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책을 읽기 시작한지 일주일 되었는데 어떤 글을 써야할지 썼다 지웠다 반복하고 쓰게 됩니다. 소설을 좋아했던 제가 시를 좋아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고심 끝에 첫번째 기록을 남깁니다. 또, 나희덕 시인님과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음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우선 이번주에 읽고 느낀 점은 이 시집의 곳곳에 '피'라는 소재가 묻어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붉은 거미줄'부터 '매혈'이 담긴 소재 뿐만 아니라 시체와 시신 그리고 죽음에 대한 단어들을 시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으며, 그 사이사이에 '동사'에 대한 쓰임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흐르다', '지나가다' 등의 시에서도 그렇습니다.
특히 '흐르다'라는 시를 읽고 마음에 와닿았던 점은 '흐르다'라는 단어를 제가 떠올렸을 땐 곧바로 수직성을 띈 단어로 생각을 했었는데, 수평적인 흐르다에서 '흘러내리다'로 단어가 확장된 동사라는 점과 시인님이 마지막 단락에 작성해주신 수직성으로 가는 흘러가지 못한 '그때'가 무엇인지 궁금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외면해왔던 여러 사회 문제들을 시집 내에 다뤄주신 것 같습니다. 직접적인 어휘를 사용하신 시도 있고, 동사를 통해 개인에서 단체로 확장하여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의 배치 또한 그런 형식으로 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빵과 누룩같이 시들이 붙어있는 것이 연관성이 있게 배치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한 점이 시를 읽으면서 감정이나 시적 느낌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길고 좁은 방'에서는 정말 뜬금없이 입시 시절 노량진에서 거주할때의 집을 떠올렸는데요,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는 제가 느낀 것의 이상의 '방'을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점도 궁금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느낄 수 있게 다시 책을 찬찬히 살펴보며 '시인의 말' 속 작성하신 글을 보았습니다. 저의 짧은 생각으로는 <가능주의자>에서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 맺힌 자리를 한없이 외면하지 않고 내려다보는 자세 속에서 시가 갖춰야할 덕목과 위치를 고민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반절 밖에 읽지 못해, 더 읽고 의견을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나희덕과 함께 시집 <가능주의자> 읽기
D-29
중경삼리
가능주의자
@중경삼리님, 로그인이 잘 되지 않아 답변이 늦었네요. 시를 좋아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셨지만, 시집의 중요한 면면을 잘 짚어주셨어요. '피, 땀, 눈물' 같은 체액이 시집에 자주 보이는 것은 우리가 죽음과 고통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겠지요. 시란 기쁨이나 행복보다는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들에 더 마음을 기울이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특히 '흐르다'라는 시를 자세히 말씀해 주셨군요. 저는 '흐르다'라는 동사를 수평적 이미지로 떠올리곤 했는데, 어느날 눈물이 천천히 볼을 타고 흘러내릴 때 '흐르다'가 '흘러내리다'의 동의어라는 생각이 들면서 수직성의 기울기를 체감하게 되었지요. 마지막 연의 '그때'는 2연의 '그때'를 받는 말이기도 한데요. 특정한 시기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슬픔이나 죽음(인생의 하류)에 대해 깊이 숙고하지 않았던 과거를 말한 것이에요. 그리고 마지막 연은 '흐르다'라는 말의 기표가 눈물과 같은 물질성을 지니지 못한다는 것, 슬픔과 소멸에 대한 자각이나 표현이 지닌 근원적 한계 같은 것을 얘기한다고 할까요.
마지막으로, 시집의 시들을 배치할 때 말씀하신 사항들을 염두에 두고 4부로 나누었고요, 시들이 서로 연관되어 앞의 이야기나 질문을 받는 느낌으로 순서를 정해보았어요. 각 시편을 쓸 때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시집을 구성하면서 보니 그렇게 시들이 조금씩 누룩을 나누어 갖듯 어떤 단어나 생각들을 공유하고 있거나 서로 기대고 있더군요.
<길고 좁은 방>은 서울로 이사와 이직을 한 직후의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 관료적 사회에 대해 느끼는 답답함, 그러면서도 그 방을 벗어나지 않은 채 다소 자폐적으로 보내던 나날 속에서 쓰여졌어요. 이제는 그 길고 좁은, 햇볕이 거의 들지 않는 연구실에서 남향의 새 건물로 이사를 했답니다. 그 사이에 각박한 서울살이도 조금씩 적응을 했고요. 중경삼리님의 노량진 집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네요.
남은 시들도 천천히 읽으시면서 소감과 질문 나누어 주세요. 고맙습니다.
중경삼리
안녕하세요 시인님 이렇게 긴 답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답변을 읽고 단어의 확장에 대해 더욱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4부에 있는 시 몇편을 읽었습니다. 그 중, '이별의 시점'이라는 시를 읽어보아 짧게 그 느낌을 남겨보려고 합니다.
