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은 지식이자 공부의 공간인 거를 의미하는 거처럼 도서관의 나무는 지식의 함양을 의미하는 듯 합니다.
[도서 증정]내일의 고전 소설 <냉담>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
D-29
김정환
소전서가
이 작품속의 도서관은 우리가 당연히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인식인, <지식과 공부의 공간>은 아닙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지식의 함양이라는 해석은.....그 이후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습니다.
슝슝
지난 달 환경영화제에서 본 <화이트 플라스틱 스카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오버랩되었어요. '돔'이라는 공간 묘사가 유사했고, 이 영화도 디스토피아 장르라서 돔 안에서만 무균실 사람들처럼 살고 있거든요. (돔 밖은 사막화) 그래서 거기에 비추어 상상하며 읽게 되었는데 맞는지 모 르겠어요. 그 영화는 수명이 50세라서, 50 넘으면 후손을 위해 나무가 되어 '죽어줘야' 하거든요.(정부 방침이고 자진해서 수명 단축도 가능) 그래서 냉담 속 '그녀'도 죽어서 수목화가 됐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전서가
소설과 다루는 방식이 다르나 말씀하신 영화의 세계관도 매우 인상적이에요. 공동체와 개인의 영역을 다룬다는 점에서 <냉담>과 또한 겹칠 수도 있겠고요.
호디에
도서관은 고립된 장소이자 동시에 안전한 장소 같습니다. 외로움에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만, 막상 문을 열면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그에 따란 상처가 두렵기 마련이잖아요. 출구를 찾지 못하는 것 같아도, 어쩌면 안전을 핑계로 우리 스스로 출구를 찾을 의지를 스스로 닫아리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소전서가
말씀이 인상 깊어요. 현실의 도서관도 그렇게 느껴질 때가 간혹 있어요. 그래서 <냉담>은 도서관을 가차없이 부순 걸까요? 화자를 밖으로 내보내기 위하여?
담는결
P.260-262 검은 정사각형의 거석이 떨어지는 장면이 새로웠고 <그>는 왜 헬리콥터가 멀어지기를 기다린 걸까 의문도 든 장면.
도서관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던 걸까요.
소전서가
그렇게도 바라볼 수도 있겠네요! 아니면 겁을 먹었을지도요! 화자는 이전에 거석이 떨어질 때 어떤 비행체가 공습을 준비핸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실비향기
보르헤스의 '픽션들'에 나오는 '바벨의 도서관'을 읽는듯한 느낌이 나기도 했고, 하여간 보르헤스 소설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어요. 전체적으로 어렵고 기묘하긴 했는데, 마지막에 공중을 걷고 네모난 상자같은게 도서관 위로 떨어지고... 네모난게 도서관으로 떨어지는게 인셉션에 나오는 꿈을 깨는 킥 같은 거였을까요? 도서관 장면이 전체적으로 의문이긴 합니다..
소전서가
저도 처음에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과 <인셉션>이 떠올랐어요! 사고 실험적이고 꿈같은 이미지가 두 작품을 떵올리게 되는 지점인 듯해요. 하지만 김갑용 작가의 <냉담>은 두 작품과는 다른 지점이 있는데, 무한하지 않고 지극히 유한하며, 무엇보다도 현실의 장소가 지니는 평범성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는다는 점일 거예요. 김갑용 작가만의 비관이 가상 공간에 반영되었달까!
parkhy
도서관이 삶의 터전인 저로서는 소설속의 도서관이 너무 낮설고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고립되고 비밀스런 무언가가 있는 공간처럼 묘사되거나 숨겨진 노동들이나 계층 있는듯한 묘사라던가...솔직히 무엇을 상징하기위해 도서관을 사용했는지 잘 와닿지는 않습니다...
소전서가
저 역시 이 소설 속의 비밀스러운 공간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아직도 명확히 답을 찾지 못했어요... 작가의 도서관을 향한 비관적인 인상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이 소설의 본문은 충분히 답하지 않는 것 같아요.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요. 오히려 도서관이 지니는 영속성이나 가치를 모독하는 듯한 말로도 마음에 걸리고요. 저는 화자 개인의 내면에 세워진 절대적인 도서관을 스스로 허물어뜨리는 것이라고도 유추해 보기도 해요...
장안나
도서관이 결국엔 또다른 코로나 격리 수용소처럼 되어 버렸어요. 주인공은 또다시 그런 상황에 몰렸는데 사실 1부에서처럼 주인공은 함께 있어서 격리된 느낌. 그리고 그건 물리적인면에서 뿐만 아니라 심적인 면에서도 그래서 제목도 냉담인가 봅니다.-이 내용은 다른 부분에서 쓰라고 하셨던 것 같지만...-(사정이 있어서 2주차 책을 아직도 읽고 있답니다 ㅠㅠ)
화제로 지정된 대화
소전서가
2-5. 소설이 2부로 넘어가면서 인칭이 바뀝니다. 이런 소설의 기술 방식이 독서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밍묭
저는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읽으면서 헷갈리더라고요..ㅎㅎ
소전서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처음엔...... 헷갈리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눈치를 못 챘습니다. 그러다가 아, 왜 이렇게 갑자가 <개인>의 이야기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로 확장시키는 걸까? 왜 이런 거리를 두는 걸까? 그때부터 <그><나><너> 모든 게 헷갈렸어요.^^;;
하지만 그게 전반적으로 작가가 <고유명사를 쓰지 않았던 점>과 연결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엔 정말 더 본격적으로 주인공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것이로구나!하는 생각으로 점점 더 기울더라고요. 그런 관점에서 읽어 보시길 추천합니다.
밍묭
저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네요...ㅋㅋㅋㅋ 그래도 작가님이 작품을 쓰셨을 때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었을 텐데, 솔직히 제가 그 의도를 왜곡해서 해석하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소전서가 님의 답변을 보고 나니 받아들임에 정답은 따로 없겠구나 싶기도 해요.
소전서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소설은 작가가 쓸 때 지녔던 하나의 의미만을 지니지는 않게 되는 거라고도 저는 생각해요!
슝슝
저는 이런 신선한 시도 좋았습니다. 교과서에서 시점 배울 때 이렇게 인칭이 오가는 소설을 써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김갑용 작가님이 구현해 내셨네요... 존경합니다 ㅎㅎ
소전서가
저도요! 한 방식으로 고정된 화자의 시선이 어떤 관점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고 우리가 은연중에 느꼈을 수도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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