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이 좋아서 2> 정진영 소설가와의 온라인 대화

D-29
드라마 '허쉬'의 원작이었던 '침묵주의보'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어서 '젠가'도 읽어봤어요. '침묵주의보'보다 훨씬 재미있어서 놀랐습니다. 작가님의 다른 작품도 찾아서 읽어봤는데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서 깜짝 놀랐어요. 특히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를 감동적으로 읽었어요. 읽고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엄마가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나지 않은 건 당연한데 그걸 작가님 소설을 읽고 새삼 깨달을 수 있었어요. '젠가'처럼 살벌한 소설을 쓰신 분이 이런 가슴 뭉클한 소설을 쓰셨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요. '젠가' 이야기를 하는 공간에서 다른 소설을 자꾸 언급해서 죄송하지만 올해 읽은 모든 소설 중에서 최고였어요.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의 소설을 쓰실 수 있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비결은 따로 없고요. 관심사가 다양하고, 쓰고 싶은 이야기를 그냥 쓰다 보니 그리됐습니다. 장르나 내용에 구애받지 않고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침묵주의보>나 <젠가> 같은 사회파 소설로 이름을 알리긴 했지만, 사회파 소설가로 남고 싶진 않습니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는 제가 가장 아끼는 작품입니다. 쓸 때도 고생을 많이 했고, 출간할 때도 원고를 받아준 문학 출판사가 없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나온 후에는 다른 제 작품보다 독자 반응이 좋아 응원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작품을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월급사실주의 동인... 은 월례모임이나 동인지가 따로 있는건지요? 문득 궁금해져서 여쭙습니다.
내년에 첫 동인지가 나올 계획입니다. 참여 작가분들과 함께 동인지에 실을 작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의미 있는 결과물이 나올 거라고 기대합니다.
오오옷! 월급사실주의 동인지라 기대가 됩니다!
저를 포함해 여러 작가가 참여하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75쪽에서 기자 김진원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에서는 지역 언론사에 관한 나옵니다~ 언론사에 관한 부분도 충격적이더군요~~^^;; 지역방송과 지역민방은 협찬이나 광고비를 챙겨주면 된다는 이야기나 메이저 언론사와 마이너 언론사는 겸상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나 내일 전선 홍보팀에서 언론사에 따라 기념품과 술자리를 차등두는 것도 몰랐네요~ 내일전선에 대한 비판 기사를 쓰고 광고비를 받지 못하는 김진원 기자 이야기도 화가 나네요~ 예전에는 메이저 언론사나 미디어만 과점 형태로 있었는데 요즘은 온갖 유튜브에 sns까지 정보의 바다가 아니라 혼란의 틈바구니에 있습니다 ~ 고진시의 지역 언론사도 행태가 이러한데 요즘 같은 온갖 거짓과 진실등이 여기저기에서 떠드는 혼란한 상황 속에서 기자로도 지내신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정보를 선택 취합하시는지요?? 진실된 정보만 찬찬히 정리해서 전달해도 이해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같은 시대에서는 어떻게 기사를 접하고 이해해야 할지 혼동스럽더라구요~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도 궁금해집니다~
제가 지역지에서 기자로 일하던 시절에 본 풍경을 가감없이 그대로 소설로 옮겨 놓았습니다. 중앙 언론사에서만 일했던 기자들에겐 낯선 풍경일 겁니다. 제가 현직에 있을 때와 시차는 조금 있지만, 지금도 크게 풍경이 다르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유튜브, SNS 등이 활성화돼 있어도 지방 이슈는 지방 언론에서도 잘 다뤄지지 않습니다. 중앙 언론사와 달리 지방 언론사의 매출은 관의 홍보 예산에 정말 많이 의존합니다. 지방에는 홍보 예산을 쓸만한 규모의 기업이 별로 없고, 지역에 기반을 둔 기업은 대부분 B2B 기업이어서 딱히 언론을 통한 홍보를 신경 쓰지 않습니다. 관을 까는 언론사는 당연히 매출에 큰 타격을 받겠죠. 언론사가 기업이라면 기사는 상품입니다. 중앙지든 지역지든 언론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상품인 기사를 돈을 주고 사서 읽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아마 그렇게 되면 모든 언론사가 알아서 독자의 눈높이에 맞는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하게 될 테니. 하지만, 그런 문화가 과연 만들어질까요? 저는 앞으로 언론의 역할에 관해 매우 회의적으로 봅니다. 더 좋아지진 않을 겁니다. 특히 SNS가 AI를 통해 사실상 뉴스를 필터링하는 현실 속에서 읽고 싶은 기사만 읽고 접하는 폐쇄적인 환경이 더 공고해질 겁니다. 솔직히 대안이 있을까 싶습니다. 언론에 목숨 걸만한 가치나 희망이 있었다면 저도 떠나지 않았겠죠.
