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D-29
하루키의 첫소설을 읽어보자. 하루키도 말한 것처럼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처음에 한 얘기를 늙어서도 계속 한다고 하니 어디 얼마나 변했나 보자. 여기서도 여자들이 많이 등장하나?
돌풍은 교회와 에수가 한 말이 너무 많이 나온다. 그리고 설경구를 너무 우상화한 것 같고 정작 무슨 말을 하려는지 주제가 뚜렷하지 않다. 민주주의 만세! 애들의 합창단 노래는 듣기 좋았다.
내 행복을 어디에 더 구축할 것인가 세상에 발을 들여놓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서 뭔가 보여주고 출세를 하려면 그들의 규칙을 익히고 그대로 실천만 하면 된다. 인간과 세계의 운영 원리를 익히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들이 내세우는 출세를 하고 이름을 어느 정도 날릴 수 있다. 그것만이 전부라면 그는 후회(Regret)할 수도 있다. 공허(Emptiness)를 느낄 수도 있다. 그는 그것을 하는 과정에 최선을 다하고 뭔가 거기에 모두 투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내 맘대로 안 되고 운이라는 게 있고 가장 안 좋은 모습은 현실에서 자기가 극복하려고 주장했던 것에 굴복하고 그 속에 그냥 파묻혀-처음 정신은 어디로 가고-이룬 게 아무것도 없는 세상을 다시 접하고 허무함을 새삼 대면할 때다. 괴물을 잡으려다가 자기도 괴물이 된다. 세상은 내 노력과는 상관없이 그 모순을 그대로 지닌 채-오히려 더 악화되어- 그대로 흘러가고 있는 모습을 망연히 지켜볼 때. 내 노력(Effort)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걸 직면할 때. 인간과 세상은 각자의 처지와 생각이 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된다는 걸 알고 덤볐어야 했다. 그런데 또 그거라도 진정으로 자기가 원했던 것이면 좋은데 그게 아니라 그냥 그걸 하느라 하세월만 낭비할 수도 있다. 그냥 자기도 모르게 현실의 흐름에 휩쓸리고 마는 것이다. 휩쓸리기만 하고 그 속에 있는 자기를, 거기를 헤쳐나와 볼 줄 모르는 것이다. 나중엔 자기가 좋아한 것은 안 하고 엉뚱한 짓만 한 것에 허무와 회한이 몰려올 수도 있다. 인생무상을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다. 그래 인간 세상에서 “아, 맘껏 하고 이제야 속 시원하게 살다 영면에 든다.”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 그러니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채 가상의 공간을 따로 만들어 거기서 자기의 뜻을 펴는 것이다. 현실과 이상을 나누는 것이다. 한쪽으로 옮겨가며 그쪽의 일은 잊는 것이다. 아니 잊으려고 그리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다. 현실에서 묻은 먼지를 가상으로 옮겨 털어내는 것이다. 반대로 가상에서의 공상만 가지고는 살 수 없으니, 현실로 돌아와 다시 일상에 편입하는 것이다. 거기에 각각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할 일과 이상에서 할 일을 분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가 협력하고 서로 돕는 것이다. 현실의 일은 가상의 일을, 허구의 사업은 실재의 사업을. 왜냐면 현실에서만 통하는 게 있고, 현실에선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그걸 이상에서 이루는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상에선 맘대로 이룰 수 있는 것도 그 구체적 감각까지는 현실에서처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글 같은 허구에서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그러면서 거기서 행복을 찾는 것이다. 그건 물론 현실의 행복까지 연결되어 이어진다. 실은 행복 때문에 사는 것이기에, 그걸 하며 즐기고 맘껏 해서 더이상 미련이 없고 힘이 다한 다음 아주 홀가분하게 저세상으로 가는 것이다. 