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실제로 고등학생때 이런(?) 친구를 만났던 적이 있어요. 약속시간에 항상 늦는 친구였는데, 그때마다 이유가 기가 막혀요. 마치 다자이 상과 비슷한 논리를 펼치는데요. 늘 그 말에 휩쓸립니다. 시간을 맞춰 나간 제가 그 친구에게 번번이 사과를 하고야마는 기이한 현상이 펼쳐지죠. 말로 당해낼 수 없는 놀라운 친구였어요.
길에서 2시간 기다려본 적도 있습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꽤 여러 번이요. 다행인지 지금은 그 친구와 연을 끊었는데요. 그때는 저도 어릴 때라 그애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하면서 (속절없이) 가만가만 기다렸던 것 같아요.
Beyond Beer Bookclub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X다자이 오사무X청춘> 2편
D-29
연해
siouxsie
이 친구도 정의의 이름을 명.존.세
내로
헉, 어떻게 그렇게 물을 수 있죠... 다자이 정말 모르겠네요.
친구가 만약에 "다자이 이놈아 당연히 기다리는 몸이 괴롭겠지." 라고 말하더라도, 다자이는 달려라 메로스(이 책에서는 304p)를 인용하며, "사람의 마음을 의심하는 것 가장 부끄러워해야 할 악덕이다." 라고 적혀 있지 않느냐, 라고 "넌 지금 내 앞에서 악독을 부리는거다." 라며 철을 얼굴에 두른 듯 말할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달려라 메로스>는 지극히 자신의 진정성에 대해 비난하는 이들을 역으로 비난하기 위한 단편, 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자살로 운명을 달리하셔서, 달리 할 말은 없습니다.
장맥주
저 에피소드를 다른 글에서도 봤는데 다자이 오사무가 괴로워하면서 스승과 장기를 두고 있었던 것처럼 나오 더라고요. 어쩌면 다자이는 정말로 ‘기다리는 사람보다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 더 힘들다’고 믿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절교지만. 그리고 솔직히 더 한심해 보입니다.
내로
괴로워하면서 장기를 뒀다라, 스승님이 곧 죽기 전이고 죽기 전까지 장기를 두고 싶어 했던 걸까요. 아님 "어떤 상"을 받아야 하는데 스승님이 그것의 결정권자였을까요. 이러나저러나 저도 친구 먹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데 말이죠. 저기 사진 보이세요?
"그러거나 말거나 절교지만"이라는 문장이 우측 "책 읽다 절교할 뻔"이라는 문장과 오버랩되어, 굉장히 귀엽게 느껴졌어요... (귀엽다는 표현이 부담스러우시면 죄송합니다.) + 미세 좌절의 시대를 짬짬이 읽고 있어서 더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요.
장맥주
내기 장기를 두고 있었는데 질 거 같아서 괴로웠던 것은 아닐까요... ㅎㅎㅎ (그런데 진짜 아쿠타가와 상과 관련된 문제였을까요?)
https://www.facebook.com/salin119/photos/a.2256001754626184/2629619953931027/?type=3&locale=hu_HU
요 글에는 돈 빌리려고 스승을 찾아갔는데 말 꺼낼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고 나와 있는데, 얼마나 신빙성 있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그렇더라도 저의 선택은 절교입니다. ^^
절교, 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요즘 왜 이 단어 대신 ‘손절’이라는 말을 쓰는지 궁금해졌어요. 원래는 주식 용어잖아요? 그냥 관계를 끊는 게 아니라 손해를 감수하고 끊는다는 뉘앙스로 해석이 되는데, 지금까지 친교에 들어간 나의 노력을 일종의 투자로 보는 마음이 반영된 걸까요?
내로
충분히 타당한 의견 같아요. 제멋대로 해석하는 젊은이들의 이른 투자 경험도 한몫을 차지한 것 같고요. 또 저희 때보다 확실히 목표 지향적이기도 하고요. 목표가 있으면 그 주변 것들에 대한 값을 매기기가 쉬워지지 않나요?
장맥주
그렇죠. 그러고 보면 젊은 세대가 '인맥'이라는 말을 쓸 때도 은근히 인프라 투자와 비슷한 개념으로 들립니다. 이건 과거 세대도 그랬던가요. 과거에는 '끈', '빽' 같은 단어를 더 많이 썼는데 좀 음험한 느낌이 있었던 거 같아요.
