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제발트 읽기] 『공중전과 문학』 같이 읽어요

D-29
소설 『아우스터리츠』에 이어 에세이 『공중전과 문학』을 읽습니다. ※ 한 권을 세 시기로 나눠서 읽습니다. 9일씩 총 27일간 진행할게요. 내용이 가볍진 않습니다. ※ 한 시기 넘어갈 때마다 게으를 수 있도록 하루 텀을 두겠습니다. ※ 한 시기가 끝나면 간략히 [#소감] 말머리를 달고 제 짧은 감상을 남기겠습니다. -1차 시기: 10/07-10/15 -2차 시기: 10/17-10/25 -3차 시기: 10/27-11/04 안 읽고 얘기하셔도 좋고 아는 척 하셔도 좋고 생판 딴 얘기해도 좋습니다. 독서와 장기와 체스와 뒷담은 원래 훈수 두는 맛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참여 인원과 관계없이 10/7에 시작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1차 시기 시작~]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게오르그 제발트의 『공중전과 문학』을 읽습니다. 저는 금요일 오후인 오늘, 일찌감치 회사 일을 마무리하고 책을 펼쳤습니다. 각자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책을 펼치시길 바랄게요. 7쪽부터 머릿말에서 "질서 강박적인 우리"에 관한 인상적인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1차 시기 열겠습니다. 책이 끝날 즈음에는 각자 뭔가를 가지고 돌아가셨으면 좋겠네요:)
편지의 상당수는 어딘지 기우뚱한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렇지만 집으로 배달된 다양한 문서와 편지에서 나타난 바로 그 미흡함과 갑갑함에서, 수백만 명이 전쟁 막바지에 겪었던 그 유례없는 민족적 굴욕의 경험이 결코 발화된 적도 당사자들끼리 공유된 적도 없으며, 후세대들에게 전해진 적도 없다는 것을 읽어낼 수 있었다. 장대한 독일 전쟁・전후 서사시가 오늘날까지도 쓰인 적 없다는 거듭된 한탄은, 질서 강박적인 우리의 정신에서 생겨난 절대적 우유성의 폭력 앞에서 우리가 좌절한 (어떤 점에서는 전적으로 이해할 만한) 것과 연관이 있다. ⏤본문 8-9쪽.
예전 독일을 여행하고 쓴 에세이에서 기차내에서 보였던 동양여자를 쳐다보던 독일할머니에 대한 작가가 느낀 소감의 내용이 문듯 생각났어요 자부심이라고 할 수도 없고 민족적 우월성??,,... "절대적 우유성" 이라는 단어가 어울릴까요
어떤 에세이일까요? 제발트인가요? 궁금하네요. 인용문은 전후 독일의 질서강박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쓰여진 것 같습니다. 우유성은 일상 대화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 철학 개념이라고 하네요. 참고 자료가 있어서 알려드립니다. "사물이 지닌 성질에는 그 성질이 없어지면 사물 자체도 스스로의 존재를 잃어버리는 것과, 어떤 성질을 제거하여도 그 사물의 존재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 있다. 후자의 성질을 가리켜 우유성(Accident, 偶有性) 또는 우성(偶性)이라고 한다. 즉 비본질적인 성질을 가리키는 말이다. 역사적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한 개념으로서, 중세의 스콜라 철학을 거쳐, 17~18세기에도 사용되었다."⏤네이버 철학 지식백과
김형경 작가의 "사람풍경"이었던것 같아요 우유성이 제가 생각했던 우유성이 아닌것도 같고요 공중전과 문학을 중간정도 읽다가 이해가 잘 안되기도 하고 잘못읽고있나 싶기도 해서 처음부터 다시 읽고 있네요 조금 천천히 읽어보려고 하네요
김형경 작가였군요. 예전에 심리 에세이인 좋은 이별을 읽은 적이 있어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한번 읽어봐야겠군요. 저도 우유성이라는 단어를 여기서 처음 접했어요. 실체 속에 내재된 성질을 의미하며 무게, 모양, 색깔, 소리, 맛 따위를 일컫는다고 하네요. 예컨대 소크라테스가 햇볕 아래서 몇 시간을 보낸 후에 얼굴이 그을렸다면 이 자체는 우연적인 변화인데, 이때 실체가 소크라테스라면 얼굴의 창백함이나 그을림의 정도를 우유성이라고 구분했다고 하네요. 본질적인 것을 의미하는 실체의 반대 개념으로 제시되며 우연적인 속성을 지칭하기 위한 철학 개념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혹 틀렸다면 누구라도 언제든 알려주세요. 로즈마리님 덕분에 저도 꼼꼼히 여러 번 읽고 있습니다. 잘 이해가 안 되긴 저도 매한가지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머리말 우리는 시선을 뒤로 향할 때, 특히 1930년에서 1950년 사이의 시기로 향할 때면 항상 시선을 던지는 동시에 거두어들인다. 자신들이 보았던 것을 기록하고 그것을 우리 기억 속에 짜넣어두는 데 한 세대의 독일 작가 전체가 그토록 무능했던 가장 주요한 원인은 후세에 남길 자기 이미지를 미화하는데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집착했기 때문이다. [단상] 패배와 굴욕의 경험을 공유하고 후세에 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후세에 남길 자기 이미지의 미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쟁 직후 현실을 직시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했을 수도 있겠지요. 시선을 던지는 동시에 거두어들인다. 그 동시성이 눈 앞에 암막을 드리웁니다. 1997년 대학 강연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1999년 출간했다고 하니, 이 문제 제기를 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군요. 처음 글을 써봅니다. <이민자들> 이후 다시 제발트의 글을 읽어보는군요. 조금씩 읽으면서 밑줄과 단상을 공유해보겠습니다.
