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사람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완전 제 스타일의 콩트였고(읽다가 빵터져서 두번째 세번째도 기대했지만......), 두 번째 것은 이해가 안 갔고, 세 번째 것은 기침하는 남자가 본인을 한심한 사람으로 느끼는 것 같아 좀 안쓰러웠어요. 아이들은 종종하는 짓인데 말이죠.
그래도 최고봉은 이런 글로 마감을 떼우려는 작가 본인이었겠죠?
부끄러운 줄 알았다면 괜찮아요 다자이 상
Beyond Beer Bookclub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X다자이 오사무X청춘> 2편
D-29
siouxsie
메리D
<우바스테>가 무슨 뜻일까요?? 궁금했는데..
일단, 네이버에는 딱히 뜻이 안나오던데..
'우바스테야마'라는 말에서 파생했을까요?
우리나라 '고려장'(고려장도 일본인이 의도적으로 만든 말이라는 얘기가 있죠.)과 비슷한 말이던데.. 늙고병등 사람을 지게에 지고 산에 가서 버렸다는..풍속이 있었다는데, 일단 산에 가져다 버렸다는(자신이든, 타인이든 일단 산에버린다는) 의미일까요?
메리D
<우바스테>는 나름 재밌게는 읽었는데, 실제 모델이 있는것도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는 말을 들었더니, 이게 소설인지 진짜 있었던 일일까? 궁금해 지네요. 너무 그럴듯해서요. 사실 그대로를 적은 글이라 해도 믿을것 같아요.
siouxsie
전 여학생 빼곤 전부 사소설로 인식하면서 읽고 있어요. 아니야 아니야 그렇지 않을 거야라고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 보려 해도 '이건 내 얘기야~'하는 다자이 상의 목소리가 들리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비욘드
■■■■ 4. 젠조를 그리며, 달려라 메로스 ■■■■
<달려라 메로스>는 <인간 실격<, <사양>과 함께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이번 청춘 시리즈에 포함되어 있어 좋네요.
2024년 제 17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 얼마 전에 출간되었습니다. AI를 활용한 문장을 사용했다고 해서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지요. 책장에 살짝 올려놓고 가니 관심 있는 분들 살펴보시길요.
도쿄도 동정탑 - 2024년 제17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2024년 제170회 아쿠타가와상이 AI를 활용해 집필한 작품인 『도쿄도 동정탑』에 주어졌다. 작가 구단 리에는 수상 기자회견에서 ‘작품 일부에 생성형 AI로 만든 문장을 사용’했다고 밝혔고, 이후 일본은 물론 한국의 언론과 독자들도 관심을 보였다.
책장 바로가기
siouxsie
'도쿄도 동정탑' 줄거리 살짝 읽어 봤는데, 정말 특이하네요. 구단 리에 작가님 선조분이 성도 참 특이하게 잘 지으셨고요. 얼마 전에 일본 분 중에 '인도'라는 성 보고 깜놀했는데, 한자까지 딱 있더라고요.
ㅅㅅㅈ
<젠조를 그리며>
금의환향을 너무나 원하기에 오히려 겁먹고 이내 망쳐버리는 모습이 낯설지 않네요. 돌이켜보면 간절히 원했던 게 이루어진 적은 잘 없고,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게 의외의 성과로 이어진 적이 많았어요.
피어난 장미를 보며 힘 좀 빼고 마음이 편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들어요.
siouxsie
<젠조를 그리며>
젠조는 누구일까요? 사람 이름인 거 같은데....기다려도 나오지 않고...
새벽녘 구름이 저녁노을에서 태어난 포동포동한 아이라는 표현이 특출나게? 아름다웠습니다.
다자이 님의 단편들을 이 책에서 2/3 정도 읽은 결과, 이 분 글의 내용은 당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비유, 은유 표현, 사물이나 인물에 대한 묘사 등 문장이 아름답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지....
제가 촘촘하고, 엄청난 조사와 작가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고, 아직도 허세부리는 20-30대 갬성이었다면 이런 글들을 좋아했을지 모르겠지만, 전 이미 필사적인 노동의 가치에 눈을 떠 버렸기 떄문에, 머릿속으로만 괴로워하면서 뒹굴거리다가 쓰는 이런 글들은 솔직히 별로입니다. 그래도 문장이 좋은 건 부정할 수가 없네요. 쳇...
또 마지막 문장들이 좋았습니다.
'슬픔은 돈을 내서라도 사라는 말이 있다. 푸른 하늘은 감옥의 창문을 통해 볼 때 가장 아름답다고 하던가. 감사한 일이다. 이 장미가 살아 있는 한 나는 마음의 왕이라고 순간 생각했다.'
연해
엇, 그러고 보니 정말 '젠조'를 못 본 것 같네요!
혹시 또 모르니 이따가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siouxsie
고도처럼 영원히 안 나타나실 거 같아용
siouxsie
<달려라 메로스>
이 작품은 예전에도 읽은 적이 있어 나름 익숙했던 작품입니다.
정말 다자이 님 작품답지 않게, 따뜻하고 화목한 이야기
"우울아~~ 동반 자살아~~어디 갔나요?"라고 손모아 크게 외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네이버에 '기다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라고 한 줄 요약되어 있는데 저는 '신의'가 주제 아닌가?하고 읽었습니다.
아이들 동화책에 나올만한 교훈적인 작품이긴 한데, 다른 작품들과 결이 너무 다르고 평이해 또 감점? ㅎㅎㅎ
이 책이 끝나기 전에 홈런 한 방 치는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아님 '사양'을 읽어야 할 수도....
