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늦은 모임

D-29
<지역갈등과 세대갈등> 저도 눈여겨 봤네요. 오늘 뉴스에는 일자리 구하기를 포기한 채 아예 쉬는 청년들 이야기가 나오네요. 괜찮은 일자리가 없다는 거죠. 저같은 작은 사업장에서는 일하는 사람 찾기가 이미 힘들어진 지가 오래고 때로는 절박하기도 하지만.. 젊은 사람들의 절망감은 대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참 막막하기만 합니다. 만사가 불확실한 세상에서 일은 재미와 의미가 있으면 된다는 설득도 그저 구닥다리 공허한 말로만 들릴 텐데... "'어쨌든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라는 믿음' 속에서 태어난 자란다는 것은 인류 역사 전체에서 몇몇 세대에만 허락되는 일종의 은총이나 특권 아닐까. 한국의 젊은 세대는 현재 그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p.131-32) "무엇보다 지금 우리에게 모자란 건 일할 사람이 아니라 일자리다." (p.164) https://imnews.imbc.com/replay/2024/nwdesk/article/6628026_36515.html
내가 만약 한국의 외로움 담당 장관이 된다면, 전국 도서관에 예산을 지원해 독서 토론 모임을 지금보다 곱절 이상으로 늘리는 데 쓰겠다.
미세 좌절의 시대 p.19, 장강명 지음
전체 시스템이 사악할 때 "나는 정해진 법대로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평범한 악'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우리가 속한 시스템을 의심의 눈초리로 봐야 한다.
미세 좌절의 시대 p.32, 장강명 지음
아하~ 저도 같은 문장에 공감했었습니다.. 저 평범한 악의 종류에 덧붙이자면.. 군대도 아닌데 다양한 자리에서 입에 많이들 달고 사는.. '난 그저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야.'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평범한 악인.. 되지 맙시다~ㅎ
지식이 정보로 쪼개지는 것. 적어도 현시점까지의 인터넷은 빠르고 짧은 정보를 선호한다. 디바이스도, 플랫폼도, 매체도, 이용자도 그렇다. (중략) 한데 지식은 대개 짧지 않다. 지식이란 정보들이 논리에 따라 연결되어 있는 구조물이다. 깊은 지식일수록 규모가 크고 구조가 복잡하다. 따라서 문맥이 중요하다.
미세 좌절의 시대 p.51, 장강명 지음
내가 이해하는 인간은, 제 몸뚱이와 자기 가족과 자기 학교와 자기 회사 안에 갇힐 수 없는 존재다. 그의 좋은 삶은 좋은 거리, 좋은 사회와 함께 실현된다.
미세 좌절의 시대 p.61., 장강명 지음
자본주의는 엄청나게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중략) 반면 자본주의의 가장 큰 단점은 효율성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만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삶에서 효율성 외에도 인권, 윤리, 사랑, 우정, 진실, 아름다움, 교양, 공동체의식 등 다양한 가치를 추구한다. (중략) 우리는 삶의 다른 가치들을 위해 때로는 비효율을 받아들여야 한다.
미세 좌절의 시대 p.78., 장강명 지음
매운맛과 높은음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보상을 받지만 순한맛과 낮은음은 제대로 주목받기 어렵다. 담백한 이야기, 작은 소리도 순한맛과 처지가 비슷하다. 그래서 상업영화의 폭력 묘사는 점점 더 잔혹해지고, 막장 드라마는 갈수록 자극적이 되고, 팝송과 가요는 평균 음량이 커지고 비트도 강렬해진다. 그렇게 다양성이 증가한다면 환영할 일이겠으나 실제로는 표준 감각이 바뀌면서 매운맛이 순한맛을 쫓아내는 현상이 벌어진다.
미세 좌절의 시대 p.99, 장강명 지음
내가 이해하는 보수와 진보는 방향에 대한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속도에 대한 것이다. 가야 할 방향은 명확히 정해져 있다. 경제의, 역동성을 잃지 않으면서 사회안전망도 튼튼한 사회. 잠재력을 펼치고자 하는 이들이 기회를 얻고, 경쟁의 최전선에서 한발 물러나도 미래가 두렵지 않은 세상. (중략)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대형 버스를 타고 그런 나라를 향해 간다. 가속페달을 얼마나 세게 밟아야 하는가를 놓고 늘 논쟁이 벌어진다.
미세 좌절의 시대 p.120, 장강명 지음
도덕성을 묻는데 불법이 아니라고 반박할 때 그 도덕성은 파산선고를 받는다. p144
미세 좌절의 시대 장강명 지음
나는 북한 같은 거대한 악 옆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특수한 도덕적 의무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특수한 상황 앞에서도 보편 가치를 주장해야 하는 책무다. p161
미세 좌절의 시대 장강명 지음
이번주는 '2부 어떤 나라를 꿈꾸는가'를 읽었습니다. 작가님의 날선 냉철함에 손을 조아려 페이지를 넘겼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냥 다 같이 시시해졌다. p192 사람은 비전을 만들고 거기에 기대 불안을 다스릴 수 있다. 비전은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런 비전조차 힘을 발휘한다. p205 '어쨌든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라는 믿음' p131이 유효한 나라를 꿈꿔봅니다.
