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회⟩가 대단히 급진적이고 행동력이 있는 집단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함께 창녀촌을 다녀 오는 길에 깡패에게 시비가 걸리자, 화자인 페리를 제외한 나머지 회원들은 지레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섭니다. 그러면서도 그들 전 지구를 포괄하는 조직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광오한 목표의식 아래 이상한 일들을 벌입니다. 참고문헌실을 가져야 한다면서 전세계로 흩어져서 동서고금의 백과사전을 모으고, "모든 국가와 모든 언어의 고전들이야말로 진실된 기록물"이라는 기조 아래 책장을 가득 채웁니다.
그러던 중 알레한드로 페리에게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런던으로 건너가서 "⟨세계 의회⟩에 값할 만한 언어에 대한 조사"라는 몽롱한 의회의 일에 몰두하던 도중, 베아트리스라는 한 여성을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페리는 근원적으로 허구일 수밖에 없는 언어라는 매체에서 잠시 벗어나서 베아트리스 프로스트라는 여성과 사랑을 나누고, 행복한 "결합의 순간"을 누립니다. 하지만 그도 잠시, 페리는 도망치듯이 런던을 떠나서 귀향길에 오릅니다. 그런데 어쩐일인지, ⟨의회⟩의 의장을 맡고 있던 알레한드로 글렌꼬가 이제껏 소장했던 책들을 모두 바깥으로 꺼내는 광경을 눈 앞에서 보게 됩니다. 알레한드로 씨는 "각 세대는 그때마다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을 태워야 했지"라고 말하면서 책을 불태웁니다. 그 이유를 특별히 설명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알레한드로 씨는 세계 전체를 포괄하는 거대한 ⟨의회⟩는 농장의 오두막들 속에서 자기 도취에 빠져 있는 몇몇 떠버리들로 구성되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말미의 알레한드로 페리의 언급처럼, "단어란 공유된 기억을 담고 있는 상징들"입니다. 그것은 현실을 언급하는 수단이며, 그런 단어로 서술된 기록들은 개인의 불완전한 기억에 가깝지 현실 그 자체는 아닙니다. 이런 점에 비춰 보면, 의장이 ⟨의회⟩를 해산한 다음에 정처없이 마차를 타고 가면서 보았던 풍경이 이해가 됩니다. 일체의 관념적 이론과 사변적 전개 없이 눈 앞에 지나가는 것들을 묘사하는 문장은 만년의 보르헤스가 다다른 지점을 유추할 수 있게 해줍니다. 아마도 ⟨의회⟩란 보르헤스 자신이 과거에 몰두해왔던 작업을 포괄하는 두루뭉술한 이름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그것들이 모두 헛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비밀스러운 ⟨의회⟩의 일처럼 이제는 그것에 대해서 침묵해야 한다고 보았던 게 아닐까 합니다. ⟨의회⟩는 의장의 마지막 말처럼 "시저의 군단들을 패퇴시켰던 깔레도니아 사람들"이며, 구약 속 "잿더미 위의 욥"이며, "십자가 위의 예수"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스페인어와 영어에서 Congreso와 Congress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짚어보겠습니다. 양쪽 다 사전적 정의는 어떤 '만남'입니다. 하나 재미있는 점은 스페인어와 영어의 Congreso와 Congress 모두 '성교'(교합)에 대한 완곡어법으로도 활용된다는 사실입니다. 혈기왕성 청년 시절의 관념적인 '집회'가 노년에 이르러서 두 사람이 벌이는 사적이고 은밀하지만 구체적인 '행위'로 전환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담을 하자면, 오늘날 헤세는 우리에게 ⟪데미안⟫과 같은 비교적 초기 작품으로 널리 기억되고 있지만 실제 헤세가 만년에 도달한 작품 세계는 ⟪데미안⟫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보르헤스도 마찬가집니다. 많은 사람이 보르헤스를 ⟪픽션들⟫과 ⟪알레프⟫로 기억하지만 보르헤스가 문학적인 여정을 마친 자리는 앞선 두 권의 책과는 다른 곳일 거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7) [보르헤스 읽기] 『셰익스피어의 기억』 1부 같이 읽어요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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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어란 공유된 기억을 담고 있는 상징들이다. 이제 내가 들려주고자 하는 것은 단지 나의 기억뿐이다. 그 기억을 공유했던 사람들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비론자들은 한 송이의 장미, 키스, 모든 새들이기도 한 한 마리의 새, 모든 별이자 태양인 하나의 태양, 한 항아리의 포도주, 어느 정원, 또는 성행위를 상징으로 끌어왔다. 