 굉장히 많았구요.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의 지아처럼, 여러분이 만약 19년만에 정신을 차렸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어떤 기분이 들까요?
저는 두렵고 억울한 느낌이 들거 같습니다. 어떤 상황에 정신을 차렷느냐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요. 어쩌면 치매랑 비슷한 느낌이 들지도 모를거 같아요. 정신은 19년전에 머물러 있는데 저 빼고 모두가 19년 후의 저를 대할거 같거든요. 일단 정신이 있던 19년전 마지막날로 돌아가서 그때 그 장소에 가보고 추적을 시작할거 같습니다. 혼자는 어려우니까 흥신소같은데 의뢰할거 같기도 하네요. 내가 모르는 19년에 무슨일이 벌어졌을지 무섭네요..
19년만에 자아를 되찾는다는 아이디어만 있었을 당시에 '이 상황에서 지아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가 중요한 질문이었던 터라 다른 분들 생각은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저 개인은 공권력의 힘을 빌리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자수하고, 수사도 경찰에게 맡기고... 하지만 지아라면 빼앗긴 시간이 억울해서 숨기기에 급급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궁금했을 거고요. 소설은 세상에 던지는 질문이라고 믿기 때문에 독자분들이 책을 읽었을 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드렸다면 소임을 다했다 생각하는데, 어떠셨을지 궁금하네요.
또 궁금한 것! 복수는 필요할까요? 왜 필요할까요? 어떤 형태로 이뤄져야 할까요?
말씀하신 대로 저도 기억을 잃었다면 공권력을 빌릴거 같았는데, 지아처럼 시체는 묻는 상황이 되어서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어 더 재밌던 거 같습니다. 복수는 필요할까요. 라는 질문에 저도 복수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대요.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도 있겠지만 저는 그 사람이 잃을게 없고, 복수 할 줄 알았어. 어서 해. 이렇게 나오면 복수의 의미가 없을거 같아요. 소중한 것을 빼앗는게 가장 큰 복수같고, 살고 싶을때 죽이는게 복수같습니다. 근데 목숨을 빼앗는것은 너무 단순하고, 어쩌면 구원일지도 몰라서 다른 형태로 할거 같아요. 얼마전에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김고은이 700억을 탐낸 이유로 감옥안에서 700억의 고통을 받게 될거라고, 가족들이 하나씩 죽어나갈거지만 감옥안에서 넌 아무것도 못할거야. 라는 말을 악역이 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괜찮은 복수 방법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일드중에 악당, 가해자 추적조사 라는 작품이 있는데 그중 시한부에 걸려 죽고 싶었던 남자가 엄마의 자장가 소리를 듣고 살고 싶던 순간, 죽음을 맞이하던지.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요. 참 인상적이였습니다. 이렇게 상대에게 맞는 고통을 주는게 복수 방법으로 필요할거 같습니다. 복수는 필요한가. 라는 것은 저도 평소의 관심사였습니다. ( 정확히 말하면 가해자와 피해자사이에 진정한 용서는 가능한가 라는게 관심사입니다. ) 내가 잘사는 것이 복수다 라는 말이 있지만, 별로 믿지 않습니다. 당한 사람은 겨우 꾸역꾸역 잊으려 살아가겠죠. 이미 행복할 수 없는 상태일테고요. 이 세상에서 내가 존재하는 의미가 사라졌다면 필요할거 같습니다. 또 다른 존재의 이유가 될수 있을거 같습니다. 인생을 사는 이유는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데 이미 행복은 망했다면, 내가 평온해지기 위해 필요할거 같아요. 작가님은 복수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어떤 형태로 하실지 궁금하네요!