가상에서 자기만의 행복을 구축하고 그래도 힘이 남으면 뜻이 맞는 사람끼리 힘을 합해 사회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잘 안되지만 그야말로 ‘정치적 올바름’을 세워나가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가상에서 찾고 여기서 충전(Charge)한 다음 현실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향해 하나하나 개선해 나가며 현실적 행복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우린 현실을 산다, 잘 안된다, 스트레스가 쌓인다, 가상에서 치유하고 다시 충전 후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현실에 투입된다, 전보단 뭔가 나아졌다, 그래도 인간적 고뇌가 쌓인다, 다시 가상에서 푼다, 이게 선순환한다. 어디에 더 중점을 두느냐가 문제인데, 나는 현실에 40, 가상에 60을 두고 있다. 누군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내겐 이게 최적인 것 같다. 현실의 문제를 가상에서 풀지 못하면 현실의 문제들이 점점 더 꼬여만 간다고 보는 것이다. 종교도 가상이라고 보는데, 현실 문제를 거기서 풀려고 인간들이 만들었다고 보는 입장이다. 누구나 자기 주특기가 있기 때문에 현실에서-이건 변화무쌍해서 장담 못 하지만-그 이상을 실현하려는 사람이 있고, 가상 공간에서 자기에게 맞게 나름의 행복의 세계를 구축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에게 맞는 행복 공간(Space)을 확보하라! 어느 게 더 낫다고 할 수는 없다. 자기에게 맞게 자기 행복을 각자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삶의 방식(Procedure)엔 옳고 그름이 없다. 다만 자기 길을 스스로 깨닫고 실천하는 게 중요할 뿐이다. 진정한 자기 길인지 깨닫느냐, 못 깨닫느냐 그것만이 문제다. 후회는 적게, 맘껏, 가능하다면 이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고.
글에 대한 내 단상 글은 결국 자기를 위해 쓰는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해 자기를 변명하기 위한 것이다. 또 자기를 실현하기 위해 쓴다. 그러면서 행복을, 거기서 찾고 그 자체를 즐긴다. 그 누군가를 위해 쓰기도 하는 것 같다. 그 사람이 단 한 사람일 수도 있고 아예 없다가 우연히 다른 누군가가 내 책을 접해 읽고 뭔가 얻으면 좋을 뿐이다. 나는 내 기쁨을 위해 글을 쓴 것이니 그런 사람이-하나도 없어도 괜찮지는 솔직히 않지만- 하나라도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며 오늘도 끼적인다. 나도 우연히 나에게 맞는 작가를 만나 그의 글을 읽게 됐고 그에게 좋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만은 말하면서 나도 뭔가 희미한 희망을 품는다. 속에 있는 울화와 맺힌 응어리를 겉으로 드러내 자기 치유를 위해 글을 쓴다. 그러면 거기 나열된 것들이, 전부 내 것만이 아닌 양 나와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기운이 작용한다. 속에서 곪고 있는 걸 겉으로 뱉어내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고민거리는 끌어안고 있다가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 좀 나아지는 것하고 비슷한 것이다. 그리고 글을 통해 자기도 모르던 자기 무의식을 끄집어내고 그것을 언어로 표상화해 그 과정에서 자연 치유가 되는 것이다. 글은 그걸 통해 주체적으로 살게 하는 동시에 자기를 상대화해서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이건 아집에 빠지는 걸 방지하고 겸손한 자세로 세상을 부감(俯瞰)하게 한다. 뭐든 그렇지만 너무 글에만 치우치면 누가 그걸 비판이라도 하면 죽여버릴 듯이 덤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도 단단히 마음을 잡고 있어야 한다. 내 글에 대해 충분히 비판받을 수 있고 내가 준 글을 아예 읽지도 않고 쓰레기통으로 던지는 사람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이것도 감안해서 결국 나를 위해 쓰는 것이므로 감수하고 견뎌야 하고 그것으로 또 글을 쓰며 나를 정화하고 글로 인한 고통으로부터 나는 충분히 단련되어야 한다. 이걸 보면 역시 글은 자기 자신을 위해, 이 세상을 더 잘 견디며 살아남기 위해 쓰는 것 같다. 나는 이대로 글 쓰는 게 좋다. 유명하지 않은 선에서 글을 쓰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선 자기가 쓰고 싶은 것만 쓸 수 있다. 의무적으로 뭔가 자기 검열 같은 게 끼어들면 마지못해 억지로 쓰게 되는 글이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런 단계까진 역시 안 가겠지만 그래도 운이 나를 도와도 안 갔으면 한다. 