이러한 은유들 중 그 어떤 것도 새벽의 문턱에 다다르자 우리를 지쳤어도 행복감에 휩싸이게 했던 그 황홀한 밤을 묘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우리가 언뜻 보았던 어떤 무엇이 우리의 시야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레꼴레따 공동묘지의 빨간 담, 형무소의 노란 담, 막힌 거리의 구석에서 춤추고 있던 한 쌍의 남자들, 쇠울타리가 쳐진 검고 하얀 포석이 깔린 안마당, 철로변에 세워진 나무 울타리, 내 집, 시장, 그 끝을 알 수 없고 축축한 밤. 그러나 아마 다른 것이었을 수도 있었을 스쳐가는 그것들 중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한 차례 이상 비아냥거리기도 했던 우리의 계획이 구체적으로, 그리고 비밀스럽게 존재했고, 그것은 바로 세계이자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이었다. ”
『셰익스피어의 기억』 55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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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것들이 있다] 짧은 소설입니다. '나'는 철학 전공생으로서 철학적 난제에 몰두하기를 좋아하며, 삼촌과 더불어 사색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후일 모종의 사건으로 부에노스 아이레스 근교에 있던 농장에 기거하던 삼촌이 죽고 맙니다. 그리고 삼촌의 농장에 새 주인으로 맥스 프리터리어스라는 외지인이 들어옵니다. 프리터리어스는 농장에 입주하자마자 집을 개축하는 등 이상한 일을 벌입니다. 공교롭게도 그가 이사온 시점부터 농장 주변에서 양치기 개가 사지 잘린 채 죽는 등 괴이한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나'는 맥스 프리터리어스를 의심하며 주변인들에게 그에 관한 소문을 캐고 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태풍이 오던 밤에 프리터리어스의 농장으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철학에 능한 '나'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헌사에서도 보듯, 러브크래프트 풍으로 쓰인 단편입니다. 이 단편의 제목은 햄릿의 대사 중 일부입니다. 해당 문장은 “There are more things in heaven and earth, Horatio, Than are dreamt of in your philosophy”인데, 굳이 제목과 맞추자면 이렇게 옮길 수 있습니다. “호레이쇼, 하늘과 땅 사이에는 우리가 철학으로 꿈꿨던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다오.” 알다시피 러브크래프트는 늘 미지의 공포를 암시하는 작품을 많이 썼습니다. 그런데 그 미지의 공포라는 것도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것이지, 이미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익숙한 것들이 색다른 외형을 갖춘 것일 뿐입니다. 크툴루 신화에 나오는 고대의 바다생물은 오늘날 무수한 촉수 괴물들의 원형이기도 합니다. 러브크래프트의 단편이 의미가 있다면, 공포라는 관념에 구체적인 외형을 부여함으로써, 당대 사람들이 느끼던 공포를 실체화된 이미지로 묘사했단 거겠죠. 그로써 공포라는 관념을 구체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됐고요.
우리는 아는만큼만 볼 수 있습니다. 현실이 3차원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현실을 공간에 한정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현실이 4차원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공간에 시간이라는 한 축을 더해서, 현실을 시공간에 한정해서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가 길을 찾을 때 스마트폰을 켜고 2차원의 네비게이션 지도 속에 점멸하는 붉은 점에 우리가 있단 사실을 의심치 않는다는 겁니다. 3차원의 인간은 2차원을 이해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지만, 2차원의 지적 존재는 3차원을 이해하는 데만 해도 한 세월이 걸릴지 모릅니다. 그 점에서 마지막 장면에서 '나'가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은 의미심장해 보입니다. 어떤 미지의 대상을 보고, 또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 인식의 한계를 맞닥뜨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러브크래프트와 보르헤스가 단편에서 재현하고자 한 것은 '공포'라기보다는, 그 공포라는 가림막 너머의 자리, 어떤 인식이 한계지어진 지점이 아닐까 합니다. 네비게이션 속 점멸하는 붉은 점처럼요.