정진영작가님,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소설을 좋아하는 일본사람, 노리키치즈루라고 합니다. 장강명작가님의 열팬이며 책걸상 독지가이기도 합니다. 한국문학을 일본 사람들에 소개하는 번역가가 되고 싶은데 아직 실력이 모자라, 전자기기를 생산하는 제조업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소설이라 불리는 작품 중에서도 사회의 현실을 다루거나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그린 다큐소설을 선호하며, 제 자신이 제조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보니 "젠가"는 정말 몰입해서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책걸상에서 조만간 작가님이 다시 오실 거라는 얘기를 가끔 듣고 있어서 학수고대 기다리고 있답니다. 책걸상 독지가 모임에 오셨을 때 진행을 맡으신 진공상태님을 통해서 "이형규는 자살이 아니지 않나?" 라고 질문한 자가 저였습니다. 그 때 작가님은 "자살이 맞다"고, "딴 속셈은 없다"고 하셨지만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형규의 죽음은 작가님이 나중에 "그게 자살이 아니었다"고 해서 다음 작품을 이어 쓰실 수 있는 복선인 것 같다는 생각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제게 소설을 쓰는 능력이 있다면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같은 작품을 (작가 본인이 작품 속에서 이렇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불구하고 다르게 추리하는) 써보고 싶은데 그런 실력이 안되니까, 언젠가 정진영작가님께 다른 작품 속에 다시 김진원기자를 등장시켜서 그 때 있었던 뒷 얘기를 밝혀주셨으면 하고 기대해 봅니다. ^^ 앞으로도 재미있는 작품들 많이 써주세요~
흥미로운 의견입니다! 저는 책걸상 듣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독지가입니다. 네임드 독지가님을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치즈루님 의견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누군가를 자살로 위장할 만큼도 되지 않는 무능력한 조직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저도 챠우챠우님 의견과 같습니다. <젠가> 속 '내일전선'은 그럴 깜냥이 되는 조직이 아닙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조직 대부분이 그 정도 수준입니다.
챠우챠우님, 정진영작가님, 답글 고맙습니다. 저도 내일전선이 조직으로 그런 짓을 했다고는 생각 안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회사가 얻은 이득이 없었고 오히려 큰 손해를 봤으니까요. 그런데 내일전선 안의 어느 한 사람, 또는 그의 아내, 주변에 있던 언론사들 등등 그 이가 죽음으로써 이득을 얻은 사람이 몇몇 있다보니 들은 생각이었습니다. 하여튼 그런 상상까지 가능케 할만큼 작품이 흥미로웠고 매력이 있었단 말이구요, 아주 만족스러운 독서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수다를 떠는 것도 너무 재미가 있구요. 작가님은 한국에는 사회파 소설이 많지 않다고 하셨는데 마찬가지로 시리즈물도 거의 없지 않습니까? 그런 아쉬움에서 나온 생각이기도 합니다. 김진원기자라는 캐릭터가 계속 등장하면서 시리즈화 해도 재미있겠다는.ㅎㅎ
저야말로 이렇게 제 작품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즐겁습니다.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2018년에 출간한 장편 <침묵주의보>, 2020년에 출간한 장편 <젠가>, 내년에 출간할 예정인 장편 <정치인>을 조직을 다룬 시리즈 트릴로지로 보고 있습니다. 서로 이야기가 연결되는 작품은 아니지만, 조직 문화와 부조리를 다룬다는 점에선 공통점이 많습니다. <침묵주의보>는 이미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젠가>도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고, <정치인> 또한 출간 전에 드라마 판권 계약이 이뤄졌습니다. 의도하고 쓴 건 아니지만, 이런 서사를 원하는 수요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분위기를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예술이나 미학 따위는 전혀 관심 없습니다. 소설로 그런 가치를 추구하겠다는 작가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한 서사에 무슨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부지런히 세상에 더듬이를 세우며 소설을 쓰겠습니다.