환영합니다:) '이민자들'도 앞으로 읽어갈 목록에 포함돼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도와주시면서 좋은 감상 공유해주시길...
화제로 지정된 대화
휴일인 오늘 책을 읽다가 제가 시기만 구분하고 분량은 고지를 안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뒤늦게 알립니다. 꼭 다 읽을 필요는 없지만 구분해 둘 필요는 있을 것 같아서 고지해드립니다. -1차 시기(10/07-10/15): ~95p (취리히 강연인 <공중전과 문학>이며 1, 2부로 구성됩니다.) -2차 시기(10/17-10/25): ~143p (취리히 강연 후, 작가가 보충 의견을 단 <공중전과 문학> 3부 입니다.) -3차 시기(10/27-11/04): ~194p (알프레트 안더쉬와 그의 문학을 다룬 <작가 알프레트 안더쉬>입니다.)
@russist 님, 제발트 읽기를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서 너무나 죄송합니다. 얼른 책을 읽고 소감을 남기고 싶었는데 이제야 그믐에 들어왔습니다. 함께 참여하는 사람으로서 russist님 기운이 빠지셨을 것 같아 정말 송구합니다. 변명을 하자면, 지난주에는 저희 강아지가 갑자기 아파서 아이 데리고 이 병원 저 병원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고 지금은 제 손목 고질병이 도져서 손을 쓰는 게 여의치 않습니다. 이 글은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프로그램 기능을 사용해서 작성 중이에요. 아우스터리츠를 끝까지 마무리하고 나서 <공중전과 문학> 참여하면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음성 변환 기능이 인식률이 낮아요. 그나마 괜찮은 손으로 오타를 고치는 데 이것도 보통일이 아니네요. 손이 좀 나으면 다시 인사를 남기겠습니다.😭😭😭
별 일 없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죠. 모임은 강제가 아니니 괘념치 마세요. 저 역시 모임지기로서 아주 느슨하고 게으른 정도의 책임만 다할 뿐입니다. 까만콩님의 의견을 보는 것도 좋았었는데 손목이 안 좋으시다니 아쉽네요. 여력이 되시는 선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언제든 모임에 참여해주시면 됩니다. 강아지도 까만콩님도 쾌차하길 바랄게요😀
공중전과 문학 1 새로운 현실을 창조해냄으로써 처음부터 어떠한 회고도 용인하지 않았으며 국민 모두에게 미래지향적일 것을 강권했고, 그들이 겪었던 일에 대한 완전한 침묵을 강요했다. 이 말 없음, 이 닫아버리고 회피하는 상태가 바로 우리가 1942년에서 1947년에 이르는 그 오 년 동안 독일인이 대체 무엇을 생각했고 무엇을 보았는지에 대해 왜 그토록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그들이 살던 그 폐허는 알려지지 않은 전쟁의 땅으로 남아버렸다. [단상] 말 없음 또는 말할 수 없음은 한 시대의 종지부를 찍고 나아가는데 장애물이 되는군요. 학살을 자행한 당사자에 대한 정당한 징벌이라는 의식이 입을 다물게 합니다. ‘라인 강의 기적’이 강권된 미래지향성과 강요된 완전한 침묵 하에 진행되었다고 말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전체주의의 연장인 듯 보입니다. 저도 궁금합니다. 그 오 년 동안 독일인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어떤 의미로 가해자로서 독일인들은 영국군의 폭격을 받으면서 자신의 과오를 씻고 있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요. 그런데 과연 한 대 때린 사람이 한 대 맞았다고 해서 퉁쳐지는 문제일지는 의문입니다. 특히 역사적 규모의 희생자가 나온 사건에서는 더욱 그러하구요. 그런 의미에서 가해자의 입에서 나오는 '나도 고통받을 만큼 받았다'는 말은 여러 의미로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걸 생각하면 역사의 과오는 눈눈이이식으로 평등하거나 공평해지지 않는 것 같아요. 결국 죽은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92-93 작전 수립자의 관점에서 주목한 측면은 그만큼 엄청난 두뇌와 자본과 노동력이 이 파괴계획에 투입되었기에 이 파괴계획은 잠재력의 무한 축적이라는 압박속에서 "결국 완수될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준다. ..... 