russist
“ 설명을 하겠다. 어떤 사물을 본다는 것은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을 뜻한다. 흔들의자는 사람의 몸, 관절들과 사지를 연상케 한다. 흔들의자는 사람의 몸, 관절들과 사지를 연상케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가위는 자르는 행위를 연상케 한다. 등 하나, 또는 자동차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야만인은 선교사의 성경을 이해하지 못한다. 여행자들은 선원들이 보는 것과 똑같이 밧줄들을 보지 못한다.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세계를 보았다면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
『셰익스피어 의 기억』 65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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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나는...... 가장 인위적인 장르인 리얼리즘에 대해 믿지 않는다. 36p
『셰익스피어의 기억』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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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 우리는 우리가 죽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모두 죽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 곤 한다(57p)
아래층에 드리워져 있던 악몽이 위층에서도 다시 살아나 만개하기 시작했다 (66p) ”
『셰익스피어의 기억』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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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교파] 매우 짧습니다. 먼저 용어를 정확히 해야할 것 같은데요, 모든 '이단'이 '사이비'인 것은 아닙니다. 이단은 정통이나 기존의 권위에서 벗어나거나 반하는 해석을 제시하지만, 사이비(似而非)는 한자 그대로 '비슷해보이지만 기실 다른 것'입니다. 이단이 정통에 기준한 '차이'를 지향한다면, 사이비는 억지로 '닮음'을 지향합니다. 한쪽이 헬무트 랭의 패션 레거시라면 다른 한쪽은 중국산 짭퉁 구찌갱 같은 거라고 해도 되겠죠. 물론 양쪽은 다 정통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늘 위험이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정통도 마찬가집니다. 정통은 너무 정통적이라서 속으로부터 곪는 줄도 모를 위험이 있으니까요.
예측한 사람도 있겠지만, 이 ⟨30⟩이란 교파는 유다가 예수를 팔아넘기고 받은 "은돈 30"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30⟩은 '죄'를 통해서 규율되는 기존의 성서 해석과 달리 하는 집단처럼 묘사됩니다. ⟨30⟩ 교파는 재물과 저축에 관심 자체가 없으므로, 낙타와 바늘의 비유를 언급할 일이 없습니다. 기존의 교리 해석이 '간음하지 말라'는 금기로써 '간음한 자'와 '간음하지 않은 자'를 나누는 것과 달리, 그들은 '간통을 범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고 가르침으로써 죄를 이용해서 규율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예수를 믿는 것은 물론, 그런 예수를 은돈 30에 팔아넘기고 토기장이의 밭에 목을 메어 죽은 유다도 믿습니다.
