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함께 읽기] 당신 인생의 이야기(테드 창) 읽고 이야기해요!

D-29
그런데 저로선 1=2가 증명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어서 잘 와닿지는 않았어요. 비유클리드기하학은 유클리드기하학과 다른 공리를 갖는 대안적 기하학이 가능하다는 것이지 유클리드기하학이 모순이라는 걸 증명한 건 아닌데, 르네는 현실과 모순되는 명제를 증명한 거잖아요. 1과 2가 다르다는 건 자명해보이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했다면 공리 중 무언가가 잘못된 것이지 않을까요? 짝수도 무한히 많고 자연수도 무한히 많은데 자연수가 짝수의 두배가 많다면 무한이 무한의 두배가 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처럼 수학에 이상한 문제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1과 2가 같다는 것이 증명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러셀처럼 뭔가 자신이 기획했던 연구가 교착상태에 빠져 괴로움을 겪을 수 있겠지만 르네의 경우는 자신의 연구라기보다 수학 전체의 체계가 붕괴되는 상황이라 또 좀 다른 것 같아요. 힐베르트와 괴델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정확히 그들이 얘기한 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는데 한번 배워보고 싶긴 하지만, 저는 수학이란 세계를 추상해내는 우리 뇌의 방식이라고 믿기 때문에 일관성과 유용성이 문제될 뿐, 궁극적인 진리나 확실성의 가치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편입니다.
말씀하신것처럼 르네는 1과 2가 같다는걸 증명했다(다 동의하는지는 차지하고)는 가정하에 이야기가 전개되죠.. 책 뒤를 보다, 창작노트를 발견했네요. 오일러공식이라는 것을 소개하면서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가 나와요. 만약 르네가 증명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이 시작인듯 해요. 이야기는 사랑이야기 같지만요.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gunpo2021&logNo=222159909802&proxyReferer=https:%2F%2Fm.kin.naver.com%2Fmobile%2Fqna%2Fdetail.naver%3Fd1id%3D11%26dirId%3D111301%26docId%3D434937526%26enc%3Dutf8%26kinsrch_src%3Dm_nx_kin%26qb%3DZSBpIO2MjOydtA%253D%253D%26rank%3D1%26search_sort%3D0%26section%3Dkin.qna_ency_cafe%26spq%3D0&trackingCode=naver_kin 위는 오일러공식 설명하는 블로그더라구요.(하나도 이해 못함ㅠ) 나중에 다시 봐야겠어요.
저도 창작노트 봤는데 더 알듯 모르듯 하게 되었다는.. 오일러 공식은 자연지수랑 복소수랑 원주율 같이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개념들이 하나의 공식 안에서 간결하게 연결된다는 것이 특이한 것 같아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식이라던가 하는 얘기를 본 것 같지만, 수학 지식 깊이가 낮아서 그런지 저는 작가의 외경심에 공감하지 못하겠네요..^^ 세계의 어떤 측면에 대해 외경심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감성이 지식의 학습과 관점의 계발을 통해 얻어지고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지적 생활의 좋은 점인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수학과 자연과학을 더 공부해 보면 좋겠지만, 아직은 다른 것에 관심이 더 많아서..
읽고 나서, 칼이 어떤 인물인 건지가 더 궁금해집니다. 르네가 자신의 직관의 근간이 되는 수학 체계가 무너져내린다는 것을 설명할 때, 칼은 그것이 궁극적으로는(또는 실용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다는 식으로 일관했고,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대화에서 그녀에게 감정이입을 하나(이게 칼이 르네를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이것은 그들을 떼어놓는 종류의 것으로 판단하고 말로 전하는 것은 그만둡니다. 칼이 과거에 자살 시도를 하도록 이끌었던 좌절감은, 르네가 느꼈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을까요? 감정이입을 하게 되더라도 두 사람을 이어주지 못할 것이라는 건, 칼은 르네와 다른 종류의 사람이었다는 것일까요?(약간 실용주의와 이상주의의 대립 느낌 같기도..) 베일에 감싸져 있는 느낌입니다.