도리
헉 그러고 보니 저 학창시절 때는 절교였는데... 어느샌가 손절이 됐네요. 손절이 주식용어인 줄도 몰랐던 경제바보... 접니다. 두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있는데 절교는 뭔가 더 유치하게 느껴지고 손절이 더 단호하고 깔끔하게 느껴져요. 쿨해보인달까요..
연해
"그러거나 말거나 절교지만" 이 문장을 읽고 웃음이 터졌습니다. 단호하시네요(그래서 좋아요). 근데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기다리는 사람보다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 더 힘들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저는 그 사람에게 기다리는 사람이 더 힘들다는 걸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모르면 평생 모르도록(스스로 깨닫도록). 그대와 절교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게 내 답.
이도우 작가님의 문장 몇 구절이 떠오르네요.
""왜 그 형과 헤어졌던 거예요?" 그는 내 첫사랑과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직접 물어보면 되잖아." "그게, 형도 모르더라고요." 그럴 것이다. 모를 것이다. 나는 헤어질 때 이유를 말하지 않았으니까. 후배에게 말했다. 내가 그 사람에게 딱 한 가지 잘못한 게 있는데, 어째서 헤어지는지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 하나쯤은 나도 잘못해도 된다고 생각했다고."
_
그러니 오늘 완독파티에는 시간을 꼭 맞춰가겠습니다(이래놓고 제가 늦으면 어떡하죠, 흑흑). 저는 평소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있는 편인데요. 오늘은 사실 너무 일찍 가 있으면... 다들 만나는 게 어색, 쭈뼛, 부끄... 뭐 요런 복합적인 제 모습들 때문에 살짝 망설여져요. 문 앞을 서성이면서 그 근처를 몇 바퀴 배회하다가 시간에 딱 맞춰서 주춤주춤 문을 열지 않을까(핑계 아니고 진짜로요). 그래도 용기 내어 문을 열어보겠습니다.
시간 약속 소중해...
siouxsie
저도 오늘 외근지옥(오후2시-4시30분-열사병으로 죽지 않는다면) 이후에 퇴근이라 서울대입구역(종이인형님은 계속 서울역이라고 잘못 말하심)에 일찍 도착할 거 같아요.(저도 보통 약속에 일찍 가 있는 편) 아덜은 그냥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라고 하고 부부는 외출을 시도합니다.
연해
아니 이렇게 다정하게 말씀해주시면 제가 또 막...!
오들오들 떨면서 횡설수설해도 그러려니 해주세요, 허허.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뵈어요. 작가님:)
연해
<젠조를 그리며>
인정욕구에 발버둥 치는 화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금의환향이 뭐라고 그렇게. 근데 생각해 보면 '적어도 이 사람에게만큼은 인정받고 싶다'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 싶어요(아 아니려나...). 화자의 경우 고향 사람들이 그 주체였던 것 같고요.
저도 어릴 때는 그게 있었는데(다른 누구의 인정도 의미가 없었고, 꼭 그 사람이어야만 했다는 게 슬프죠), 그때의 저를 돌아보면, 화자의 마음이 이해되는 듯도 하여 끄덕끄덕하며 읽었습니다. 옷을 고를 때부터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화자의 모습에 제가 다 불인하더라고요.
장맥주
다자이의 인생 전체가 인정욕구에 휘감겨 있었던 거 같아요. 저도 인정욕구가 심한 사람이라 누구를 가엾게 볼 처지는 아니지만요. 그런데 인정욕구의 방향이 문단이라든가 고향 사람들이 아니라 시간, 혹은 후대 같은 쪽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인정욕구 자체를 없애기는 힘들어도 방향을 돌리는 건 가능할 거 같은데요. 제 경우가 그렇습니다.
연해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모임에서도 정아은 작가님이 인정욕구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책에도 담겨있었고요. 근데 작가님 말씀처럼 그 방향이 시간, 혹은 후대 같은 쪽이었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겠네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다자이 오사무도 그런 면에서 안타까워요. 뭔가 계속 아등바등 자신을 인정해달라고 떼쓰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기도 해서(감히 제가 뭐라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요).
