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름을 정말 많은 역할을 합니다. 존재를 인식하게 하기도 하지만, 라아비현님의 말씀처럼 선입견을 불러오기도 하는군요.
[도서 증정]내일의 고전 소설 <냉담>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
D-29
소전서가
실비향기
글을 읽는 독자가 나이자 그녀이자 또 소설에 나오는 그 누군가 일수도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덕분에 저는 읽으면서 상상하는 시점이 이 인물에서 저 인물로 잘 옮겨 가더라구요.
소전서가
독자가 각 장면과 인물들에 대한 이입이 쉬웠다는 것부터, 이 소설에 잘 맞는 좋은 방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마일씨
다른 분들 의견처럼 누구를 특정하지 않았다는 건 그 누구도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저는 남자의 모습에서 저의 어떤 모습을 보기도 했답니다.
소전서가
역시, 마찬가지로 저를 비롯하여 제 주변의 사람들을까지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2부에서의 주인공은, 독자와 좀 더 거리가 생깁니다.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하네요.
바르미
책의 내용도 코로나로 격리된 주인공의 여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코로나 때 감염된 사람에 대해 말할 때, 혹은 방송에서 이름이 아니라, 숫자였던게 기억하네요. 감염된 사람들에겐 마치 이름조차 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거 같아요. 그건 타인만 아니라 나 또한 그런 존재가 된 다는 것이겠죠
소전서가
네, 그렇군요. 코로나19 시기의 모습을 소설적 기법으로도 표현하고 있네요.
Henry
정확한 이유야 작가님만 알테지만, 제가 생각한 바로는 어디에서나 있고 혹은 어디에서도 없는 인물, 사건, 상황을 만들어 보이려는게 아닌가 했습니다. 그래서 흐릿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고요..
강츄베베
이름이 없다는 것은 확실한 대상으로 단정짓지 않겠다는 작가님의 의도가 있다고 봅니다. 독자들에게 자유성을 부여함으로서 '각자가 느끼는 대상으로 포괄한다'라는 넓은 의미의 배려라고 보여집니다.
또 한 편으로 이름이 없다는 것은 정체성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명확하지 않은 그 어떤 것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지요.
우리의 삶이 그렇듯 살다가 흩어지는 존재이니 세상속에 티끌과 같은 인생을 빗댄 것 같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소전서가
1-5. 「벽의 틈새」는 외전 소설로, <1부>와 <2부>의 징검다리 역할을 합니다. 주인공인 <나>가 격리소에서 겪는 모습을, 다른 주인공을 등장시켜 그 옆의 부가적 인물로서 보여 줍니다. 『냉담』에서 이 외전 소설이 가지는 역할이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밍묭
사실 책을 읽으며 뜬금없이 단편 하나가 끼워져있다 싶었는데 그게 외전 소설이었군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격리소 옆방에 있던 남자가 본편의 주인공이었던 것 같네요. 저는 이 부분은 다른 분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어요.
소전서가
네 다른 분들은 이 단편소설의 존재를 어떻게 여길까요. 저도 궁금해서 공통질문에 넣어 봤습니다. <차례>에 <외전>이라는 말을 넣었다가 마지막에 작가와의 협의하에 삭제했습니다. 정확한 용어인지 의심이 가기도 했지만, 독자분들 나름대로 이 단편소설의 의미를 가져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호디에
(1-5)
욘 포세의 <멜랑콜리아>에 이와 같은 장치가 등장합니다. Ⅰ과 Ⅱ 사이에 위치한 이야기가 언뜻 읽기에는 앞서 읽은 내용과 별개여서 굳이 왜 소설 중간에 위치해 놓았을까 궁금했다가 완독 후 그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외전인 <벽의 틈새>도 완독 후 다시 돌아와 생각해보겠습니다.
소전서가
와우. 얼마전에 저는 욘 포세의 <3부작>을 읽으려고, 구매했어요. 이렇게 언급해주시니 <멜랑콜리아>도 이후에 읽어 보고싶습니다. 그랬군요!!
슝슝
5가지 질문 중에 가장 생각의 시간이 길었던 문제입니다. 외전이고 <벽의 틈새>라는 말마따나, 이 틈새를 기점으로 주인공 ‘나’라는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시점이 변화하기 때문일까요? 아직 2부를 안 읽어 봐서 확신할 순 없지만 ‘벽’이 소설 내의 격변을 예고하는 틈새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위버m
미루는 삶을 살아온 자의 '삶'은 끝났기에, 주인공 '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을까요.
벽으로 나눠진 공간은 개인의 정체성을 지켜주지만 그를 유폐하는 장치도 되는 것 같아요. 끊임없이 공격받고 깨져서 틈새가 생겨나면 고통과 함께 어딘가에 닿을 수 있는 거고요.
소전서가
와우. 소름. 돋는. 해석.
끊임없이 공격받고 깨져서 틈새가 생겼네요. 김갑용 작가도 알고 있었을까요? 물어보고 싶네요.
이 소설 속 벽의 <틈새>는 그런 의미도 내포하고 있었군요.
팔뚝을 쓰다듬습니다.
장안나
격리소가 누군가에게는 고통이었겠지만, 저는 주인공이 격리소에 들어가기 전 삶이 바로 격리소에서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격리소에서 주인공은 편안해 지지 않았을까요? 누군가의 눈치도 볼 필요없고, 시간을 맞춰야하는 것도 아니고... 강제로든 아니든, 격리된 삶을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소전서가
아, 그렇군요. <격리>라는 것을 물리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하게끔 하는 소설이네요.
실비향기
아직 1부만 읽어봐서 책 중간에 있는 이 외전의 역할이 무엇인지 섣불리 말하기는 어렵겠지만요. 저는 마지막에 주인공 옆방 남자분은 기침이 심해지고 실려갔고, 딸은 그 때의 기억을 거의 잊었다는 부분을 읽 고는 그 분이 죽었다고 생각했거든요. 묘사를 보니 주인공은 옆방 남자분이 죽은 사실을 아는 것 같아요. 1부에서 주인공이 계속 "죽음!"을 느끼고, 혼란이 가득한 늪 같은 꿈을 계속 헤메이는 건 죽고 싶으나 죽지 못한 자의 머릿속을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옆방 남자분의 죽음으로 주인공의 생각이 좀 바뀌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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