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이 좋아서 2> 정진영 소설가와의 온라인 대화

D-29
2021년 7월에 <젠가>를 읽고 적어두었던 감상을 오랜만에 들춰 보았습니다. '메이저 직종 진출에 좌절한 후 현 위치에 포지셔닝한 사람들. 학연과 지연, 성별과 라인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그 안에서 사회적 생존을 모색한다. ① 아예 성골이거나, ② 오로지 이 길밖에 없다는 자세로 충성을 다하는 경우가 아니면, 결국 대부분의 조직원들이 불가촉천민처럼 취급되다 도태된다는 점에 있어 현실적으로 공감하고 흥미를 느낀 한편, 후반부에서 오히려 현실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써놓았네요.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에 대한 다른 분들의 추천과, <다시 밸런타인 데이>에 대한 작가님의 수줍은 소개를 읽고, 두 권을 서가에 들여 봅니다.
수북강녕님께서 적어두신 감상이 소설보다 더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본 분석입니다. 대기업에 100명이 입사하면, 그중에서 임원이 되는 신입사원의 비율이 1%도 안 된다고 하죠. 하지만 입사할 때 누구도 자신이 99%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 또한 편집국장은 하고 나올 줄 알았는데, 차장대우를 달아보기도 전에 커리어를 끝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밥벌이의 어떤 부분에서 보람을 찾고 자부심을 느껴야 할까요.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MZ세대는 임금을 덜 받고 승진을 못 해도 좋으니 워라밸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죠. 그들은 아는 겁니다. 주어진 현실과 다다를 수 있는 한계를.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지금 시대의 현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님께 답글을 받으니 이렇듯 영광스러운 기분을 느끼게 되는군요! 한껏 들뜹니다. 브루스 윌리스 배우 주연의 영화 <아마겟돈>을 보면서, 굴착기술자에게 우주비행을 가르치는 것과, 우주비행사에게 굴착기술을 가르치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지구를 구할 미션을 수행하는데 더 적절할까를 고민한 적이 있는데요. 거칠고 탄탄한 일상의 사례를 조용히 품어온 조직생활 경험자로서, 문장이나 표현이 다소 빈약하더라도, 허구의 형식을 빌어 실제로 보고 겪은 일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노동 현장의 어려움을 체험 수기로 써내 수상도 하고 매체에도 실린 분이 함께 읽고 쓰는 모임에 계신데요, 문학의 형식으로 선보이면 더 의미있을 것 같기도 해서요. 대중소설에서 다양한 배경에 근거한 충실한 서사가 중요하다는 작가님 말씀에 힘을 얻습니다.
영광은 무슨요. 독자님의 피드백은 언제나 감사한 일입니다. 소설 쓰기는 문장으로 이야기를 쌓는 과정이니 당연히 문장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흥미로운 이야기여도, 주어와 술어도 맞지 않는 문장으로 감동을 주긴 어렵겠죠. 다만 소설을 쓸 때 힘을 줘야 할 부분은 문장이 아닌 이야기라는 게 제 확고한 의견입니다. 좋은 이야기를 가진 작가가 결국 좋은 소설을 쓰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분들이 소설 쓰기에 용기를 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소설이 아니더라도 에세이, 르포 등으로 자기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풀어놓는 분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는 슬프면서 푹 빠져서 읽었습니다 끝까지 읽고 든 생각은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란 책 제목이 이 책의 전체를 너무나도 잘 담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처음에는 힘들고 슬픈 내용들이 가득해서 아팠는데 이후 엄마의 기록을 찾아가며 엄마를 이해해가는 과정들이 엄마이기에 앞서 한명의 존중받아야 하는 소중한 존재임이 너무 잘 느껴졌어요 꿈도 희망도 많던 분이 그 꿈을 이루지 못하는 부분이 너무 안타까웠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들이 또 주인공을 통해 어느정도 이루어진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책임한 아버지가 너무 싫었는데 그 또한 힘든 삶을 근근히 버텨내던 한명이지 않았나 싶었구요 시골에서 전교 1등과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던 수재였던 엄마가 이후 집에서 껌종이 신문지등 폐지로 범우를 공부시켰던 장면에서 엄마의 마음이 느껴져서 뭉클하더라구요 범우는 강압적인 공부방식이 너무 싫었겠지만 고단한 삶 속에서 큰아들에게만은 자신의 절망을 물려주고 싶지않은 안간힘이 느껴졌어요~ 어머니의 서툰 표현방식의 문제였지요~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며칠동안 맴돌던 말이 있었어요 267쪽에서 엄마가 범우와 유민의 이별을 언급하는 장면이었는데 "너는 아직 그 애와 제대로 이별하지 못했구나"란 말이었어요 살아오면서 좋은 만남이나 좋은 관계유지에 관해서만 신경썼지 제대로된 이별에 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았던거 같아요~ "만났던 시간만큼 미련이 남기 마련이야 뭔가 미련이 남아 있으면 울어도 보고 화를 내고 매달려보기도 해봐 그래야 제대로 이별할 수 있어"(269쪽) 앞으로 소중한 만남도 많겠지만 이별도 더 많을 수 있을텐데 엄마의 이 말이 많이 와닿았어요~ 이 책도 범우가 엄마와 제대로 된 이별을 하는 과정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책의 뒷부분의 글이 와닿네요~ 책을 읽고 가장 와닿았던 부분이 사랑하는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이별해가는 과정이 우리 삶에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작가님~^^