그렇게 되면 내가 전에 안 좋은 말을 했던 것을 어느 계층에선 상처로 끄집어내서 나를 공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글 외에 다른 거로 괴롭힘을 당하기 싫다. 나는 그저 글을 쓰고 싶을 뿐이다. 글 쓰는데 방해되는 것은 피하고 싶다. 나는 그냥 책만 읽고 글을 내 맘대로,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을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면서도 괴로워 머리털을 쥐어뜯고 싶지 않다. 나는 어찌 보면 글을 쓰기 위해 쓰는 것이다. 글 쓰는 그 자체가 목적이랄 수 있다. 글을 쓰며 그 속에서 즐겁고 행복하면 그만이다. 애초 내가 원하던 게 그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통해 자아를 실현할 거고 내가 증명되는 거고 진정으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여자들은 과거 얘기를 잘 안 하려고 한다. 미래도 그저 그렇고 오직 현재 자기만 좋으면 끝이고 만사 오케이.
이 소설은 하루키가 79년에 쓴 것인데, 내가 그때 중2였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30리가 넘는 중학교를 다녔다. 나는 중2부터 공부에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아, 나는 공부해야 한다는 마음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그해 10월 26일, 안가에서 박정희가 심복인 김재규에게 총에 맞아 죽었다. 결과적으로 잘 죽었다. 어떻게 해도 그 정권은 벼랑을 향해 가고 있던 중이었으니까. 민주주의와 거꾸로 가고 무식하게 다양성을 무시하고 국민들을 무슨 소 몰듯이 산업화 하나로 향하게 세뇌시키는 것을 나는 가장 싫어한다.
글로 무엇을 다룰 것인가 물론 특수한 사건을 소재로 해서 글을 쓸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인이 겪는 것은 그것과는 사실 거리가 멀다. 그냥 일상을 살아가고 나도 그렇다. 그러니 이것을 다루는 게 더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억울한 사건은 잊히면 안 되지만 그건 또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그걸 어떤 목적을 갖고 다루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나는 그냥 일상을 다루고 거기서 어떤 알지 못하는 것을 깨닫고 찾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근데 무엇보다 자신이 다루고 싶은 것을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에 편승해 의무적으로 다루는 것보다 스스로 우러나와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에서 자기의 진심이 느껴지게. 운이 좋아 사회 흐름에 편승하는 게 자기가 진정 다루고 싶은 것과 일치하면 그야말로 운이 좋은 것이다. 이런 걸 글에서도 운이 좋은 경우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자기가 진정으로 쓰고 싶을 걸 써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어야 뭐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개 작가의 글에서 등장인물 중에 아무리 바닥을 기는 생활을 해도 그들은 대개 책을 읽는다. 그들은 비참하게 소리 없이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틀림없이 작가는 그들을 그냥 죽이지는 않았다. 그들의 속에 뭔가가 있는 것을 그 책을 읽는 행위를 통해 전하고자 한 것이다. 아무리 바닥을 기는 생활을 해도 책을 읽는 사람은 뭔가 무시할 수 없는 그런 게 있다. 그들은 죽어서도 가능성 있게 보인다. 나도 노숙자라도 책을 읽고 있으면 그냥 단순한 노숙자로 보지 못한다. 그에겐 뭐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옆을 지나친다. 그러나 멀쩡한 인간들이 1년 가야 반 이상이 책 한 권 안 읽는 세상에서, 아무리 사회적 지위가 높아도 책 들고 있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 잘 봐줄 수가 없다, 나는.
인간이란 참 이건 최악이다. 왜 인간들은 사회에서 자기보다 못한 사람은 기리지 않는가. 기라는 거나 좋아하는 건 자기보다 지금 위에 있는 인간이다. 나도 그렇고, 인간들 참 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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