잠시 딴 얘기를 하자면,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성서의 인물을 바라보는 기존의 입장은 명확하고 교조적입니다. 많은 이들이 유다가 탐욕에 눈이 멀어서, '고작' 은 30에 예수를 팔아먹은 인물로 묘사합니다. 그로써 유다는 오늘날 배신자의 대명사로 불리우며, 오늘에까지 욕보임을 당하는 인물입니다. 설교에서 유다는 언제나 반면교사의 사례로만 등장합니다. 근데 재밌는 점은 성서를 모르는 사람조차 유다를 배신자의 대명사로 활용하지만, '유다'라는 이름의 원래 의미에는 '하느님을 찬양하다'라는 뜻이 있다는 겁니다. 오늘날 유다는 '하느님을 찬양하다'라는 의미를 품은 채, 성서의 교훈을 부각하기 위한 배신자가 된 것입니다. '말씀'이 육화한 존재인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온갖 욕보임을 당하면서도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한 것이 떠오릅니다. 보르헤스는 바로 이런 점에 주목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보르헤스는 유다라는 인물을 매우 문제적으로 보고, 일전에 ⟨유다에 관한 세 가지 다른 이야기⟩라는 단편을 쓴 적 있습니다. 해당 단편에서 보르헤스는 루네베리라는 불경한 신학자를 내세워 유다를 옹호합니다. 신의 '말씀'이 자신을 낮추어 인간으로 육화한 것처럼, '말씀'의 제자인 유다도 자신을 낮추어 밀고자를 자처했다는 것이 그 신학적 주장의 골자입니다. 이 단편도 비슷한 입장에서 쓰였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기록자이자 역사학자인 에드워드 이번(Edward Gibbon)은 "십자가의 비극" 속에는 비자발적인 배우와 자발적인 배우가 있으며, 자발적인 배우는 예수와 유다가 유일하다고 적고 있습니다. 실로 예수와 유다의 행적은 유사합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예수는 십자가에서 내려왔지만 유다는 어찌보면 지금까지도 배신자이자 밀고자라는 오명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으며, 그로써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예수와 유다를 제외한 나머지인 우리는 스스로 무대 위에 올려져 있단 사실도 모르는 배우들이라고 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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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진실’을 알고 있지만 ‘진실’을 언어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무한한 가치의 은혜가 내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나보다 더 많은 은혜를 받은 다른 사람들이 언어를 가지고 이 교파의 신도들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 언어를 가지고, 또는 성령을 통해. 자살을 하는 것보다 처형을 당하는 게 보다 값진 일이다. 따라서 나는 그 혐오스러운 이단에 대한 설명으로 내 자신을 한정하고자 한다.
‘말씀’은 자신을 십자가에 매달고, 또한 자신에 의해 구원을 받게 될 사람들 중의 사람이 되기 위해 육신으로 화하였 다. 그는 ‘사랑’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뿐만 아니라 순교를 당하기 위해 선택된 백성 중 한 여인의 뱃속에서 태어났다. ”
『셰익스피어의 기억』 70-71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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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밤] 화자인 '나'가 어느 날 밤 삐에드다 구(區)의 외각에 자리한 한 가게에서 만난 어떤 중년의 사내에게 들은 얘기를 옮긴 형식입니다. 중년의 사내는 기억을 더듬어, 언젠가 전설적인 가우초 후안 모레이라가 잡혀 죽던 날 밤에 있었던 일을 들려줍니다. 사랑을 나눴던 개인적인 사연과 가우초 모레이라의 죽음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역사는 개인의 기억 안에 있는 것임과 동시에, 한 사연 안에서 반복된 패턴으로 등장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이 한번만 읽으면 별 감흥이 없습니다. 이게 뭐야 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고요.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진짜 독서는 '이게 뭐야'하는 지점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시시한 느낌을 간직한 채 다시 이 소설의 첫 문장, 첫 문단으로 돌아가면 달리 읽히는 구절이 눈에 띕니다. 이 소설의 화자가 인용하듯이 "누군가가 우리는 이미 전 세게에서 모든 것을 보았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다시 안다는 것을 뜻"하며, "배우는 것은 다시 기억하는 것이고, 알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 망각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마찬가지로 지난 날의 어떤 밤이 '은혜의 밤'이었는지 아닌지는 그 당시로는 모릅니다. 역사적 인물의 죽음을 목격한 순간과 한 개인이 내밀한 사랑을 경험한 순간은, 이렇게 한 개인의 기억 속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포로 여인이 자기 마을에 인디언이 습격해 오기를 바랐고, 실제로 인디언들로부터 습격을 받았던 그날 밤처럼, 어렸던 사내 역시 모레이라가 습격해오기를 바랐던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소설의 내용과 그리 다르지 않게모레이라는 실제로 한 식료품점에 숨어 있다가 경찰 부대에 포위당하고 총검에 찔려 사망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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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는 사랑을 알았고, 그리고 죽음을 보았던 거지요. 모든 사람들은 모든 것을 보고, 아니 적어도 모든 사람들은 그 두 가지를 볼 수 있게끔 운명지어져 있지요. 그러나 내게는 한 밤으로부터 아침 사이에 그 두 가지 본질적인 것들이 드러나도록 예정되어 있었던 거지요. 세월이 지났고, 나는 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들려주었는 지라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게 실제로 일어났던 그 사건들인지, 아니면 그것들은 내가 들려주었던 언어들인지 확실치가 않아요. 아마 라 까우띠바에게도 인디언의 습격과 관련하여 같은 일이 벌어졌었겠지요. 이제는 더 이상 모레이라가 죽는 것을 본 사람이 나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인지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지요. ”
『셰익스피어의 기억』 80-81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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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과 가면] 카프카의 단편에서 볼 법한 짧고 의뭉스러운 소설입니다. 카프카의 ⟨선고⟩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이 단편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후일 바이킹의 시대를 종식시켰다고 일컬어지는 클론타프 전쟁을 배경으로 합니다. 아일랜드의 대왕은 전쟁이 끝난 뒤 한 시인을 불러서, 자신이 아이네아스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밝힙니다. 따라서 시인이 아이네아스를 기록한 버질이 되어 "승리와 영광에 관한 시"를 지어줄 것을 요청하며, 1년이라는 시간을 줍니다.