제가 읽기로, 칼은 처음에는 르네를 잘 이해하지 못하다가 마지막 즈음에 이르러서는 이해를 하게 된 것 같아요. 자기가 자살을 시도할 무렵의 감정이 르네가 갖는 감정과 비슷한 것이라는걸 깨달은 것 같습니다. 9a=9b라는 소제목처럼 두 사람의 감정이입이 완성된 것이죠. 하지만 칼이 그동안 발휘했던 감정이입은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과 그를 통한 위안으로 이어졌는데, 이번 경우엔 서로를 '떼어놓는 종류의 감정이입'이라고 마지막 문단에 표현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다른 종류의 사람이었다기보다는 칼이 르네를 이해하게는 되었지만, 오히려 그 이해 때문에 더욱 르네를 사랑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해하기 때문에 대상이 더 멀게 느껴지는 그런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과거를 이해하지만 그 과거의 자신을 싫어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요. 이렇게 이해하면 마지막 장면은 상당히 쓸쓸한 것일 수 있겠네요.
저는 '떼어 놓는 종류의 감정이입'의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해하는 척 하는 거짓의 자신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오도니안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이해하기 때문에 오히려 사랑하지 못하게 된다라.. 흥미롭습니다. 갑자기 옛날 일하던 곳에서 관계가 제일 힘드니.. 귀가 있다고 듣는것도 아니고 듣는다고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이해한다고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고 받아들인다고 행동하는 것도 아니다 가 생각나네요~
오~ 좋은 문장이네요~^^
이해의 결과는 대개 공감이라고 생각되는데, 말씀하신대로 거리감이 될 수도 있겠군요..
저는 칼이 르네가 수학으로 인해 느끼는 절망에는 공감하지 못하나, 르네가 느끼는 그 절망감 자체에는 ‘기시감’을 느끼면서 -이외에는 칼은 르네에게 감정이입을 하지도 못하고 그래서 르네가 치료를 받는 내내 기시감을 느끼지도 못하고 오직 책임감만 느끼죠-, 르네의 상황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대처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칼은 르네를 이해했다기보다 르네가 자신과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한 게 아닌가해요. 자신은 르네를 이해하지도 르네에게 감정이입하지도 못할 거라는 것을 완벽하게 깨달아버린 거죠. 그리고 그로 인해 더 이상 르네를 사랑할 수 없게 되고. 그래서 ‘떼어놓는 종류의 감정이입’이라는 표현이 저는 정말 절묘하다고 생각했어요. 타인에 대한 이해나 공감이 과연 무엇일까 라는 생각도 했구요.
이 모임에 올라오는 글들과 다양한 해석을 읽으며 좀 더 생각을 해보게 되니 작품의 의미가 풍성해지는 것 같아 좋습니다. 146쪽. "그 느낌을 당신에게 전할 수는 없었어. 내가 마음속 깊이 무조건적으로 믿고 있었던 무엇인가는 결국 진실이 아니었고, 그걸 증명한 사람은 다름아닌 나였으니까." 르네 말의 의미: 르네 자신이 믿고 있던 기존의 수학체계는 진실이 아니었고 그걸 증명한 사람은 르네 자신이다. 르네 말에 공감하는 칼의 입장: 르네가 변해서 기존의 르네에 대한 칼의 기존 믿음은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두 사람의 기존 믿음이 더 이상 진실이 아니라는 것에 공감하는 거죠. 하지만 공감의 내용은 다릅니다. 르네는 칼이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지만, 칼은 "르네와 헤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고(145쪽) 생각하고 있어 "떼어놓는 종류의 감정이입"인 거죠. "떼어내는"의 의미는 헤어진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이해와 공감에 있어 타인에게서 분리된다는, 심리적인 분리의 의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칼은 아직 르네로부터 분리된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것 같지만. 이해와 공감이란 건 완벽히 도달해 머물 수 있는 지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완벽한 이해와 몰이해라는 양 극단이 있는 게 아니라 , 이해와 공감의 스펙트럼 또는 네트워크 위에서 이리저리 이동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사안이나 맥락에 따라, 나와 타인의 감정 변화에 따라, 또는 나의 해석에 따라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느끼거나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 싶어요. 칼은 예전에는 르네를 완벽히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착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르네가 뱐해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칼은 르네를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르네에게 공감을 하기도 하고 하지 않기도 하는, '불완전한 공감'을 이미 하고 있습니다. 르네가 수학 체계의 불완전성을 받아들였듯이, 칼도 불완전한 이해와 공감을 하고 있어요. 칼은 깨닫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감정은 세계에 대한 반응이 아니다. 당신은 감각 입력의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당신 감정의 능동적 구성자이다. 당신의 뇌는 감각 입력과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를 구성하고 행동을 지시한다. 만약 당신에게 과거 경험을 표상하는 개념이 없다면, 당신의 모든 감각 입력은 잡음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인식'하거나 '탐지'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의 설계자다."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장)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심리학과 인지과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저자는 의학, 법률 제도, 자녀 양육, 명상, 심지어 공항 보안 분야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감정과 마음과 뇌에 관한 새로운 과학이 밝혀낸 연구 성과와 함께 감정의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나는 방법을 제시한다.