기사 제목은 취재기자가 아니라 편집기자가 다는데, 비슷하게 소설도 제목을 작가가 아니라 편집자가 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가 작가가 지은 가제인 <광화문 그 사내>였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가끔 가제가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가 그랬습니다. 저는 소설을 쓸 때 제목부터 정하는 게 작업의 시작인데, 그렇게 처음 정했던 제목이 끝까지 제목을 유지한 첫 사례였습니다. 작가인 저도, 편집자도, 출판사도 그보다 더 나은 제목을 찾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엄마의 어린 시절을 상상해보지 못하잖아요.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으니 말입니다. 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어머니에게도 어린 시절 꿈이 있지 않았을까 의문을 가지게 됐습니다. 뒤늦게 어머니의 흔적을 쫓아다녔고, 모자이크처럼 그 흔적을 모으자 제가 평생 보지 못했던 엄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과정을 소설로 담아내는 과정이 심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소설은 허구이지만, 결국 그 허구를 만들어내는 건 실제로 경험한 저의 몫이니 말입니다. 나중에 더 좋은 작품을 쓸 날이 올지 모르지만, 아직은 제가 쓴 장편 중에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만큼 잘 쓴 작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젠가>에 이어 그 작품까지 찾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결같이 세심하게 답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와 <젠가> 모두 제목을 작가님이 지으셨다니 그래서 책 내용 전체를 아우를 수 있었나 싶고 작가님의 작명센스가 돋보이십니다~^^ <칼의 노래> 가제가 <광화문 그 사내>란 이야기도 알게 되고 재미있네요 이 책도 제목이 <칼의 노래>로 정해져서 참 다행이네요(누가 지은걸까요??^^)~ 작가님의 책들은 내용 전개가 짜임새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빠져들며 읽기가 좋았습니다~^^
<칼의 노래>가 만약 가제대로 나왔다면, 아무리 문장과 내용이 그대로여도 명작의 반열에 올랐을지 의문입니다. 편집자과 출판사(생각의나무)의 감각이 돋보인 제목 짓기였습니다. 반대로 <칼의 노래>와 비슷한 제목으로 나온 장편소설 <현의 노래>는 좀 그랬습니다. <칼의 노래>의 후광을 받으려는 의도가 대놓고 느껴져서요. 최근에 나온 김훈 작가의 장편 <하얼빈>에는 <총의 노래>라는 가제도 붙어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가제대로 나오지 않아 천만다행입니다. 가끔은 소설보다 소설 바깥 이야기가 더 재미있습니다.
정작가님! 12월에 에세이 나오신다는 소문이…. ㅋ 어떤 작품인가요?
술안주를 주제로 쓴 <안주잡설>이란 산문집이 12월 중에 나옵니다. 살살녹아님께서 추천사를 쓰신다는 소문이…
이제 그믐에서 <젠가>로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10시간가량 남았습니다. 지난 29일 동안 이곳에서 독자 여러분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독자 여러분과 함께한 시간은 제가 어떤 작가이고 작품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더 깊게 살펴볼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저는 새로운 작품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올해가 지나가기 전에 제 첫 산문집 <안주잡설>을 출간합니다. 소시지, 달걀, 라면, 과자 등 집안에 흔한 음식을 안주 삼아 썰을 풀어낸 산문집입니다. 소설보다 가볍고 술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쉽게 공감할만한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내년 상반기에 새 장편소설 <정치인>을 출간합니다. <정치인>은 출간 전에 드라마 제작이 결정돼 현재 제가 직접 각본 작업을 맡고 있습니다. 내년 하반기에는 제 첫 소설집을 출간합니다. 다양한 장르의 단편 10개 안팎이 실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년 여름까지 청탁받은 단편을 모두 소화한 후 가을쯤에 출간이 이뤄질 듯합니다. 제 새 작품도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이 공간도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네요~ 정진영 작가님 덕분에 좋은 기억과 경험들을 얻어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책표지만 보았을 때는 회사조직에 관한 소설이라 큰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는데 정진영 작가님의 세세하고 솔직한 답변과 이면에 다른 이야기들까지 들으며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책도 펼치자마자 재미나게 푹 빠져서 읽었습니다 작가님의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포함해서요~ <젠가>의 작가의 말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황야에 홀로 선 개인의 운명은 위태롭다 우리가 조직을 만들어 협력하는 이유는 예측가능성을 높여 일상을 지키기 위함이 아닐까. 