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Beer Bookclub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X다자이 오사무X청춘> 2편

D-29
저를 감옥에 가두시면 안 돼요, 저는 스물네 살이 될 때까지 나쁜 짓을 한 게 하나도 없어요. 나약한 부모님을 성심껏 보살펴 드렸다고요. 싫어요, 싫어요, 저를 감옥에 가두면 안 돼요. 제가 감옥에 왜 가야 하나요. 스물네 해 동안 애쓰고, 또 애썼는데, 고작 하룻밤 손을 잘못 움직였다고 해서, 고작 그런 일로 스물네 해의, 아니 제 평생을 망쳐 놓으시면 안 돼요. 잘못된 일입니다. 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아요. 평생에 단 한 번, 무심코 오른손이 한 뼘쯤 움직였다고 해서 그것이 손버릇이 나쁘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너무하십니다, 너무하십니다.
다자이 오사무×청춘 p.166,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우리의 행복은 고작 방의 전구를 바꾸는 것 정도구나, 하고 속으로 저를 납득시키려했지만, 그리 쓸쓸한 마음도 들지 않고 도리어 이 소박한 전등을 켠 우리 가족이 아주 아름다운 주마등처럼 느껴져서, 아, 훔쳐볼 거면 보라고, 우리 가족은 아름답다고, 하고 마당에서 울어 대는 벌레들에게까지 알려 주고 싶은 조용한 기쁨이 가슴속에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청춘 p.170,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한심한 사람들> 첫 번째 남자 보면서 뜨끔 했어요. 남 일 같지 않아.. 맹세할 땐 진심으로 지킬 수 있을 거 같거든요. 그러다 어느 날 탁 고삐가 풀리면 여기 아가씨 같은 반응이 나오는 거죠. 나를 바꾼다는 게 정말 힘들고 단번에 되는 일이 아닌데 맹세는 쉽게 턱 내놓을 수 있으니까 ,버릇처럼 꺼낼 때가 있어요. 이런 맹세를 하기 전에는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진심으로 납득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더라고요.
말씀하신 부분 공감합니다. 저도 그런 의미에서 약속(?)을 잘 안 하게 되는 것 같아요(그 흔한 밥 먹자는 말도, 정말 먹을 사람 아니면 대답을 안 합니다). 흔히 썸을 탈 때도요. 상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약속을 쉽게 하시는 분들을 만나곤 하는데요. 저는 그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기보다는 오히려 의심부터 들더라고요. '어떻게 저 말을 저렇게 쉽게 하지? 저 말의 무거움이 뭔지는 알고 저러는 걸까?' 싶은(같은 결로 도와주겠다는 말을 남발하시는 분들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가씨의 대답이 순수해서 좋고, 순수해서 아팠어요. 가끔 그럴 때가 있거든요. 누가 봐도 거짓말 같은데, 나한테 거짓말 안 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아닐 거야, 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있는 나. 그런 나를 마주할 때면 이 상황이 정말 괜찮은 걸까 고민에 빠지기도 해요(주변에서는 저보고 바보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상대의 거짓말인 걸 알았을 때, 맥이 탁 풀리죠. 그럴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별을 고했던 것 같습니다.
"분명히." 아가씨는 맑은 미소로 대답했다. "맹세했잖아요. 그런데 술을 마셨을 리가요. 내 앞에서는 연기 그만해요."
다자이 오사무×청춘 p.152,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한심한 사람들」과 「등롱」은 별 느낌 없이 읽었습니다. 저도 @리타73 님처럼 ‘이거 마감 때문에 대충 쓴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등롱」을 읽는 동안 희미하게 불쾌감이 들었는데, 작품 외적인 요소 때문이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부잣집 도련님이었거든요. 그런데 「등롱」은 가난한 화자를 내세우고, 거기서 어떤 효과를 끌어내고 있습니다. 박완서 작가님의 표현을 빌자면 ‘가난까지 훔친’ 거 아닌가요.