"언제 헤어졌냐는 질문에 손에서 으깨진 나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한다"
라는 구절을 읽고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꼭 서류로 헤어진 이별이 아니어도, 수많은 이별의 종류가 있는데 그 이별이 언제, 왜 헤어졌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이런 복합적인 말을 하지 않아도 단지 "으깨진 나비"로 이 모든 이야기들이 설명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이후 '찢긴 날개'와 '진액과 인편으로 더러워진 손가락' 등 이별의 이야 기가 "이제 이별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하자"라는 이야기를 이렇게 섬세하고 표현했다는 점이 인상깊었습니다.
그리고 노량진에 거주했을 때는 북향의 반지하방에 살았는데요, 당시 반지하방으로 어린아이들이 장난으로 물총을 쏜적도 있을 만큼 슬펐던 시절입니다(ㅠㅠ). 취직 후 지금은 남향의 햇빛이 쨍쨍한 집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돈은 없지만요! 저도 각박한 서울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시인님!
김새섬
'시인의 말' 중에 아래와 같이 써 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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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기우는 대로
피와 땀과 눈물이 흐르는 대로 가보면
통증과 배고픔과 추위를 느끼는 영혼들 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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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을 한다. 라는 문장을 아무리 읽어도 별반 감흥이 없는데요, 결국엔 우크라이나에 사는 어떤 "사람"이 피를 흘려 죽고 러시아의 한 "인간"이 슬픔과 죄책감에 눈물을 흘리는 거겠지요.
결국 고통은 오롯이 우리 영혼의 몫이라는 사실이 처연하게 느껴집니다.
까만콩
안녕하세요 나희덕 시인( @가능주의자 )님. 오늘 아침부터 <가능주의자>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두워진다는 것>도 참 좋았어요. '시인의 말'부터 한 장씩, 한 장씩 넘기며 시의 공간과 시간 속으로 잠입하는 중입니다.
특히 어떤 시는, 제가 근래 쓴 단편에서 인물이 맞닥뜨린 상황과 시의 정서와 시어들이 묘사하는 상황이 유사해서 무척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제 단편이 발표는 된 것이나, 조금 더 수 정해서 다시 발표 할 예정이라, 당장 소개를 못 드려 아쉽습니다.)
詩의 언어와 서사의 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 - 땅 속 깊은 곳에 동굴 같으면서도 우주처럼 펼쳐진 듯한 그 공간을
선생님의 시집에서, 시에서 만난 기분이 들어요. 남은 시들도 읽는 쾌락에 빠져 천천히 읽어가보렵니다. 좋은 작품, 감사드립니다! ❤
대왕만두
2부 "얼룩을 지우는 얼룩들"을 읽고 그냥 3부로 넘어갈 수가 없어요. 자동으로 그려지는 장면들 속에서, 살갗이 벗겨진 유령들이 저를 보고 있어요. 뉴스같기도 하고 삽화같기도 한 장면들을 보고 있자니, 제 피에 사는 거미들이 우글거려요. 화염과 검은 연기가 솟구치던 날, 나는 그 자동차 공장 옆을 나는 무심하게 지나 회식에 갔어요. 부서진 얼굴들을 지나 나는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죽음의 무진장을 지나쳤어요. 이 마음 속 얼룩 때문인가봐요. 3부로 건너가지 못하고 앉아 있는 게.
가능주의자
@고쿠라29 님, 지난 주 이태원 참사로 모두들 정신이 없는 상황이라... 답이 늦었습니다. 이태원뿐 아니라 말씀하신 대로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의 군사도발, 봉화광산 등 세상이 온통 위험과 고통으로 가득하네요.
가능주의자
@까만콩 님, 오래 전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이 2001년에 나왔으니 20년도 넘었네요.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쓴 시들이었어요. <가능주의자>에서는 개인적 고통보다는 사회적 고통에 대한 시들이 많은 편이지요. 최근 쓰셨다는 단편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군요. 언젠가 읽어볼 수도 있겠지요.
가능주의자
@중경삼리 님, 4부까지 거의 다 읽으셨군요. 재미없고 마음 무거운 시집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이별의 시점>에 나오는 "으깨진 나비"라는 표현은, 실제로 제가 어릴 때 손에 꼬옥 쥐었다가 나비가 으깨져 죽었던 경험에서 왔어요. 그 물컹하고 찐득한 느낌이 아직도 손에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이별에 대해선 그런 이물감이나 수치심, 죄책감, 두려움 등이 뒤섞여 있지요.
가능주의자
@대왕만두 님, 2부의 시들이 한국사회의 통점들을 다루고 있어 책장을 넘기기가 어려우시군요. 게다가 이태원 참사까지 일어나서... 힘드시면 시집을 내려놓고 나중에 마음이 가라앉으면 보세요. 차마 시를 읽지 못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그 태도가 더 중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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