나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이 같다고 느낄 때, 실제 두 사람의 감정이 같은 게 아니라 나의 "뇌는 감각 입력과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를 구성해" 나와 타인의 감정이 비슷할 거라고 내가 주관적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윗글에서 '이해와 공감의 스펙트럼 또는 네트워크' 라고 쓴 것도 '이해와 공감이 가능하다면? 그러한 스펙트럼이나 네트워크가 있다면?'이라고 가정하고 상상해본 것일 뿐입니다. 리사 펠드먼 배럿은 제 생각이 틀렸다고 할 겁니다. 내 감정과 타인의 감정이 일치하는 게 불가능하니까요. 리사 펠드먼 배럿의 '구성된 감정 이론'에 따라 얘기해보면, 우리가 이 작품에 대해 또는 작품의 해석에 대해 '이해한다, 공감한다'고 생각하더라도 우리들 각자의 "뇌는 감각 입력과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를 구성하고 행동을 지시"하므로 각자의 해석이 모두 다르게 구성되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 작품을 작가의 의도대로, 또는 타인이 이해한 대로 이해하기란 불가능하고 독자들 각자의 해석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나 자신이 작품을 읽고 해석하는 시점마다 나의 "감각 입력과 과거 경험"이 달라지므로 나의 해석은 매번 달라질 수밖에 없고요. 이것도 저의 해석일 뿐이라 리사 펠드먼 배럿이 제 해석에 동조할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네요.ㅎㅎ
‘0으로 나누면’에 대한 @숨쉬는초록 님과 @오도니안 님의 이야기 너무 재밌어요! 책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덕분에 얻습니다. 완전한 공감은 불가능하다는 걸 새롭게 깨닫는 칼. 서로를 떼어놓는 이해라는 것은 서로를 갈라놓는 감정이입이면서, 심리적 분리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네요. 인용해 주신 책도 넘 좋고요. 지금 칼이 마음의 고통을 느끼고 있지만 엄연하게 우리는 이러한 심리적 분리를 토대로 하여(기본값으로 하여) 관계를 맺어가야겠지요. 환상을 사실로 믿는 것인 감정이입이 아닌. 르네나 칼이 둘 다 모종의 관념적 환상에서 깨어나 실제 세계로 진입한다는 면에서 같은 단계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말씀해 주신 책의 내용, 우리는 이전 경험에 대한 해석을 기반으로 들어오는 감각 정보를 계속 해석하며 감정을 만들고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서로 비슷한 걸 느낀다고 생각해도 다를 수밖에 없고, 또 같은 걸 읽더라도 이미 내가 또 달라져 있어서 나의 해석도 계속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 이 세상을 사는 일은 순간 순간 계속 바뀌는 춤과 같군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묵직함도 다시 떠올려 봅니다.
아, 이 책은 저도 관심 있는 책인데 소개해 주셔서 감사해요. '구성된 감정 이론' 상당히 설득력이 있네요. 앞서 숨쉬는초록님이 말씀하신 '이해와 공감의 스펙트럼 또는 네트워크 위에서 이리저리 이동하는 것'이라는 내용도요.