도둑맞은 가난주로 1970년대 씌어진 작품들로, 한국 전쟁과 분단의 아픔, 1970년대 사회적 풍경과 아픔, 여성 문제 등을 다룬 작품들을 담고 있다. <도둑맞은 가난>,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겨울 나들이>,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아저씨의 훈장>,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 <해산 바가지> 등 총 7편의 작품을 수록하였다.
<등롱> "말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저를 믿어주지 않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모두가 저를 경계합니다. 그저 그리워서, 얼굴을 보고파서 찾아가도, 무얼 하러 왔느냐는 눈빛으로 맞이합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이 문장 읽고 제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사키코를 내세웠지만, 항상 다자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이 저런 감정 같았는데 본인이 직접 문자화 해 주셨네요. 안 그래도 초라하게 살았던 사키코는 미즈노에게 버림받고 더욱 쪼그라든 삶을 살았을 것 같아 가슴이 아팠습니다.
<한심한 사람들>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다>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이번 단편에서도 타인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작가의 공감 능력과 여지가 없는 솔직함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물론 각각의 세부 이야기(특히 2번째 이야기)에 대해서는 아리까리한 점이 없지 않았습니다. 어떤 유추를 해봐도 여지없이 과녁을 벗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 짧은 단편 안의 단편들에 독자들을 표류하게 만들어, 스스로 한심하다고 느끼게 할 심산이었다면, 다자이는 성공한 것입니다. 세 이야기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해석을 시작할지 말지 고민 중인데, 결국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무엇을 쓰더라도 작가의 의도를 왜곡하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 같아서요. 아마 그 (거짓된) 글은 가슴을 미어지게 하고, 숨이 잠깐 멎는 기분이 들게 하며, 밤새 비참한 기분을 느끼게 할 것이 분명합니다.
전..등롱에서 "각자의 시선"이란 말이 떠올랐어요. 그 둘은 서로의 모습을 '자신의 시선'안에서 바라봄으로서 서로의 모습을 다르게 보고 있었던건 아닌가 싶었어요. 그래서 그녀는 놀러가는 그가 초라해 보이지 않게 수영복을 선물하고 싶었고, 그는 그녀가 환경적 영향으로 못배운, 배움이 필요한 사람 이라고 생각한거죠. 자신들이 생각한 한 면만 보고선 만들어진 환상 같은 모습이요. 그들이 서로의 모습을 온전히 보긴했을까. 씁쓸해지는 이야기였던것 같아요.
말씀하신 부분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정말 그러네요. 저는 둘의 모습을 보면서 사키코는 사랑(진심)이었지만 미즈노는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서로의 시선이 달랐을 수 있겠네요. 표현 방식 또한 마찬가지일 수 있고요. 상대를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내가 바라는 이상 혹은 결핍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왜곡되게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하핫).
<등롱>에 나오는 분들이 모두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남주도, 여주도, 상황도 다 인위적으로 느껴졌달까요. 남자가 여자에게 말하는 말의 내용들이나 여자가 경찰서에서 독백하는 내용들도, 대게 다 그랬습니다. 물론 가짜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인위적인 것과 가짜인 것은 엄연히 다른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단편의 상황들이 받아들이기 다소 힘들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저는 마지막에 여주인공을 포함한 가족이 도란도란 모여있는, 해피엔딩으로 묘사된 결말에 다소 이상하고 허무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은 해피엔딩이라고 느끼셨나요? 그 소소한 기쁨이 여주에게 진정한 기쁨일 것이라, 그렇게 느끼셨나요? p.s. 그 뭐였죠, 아쿠타가와의 "귤" 기억나시나요? 그건 확실히 해피엔딩이었는데 말이에요.