제게 복수란 정화작용입니다. 내적인 정화작용이기도 하고, 사회적인 정화작용이기도 합니다. 사건의 끝맺음인 동시에 감정적 고요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완벽한 복수란 불가능합니다. 복수의 결과가 완벽한 평안을 가져다주지 못 하는 이유는, 결국 상처는 상실이기 때문입니다. 복원할 수 없는 상실이요. 혹 완벽한 복수가 가능하다면, 그건 망각하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질 거예요. 적어도 내적 평화는 찾아오겠지요. 외적으로, 그러니까 사회적으로는 더 큰 응어리를 남길 겁니다. 복수는 나왼너오를 쓰는 동안 침착했던 주제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지아가 혜수를 불러내 과거의 사건으로 입은 상처를 망각하고, 자아를 되찾은 뒤 결국 복수하는 이야기요. 그 복수의 결과로도 평안을 얻지는 못 하는, 결국 흉터가 된 상처를 확인하게 되는 이야기.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런 시대는 계속될 겁니다. 어떤 세계에 살아가는지를 알고 있다면, 적어도 그 시대를 이해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정이 계량화가 불가능한 값이지만 어떤 형태로 복수했을 때 감정의 잔여물이 최소화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는데요. 재미없고 심심하긴 하지만 결국 이 불균형을 해결하는 것은 법이고, 사회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복수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법에 의지할 거예요. 아마도요. 그 과정에서 제 상처가 회복되지는 않겠지만 사회는 그런 식으로 균형을 잡아가겠지요. 다만... 법에 의지하는 사람들 사이에 억울함이 없어야 할 텐데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모두가 만족하고 납득할 수 있는 궁극의 선이란 존재하는가, 어떤 형태로 구현 가능한가, 이 질문 역시 제가 붙잡고 있을 질문입니다. 저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보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어떤 면에서 제 창작 활동은 일련의 복수 행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항이며 투쟁이기도 하고, 이해이기도 하고요. 어찌 됐건 전진하는 글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질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망각이란 단어로 인해 생각이 많아진 하루였습니다. 자신으로 살면서 고통을 견디면서 살아야할지, 망각한채 다른 자아로 살아가면서 평온한것 .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일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는 무엇일까. 라는 존재론적이야기와도 맞닿아있으면서 저의 오랜 관심사 이기도 했습니다. 나왼너오를 읽고도 좋았지만은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니, 생각할 거리를 많이 만들어주네요. 나왼너오를 만나게 되서 즐겁습니다.
나왼너오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데요, 혹시 국내 사회파 소설에서 다뤄줬으면 하는 사건이나 역사적 배경이 있을까요? 저는 요즘 형제복지원, 선감원, 서산개척단 같은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저도 형제복지원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서 인터뷰랑 찾아본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사건을 담당한 검사님이 쓴 책 브레이크 없는 벤츠도 읽고 있는중이에요. 시대와 주체는 다르지만 악인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빼앗고 착취하는 거 같습니다.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북한수용소 이야기에 관심이 있습니다. 탈북자의 인터뷰로 만든 다큐멘터리도 인상깊에 보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지배당하고 복종하게 되는 것은 인격을 파괴하는 일이라고 저는 정의할 수 있을거 같아요. 또 또 오대양사건 같은 종교를 바탕으로 한 집단 자살 문제에 관심이 있네요. 무엇떄문에 모든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수 있는지 , 그들이 옳다고 믿는 신념이 얼마나 강력한지, 또 그것을 어떻게 행사해 나가는지. 관심사 입니다. 작가님은 위에 말씀해주신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각도로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지 궁금하네요!
'숨은 가해자' 키워드가 될 것 같습니다. 나왼너오도 이 맥락 하에 있는 소설이었지요. 2차 대전 이후 나치 부역자에 대한 이야기는 꾸준히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벌써 70년이 넘은 사건인데도요. 100세 가까이 된 부역자를 아직도 처벌하고 역사 바로잡기에 힘을 쏟고 있고요. 위에 말씀드린 사건들은 아직 청산이 되지 않은 일이고, 그때까지 누군가 다뤄야 하는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데뷔하면서 장르소설은 시대상을 담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어요. 물론 재미가 최우선이겠고요.
