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보르헤스 읽기] 『셰익스피어의 기억』 1부 같이 읽어요

D-29
죽기 직전에 있는 사람은 어린 시절의 희미한 기억을 떠올려보려고 애를 쓴다. 전투에 들어가기 직전의 병사들은 진흙 또는 자신들의 분대장에 대해 얘기한다.
셰익스피어의 기억 타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우리는 각기 서로의 캐리커처적인 복사였다.
셰익스피어의 기억 타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내 나이에 이르면 사람들은 거의 시력을 잃게 되지. 눈앞에 노란 빛깔과 그림자들과 빛들이 어른거리게 돼.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 점진적인 시력 상실은 비극적인 일이 아니니까. 그것은 마치 여름밤이 오는 것과도 같지.
셰익스피어의 기억 타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그는 나를 꿈꾸었다. 그러나 그는 나를 명확하게 꿈꾸지 않았다.
셰익스피어의 기억 타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것과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잖는가.
셰익스피어의 기억 울리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나는 뛰어난 관찰자가 아니다. 따라서 나는 조금씩 조금씩 그런 것들에 대해 발견하게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기억 울리카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나는 내가 이미 울리카에게 사랑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때 나는 그녀 외에는 누구도 내 곁에 있기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셰익스피어의 기억 울리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나이가 한참 든 독신자에게 사랑의 도래는 더 이상 기대되지 않는 선물이다. 기적은 조건을 제시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기억 울리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나는 그녀에게 나를 사랑하는지 묻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셰익스피어의 기억 울리카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나는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하는 생각이오." 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영원히'라는 말은 인간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말이에요."
셰익스피어의 기억 울리카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타자>를 읽고, 화제글을 본 후에 다시 보았는데요, 저는 이야깃속에서 이것이 꿈속의 꿈이며, 또다른 꿈이 아닐까, 하는 식의 해석도 가능하다고 느꼈습니다. 1969년의 보르헤스가 지금 현실이라고 느끼는 것 역시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인데요 그것은 마지막 순간 1969년의 보르헤스가 한 말이 단서가 됩니다. "내 나이에 이르면 사람들은 거의 시력을 잃게 되지. 눈앞에 노란 빛깔과 그림자들과 빛들이 어른거리게 돼.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 점진적인 시력 상실은 비극적인 일이 아니니까. 그것은 마치 여름밤이 오는 것과도 같지." 저는 이 말을 단서로 삼아서, 여름밤 - 청춘 이라고 생각을 했는데요, 그는 자신의 꿈과 같은 청춘(여름밤)을 지금 다시 느끼는 일종의 꿈 을 꾼다고 보았습니다. 그렇기에 꿈속에서 존재할 리 없는 지폐를 과거의 자신이 보았고, 그것을 찢었고, 자신의 현재보다 더 미래의 모습인 자신을 미리 보기를 무의식 중에 거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이었달까요. 즉, 지금 과거의 자신을 만나는 꿈속 미래의 자신 역시 일종의 타자인 셈이죠.
그렇군요. 자기 역시 타자였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네요. 한편, 공지의 규칙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시고 [이 대화에 답하기 기능]을 활용해주세요. 그래야 나중에 읽는 사람도 대화 타래의 흐름을 볼 수 있으니까요.
아앗, 공지를 열심히 본다고 봤는데 제대로 이해를 못했나 봅니다! 지금이라도 같은 내용 글타래로 이어놓겠습니당!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넵 감사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울리카] 이 작품은 13세기 노르웨이의 사가(saga)인 볼숭사가를 레퍼런스로 삼고 있는 짤막한 소설입니다. 보르헤스의 전작품을 통틀어서 보기 드문 러브스토리(?)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처음 읽고서는 이게 대체 무슨 얘긴가 싶었습니다. 예상했겠지만 이 단편은 작품 외적인 사실관계와 함께 읽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단편의 제사는 훗날 보르헤스의 비문에 쓰여질 정도였다고 하니 그 중요성은 어느 정도 짐작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보르헤스의 작품을 쭉 따라 읽으면 알 수 있는데요, 전반적인 작품의 경향을 보면 보르헤스가 육체적 관계에 대해서 그다지 긍정적인 인상을 풍기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픽션들⟫의 첫 번째 단편인 ⟨틀뢴~⟩에서는 '거울과 성교(혹은 부성)는 혐오스러운 것이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근데 보르헤스가 만년에 쓴 이 단편에서는 육체적 관계를 비교적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볼숭사가의 주인공 시구르드와 브륀힐드가 보여주었던 관계를 비틀어서 말입니다. 잠시 볼숭사가 얘기를 간단히 하자면, 시구르드와 브륀힐드는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시구르드는 브륀힐드를 저버리고 다른 여성인 구드룬과 결혼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두 사람은 우연치 않은 방식으로 재회하게 됩니다. 바로 구드룬의 오빠인 군나르가 브륀힐드와 결혼하고자 했던 겁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브륀힐드가 만든 불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했는데, 군나르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군나르는 시구르드에게 자신으로 변장하고 불의 장벽을 뛰어넘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시구르드는 군나르로 변장해서 불의 장막을 뛰어넘어 브륀힐드에게 청혼한 뒤 사흘 동안 같은 침대를 씁니다. 하지만 시구르드는 군나르와 신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브륀힐드를 건드리지 않기로 하고, 그녀와 동침하면서도 그 가운데 그램(gram) 검을 둡니다. 이 상징적인 행위가 바로 제사에 나오는 "그는 그램 검을 집어들고 둘 사이에 놓았다(Hann tekr sverthit Gram ok / leggr i methal theira bert)"라는 문장입니다. 그러니까 보르헤스는 이 단편을 통해서 볼숭사가의 한 장면을 뒤집고 있다고 해도 되는 거지요. 보르헤스는 주인공 하비에르의 입을 빌려서 볼숭사가를 모방한 니벨룽겐을 폄하하고 있습니다만, 정작 보르헤스 자신은 볼숭사가의 한 장면을 패로디하고 있다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그 외에도 단편 소설에 나오는 여러 가지 장치가 있긴 합니다만(늑대 울음 소리, 발음 상의 문제), 그것에 대해서는 차차 얘기해볼 기회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한편, 송병선 선생님의 ⟨보르헤스와 성(性) 문제⟩라는 논문을 보면 좀더 재미있는 해석을 볼 수 있습니다. (구글링 해보면 열람이 가능하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살펴보세요.)
