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을 움츠린 강형모가 주저앉는 것과 거의 동시에 눅눅한 바람을 쪼개며 야구방망이가 날아들었다.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서 문지방에 틀어박힌 야구방망이는 요란한 소리를 냈다. 강형모는 몸을 낮춘 그대로 상대방을 향해 덤벼들었다. 갑작스러운 충돌에 균형을 잃은 상대방은 싱크대가 있는 곳까지 밀려났다. 싱크대 여기저기에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던 그릇과 냄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방으로 굴러 떨어졌다. 요령껏 싸워 보려던 강형모의 결심은 상대방의 무릎에 아랫배를 찍히면서 끝장나 버렸다. 처음에는 아픔이, 그 다음에는 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르게 만들었다. 형편없이 구겨진 궤적으로 날아거던 주먹 중 하나에 상대방의 턱이 명중했다. 다시 휘청거리던 상대방의 턱에 있는 힘껏 박치기를 하자 눈앞에 별이 아른거렸다. 싱크대를 등진 상대방은 아직 야구방망이를 놓지 않았다.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야구방망이가 등에 떨어졌지만 참을 만했다. 싱크대 위쪽에 붙은 수납장 문짝이 뜻밖의 수난을 당했다. 다시 한 번 턱에다 박치기를 꽂아 넣은 강형모는 손을 뻗어 상대방의 양 손목을 움켜잡았다. 힘이 잔뜩 들어간 상대방의 손목은 사정없이 요동쳤다. 정신없이 껌뻑거리는 눈으로 낯선 것이 스며들었다. 붉은 피가 들어간 눈은 고춧가루가 들어간 것처럼 따끔거렸다. (중략) 야구방망이를 뺏은 강형모는 쓰러진 서욱철의 허리를 짓밟았다. 비명을 삼킨 서욱철이 버둥거렸다. 뺏어든 야구방망이로 어깨를 내려치자 비명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또 야구방망이를 치켜들자 손으로 머리를 가린 서욱철이 잔뜩 웅크렸다. 강형모는 두툼한 방망이 끝으로 웅크린 서욱철의 아랫배를 찔렀다. (중략) 계속 맞고만 있던 서욱철이 갑자기 팔꿈치로 강형모의 발등을 찍었다. 강형모가 불이 붙은 것 같은 아픔에 겅중거리는 사이 벌떡 일어난 서욱철은 야구방망이를 낚아채고는 곧장 밖으로 도망쳤다. 통증에 발목이 잡힌 강형모는 우당탕거리며 사라진 서욱철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
『추락 - 한 사내가 72시간 동안 겪는 기묘한 함정 이야기』 p.111-113, 정명섭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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