나왼너오의 지아는 만화를 봤지요. 변신소녀 만화요. 주문 하나로 원하는 걸 불러내고 모습을 바꾸는 존재. 다른 자아에게 몸을 빼앗겨버리는 지아는 그런 만화 속 주인공들이 부러웠겠지요. 취미는 내 욕망의 반영이라 생각하는데요, 독서 외에 다른 취미는 어떤 것들이 있으신가요?
취미는 욕망의 반영이라니 , 저는 정말 취미가 없어서 걱정이에요. 매일 일정한 루틴으로 일하고 운동하고 술마시고 강아지산책하고요. 가끔 취미가 필요할거 같아서 뜨개질을 해보거나 덕질을 해보려고 하지만 자꾸 이탈하네요. 수제맥주 만들기를 배워볼까하다가도 귀찮기만 하고.. 작가님 말씀 듣고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저는 어릴때부터 저에게 관대하지 못했던거 같아요. 뭐 먹을래. 라고 물으면 아무거나. 라고 말하는 사람이 저였던거 같고. 뭘 좋아해. 물으면 너는 뭘 좋아해. 되물으면서 맞추려고 했던거 같아요. 아마 저의 어린시절의 경험때문에 그런거 같아요. 작가님의 취미는 무엇인지, 욕망이 반영되어있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나왼너오에서 처음에 지아가 남자였다고 했는데 남자로 정했다가 여자로 바꾸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제가 평생 하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을 해보려고 했어요. 단순히 그것을 못해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가령 놀이기구는 엄청 무서워하는데 꼭 한 번은 타봅니다. 협동하는 운동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사회인 야구를 했고, 맞거나 때리는 거 정말 싫어하는데 종합격투기도 했구요. 좋아서 하는 건 마술(미술이 아닙니다)과 음악 정도겠네요. 언젠가 마술을 소재로 한 소설도 쓰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작가님은 도전의식도 있고 모험심이 있으신거 같아요. 저도 놀이기구 무서워하는데 안타고, 운동도 혼자 하는것만 하고요. 대신 모든것을 글쓰는 것으로 푸는거 같아요. 음악도 빗소리를 듣거나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것 위주로 듣는데.. 쓰다보니 너무 재미없는 사람같네요. 근데 작가님 마술을 하시다니!! 와~! 하시는 거 보고 싶어요! 손놀림이 빨라야하는거 아닐까요. 언젠가 북토크 같은 자리에서 보여주시면 너무 좋을 거 같아요. ^^ 그리고 하작가님은 마술 소재의 이야기를 어찌 푸실지 기대가 됩니다.
대략적인 윤곽만 잡아 둔 상태라 저도 마술을 소재로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 궁금하네요. 지금은 작업 중인 소설 끝내고 진득하게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오프라인 북토크 자리도 갖고 그러려면 더 유명해져야겠어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아가 남자에서 여자가 된 이유는, 시체의 정체와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지요. 여성인 쪽이 좀 더 그 상황에 몰입하게 만들어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성별을 바꾸고 보니 애초에 제가 쓰면서 묘사를 남자로 했을뿐 정체성은 여자에 가깝게 쓰고 있었더라구요. 원래 그렇게 될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요. 소설을 쓰면서 가끔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는데 등장인물 정리하고 시놉과 트리트먼트 작성하고 신 별로 간략한 묘사까지 끝내놓은 상태에서도 쓰면서 미심쩍은 순간이 와서 다시 수정하려고 보면 아주 초창기에 했던 작은 고민이 이어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을 정하지 못 한 상태로 무작정 전개시키고 있었던 거지요. 쓰면서 답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나왼너오의 경우에는 결말부에서 느껴지는 애틋함이 전체적인 설정을 바꾸게 했고요.
네 , 작가님 말씀에 너무 동의가 됩니다. 엄마라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일같거든요. 지아가 당했던 부당한 일도, 혜수가 해낼수 있던 일도 여성이기에 더 와닿았던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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