이상한 건 중 독된 건지....계속 뭐라 하면서 또 읽고 싶어지긴 해요
장맥주
네이버 설명 너무 이상한데요. 당연히 신의가 주제 아닌가요. 그런데 저 설명이 또 여기저기에 인용이 되어 있네요. 맨 처음에 누가 저런 해설을 만들었을까 궁금해서 검색했는데 원전은 못 찾았지만 다른 걸 찾았습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달려라 메로스』의 책 소개에 있었는데, 이 단편은 이른바 ‘아타미(熱海) 사건’이라고 하는 실제 에피소드가 창작 배경이 되었다고 하네요.
<어느 날 시즈오카현 아타미에서 다자이와 그의 친구인 작가 단 가즈오가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술값이 부족했다. 다자이는 돈을 빌려 오겠다며 훌쩍 떠났고, 닷새고 열흘이고 무작정 기다리다 지친 친 구는 직접 다자이를 찾아 나섰다. 어이없게도 다자이는 스승 이부세 마스지의 집에서 장기를 두고 있었다. 질책하는 친구에게 다자이는 울상이 되어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기다리는 몸이 괴로울까? 기다리게 하는 몸이 괴로울까?”
저라면 다자이 같은 친구하고는 절교합니다. 뻔뻔한 놈 같으니라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는 다자이 오사무를 ‘재기 발랄한 이야기꾼’이라고 수식했는데 과연 그런지도 잘 모르겠어요. 이야기꾼으로서나 재기나 발랄함이나 다 조금씩 모자라는 거 같은데 말이죠.
siouxsie
역시 인간은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는 동물이네요. 어떻게 저런 발언을 뻔뻔하게....
어우 저 에피소드만 들어도 화가 나네요! 저 같으면 명존세였어요..ㅎㅎ
연해
저는 실제로 고등학생때 이런(?) 친구를 만났던 적이 있어요. 약속시간에 항상 늦는 친구였는데, 그때마다 이유가 기가 막혀요. 마치 다자이 상과 비슷한 논리를 펼치는데요. 늘 그 말에 휩쓸립니다. 시간을 맞춰 나간 제가 그 친구에게 번번이 사과를 하고야마는 기이한 현상이 펼쳐지죠. 말로 당해낼 수 없는 놀라운 친구였어요.
길에서 2시간 기다려본 적도 있습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꽤 여러 번이요. 다행인지 지금은 그 친구와 연을 끊었는데요. 그때는 저도 어릴 때라 그애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하면서 (속절없이) 가만가만 기다렸던 것 같아요.
siouxsie
이 친구도 정의의 이름을 명.존.세
내로
헉, 어떻게 그렇게 물을 수 있죠... 다자이 정말 모르겠네요.
친구가 만약에 "다자이 이놈아 당연히 기다리는 몸이 괴롭겠지." 라고 말하더라도, 다자이는 달려라 메로스(이 책에서는 304p)를 인용하며, "사람의 마음을 의심하는 것 가장 부끄러워해야 할 악덕이다." 라고 적혀 있지 않느냐, 라고 "넌 지금 내 앞에서 악독을 부리는거다." 라며 철을 얼굴에 두른 듯 말할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달려라 메로스>는 지극히 자신의 진정성에 대해 비난하는 이들을 역으로 비난하기 위한 단편, 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자살로 운명을 달리하셔서, 달리 할 말은 없습니다.
장맥주
저 에피소드를 다른 글에서도 봤는데 다자이 오사무가 괴로워하면서 스승과 장기를 두고 있었던 것처럼 나오더라고요. 어쩌면 다자이는 정말로 ‘기다리는 사람보다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 더 힘들다’고 믿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절교지만. 그리고 솔직히 더 한심해 보입니다.
내로
괴로워하면서 장기를 뒀다라, 스승님이 곧 죽기 전이고 죽기 전까지 장기를 두고 싶어 했던 걸까요. 아님 "어떤 상"을 받아야 하는데 스승님이 그것의 결정권자였을까요. 이러나저러나 저도 친구 먹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데 말이죠. 저기 사진 보이세요?
"그러거나 말거나 절교지만"이라는 문장이 우측 "책 읽다 절교할 뻔"이라는 문장과 오버랩되어, 굉장히 귀엽게 느껴졌어요... (귀엽다는 표현이 부담스러우시면 죄송합니다.) + 미세 좌절의 시대를 짬짬이 읽고 있어서 더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요.
장맥주
내기 장기를 두고 있었는데 질 거 같아서 괴로웠던 것은 아닐까요... ㅎㅎㅎ (그런데 진짜 아쿠타가와 상과 관련된 문제였을까요?)
https://www.facebook.com/salin119/photos/a.2256001754626184/2629619953931027/?type=3&locale=hu_HU
요 글에는 돈 빌리려고 스승을 찾아갔는데 말 꺼낼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고 나와 있는데, 얼마나 신빙성 있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그렇더라도 저의 선택은 절교입니다. ^^
절교, 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요즘 왜 이 단어 대신 ‘손절’이라는 말을 쓰는지 궁금해졌어요. 원래는 주식 용어잖아요? 그냥 관계를 끊는 게 아니라 손해를 감수하고 끊는다는 뉘앙스로 해석이 되는데, 지금까지 친교에 들어간 나의 노력을 일종의 투자로 보는 마음이 반영된 걸까요?
내로
충분히 타당한 의견 같아요. 제멋대로 해석하는 젊은이들의 이른 투자 경험도 한몫을 차지한 것 같고요. 또 저희 때보다 확실 히 목표 지향적이기도 하고요. 목표가 있으면 그 주변 것들에 대한 값을 매기기가 쉬워지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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