뜬금없지만 저는 그래서 (장)작가님의 글이 좋습니다. 인정욕구가 있지만 방향 돌리기에 성공(?)하셨기에 이토록 많은 독자층이 있는 게 아닐까요(팔을 안으로 굽는다아).
연해
<달려라 메로스>
갑작스러운 장르 변경에 어리둥절했던 단편입니다.
우선 처음에는 '아니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막무가내야' 싶었어요. 친구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대뜸 인질로 잡아두게 하지를 않나, 여동생에게 오늘 당장 결혼하라고 하지를 않나. 근데 읽으면 읽을수록 메로스를 응원하게 되더라고요(일단 친구는 구해야 하니까요). 물론 현실에서 이런 분들을 만나고 싶지는 않습니다. 회사에서도 종종 이런 분들 있거든요. 일만 벌여 놓고 뒷처리는 하지 않는.
첫 직장에서 같은 팀 대리님이 저희에게 자주 하시던 말씀이 불현듯 떠오르네요.
"니들이 싼 똥은 니들이 치워, 이 ㅁㅈㄹ 들아!"
(초성으로 대신합니다)
다시 줄거리로 돌아가보자면요. 그래도 소설이니까, 메로스 달려 달려! 라고 (속으로) 외치면서 속도감 있게 읽었어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혹시 모를 반전이 있는 게 아닌가 싶 어 조마조마하기도 했죠. 다행히 아름다운 결말이라 좋았습니다(새드엔딩 잘 못 보는 1인). 우애와 신의에 대한 교훈적인 동화 같기도 하고, 어릴 때 읽었던 탈무드도 생각났어요. 과연 이토록 맹목적이고 절대적인 믿음이 가능한가 싶기도 했고요(근데 뺨 때리는 장면은 좀...).
연해
뜬금없는 이야기 하나 더해보자면요.
어릴 때 오빠랑 했던 놀이 중에 '의자놀이'라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의자놀이'는 아니고, 저희 둘끼리만 하던 놀이가 있었어요. 요즘으로 치자면 '신뢰게임'이라고 하나요? 대충 뭐 그런 건데요.
서로 번갈아가면서 의자에 앉고, 서 있는 사람이 의자를 뒤로 넘겼다가 다시 제자리로 올려요. 각도에 따라 스릴도 있는데, 서 있는 상대를 믿고 몸을 맡기는 거죠. 근데 그 놀이를 꽤 즐기던 저희도 몸이 점점 자라잖아요? 저는 키가 작은 편인데 오빠는 저랑 달리 키가 되게 크거든요.
그러다 하루는 오빠가 의자에 앉고 제가 의자를 잡는 날이었어요(그네를 밀어주는 모습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날따라 탄력을 받은 제가 각도를 더 눕힌다는 게 그만 의자를 놓치고만 거예요. 다행히도 오빠가 잽싸게 몸을 사려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는데, 서로 신의가 망가졌던 기억이 나네요.
내가 신의를 져버린 게 아니라 오빠가 무거운 거야...(라고 이렇게 또 다자이상 따라하기)
근데 저만 자꾸 메르스라고 읽히나요, 허허허.
장맥주
저는 메르스라고 읽히지는 않는데, 자꾸 메로나가 생각나기는 했어요. 읽는 저도 덥고 달리는 메로스도 덥고 둘이 같이 메로나나 하나씩 입에 물고 어디 시원한 언덕에 앉아 있으면 좋겠다... 싶었스니다.
연해
오, 메로나라니, 신선합니다!
제가 아이스크림을 끊은지(?)가 좀 오래 됐는데요. 이상하게 만취(적당히 취한 거 말고 꼭 만취)만하면 그렇게 메로나가 생각나요(다른 아이스크림 아니고, 유독 메로나). 20살 때부터 생긴 버릇인데,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평소에는 찾지도 않는 걸 왜 그렇게 노래노래 불러대는지 참...(쯧)
메로스에서 시작해 메로나로 끝나는 이야기ㅋㅋㅋ 즐겁습니다. 그래도 8월로 접어들면서 저녁 더위는 한풀 꺾인 기분인데(주말에도 밤에 걷는데 선선하더라고요), 저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요. 저 근데 작가님, "메로스도 덥고"를 흐린 눈으로 봤더니 "메로스 업고"로 봤 습니다. '힘 좋으시다'생각하다가 다시 읽고 웃었습니다(선선하다더니 더위를 먹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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