@ssaanngg 님이 자세히 풀어주시니 한 번 더 소설을 짚어보게 되네요. 저도 마지막에 가슴이 아팠어요. 수학을 이렇게 관계와 연결지은 게 새삼 대단하기도 하구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모임 혼자 이 책을 읽을 때는 ‘영으로 나누면’이 제일 어렵다고 느꼈는데, 같이 읽고 여러분들이 올려주는 설명과 해석을 보다 보니 심지어 이 소설이 책 전체에서 두 번째로 좋은 작품이 되었어요. 스스로도 놀랍네요. 오늘부터는 이 책의 표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네 인생의 이야기’를 읽습니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 이고 단편 제목은 Story of your life이므로 제목이 같은 듯 다르죠. 이걸 ‘네’와 ‘당신’으로 구분해서 번역한 게 저는 신의 한수라고 생각해요- 다른 분들은 의견이 어떠실지?) 이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영화랑 소설은 또 같은 듯 다릅니다. 매체가 다르다 보니 당연한 일이지만요. 오늘부터 8일까지 이 소설에 대해 같에 이야기해 보아요. 즐거운 독서가 되길~
다른 작품과 달리 기억이 아주 생생한 작품입니다. 처음 이 작품을 읽을 때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 '당신'이 누구인지가 너무 궁금했어요. '당신'이 화자의 죽은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정말 감탄했습니다. 중간 중간 삽입되는 알쏭달쏭한 일화들은 읽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현재 일어나는 일과 병렬 배치되지요. 그러면서도 혼란스럽지 않게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도록 끌어가는 테드 창의 솜씨가 정말 멋집니다. 끝 부분에 둘이 춤추다 아이를 갖기로 하는 것도 정말 로맨틱한 감성을 자아내고요. 결과를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여러 SF 들이 다뤘겠습니다만 이 작품은 저에게 큰 감동을 줬어요. 이유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저녁 노을을 볼 때의 슬픔이나 우주의 신비로운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봤을 때 느꼈던 어떤 그런 먹먹함이 책을 덮고 난 뒤 오래 남았습니다. 일시적인 기분이었을까 싶었는데 이번에 재독할 때도 다시 벅찬 감동이 ^^
'0으로 나오면'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떼어놓는 종류의 감정이입"의 의미에 조금 더 생각해 보았습니다. 르네의 이야기들을 읽어보면, 르네는 자신이 당면한 문제에 몰입되어 있어서 칼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칼이 르네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게 된 이유는, 르네의 세계 안에 자신이 차지하는 영역이 없음을 체감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140페이지에 보면 칼에게 두 가지 직관이 찾아왔다고 나와 있어요. "첫번째 직관은... 자신은 그녀가 왜 그런 행동에 이르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녀에 대해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는 인식" 두번째 직관은 르네의 행동에서 과거의 자기를 연상하게 되었을 때 찾아옵니다. "칼은 수치심으로 얼어붙은 채 르네가 바닥에서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문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그였던 당시,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145페이지엔 이런 대목이 나와요. "위선자.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칼 자신이 바로 그런 입장에 서본 적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의 고통에 완전히 몰입한 채로 다른 사람들의 인내심을 시험했지만, 그중 한 사람은 줄곧 그를 돌봐주었다. 르네와 헤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결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터였다." 고통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만 몰입하고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고통을 이해하는 것은 연민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 옆에서 사랑하면서 그를 지키고 돌봐줄 수 있는지는 그와 다른 문제일 거에요. 칼은 르네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해서라기보다는, 그런 고통 속에 있는 르네를 사랑할 수도 없고 함께 있는 것을 견딜 자신도 없어서 헤어지기로 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고 한 것 같습니다. 자신이 그런 상태에 있을 때는 누군가가 옆에 있어주었지만 자기는 힘들어서 그렇게 못하겠다고 결정한 거니까요. 르네가 그런 자기만의 몰입 속에 머물렀다면 오히려 자신을 정당화하기가 쉬웠겠지만, 르네가 뒤늦게 마음을 열어보이자 칼은 아픔을 느낍니다. "그만둬. 그는 빌었다. 말하지 마. 제발." "칼은 르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자기도 정확하게 알며, 그 자신도 그녀와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결국 입을 다물었다. 이것은 두 사람을 이어주는 것이 아니라 떼어놓는 종류의 감정이입이었고, 그녀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헤어짐은 고통스러워 하는 르네에 대한 사랑을 칼이 잃어버렸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르네가 마음을 열고 관계 회복의 의지를 보이지만 이미 칼은 르네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고 결론내린 것이겠지요. 저도 약간은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 분들의 댓글을 읽으면서 문장들을 다시 꼼꼼하게 읽어보니 새로운 해석들을 하게 되네요.
오도니안님의 해설을 읽으니 칼이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 더 이해가 잘 갑니다. 칼의 입장에서의 칼과 르네의 관계를 잘 이해하게 되었어요. 르네가 자신의 절망에 빠져 칼에게 내어줄 자리가 없었고 이로부터 촉발되는 둘의 문제(칼 입장에서의 문제)인데, 마지막에 르네가 관계 회복을 시도하고 있군요. 칼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둘의 관계를 정리하는(결별 쪽으로) 시점인데 말이죠.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저는 칼의 그러한 깨달음이 너무나 비극적으로 느껴졌는데, 오도니안 님이 비슷한 경험을 하셨다고 하니 왠지 맘이 아프네요. 물론...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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