시간은 마치 모래처럼 흐르고 있었다......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율리케의 이미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29p
셰익스피어의 기억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의회~] 이 단편의 스페인어 원제는 “El Congreso”입니다. 영어의 Congress에 대응하는 이 단어는 회의나 회합을 의미합니다. 알다시피 정치적 맥락에서는 '의회'를, 학술적 맥락에서는 '학회'나 '컨퍼런스'를 지칭하기도 합니다. 라틴어 어원을 살펴보면 congressus라는 단어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함께(com-)'와 '걷다(gradi)'의 결합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직역하면 '함께 걷다', '함께 모이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단편의 초입에서 주인공이자 화자인 알레한드로 페리는 한때 (정체불명의 단체인) ⟨의회⟩에 같이 몸 담았던 동료 페르민 에구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의회⟩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마지막 회원이 될 것임을 직감합니다. 페리의 말에 따르면, ⟨의회⟩의 역사는 비밀에 부쳐야 하며 일찍이 회원들은 비밀을 지키기로 서약을 했습니다. 재밌는 점은 그럼에도 페리가 ⟨의회⟩가 탄생하고 번성한 역사를 이런 단편 형식으로 쓰고 있단 것입니다. 이런 글을 쓴다는 자체가 서약을 위반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동시에 그가 이 단편에서 온전히 사실만 말하고 있지 않을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페리의 말에 따르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의회⟩의 구성원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의회⟩의 구성원임을 아는 사람은 알레한드로 페리 자신밖에 없습니다. 그의 말이 진실이라면,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자신이 무엇에 속해 있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알레한드로 페리가 (죽어) 사라진다면 한때 ⟨의회⟩가 존재했으며, ⟨의회⟩의 역사를 기억할 뿐 아니라 기실 모든 사람이 ⟨의회⟩의 구성원임을 아는 마지막 사람이 사라지는 셈입니다. 따라서 페리의 마지막을 논한다는 것은, 마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쓰러진 나무가 어떤 소리를 내었는지 묻는 것과 같은 일이 됩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쓰러진 나무가 어떤 소리를 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 나무가 '모종의 소리'를 냈으리라는 사실은 누구나 압니다. 이 앎은 오묘하고 신비롭습니다. 이 앎은 '모름의 앎'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화자인 알레한드로 페리는 그 모름의 앎을 설득하는 최후의 증인이기도 합니다. 먼저 말하자면, 이 작품은 보르헤스가 만년에 이르러서 도달한 인식을 보여주는 텍스트로 보입니다. 주인공인 알레한드로 페리는 여러모로 보르헤스 자신을 암시하는 인물입니다(단적인 예로, 페리가 자신의 고향인 산따 페를 등진 1899년은 보르헤스가 태어난 해입니다). 페리가 젊은 시절 몰두했던 ⟨의회⟩라는 집단은 "모든 나라의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의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다소 허황한 목표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무얼하는지 자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철학적 성질을 가진 문제를" 주로 다룬다고 하며,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런 일당이나 보수도 없이 전세계에 흩어져서 언어를 연구하거나, 동서고금의 백과사전을 수집하는 식으로 문학이나 철학적 관념에 천착합니다. 소위 책상물림들이 서로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세계를 씨름하는 정체불명의 집단처럼 묘사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 우리는 일당으로 상당한 액수의 돈을 받았다. 그러나 나만큼이나 가난한 페르난데스 이랄라가 열정에 사로잡혀 자신의 일당을 포기했고, 그것에 감염된 나머지 우리 또한 그 뒤를 따랐다. 그것은 매우 지대한 효과를 자아냈다. 왜냐하면 그것을 기준으로 겨로부터 밀알을 구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원들의 수가 줄어들면서 오직 충심을 가진 사람들만이 남게 되었다. (···) 전 지구를 포괄하는 조직체를 만드는 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편지들이 오갔고, 마찬가지로 전보들 또한 오고 갔다. (···)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의회를 구성하는 계획은 마치 수세기 동안 철학자들의 골머리를 앓게 했던 플라톤적 유형들의 정확한 숫자를 밝혀내는 것과 같았다.
셰익스피어의 기억 38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의회>는 우리가 태워버린 책들이지. 53p
셰익스피어의 기억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congress의 완곡어법에 대한 활용도 인상적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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