이 땅에 발 붙이는 서사리니!! 정말 와 닿습니다~저도 현실을 외면한 서사는 반대입니다~ 가슴이 답답하더라도 끊임없이 깨어서 그 문제를 바라본다면 바로 해답을 못 찾더라도 조금씩은 바뀌겠지요~ 이번에 '젠가' 를 통해 작가님을 알게 되었지만 앞으로 다른 소설들도 읽고 싶어지네요~~~ 그리고 헌실에서는 생계를 핑계로 자꾸 외면하고 그냥 넘어가는 불의들이 많지요~~ 작가님과 같은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그러한 지점들을 다시 환기 시켜주면 좋겠네요~~~
가슴이 답답하더라도 끊임없이 깨어서 그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거북별85님의 의견에 저도 동의합니다. 모두가 혁명가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진 않습니다. 하지만 혁명가 한 사람의 힘으로 바뀌진 않았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세상은 오랫동안 부조리를 말없이 지켜봤던 보통 사람들이 움직였을 때야 비로소 바뀌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문제점을 당장 바꾸진 못할지라도요. <젠가>와 비슷한 결의 제 소설을 원하신다면 드라마 <허쉬>의 원작이기도 한 <침묵주의보>를 일독해보시길 권합니다. 대한민국 언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빠르게 파악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내년에 출간할 예정인 장편 <정치인>은 소시민이 바라보는 정치에 관해 생각해보게 해줄 겁니다. 앞서 언급한 두 작품과 결은 다르지만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는 가족을 비롯해 가까운 사람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게 해줄 겁니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는 제가 가장 공들여 썼고 가장 아끼는 장편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매번 세심한 답장 감사드리고 영광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선 작가님의 <침묵주의보>를 읽어볼까 합니다 요즘 언론에 대해서 궁금증과 함께 걱정이 많답니다 예전 전두환 정권의 군부독재 때의 언론탄압과는 다른 언론의 문제점들이 많은거 같습니다 요즘은 검증되지 않은 거짓들 속에서 각자의 목소리만 클 뿐 사람들의 논의와 합의의 방법이 요원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보다 우선은 뉴스가 진실 게임도 아니고 어느 정보가 진실인지조차 사람들이 인지하기 어려운 시점인거 같습니다. 학생들에게 미디어 매체와 언론에 대한 공부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비슷한결의 <정치인>도 기대되고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는 원래 작가님의 책들과는 다르다고 하니 읽고 싶어지네요~ 작가님의 책들이 드라마화 된다고 하니 좀더 많은 사람들이 작가님 책들와 내용에 대해 접할 기회가 많이 생겨 다행이고 응원합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은 돈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이해할 수 있는 경우 많더라고요. 언론이 정의로워야 하는데 뭔가 이상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 그 이유를 거칠게 말씀드리자면, 언론사가 자사의 상품인 기사로 매출을 올리지 못해 다른 영역에서 매출을 올리기 때문입니다. 신문사로 예를 들면 전체 수입 중 구독 수입은 많아 봐야 20% 안팎입니다. 나머지 매출은 기업 광고, 정부 광고, 기타 사업 등으로 올리는 거죠. 돈이 나오는 곳을 언론이 쉽게 깔 수 있을까요? 그래서 언론이 알아서 기는 겁니다. 구성원들의 월급이 거기서 나오니까요. 이건 생존의 문제입니다. 앞서 제 의견을 밝혔듯이, 기사가 언론사의 상품이고 그 상품을 돈을 주고 구입하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만 상식이 된다면 해결이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요원하니 문제이지요. 하지만 그런 문제점이 있다는 것 정도는 모두가 인식하는 게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p.s. 사실 저는 <젠가>나 <침묵주의보>,<정치인> 같은 사회파 소설보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를 훨씬 더 사랑합니다. 이러다가 사회파 소설가로 굳혀질까 봐 좀 걱정돼서 사족을 남깁니다.
땅에 발붙이는 서사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하며...<정치인>을 기다리고 있어요~
<침묵주의보> <젠가> 보다 무겁지 않은, 오락적인 측면이 강한 작품일 겁니다. 처음부터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썼던 작품이어서 그런 면이 더 클 겁니다. 내년 5월 이후에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본 독자께서 제 작품을 읽어주시다니, 마치 성공적인 해외 진출이라도 한 듯한 느낌입니다. 기업을 다룬 사회파 소설은 일본이 우리보다 훨씬 넓은 저변을 가지고 있는데 일본 독자께서 즐겁게 읽어주셨다니 기쁩니다. 이는 보통 사람의 삶과 밀접한 주제이지만, 한국 문학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이 경험하는 회사나 조직 생활을 깊이 경험해 보지 못한 작가가 많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한계입니다. 한국 소설에서 서사가 선명하지 않은 작품이 지나치게 많은 원인이기도 하죠. 경험이 부족해 서사를 설득력 있게 전개할 수 없으니, 결국 문장 등 서사 외적인 요소에 힘을 쓰게 됩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일본 문학이 한국 문학보다 더 많이 읽혔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저는 다양한 직종을 경험한 작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내는 날이 오기를 희망합니다. 소설은 이야기이므로 이야기에는 기승전결 서사가 선명하게 담겨야 한다는 게 제 확고한 생각입니다. 저는 소설의 가치는 단편보다 장편에 더 크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편이라는 틀로 기승전결 서사를 원하는 만큼 제대로 담을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장편을 단편보다 홀대하는 한국 문학의 경향이 솔직히 우스워 보입니다. 이야기의 수요가 점점 늘어나는 시대입니다. 책은 예전보다 많이 팔리지 않지만, 스토리텔러로서 작가의 수요는 늘어났습니다. 그런 시대에 왜 한국 단편이 전혀 힘을 못 쓰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각설하고 제게 질문해주신 이형규라는 캐릭터에 관해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이형규의 자살은 절벽 끝에 내몰려 절망해 벌인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소설은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온전히 제 것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됩니다. 저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게 옳은 독법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누군가가 이형규의 자살은 자살이 아니라며 새로운 서사를 전개하는 일이 벌어지면 만세를 부르며 환영할 겁니다. 재미있는, 한편으로는 찜찜한 소설을 계속 쓰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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