그는 자신들이 싣고 간 폭탄이 결국은 값비싼 재화 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조국에서 그렇게 많은 노동력을 투입하여 폭탄을 생산하는데 그걸 산이나 벌판에 실질적으로 던져버리기란 불가능한 노릇이었습니다." [단상] 1차시기 분량을 읽었는데 제대로 소화하진 못한것도같아요 시대의 국제 체제 상황이 가혹성의 정당화를 부축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전 세대에는 없었던 급작스런 물량(여러가지 의미의)의 폭증 이것을 해소할 수 있는 방식과 방법의 부재 아직 책을 완독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렇구나 하고 던지는것이 왠지 어색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완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읽고 느낀 바를 보면서 저도 많이 배웁니다. 의견을 보면서 책을 다시 들춰보기도 하구요. 이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요? 폭탄을 노동력을 투입한 생산품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게 역설적이죠. 폭탄의 생산성은 폭탄이 투하될 지역의 생산성을 되레 말살하니까요. 생산성과 초토화/비생산성이 같은 공간에서 교차한다는 것이 전쟁의 속성 아닐까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2부의 마지막에서 제발트가 인용한 '벤야민의 진보의 천사'가 등장한 거라고 추측합니다. 아래 인용해드립니다.
“파편에 파편을 쉼 없이 쌓아올리며 그 파편을 자기 발 앞에 내던지는 단 하나의 파국을 (본다). 천사는 머물러 있고 싶어하고, 죽은 자들을 깨우고 산산이 부서진 것을 한데 모아 맞추고 싶어한다. 그러나 천국으로부터 폭풍이 닥치더니 그의 날개를 꼼짝달싹 못하게 할 정도로 강하게 불어대서, 천사는 날개를 접을 수도 없다. 이 폭풍은 그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그를 떠밀고 있으며, 그러는 사이 그의 앞에는 잔해더미가 하늘까지 치솟는다.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 폭풍이다." ⏤본문 95쪽.
2 이런 파국의 역사를 회고하는 탐구가 쓸모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뒤늦게서야 이루어지는 학습 과정은 오히려 사람들 내부에서 꿈틀대는 소망의 생각들을, 억압된 경험이 낳은 두려움에 아직 점령되지 않은 어떤 미래의 선취를 향해 선회시킬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 된다. 역사적 개연성에 맞서 만들어가야 하는 미래가 있다는 진지한 호소로 다가온다. […] 우리가 줄기차게 연출해내는 재앙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곧 행복의 사회체제를 만들기 위한 제1의 전제가 된다는 생각을 내포한다. 하지만 산업생산 관계의 발전으로부터 체계적인 파괴 계획을 역사적으로 도출하는 클루게의 작업을 보면, 추상적인 희망의 원칙이 정당성을 잃고 공허해보인다는 반박하기 쉽지 않은 사실이다. [단상] 왜 전범국 독일의 초토화된 도시들과 민간인들의 참상을 기록해야 하는가? 오히려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것은 아닌가? 그들 스스로 징벌로 받아들이고 침묵했던 것을 왜? 독일 전후 문학은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으로 이야기하고, 그나마도 극히 소수여서 문학적 성취를 이룬 작품은 거의 없습니다. 독일은 향후 만들어가야 하는 미래가, 억압된 경험이 낳은 두려움에 아직 점령되지 않은 미래가 있습니다. 참상을 낳은 역사적 개연성, 산업생산 관계의 발전으로부터 체계적인 파괴 계획을 역사적으로 도출하는 과정은 그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직시하고 원인을 찾고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독일 초토화 작전을 주도한 영국 뿐만 아니라, 독일 그 자신들도 같은 이유로 다른 나라를 초토화시키기도 했고 시킬 수도 있으므로.
