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Beer Bookclub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X다자이 오사무X청춘> 2편

D-29
앗! 내로님도 무사히 이사(?)를 마치셨군요. 환영합니다:) 그쵸? 문체가 독특해요. 사실 이게 일본문학의 특별함인지, 다자이 오사무의 작법 스타일인지, 아니면 그냥 이런 문체 자체를 제가 낯간지러워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화자가 자꾸 저한테 말을 거는 것 같아요(긁적긁적). 여러모로 적응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허허허.
<어릿광대의 꽃> 『인간 실격』의 번외편 같아 흥미롭게 읽었어요. 잊고 있었던 '요조'를 다시 만난 건 같아 반가운 마음도 들었고요. 다만 '요조'라는 캐릭터를 저는 여전히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인간 실격』을 읽을 때도 같은 마음이었지요. 세월이 흘렀지만 역시나 저는... @siouxsie 님이 말씀하신 싸이월드 감성의 표지 문장 "나약한 게 아니라 괴로움이 너무 무거운 거야"라는 문장도, 흠. 작가의 혼란스러운 감정이 요조라는 인물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중간중간 등장하는 '나'가 도대체 누구지? 하면서 책을 여러 번 다시 읽었어요(그래서 감상이 늦었다는 핑계를 대봅니다). 다행히 오늘은 휴가고, 휴가라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책을 마저 읽고 이렇게 감상을 적어내려갈 수 있어 기쁘고요(주말은 왜 이렇게 정신없이 흘러가는 것인가). "차라리 '나'라고 해도 좋을 텐데 나는 올봄에 '나'라는 주인공의 소설을 썼기 때문에 두 번 연속 쓰는 건 낯간지럽다. 내가 만일 내일이라도 갑자기 죽는다면, 저 녀석은 '나'를 주인공으로 삼지 않고서는 소설을 쓰지 못해, 라는 말을 의기양양하게 하는 이상한 남자가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사실 그 이유만으로 나는 이 오바 요조를 계속 밀어붙일 것이다."라는 문장처럼, 중간에 등장하는 나는 요조의 또 다른 목소리이자 다자이 오사무이자 경계가 모호한 느낌이라 더 생경했습니다. 저는 일본의 번역체가 여전히 어려워요(한국소설이 짱이야). 그리고 이번 단편은 등장인물이 여럿인데, 이들의 모습이야말로 청춘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뜻 보면 유치하고 순수하고 귀엽기도 우습기도 한 그 나이대의 감성이랄까요(나이로 선을 그으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저의 20대 초반, 친구들과 술에 잔뜩 취해 새벽거리를 겁도 없이 휘젓고 다니던 기억들이 떠올라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세상 무서울 것 없고, 남자 이야기(?)하기 좋아하고, 이성의 작은 호의에도 사랑에 빠진 것처럼 설레던 그때 그 모습들이랄까요. 간질간질하면서도 위태로운 모습들. 그 와중에 요조는 그만의 세계가 있는 느낌이고요. 동반자살이라는 무거운 주제와 가족관계안에서 느껴지는 묘한 서열, 기싸움? 등도 보였고요. 여러모로 복잡했던 소설이었습니다.
책에서 '잰 체'라는 표현이 종종 등장하는데, '젠체'가 아닌가. 제가 알고 있는 뜻과 다른 것인가 살짝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모든 걸 털어놓겠다. 이 소설의 한 장면 한 장면 묘사 사이에 나라는 남자의 얼굴을 내보여서,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한바탕 늘어놓은 것도 교활한 꿍꿍이가 있어서였다. 나는 그걸 독자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나를 가지고 몰래 특이한 뉘앙스를 작품에 담고 싶었다. 그건 일본에는 아직 없는 세련된 작풍일 거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패배했다. 나는 이 패배의 고백조차 이 소설 계획 속에 계산하고 있었다. 가능한 한 나는 좀 더 나중에 그 말을 하고 싶었다. 아니, 이 말조차 나는 처음부터 준비했던 듯한 기분이 든다.