1년 뒤, 반란이 일고 역병이 창궐하던 시기에 시인인 오얀은 시를 약속대로 시를 지어옵니다. 아일랜드의 왕은 감탄하며 그 신뢰의 증거로 거울을 하사합니다. 그리고 한 번 더 1년이라는 시간을 주면서 시를 지어와 달라고 부탁합니다. 오얀이 지어온 시를 보며 왕은 감탄하고, 황금 가면을 하사하면서 3이라는 숫자가 지니는 의미와 그 중요성을 역설함과 동시에 한 번 더 시인에게 시를 지어달라고 합니다. 1년이 더 지난 어느 날 오얀은 이전과 많이 달라진 행색으로 찾아와서 단 한 줄로 된 시를 읊습니다. 왕은 마찬가지로 시가 위대하다는 증거로 시인에게 단검을 하사합니다. 시인은 단검을 하사 받은 뒤 궁을 나서자마자 단검을 자결합니다.
보르헤스의 작품에서 거울과 가면은 정말 많이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저는 이 우화가 정확히 무얼 가리키는지는 모르지만, 거울과 가면이 모두 보르헤스의 소설에서 특유의 관념성을 만들어내는 소재라는 것은 압니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추가된 마지막 '단검'은 무얼 뜻하는 걸까요? 저는 그 상징과 은유에 대해서 알지도 말하지도 못합니다. 다만 거울과 가면이 무언가를 되비추고 가리는 용도로 활용되는 반면, 단검은 무언가를 찢고 가르고 베는 구체적인 용도로 활용된다는 사실은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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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죄⏤왕이 속삭이듯 말했다⏤, 인간은 알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미⟩를 알게 된 죄. 이제 우리는 그 죄값을 치러야 할 의무가 있는 거야. 나는 이전에 그대에게 거울과 금으로 된 가면을 주었지. 이제 마지막이 될 세번째 선물을 주도록 하겠네."
왕이 시인의 오른손에 단검을 놓았다. ”
『셰익스피어의 기억』 88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 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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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드르] 늘 그렇듯이, 이 단편도 해적판으로 추정되는 ⟪독일연감(Analecta Germanica)⟫이라는 책에서 발견한 한 원고로부터 시작합니다. 보르헤스는 해당 책에서 브레멘의 아담('아단 드 브레멘' 혹은 '아담 폰 브레멘')이 운드르를 찾아나선 이야기를 읽고서 그것을 자신이 스페인어로 직역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 보르헤스는 출처가 불분명한 이 원고를 입수하게 된 얘기를 하면서도 사실관계를 혼동하고 있습니다. 실수인지 의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요. 그 내용인즉, 라펜베르크라는 인물이 보들레르 연구소에서 소장 중이던 원고를 입수했고, 훗날 그것을 자신의 1894년 판 ⟪독일연감⟫에 수록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독일연감⟫이라는 책은 실존하는 책이긴 합니다만, 이 책은 독일어 문헌과 관련한 원고를 모아서 편집한 책이라서 특정 저자가 아니라 다양한 저자의 글이 포함돼 있습니다. 한 개인의 저서로 볼 순 없습니다. 나아가, 라펜베르크는 독일의 외교관이자 역사가로 추정되는 실존 인물인데, 그는 1865년에 죽었으므로 ⟪독일연감⟫에 운드르에 관한 글을 수록하기로 결정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이렇게 초반부 원고의 출처를 밝히는 내용의 사실관계는 전적으로 거짓은 아니나 왜곡돼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내용 얘기를 하겠습니다. 원고에서 브레멘의 아담은 룬 문자처럼 문자를 돌에 새기는 '우른'이란 종족을 만난 이야기를 전합니다. 