그렇다면 조직논리는 공공의 이익과 선을 추구하는 공동체 의식에 바탕을 둬야 할 것이다 과연 대한민국의 조직논리가 그런 공동체 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는가' 작가님은 사회파 소설가로 굳혀질까봐 좀 걱정되신다고 하셨는데 그러기에는 재능이 너무 눈에 띄시네요~^^;;(누군가는 가슴 떨리는 사회파소설을 남기는게 꿈이기도 할텐데요) 소설을 읽을 때는 삶의 정답이 바로 보이지않아 학생 이후에는 좀 읽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소설의 매력과 정진영작가님처럼 훌륭한 글을 쓰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소설을 읽으며 느낀점은 소설가님들은 글마다 다른 모습이 보여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소설가분은 글이 너무 잘생김이 가득하시던더 그분의 산문집을 읽으니 외모 컴플렉스가 있으신거 같더라구요~ 그냥 인문학 서적 작가들은 글과 모습(방송상)이 비슷하시던데 소설가분들은 배우분들처럼 개성이 강하시더라구요(이번에 든 생각입니다)~ 그런데 글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모습과 실제 모습이 참 달라보여 신기했습니다(배우분들도 악역하시던 분들이 예능에서 착한 모습으로 나오면 신기하더라구요~) 작가님도 이후 다른 자리에서 뵐 수도 있겠지만 글에서는 강한 의지와 모습 그리고 예의없으면 바로 혼내실거 같은 모습이 떠오르는데 혹시 다른 자리에서 산타클로스같은 한없이 선한 미소로만 웃고 계시면 좀 낯설거 같네요~^^;; 그래도 어느 모습이든 멋지실테니 응원합니다!! 내년에 나오는 <정치인>과 연말에 나오는 <안주잡설>도 기대하겠습니다~<정치인> 각본 작업까지 하신다니 응원하고 기다리겠습니다~^^
거북별85님께서 많은 질문을 던져주신 덕분에 저도 답변을 달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짧은 시간 오프라인으로 독자를 만날 때보다 훨씬 더 깊이 있는 소통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제 실제 모습과 소설은 꽤 다른 편이어서 좀 쑥스럽습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소설을 읽고 많이 놀리거든요. 지인들 눈에는 제가 꽤 허술하고 웃긴 사람인데 소설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보니 말입니다. 그래서 독자에게는 그냥 소설로만 다가가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습니다. 괜히 소설과 다른 이미지 때문에 실망할까 봐 말입니다. 소설로 보이는 저도 제 모습입니다. 사람이란 누구나 양면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가끔은 웃기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런 글로 독자와 만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9일 동안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9일긴 작가님의 이야기 들을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원하시는 글 잘 쓰실 수 있기를 기원드립니다. 저는 안주잡설도 많이 기대됩니다. 젠가를 읽고 작가님 글을 여기저기서 검색해서 읽어봤는데, 곱창에 관한 이야기도 너무 좋았고, 반숙에 대한 이야기, 홍합탕 등등 너무 좋았습니다. 후배랑 곧 곱창을 먹기로 약속을 잡았고(제가 살겁니다), 늦게 퇴근해서 계란을 안주로 소주 한 병을 비우기도 했습니다. @살살녹아 님과 따듯하고 행복한 겨울 보내셔요~
제가 김포가 고향이고 아직 부모님은 김포에 살고 계십니다. 혹시라도 강화 쪽으로 드라이브 가신다면 추천드리는 식당을 공유드릴까 합니다.(아 제가 쓰는 댓글이지만 정말 아재 냄새나네요, 팬심이니 너그러이 양해를…) 1. 화동생갈비(통진읍)- 코로나 이후 개성손만두를 같이 간판에 걸어두었지만 돼지생갈비가 훌륭한 집입니다. 2. 은광식당(통진읍) - 30년 넘은 노포입니다. 삽겹살이 정말 맛있고 파무침이 특이합니다. 3. 나루터숯불장어구이(월곶면) - 장어는 원래 강화 더리미에 가게들이 모여있는데, 거기서 텃세때문에 밀려나서 김포쪽에 차린 집이라고 합니다. 장어는 여기만한곳이. 4.다이스키스시(양촌면) - 동창이 하는 집인데 제가 가도 별로 신경도 안 쓸만큼 늘 바쁜집입니다. 가성비가 훌륭한 회전초밥집입니다.
지난 29일 동안 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긴 시간을 두고 제 작품을 주제로 긴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처음이어서 새롭고 또 즐거웠습니다. 그믐에서 신작 소설로 찾아뵐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소설은 아니지만 산문집이 먼저 세상에 나오니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음식점 정보 정말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김포 주민이 된 지 이제 만 4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가보지 못한 곳이 많습니다. 늘 다니는 곳만 다니다 보니 동선이 단조로운 편입니다. 생갈비, 삼겹살, 장어구이, 회전초밥... 모두 준면 씨와 제가 좋아하는 음식들입니다. 게다가 회전초밥집은 제가 거주하는 양촌에 있군요. 추천해주신 곳 꼭 찾아가서 먹부림을 하겠습니다. p.s. 살살녹아님의 정체를 알아채시다니. 쑥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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