오... "인위적인 것과 가짜인 것은 엄연히 다른 거잖아요."라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저도 <등롱> 기묘했어요. 마지막 장면도 해피엔딩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찝찝한 느낌이랄까. 문제가 뻔히 보이는데, 겉으로만 하하호호 얼렁뚱땅 넘어가는 느낌? "우리의 행복은 고작 방의 전구를 바꾸는 정도구나, 하고 속으로 저를 납득시키려 했지만, 그리 쓸쓸한 마음도 들지 않고 도리어 이 소박한 전등을 켜 우리 가족이 아주 아름다운 주마등처럼 느껴져서,"라는 문장을 읽으면서도 문장 자체는 따뜻한데, 이 상황에 등장하기에는 뭔가 좀 인위적인 느낌이더라고요. 억지로 쥐어짜내는 행복, 정신승리랄까. 어쨌든 묘했습니다.
오, 저만 그렇게 느낀게 아니네요!
<한심한 사람들>, <등롱> 그냥 맹맹하게 읽었습니다. 응석이 심한 작가 인정합니다. 이때까진 작가가 귀엽게 느껴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은 하나도 안귀엽습니다 ㅜㅜ. 다자이 상의 징징거림에 질렸어요.
아직 안 읽었지만 혼자 빵 터져서 안 올릴 수 없었습니다. 아쿠타가와 님이랑 다자이 님은 싸이월드 하셨어야 하는데.... 재능이 아깝네요
아, 정말, 싸이월드 재질이시네요 ㅋㅋㅋㅋ
<어릿광대의 꽃> 처음 동반자살이라는 것에 철렁했습니다. 그래서 작품연도와 다자이 오사무 사망연도부터 넘겨봤어요. 이때부터 염두에 둔 건지 ㅠ 심상치 않은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요, 뒤로 갈수록 작가의 개입이 몰입을 방해했어요. 특히 ‘청년은~~~’이라는 (주입식) 설명과 자기혐오? 자아비판?이 동어반복처럼 장황해서 작가에게 목덜미 잡혀서 끌려가는 기분마저 들었구요. (소설은 무심하게 쓰자구요. 알믄서~) 이 작품을 쓰는 내포작가가 아닌 다자이 오사무의 날것 같은 육성이라 피로감이 더했습니다. (@비욘드 님의 응석이라는 표현에 동감합니다. ㅎㅎ) 메타형식을 쓰려면 서사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전략적으로 구사해야할 텐데 말이죠. 요조, 히다, 고스케는 각각의 개성이나 입체성보다 ‘청춘’ 그 자체로 보였고 (몰입을 실패해서인지) 요조의 형과 마노도 소설의 효과를 위해 설정된 작위적 인물로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금처럼 빛나는 문장이 곳곳에 있어서 좋았구요, 한편의 청춘영화를 본 것 같았습니다.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다> 화자는 세이센을 마치 거울을 보듯 보고있는걸까요? 세이센에게 기대하는 것들도 실망하는 모습도 모두 자기 자신을 향한 마음인것 같았어요. 제목이 두가지 의미로 다가오더라구요. 첫번째는 화자가 세이센의 출세를 바라며 말하는 '그는 이제 성공할거야. 예전의 루저가 아니야.' 두번째는 화자가 마지막에 체념한듯 말하는 '그는 예전에 내가 성공할거라 기대했던 그런 특별한 존재가 아니야.' 그리고 좀 엉뚱한 소리지만 '세이센'이라는 이름이 나올때마다 자꾸 '세이렌'이 떠올랐어요; ㅎ.ㅎ
@토끼풀b 님의 감상을 끄덕끄덕 공감하며 읽다가, 제목의 두 가지 의미에 대한 해석에 오! 라고 놀라고, '세이렌'에 오오! 하고 두 번 놀랐습니다. 저도 자꾸 세이렌(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요정,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뱃사람들을 홀려 죽게 했다고...)으로 읽혀가지고, 입으로 중얼중얼 소리 내면서 교정(?)했거든요. 막상 감상을 쓰면서도 자꾸 세이렌이 툭툭 튀어나와 당황했다죠.
세이센이 靑扇이란 아주 예쁜 한자더라고요. 근데 이름이랑 안 어울리게 제가 젤 싫어하는 인간실격형 인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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