다자이 오사무×청춘 p.100,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이 소설은 재미가 없다. 자세만 있다. 이런 소설이라면 한 장을 쓰든 백 장을 쓰든 똑같다. 하지만 그 사실은 처음부터 각오하고 있었다. 쓰는 동안 뭔가 하나쯤은 괜찮은 게 나오겠지 낙관하고 있었다. 나는 재수 없는 놈이다. 나는 재수 없는 놈이지만, 뭐 하나라도, 뭐 하나라도 좋은 점이 있지 않을까. 나는 흥을 주체하지 못하는 촌스러운 문장에 절망하면서, 뭐 하나라도, 뭐 하나라도 좋은 점이 있을까 오직 그것만을 여기저기 뒤지며 찾았다.
다자이 오사무×청춘 p.120,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그들의 마음속에는 혼돈, 그리고 영문모를 반발심만이 있을 뿐이다. 혹은 자존심뿐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가늘게 벼려진 자존심이다. 미풍에도 흔들려 파르르 떤다. 모욕당했다고 생각하자마자 죽어야지, 하고 괴로움에 떤다. 요조가 제 자살 이유가 뭐냐고 묻는 말에 당혹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것저것 모두 다였다.
다자이 오사무×청춘 p.97,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진실은 하나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참 듣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것을 얻기도 한다. 그들의 잰 체하는 말 속에 이따금 깜짝 놀랄 만큼 솔직한 울림을 느끼는 일도 있다. 조심성 없이 흘리는 말 속에야말로 진정성이 담기는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청춘 p.96,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젠체'가 더 맞는 표현 같네요. '재다'에도 '으스대거나 뽐내다'의 뜻이 있어서 '재는 척'한다로 생각했는데, 자체로 '잘난 체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젠체하다'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다음 쇄에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으앗,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괜히 혼란을 드린 게 아닌가 싶어 죄송스러워요. 다음 쇄에 반영될 수 있도록 책이 많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습니다:)
네!! 그럼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다> 여러모로 기묘하게 닮아 보였던 화자와 세이센의 이야기였어요. 화자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 덕분에 몰입해서 쭉 읽었습니다. 세이센은 보고 있자니 안쓰러워요. 자신이 알맹이 없는 사람이란 거 아마 본인이 제일 잘 알 거거든요. 한번만 제대로 된 궤도에 올라타면 될텐데, 그게 이상하게 잘 안 풀리죠. 그런 일이 반복되면 나중에는 완전히 놓아버리게 되고요. 화자는 세이센에게 천재성을 기대했다가 이내 실망하는데요. 화자 역시 알맹이가 없는 사람이지 않나 싶어요. 내가 아무 것도 아닐 때, 특별한 무언가를 갈망하게 되니까요. 저도 저랬던 적이 있어요. 막 다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꿈도, 야망도 크게 가지고 주변에 이야기도 하고 다니는데 사실 내실은 없어서 진짜 해낸 건 없는, 그런 껍데기 같은 모습이요.
저도 세이센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약해 보이지 않으려고 6일을 애쓰지만 결국 1일은 나약하게 자빠져 있는, 사실 1일이 제 진짜 모습 같은데 말이에요.
저는 보통 4~5일은 자빠져 있었는데요.. 조금 존경심이 듭니다.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다> 죄송합니다. 이사가 늦어졌습니다. 보증금 없이 짐부터 옮기는 세이센을 보면서, 그에게 한 수 배웠습니다. 다음부터는 자리부터 잡고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네요. 단편의 마지막 말을 되새기면서, 별안간 비슷한 속성을 가진 사람은 서로를 (은연중에 또는 은근히) 싫어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최근에 개그맨 조세호씨가 어떤 모임에 참여했을 때, 자신만큼 말 많은 사람이 있으면 이상하게 경계하게 된다는 데, 이게 예시가 될까요? 음, 제 이야기가 더 적절할 것 같네요. 저와 같이 일하는 분이 계시는데, 여러모로 재능이 있고, 미래가 기대되는 사람이에요. 카카오톡 하트 표시도 계속 눌러주실 만큼, 저에게 매우 친절한 분인데, 언젠가부터 그분을 싫어하는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아내에게도 내가 왜 그분을 싫어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털어놓기도 했었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이유를 “나와의 비슷함”에서 일부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외모는 비교될 정도로 다르게 생겼지만, 말의 속도나 억양, 뉘앙스 등을 포함한 전체적인 분위기가 대체로 비슷하달까요? 뭔가 “내로는 내로뿐이어야 해”와 같은 어느 정도의 고집이랄까요? 그분과 섞이고 싶지 않다는 것은 아닌데 비슷해지는 것을 혐오하고, 함께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아닌데 무리가 되고 싶지는 않은. 이처럼 나와 닮은 사람을 경계하는, 그런 게 어떤 본성처럼 있나?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뭔가 스스로 아주 가관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점점 독불장군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껴들었거든요.