아담은 아이슬란드 출신의 시인 울프 시거다슨을 만나서, 우른이라는 땅에서는 단 하나의 단어로 된 시를 쓴다는 얘기를 전해듣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그 한 단어를 찾는 여정을 떠납니다. 아담은 우여곡절 끝에 우른에 당도하고 군나르 왕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율하는 듯 현을 퉁기는 소리와 함께 그토록 바라던 '한 단어'를 듣게 됩니다. 아담은 그것이 자신이 찾던 한 단어임을 알았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그에 대해서 알려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나 왕의 사람들로부터 "지금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만 듣습니다. 나아가, 그 누구도 그 단어를 가르칠 수 없으며, 다만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만 말합니다. 그때부터 어떤 자기 희생적인 여정이 다시 시작됩니다.
한편, 작품 초반에 오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딘은 룬 문자를 얻기 위해 자신을 자신에게 제물로 바쳤다고 전해집니다. 오딘은 투창인 궁니르에 겨드랑이가 꿰뚫린 채로 이드그라실이라는 나무에 자신을 9일 동안 매달린 끝에 지하계에서 룬 문자를 알아내기에 이릅니다. 어떤 지(知)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보여주는 일화로도 유명합니다. 이런 일화는 단편에서 브레멘의 아담이 단 한 단어로 된 시를 찾아나서는 자기 반복적인 여정과 일견 닮아 있습니다. 아담은 세상을 돌며 여러 직업을 전전하고, 여러 사람인 모든 사람이 되며, 단 한 번의 사랑을 하고, 몇 번의 살인을 한 끝에 다시 우른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언젠가 한번 들었던 하프 현 튕기는 소리와 함께 '운드르'라는 단어를 듣습니다. 그 순간 자신이 거쳐온 인생의 모든 행로가 되살아가면서 브레멘의 아담은 하프를 쥐고 다른 어떤 단어를 노래합니다. 이윽고 "당신은 이제 깨달은 거예요"라는 말을 들으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굉장히 이상하면서도 매력적인 이야기입니다. 모든 말을 대신하는 단 하나의 말, 단 하나의 단어, 단 한 음절로 된 시에 대한 이야기일까요? 이번 단편집을 읽으면서 느낀 것인데, 보르헤스는 글쓰기에서도 점점 단순한 스타일로 나아갔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을 다루기보다는 좀더 짧고 교훈적인, 그런 오래된 형식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보르헤스의 길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게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듭니다. 선천적으로 약한 시력을 가지고 태어난 조부 세대를 보면서 보르헤스는 핏속을 흐르는 자기 운명을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표현했던 대로, "여름철의 황혼처럼" 시력은 천천히 잦아들었고, 꼭 그처럼 그가 천착했던 주제들도 그에게 서서히, 작고 소박한 형태로 찾아오고 있었던 겁니다. 브레멘의 아담도 마찬가집니다. 그가 군나르 왕 앞에서 처음으로 들었던 그 단어는 이미 주어져 있던 것입니다. 이후 아담의 삶은 그 주어져 있는 단어, 언젠가 한번 들은 말의 의미를 스스로 알아가는 기나긴 여정이었습니다. 인간은 찾는 존재가 아니라 회복하는 존재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 그 의미를 알기 위해서, 삶의 그 많은 신산함과 아름다움, 단 한 번의 사랑과 몇 번의 살인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읽었습니다.
