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그를 지옥으로 보냈다' 이 문장이 정말 쇼킹했어요. 뒤에 창작노트를 보면 욥기에 대한 테드 창의 생각이 나와 있는데, 사실 닐이 신에 대한 사랑을 깨달음으로써 천국에 가는 것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으로 가는 것이 신의 행위가 인간의 지혜나 계산으로는 전혀 설명할 수 없는 것, '아무런 이유도 없고, 고차원의 목적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더 잘 드러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필귀정'을 믿고 싶어하는 인간적인 마음이 불쑥 솟더라고요...
'지옥은 신의 부재'이지만, 사실 닐처럼 신에 대한 사랑을 절절이 느끼는 자에게나 그게 지옥이지 신에 대한 사랑을 깨닫지 못한 자에게는 그게 과연 지옥일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362쪽에도 보면 '대다수의 주민들에게 지옥은 지상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곳에서 경험하는 가장 큰 벌은 살아 있을 때 충분히 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회오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쉽게 견딜 만하다'고 나와 있지요. 그렇다면 오히려 육체적 결함도 사라지고 천사가 (제멋대로) 강림해서 재앙을 당할 위험도 없는 지옥이 더 살기는 나은 게 아닐까... (게다가 인간이 그토록 갈구하는 영생) 싶더라구요. 제가 무신론자여서 그런 것인지 ㅎㅎ
그리고 소설 속 세계에서 천사의 강림이나 지옥의 시현이 어떤 이유에서 일어나는 것인지가 궁금하더라고요. 지옥의 시현은 오히려 '지옥도 나쁘지 않은데?' 싶은 생각을 불러 일으키고, 천사의 강림이 신의 존재를 믿게 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신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닌데... 하긴 신의 행위에는 '왜'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이 소설의 내용이긴 하네요.
또 한 가지 사소한 의문, 천사 강림으로 인한 재해는 민간보험의 보상 대상이 아니라고 나와 있어서 의아했어요. 천재지변은 원래 보험의 보상 대상이 아닌 건가요? (잘 모르겠네요;;) 물론 라이트시커 같은 존재를 생각하면 보험사에서 상당히 골치가 아플 것 같기는 합니다만ㅎㅎ
여하튼 재미도 있고 인물들의 심리 같은 것도 대체로 다 이해가 가는 한편으로 여러 가지 궁금한 점도 생겨나는 알쏭달쏭한 소설이었습니다.
[SF 함께 읽기] 당신 인생의 이야기(테드 창) 읽고 이야기해요!
D-29
흰벽
김새섬
종류나 특약에 따라 다르지만 천재지변은 원래 보험의 보상 대상이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자주 강림하면 보험사에서 상품을 만들어도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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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새섬
읽다보니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이 생각났습니다. 드라마도 재미있게 봤고 역시나 이 작품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 소설에 따르면 지옥은 신이 부재한 곳이고 저는 지금 지옥에 살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사실 상 많은 이들이 (이 작품에서 정의하는) 지옥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ssaanngg
저도 지옥 생각났어요. 넌 5일 후 15시에 '지옥에 간다' 그리고 괴물(?)들이 나타나 데려가는.. 연상호의 '지옥'은 이 '지옥'이란 단어 때문에 정말 재미있죠..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 그런데..'지옥에 간다'고 했지만 자연현상에 불과한 거여서... 드리마는 마지막에 웹툰과 다르게 끝나서 2편 나오려나 했는데 소식은 못들은듯..
김새섬
그렇네요. 지옥에 간다고 했지만 사실 그냥 자연 현상 같은 거였죠. 옛날 사람들은 벼락 맞아 죽은 사람을 신에게 큰 죄 지은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 같아요. 아닌데...그냥 운이 없어서 그랬던 건데요.
<지옥은 신의 부재>에서는 나타나는 천사들은 제법 비주얼적으로 신의 존재를 믿을만하게 구현해주는 것 같아요. 메시지도 주고.
김새섬
신은 닐의 인생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으로부터 영원히 격리되는 것을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지옥은 신의 부재> ,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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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새섬
신의 조건이 전지(全知), 전능(全能), 전선(全善)인데요,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고,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모든 것에서 선하신 존재자여야 하는데 이 작품에서 신은 전선은 아닌 것 같습니다. 죄없는 사람들한테 피해주고 뭐하는 짓인지? 그래서 받아들이기가 어렵네요. 제 입장에서는 그따위 신이라면 필요 없어 입니다. 그래서 저는 "차라리 스스로의 윤리감에 따라 행동"하고 "긍지 있게 신을 무시한 채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김새섬
너희의 일은 너희가 결정하라. 그게 바로 우리가 한 일이다. 너희도 우리처럼 하면 될 것이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지옥은 신의 부재> ,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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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새섬
주인공 닐은 마지막에 결국 신의 존재를 믿고 신을 사랑하며 마침내 영접하게 되는데 성경의 다니엘서 3장 18절 '그리 아니하실지라도'가 생각났습니다.