사람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바람기 같은 설렘이 우리를 긴장시켰고, 무지한 웅변으로 더 많은 것을 상대에게 알리고 싶어 하는 듯한 초조함을 우리는 서로에게서 느꼈던 것 같아.
다자이 오사무×청춘 p30.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다,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나는 왜 소설을 쓰는 걸까. 신진 작가로서의 영광을 바라는가. 아니면 돈을 바라는가. 연극 투는 빼고 대답해라. 둘 다 바란다고. 너무나도 바란다고. 아아, 나는 아직도 뻔뻔한 거짓말을 내뱉고 있다. 이런 거짓말에 사람들은 쉽게 걸려든다. 거짓말 중에서도 비열한 거짓말이다. 나는 왜 소설을 쓰는 걸까. 곤란한 말을 꺼내 버렸군. 하는 수 없지. 변죽을 울리는 것 같아 싫지만, 대충 한 마디 대답해 놓자. “복수.”
다자이 오사무×청춘 어릿광대의 꽃, 100~101쪽,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한 대 얻어맞은 느낌입니다. 얼얼하네요. 다자이 오사무 이런 작가였던가? 갑자기 빠져듭니다.
이 소설은 재미가 없다. 자세만 있다. 이런 소설이라면 한 장을 쓰든 백 장을 쓰든 똑같다. 하지만 그 사실은 처음부터 각오하고 있었다. 쓰는 동안 뭔가 하나쯤은 괜찮은 게 나오겠지 낙관하고 있었다. 나는 재수 없는 놈이다. 나는 재수 없는 놈이지만, 뭐 하나라도, 뭐 하나라도 좋은 점이 있지 않을까. 나는 흥을 주체하지 못하는 촌스러운 문장에 절망하면서, 뭐 하나라도, 뭐 하나라도 좋은 점이 있을까 오직 그것만을 여기저기 뒤지며 찾았다. 그러다 나는 조금씩 경직되기 시작했다. 지쳐 쓰러져 버린 것이다. 아아, 소설은 무심하게 써야 한다! 아름다운 감정으로 사람은 나쁜 문학을 만든다.
다자이 오사무×청춘 어릿광대의 꽃, 120쪽,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어릿광대의 꽃> 작가의 주석이 재밌네요. 따지고 보면 다 자기비하에 기운 빠지는 말들인데 이상하게 귀여워요. 그래서 그런지 어릿광대가 작가 자신을, 꽃은 이 작품 자체를 가리키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어릿광대의 꽃」을 읽으면서 좀 감탄했어요. 100년 전 메타픽션이자 오토픽션에 아무 위화감이 없네요. 『인간실격』을 진저리내며 읽으면서도 엄청난 솔직함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소설은 작품 자체가 일종의 위장임을 드러내고 있어서 그런 솔직함을 더 강렬하게 느끼게 됩니다. 이 작품이 아쿠타가와상 유력 후보로 올랐다가 수상에 실패한 이유도 자기 이야기 아니냐는 지적 때문이었죠? (그 지적을 한 게 가와바타 야스나리이고.) 그리고 다자이의 파탄에는 아쿠타가와상 수상 실패가 원인 중 하나이니까, 좀 과장하면 다자이의 정직함이 그를 파멸로 몰아넣은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 그리고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다」와 「어릿광대의 꽃」 모두 마지막 문장이 탐날 정도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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