russist
“ 나는 그 죽어가는 사람의 시에 금세 빠져들어갔지요. 그런데 나는 그의 시와 그의 음조 속에서 나의 시들과, 내게 첫사랑을 주었던 여자 노예, 내가 죽였던 사람들, 차가운 기운의 새벽, 물위에 비치는 여명, 노(櫓)들을 보게 된 거예요. 나는 하프를 집어들고 다른 한마디 말을 했지요. ”
『셰익스피어의 기억』 97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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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자의 유토피아] 제목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 먼 미래 시대를 살아가는 '어떤 남자'를 만난 이야기입니다. 어떤 갈등과 여정이 있는 이야기라기보다는 간밤의 꿈에서 만난 사람과 나눈 대화록 같습니다. '나'는 수천년 후의 미래인인 어떤 남자를 만나서 대화를 나눕니다. 그 주제는 언어, 독서, 시간, 국가, 정치, 사유재산, 노년, 문화, 이름, 시간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어떤 남자'가 말하기를 미래의 세계는 라틴어로 되돌아갔으며, 인쇄는 폐지되었고, 정치인은 모두 사라지고 코미디언이나 심령치료사가 되었으며, 더 이상 시간은 분절되고 지엽적이지 않으며 다만 연속적인 것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언젠가의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히틀러는 박애주의자가 되어 있습니다.
재밌게 본 지점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나'가 '어떤 남자'와 환상 소설을 두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실로 여기는 두 권의 책으로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와 토머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드는 대목입니다. 또한 "언어란 일종의 인용체계"이며 미래인들에게는 인용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하는 대목도 흥미롭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다음 책을 읽는 속도가 줄어드는 것 같아요. 이전의 독서가 지금의 독서에 끊임없이 개입하고 훼방을 놓는다고 느낍니다. 모르긴 몰라도 제 머릿속에서도 어떤 서재가 있어서, 새로운 책이 들어올 때마다 전체의 큐레이션을 바꾸어야 한다고 느껴서 그런 게 아닌가 합니다. 새 책이 들어오면 새로 배열해야 하기 때문에 점점 다음 책을 읽을 때 버겁고 더뎌지는 이상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소설 속 대화에 더 공감이 갔습니다. 미래인들에게는 더 이상 인쇄물이 없다는 얘기가 저에게는 의미심장하게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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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2천 권의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내가 살았던 4세기 동안 나는 채 여섯 권의 책조차도 읽지 못했을 겁니다. 인쇄란, 이미 폐지된 것이지만 인간의 가장 나쁜 해악들 중의 하나였지요. 왜냐하면 그것은 불필요한 텍스트들을 현기증이 일 정도로 증식시키곤 했으니까요. (···)
그것들은 읽고 나서 곧 잊혀져야 할 것들이었지요. 왜냐하면 또 다른 자질구레한 것들이 그것들을 지워버리게 될 것이었으니까요. 모든 직무 중 정치적 직무야말로 가장 공적인 거지요. 한 사람의 대사, 또는 장관은 모터사이클과 현병들에게 둘러싸이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길고 떠들썩한 자동차 행렬과 함께 움직여야 하는 일종의 불구자지요. 그들은 마치 다리가 잘린 사람들 같아, 하고 내 어머니가 말씀하시곤 했지요. ”
『셰익스피어의 기억』 102-103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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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수] '미국성'이라고 할 만한 특성이 잘 드러난 단편이 아닌가 합니다. 앞서 살펴본 몇 개의 단편과 마찬가지로 '이민자'로서 아이너슨과 '자국민'으로서 윈드롭이 서로 맞서다가 그 이후에 일견 화해하는 구도로 흘러갑니다.
중간에 문학적인 논쟁 내용은 잠시 접어두고 보더라도, 아이너슨이 이민자로서 주류 학계에 편입되려는 욕망과 그를 뒷받침하기 위해 계략을 실행하는 과정은 감탄할 만합니다. 아이너슨은 자신과 허버트 중 한 사람이 콘퍼런스에 참여할 자격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서, 결정권자인 윈드롭을 포섭하려 합니다. 아이너슨은 참석자로 지명되기 위해서 계략을 짜는데, 그것은 자기 실명을 밝힌 채 윈드롭이 난처해 할 만한 글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일찍이 아이너슨은 윕드롭이 공개적으로 복수를 가할 성품도 아니거니와, 사소한 복수심에 불타 불이익을 주는 사람으로 비춰지기 싫어한다는 걸 간파하고서 그런 전략을 짠 것입니다. 결국 아이너슨은 윈드롭이 지닌 지식인 특유의 공명정대함을 십분 활용하고자, 자신의 포지션을 프로타고니스트에 둡니다.