또 하나는 계속 등장하는 '신'의 자리에 '삶'을 넣으니까 개인적으 로 납득이 조금 되더라고요.그러니까 신이 아니라 이 삶이 우리에게 어떤 고통을 주더라도 우리는 하나뿐인 나의 이 유일한 삶을 긍정하고 나아가야 한다. 나의 지금 불행에는 어떠한 이유도 없고 내가 세상에 태어난 데에는 어떤 목적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삶을 사랑해야 한다!!
흰벽
‘신’의 자리에 ‘삶’을 놓는 것, 굉장히 납득되었어요!
우리 아이 안심 든든 수호 천사 보험 너무 재밌습니다 ㅋㅋㅋ 저라면 바로 가입할듯…
오도니안
신은 의롭지 않고, 친절하지도 않고 자비롭지도 않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심을 갖추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p.362,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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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니안
전 @ssaanngg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책의 주제가 사랑인 것 같습니다. 진정한 신앙심이란 것이 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한다면요. 그리고 작가가 생각하는 신에 대한 사랑이란, 신이 깃든 모든 사물에 대한 사랑, 즉 세상에 대한 사랑인 것 같습니다. @김새섬 님 말씀처럼 삶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구요. 다만, 그 사랑이 무조건적이어야 한다, 즉 세상과 삶이 이러이러해서 좋고 나는 그걸 사랑한다, 하는 태도가 아니라 그런 조건이 없는 사랑이고, 그것은 천상의 빛을 받는 일처럼 어떤 기적 처럼 일어나는 일이지 의지와 의도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메시지인 것 같습니다. (의지와 노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라는 것이겠죠.)
한편으로 창작 노트 내용을 보면, 욥기의 결말처럼 목적과 의도를 가진 신의 섭리를 전제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하려고 하면 불만족스러운 결론들이 나온다는 것도 함께 보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흰벽
드디어 마지막 소설이네요!
오늘부터는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를 읽습니다. 구성이 독특해서 내용에 더 잘 몰입이 되었던 소설이에요.
처음 모임을 시작할 때는 매 소설마다 생각해볼 질문을 던지려고 했는데 좋은 질문을 떠올리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러나 참여해주신 분들이 너무도 수준 높은 대화를 이끌어 주셔서… 저는 모임지기지만 숟가락만 얹었네요.
마지막 소설에서도 재미난 이야기가 오가길 기대하며, 모두 즐거운 독서!
ssaanngg
이거 끝나면 숨도 해요~ 테드창 뽀개기
숨최고의 SF에 수여되는 모든 상을 석권하며 전 세계 21개 언어로 번역 출간된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작가, 테드 창의 두 번째 작품집이다. 2002년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출간한 이래 17년 만에 펴내는 소설집이다.
책장 바로가기
흰벽
ㅋㅋㅋ 실은 저도 욕심내고 있습니다!
같이 읽고 싶어서요~ ㅎㅎ
김새섬
이 책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 <네 인생의 이야기>이고 두 번째로 좋아하는 작품이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 입니다. 이 작품 읽으면서 이게 바로 SF의 힘이구나 싶었어요.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서 구별하는 것이 차별의 정의입니다. 근대 사회가 시작되면서 타고난 조건들로 인한 차별 (인종, 성별, 나이 등)에는 이를 타파하자는 인식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만큼 좋아졌냐 하는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요즘 세상에 저 위의 조건들로 차별적인 멘트를 공적으로 당당히 발언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죠. (속으로야 여전히 차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요.)
그런데 유독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당당한 것이 외모 차별입니다. 여전히 우스개와 놀림의 대상으로 만들고 놀리는 사람들도 어찌나 태도가 당당한지. "너도 예쁜 사람 좋아하잖아. 솔직해져 봐." "서비스직에서 외모는 경쟁력이지." "자기 관리를 못 한 거 아냐." 그나마 비만인에 대한 태도는 요즘 살짝 바뀐 것 같은데 대머리 남성은 어디서나 동네북이죠. 유머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나마 별거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외모가 뛰어난 사람들이 갖게 되는 사회적 베네핏은 엄청납니다. 짝 찾기가 쉽고 취업이 잘 되는 것은 물론 죄 지으면 형량까지 경감.
김새섬
루키즘은 저를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든 주제여서 갑자기 열변을 토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목소리 높여 외모 차별에 대해 얘기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니가 못 생겨서 그래. 자격지심 좀 버려."
저는 이제 외모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그나마 조금 낫습니다만 아직도 많은 젊은이들은 이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 특히나 다른 사회적 차별은 어느 정도의 인식 개선이 이뤄진 데 반해 외모지상주의는 제가 젊었을 때보다 조금도 나아진 게 없습니다. 오히려 더 강화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들고요.
작품으로 돌아가서 저는 칼리를 꼭 써보고 싶네요. 미에 끌리는 것이 진화가 가져다 준 우리의 본능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정합니다만 인간은 본능대로만 살아선 안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도리
그 남자가 당신을 바라보는 걸 깨닫고, 그 남자도 당신이 자기를 바라보는 걸 깨닫 고, 모든 것이 이런 식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겁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p.349-350,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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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
외모에 대한 불안이나 집착 없이 서로가 서로를 바라봄을 깨닫고 이 과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관계가 이어진다고 생각하니 편안하고 낭만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도리
그건 뭐랄까··· 해가 지는 광경이나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느낌이었어요.
『당신 인생의 이야기』 p.359,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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