저도 2부 정리를 한다면요, 역시 "우리는, 그냥 다 같이 시시해졌다.(p.192)"라는 실망이 앞서긴 합니다만... 그래도 작가가 영화 <레 미제라블>을 평하면서 지적했듯, "투쟁하는 듯한 막연한 기분(p.186)"이나 "지적 게으름과 비겁함(p.183)"을 분연히 벗어나서 이 '시시한' 세계의 바닥을 저마다 능력껏 치밀하게 탐구하고 분석하는 게 시작이 아닐까 합니다. 한 정치인의 말투와 표정과 식상함이 한꺼번에 떠올라 굳이 '새 정치'란 말을 쓰고 싶지 않지만, '새로운 비전과 그 디테일들'이라는 뜻으로 좁히고 고쳐서 생각해본다면... "새 정치는 차라리 모든 국민으로부터 양보를 끌어내는 일에 가깝다. 새 정치는 결코 통쾌하지 않을 것이다" (p.194) "디테일은 넓고 많고 다채롭고 일견 무질서해 보이기 때문에 제대로 파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노력도 많이 든다. 그렇게 시간을 들여 디테일을 조사하고 이해하는 노력을 우리는 '공부'라고 부른다" (p.203)
나는 신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세도 없고, 고로 사람이 죽으면 썩어서 냄새나는 흙이 된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말을 장례식장이나 예배당에서 하지는 않는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산다. 강연장에서도 그렇다. 이것이 기만인가? 위선인가? 나는 예의라고 생각한다.
미세 좌절의 시대 p.181, 장강명 지음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하는가> 저 또한 '세월호'라는 단어를 쉽게 입에 올리지 않고 살았습니다. 당시 가슴이 정말 꽉 막히는 것 같았던 심정이 지금도 떠오르지만 막상 그 슬픔에 값하기에는 내가 너무 한 게 없어서.. "태연한 표정으로 세월호를 말하는 것이 너무 죄책감이 들었다. 내 감정에 취할 자격이나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p.213) "슬퍼하는 사람은 자신을 뽐내지 않는다. 그럴 겨를이 없다." (p.213) "무표정한 얼굴로, 어른의 임무를 생각했다." (p.215) 또 살면서 마주친 여러 죽음 앞에서 내가 이해하기 힘든 애도의 방식을 강요하면서 슬픔을 전유하는 사람들도 일부 보아왔기에 주로 침묵을 지키는 편이었네요. "두려워하는 사람은 애도하지 않는다. 애도는 타인을 향하는 마음인데,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신의 안전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살아야겠다는 욕구가 그를 휘감는다." (p.214) 진정한 애도를 위해서는 이제는 그 침묵을 넘어서 냉철하게 바라보고 지켜주고 발언할 것들이 있다고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세상을 고해상도로 봐야 복잡한 현실과 다양한 이해관계가 드러난다. 해상도를 낮출수록 만사가 선악의 대결에 가깝게 보인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해야 할까. 어떤 신념과 정의감은 디테일을 모르는 데서 나오는 것 같다.
미세 좌절의 시대 p.203, 장강명 지음
돈은 현실이다. 현실을 외면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미세 좌절의 시대 p.229, 장강명 지음
3부.. ※ 내 인생 최고의 실패 나를 믿었던 취재원의 뒤통수를 세게 치는 기사였다. (중략) 종일 데스크에 사정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다가 저녁에 지방판 마감을 앞두고 원고를 넘기지 않은 채 전화기를 끄고 집에 가버렸다. 그날 밤 사표를 써서 이메일로 보냈다. p224 우리는 미래를 전망하지 못하고 현재를 평가하지도 못한다. 그러니 전망을 할 때도, 평가를 할 때도 겸허해져야 한다. 쉽게 들뜨거나 비관해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다. 한 줄로 줄이면, 인생 잘 모르겠다. 거기에 차분한 희망이 있다. p226 취재원의 뒤통수를 세게 치는 기사라니 그럼에도 작가님이 신의를 저버리는 선택을 하셨다면, 물론 이 책을 읽고 있을 리도 없겠지만 현재 읽고 있던 손도 놔버렸을 것입니다. 뒤통수를 세게 맞으면 뒤통수를 친 사람과의 신의만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내립니다. 게다가 남은 상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날의 작가님의 선택이 옳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인생 최고의 실패는 뒤통수를 세게 맞을지도 모르고 신의를 다해 누군가를 도왔던 것입니다.
아이고, 읽어내려가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갑자기 한 대 맞은 기분이네요. 워낙 믿음이 얄팍하고 진득하지 못한 성격이라 남을 믿고 도우며 살지도 않은 것 같아서 갑자기 폐부를 찔린 듯 ㅠ.ㅠ... 진부한 위로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꼭 돌려받을 날이 올 겝니다. 누군가의 믿음을 끝까지 귀하게 여겼다는 점에서.. 우리의 장작가님처럼 똑같이 뜻을 이루실 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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