아이너슨은 이민자로서 어떻게든 주류 학계에서 편입되기 위해 허영심을 발휘했고, 윈드롭은 자신을 난처하게 만드는 아이너슨에게도 끝까지 공명정대해야 한다는 지식인 특유의 허영으로 응답합니다. 이는 아이너슨이 작중 제기한 문제, 그러니까 문학에서 텍스트를 읽을 때 반드시 연대기적 순서에 따라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도 맞물립니다. 아이너슨은 연대기적 순서에 따라서 텍스트를 읽어야 한다는 기존의 관점을 부정하고, “일상적 언어가 침윤되어 있는 11세기의 시 ⟨무덤⟩으로부터 시작해 최초의 작품들로 거슬러 올라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안은 주류 학계로 편입되려는 아이너슨의 '어그로'인 동시에, 이미 윈드롭이 자신도 모르게 행하고 있었던 교육 방침의 과장된 거울상이었습니다. 아이너슨은 다만 그것을 일깨워주었을 뿐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대화에서도 보듯, 두 사람을 악수시키고 있는 것은 그들이 지닌 각기 다른 허영심, 그리고 문화적 용광로로 대변되는 미국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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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이 먼 곳으로 이민을 가려고 결정하면 그는 자신에게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철저하게 주입시킵니다. 근본적으로 문헌학적 성격을 띠고 있는 나의 첫번째 두 소품들은 나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것 외에 다른 어떤 목적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그것으로는 충분치가 않았지요. 나는 한 두 줄 정도 빠뜨릴까 모두 암송할 수 있는 말돈의 발라드 시에 관해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요. 나는 예일대학 출판부로 하여금 그것에 대한 비평서를 출판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지요. 당신이 알고 있는 바대로 그 시는 노르웨이의 승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후기 아이슬랜드 사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억측에다 얼토당토않다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그러한 반론을 포함시킨 것은 단지 영어 사용권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였을 뿐입니다. ”
『셰익스피어의 기억』 115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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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리노 아레돈도] 1897년 8월 25일,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있었던 대통령 총격 테러 사건을 보르헤스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당시 교회 예배를 마치고 나오던 보르다 대통령은 아벨리노 아레돈도라는 이름의 한 청년에게 암살당합니다. 보르헤스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인 이 사건과 관련한 자료를 보면서, 이 '외로운 늑대'의 내면을 픽션으로 추적해봅니다. 외로운 늑대, 외톨이 늑대란 기관이나 집단에 속해 있지 않고, 일체의 명령도 하달받지 않은 채 자신이 신봉하는 이데올로기에 따라서 테러리즘을 준비하거나 수행한 사람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마지막 대통령 총격 이후 아레돈도가 투항하면서 뱉는 대사입니다. 물론 이 대사들은 보르헤스적 상상력이 가미된 것일테죠. 그럼에도 이러한 대사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아레돈도는 총격 후에 이 모든 일을 스스로 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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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수나 장님에게 가벼운 경사를 따라 흐르는 듯한 시간은 마치 지하수처럼 흐른다. 자신의 은둔 생활을 반쯤 마친 아레돈도는 한 차례 이상 거의 시간 없는 시간을 경험하곤 했다. 집에 있는 세 개의 마당 중 첫번째 것에는 바닥에 두꺼비가 살고 있는 연못이 하나 있었다. 그는 단 한번도 영원의 경계선에 있는 그 두꺼비의 시간이 자신이 찾고 있는 시간이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 적이 없었다.
이제 목표의 날짜가 얼마 남지 않게 되자 그는 초조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려워진 그는 거리로 나갔다. 모든 게 다르게 보이고 더 커보였다. 한 모퉁이를 도는 순간 그는 불빛을 보았고, 그 주막으로 들어갔다. ”
『셰익스피어의 기억』 124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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