[#1차 시기 ~95p]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조금 늦었습니다만, 1부 마치는 감상을 첨부합니다. 『공중전과 문학』 1,2부는 전후 독후 문학에서 나타난 집단적인 망각 현상을 직접적으로 다룹니다. 2차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1942년, 영국 공군이 독일 전역에 막대한 규모의 공중 포격을 가했고 그 참상이 이루 말하기 어려웠음에도, 그 구체적인 양상이 전후 독일 문학에서 배제된 것을 의문시하는 데서부터 저자는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압도적인 참상을 마주한 인간은 습관적이고 상투적인 말로써 자신을 보호하려고 했죠. 그것은 전후 독일 문학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저자는 주장합니다. 저자는 대표적으로 헤르만 카사크의 작품을 비판적으로 바라봅니다. 카사크가 “특유의 사이비 문체로, 사이비 인문주의와 동아시아의 철학 개념을 사용하고, 많은 상징주의적 잡소리를 동원하여 집단적 파국이라는 전대미문의 현실을 삭제”해 버리고 소설 속에서 "기록관리자로서 인류의 기억을 간직한 순수하게 고양된 영적인 사람들의 공동체”에 자신을 편입시킴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증언하기보다는 눈 앞의 참상을 예술적인 숭고함으로 대치시켰다는 것입니다. 이는 저자가 머릿말에서 ‘우리’로서 독일 민족을 지칭하면서, “시선을 뒤로 향할 때, 특히 1930년에서 1950년 사이의 시기로 향할 때면 항상 시선을 던지는 동시에 거두어들인다”(9쪽)고 지적한 내용과 완벽히 부합합니다. 이 부분은 진중권이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에서 흥미롭게 다룬 내용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개인적으로 이 책 자체는 지나치게 도발적이고 동의 안 되는 부분도 더러 있습니다). "나치의 세계관은 과학의 산물이 아니라, 처음부터 신화/전설/미신 등 예술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들은 외려 과학을, 자기들의 예술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를 입증하는 수단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들에게는 정치 자체가 커다란 예술적 사건이다. 말하자면 만화와 무협지를 읽고 구세계관을 가지고 권력을 잡아 이를 현실로 옮기려는 것이다. 물론 파시스트 대중들 역시 예술적이다. 이들 역시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에 과학이나 지식이 의존하지 않는다. 이들은 세계관의 공백을 파시스트가 쓴 역사소설이나 전쟁소설 따위로 메운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이론은 복잡하나 소설은 간단하고, 이론은 딱딱하나 이야기는 물렁물렁하고, 이론은 냉정하나 소설은 뜨거운 감동을 주지 않는가." 이것으로 1차 시기 마치겠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2차 시기 시작~]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9일 동안 『공중전과 문학』 3부를 읽겠습니다. 3부는 1,2부로 구성된 취리히 강연 이후에 쏟아진 여러 의견에 반응하여 저자가 작성한 일종의 보론입니다. 취리히 강연 이후, 저자는 강연 이후 "내가 접해보지 못했던 사례들이 등장함으로써" 대화가 더 풍성해지기를 바랐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실망감을 토로하며 글을 시작합니다. 그럼 제가 인상적으로 읽은 한 대목을 인용하며, 2차 시기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이른바 전투 시행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던 알프스 북부 자락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전쟁이 끝날 무렵 고작 한 살배기였기에 그 파괴의 시절이 어떠했는지 실제 경험에 근거해서 떠올릴 수는 없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 전쟁 당시의 사진이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볼 때면, 마치 내가 그 전쟁으로부터 태어난 것만 같고, 전혀 경험해보지도 않은 그 끔찍한 사건들로부터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어떤 그늘에 잠겨 있는 것만 같다. 장터마을이던 존트포펜이 1963년 시 승격을 기념하여 발간한, 지역 역사를 다룬 어느 책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전쟁이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우리에게는 우리의 아름다운 고향산천이 언제나 그랬듯 그대로 풍요롭게 남아 있다." 이 문장을 읽으면 내 눈앞에 한 폭의 그림 같은 들길, 범람원, 산정 초원들이 떠오름과 동시에 그 파괴된 참상이 함께 어른거린다. 그런데 내게 고향에 왔다는 그런 비슷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완전히 비현실적인 것이 되어버린 유년 시절의 전원 풍경이 아니라, 도착적이게도 후자의 파괴된 모습이다. ⏤99-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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