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쿠라님, 안녕하세요? 궁금해하시는 표지에 대해 잠시 답변드릴게요. '시'와 '집'의 행을 분리한 것은 말씀하신 대로 '누구의 시'라는 뜻과 한 권의 시집이 시들이 모여있는 '집'이라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는 듯해요. '시집'이라는 말이 자동화되는 걸 잠시 낯설게 만드는 효과도 있겠고요. 출판사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제 짐작으로는... 그리고 시집 색은 시인의 선택이예요. 편집자가 어떤 색으로 할까 묻길래 '"죽은 피 색깔로 해주세요."라고 대답했지요. 시인의 말에 썼듯이, 피, 땀, 눈물이 자주 등장하고, 선혈보다는 죽음의 기억이 말라가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서였어요.
나희덕과 함께 시집 <가능주의자> 읽기
D-29
가능주의자
김새섬
와! 제가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을 '말이 자동화되는 걸 잠시 낯설게 만드는 효과'로 멋지게 설명해 주셨어요. 맞아요! 의례히 별 생각 없이 사용하던 단어들이 시에서 저의 기대와 다르게 쓰일 때 자동화가 잠깐 멈추고 그 단어와 문장을 가만 들여다 보게 될 때가 있거든요. 시집, 소설집. 별 감흥 없던 단어들인데 생각해 보니까 너무 예쁩니다. 시들이 모여있는 '집' 소설들이 모여있는 '집'
시집 색깔은 시인의 선택이군요. 이것도 몰랐던 사실이에요. 내친 김에 갑자기 궁금해져서 저희 집에 있는 문학동네시인선을 다 찾아보았습니다. 시인님이 선택한 색상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달리 보이네요. 그런데 전부 단색 표지인데 제32권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시인님 시집은 꽃무늬 배경이에요. 특별판이라 저희 집에 있는 버전만 표지가 다르게 제작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제까지 시집의 대문 구경을 실컷 했으니 이제 집 안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나나
박준 시인님의 그 시집 원래 표지는 갈색이에요. 아마 고쿠라님 가진 책이 특별판인가봐요.
김새섬
그런 거 같아요. 엄청나게 화려한 꽃 그림이 있어서 다른 문학동네시인선과 너무 느낌이 달랐거든요. 일부러 특별판은 이렇게 대조적인 느낌을 강조하는 식으로 만들었나 봐요.
가능주의자
바나나님도 반갑습니다. 요즘 난해한 시들이 많긴 하지만, 제 시들은 아주 어렵지는 않을 거에요. 소재들도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대상이나 풍경들이 많고요. 얼핏 단순해 보여도 여러번 읽으시면 또다른 의미나 감각을 읽어내실 수 있겠지요. 읽으면서 막히는 대목이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스케쥬리
안녕하세요. 중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데요, 교과서에도 자주 등장하시는 나희덕 시인님과 함께 시를 읽는 가을날을 보낼 수 있어서 기쁩니다. 학생들도 시를 어려워 하고, 저부터도 시가 아주 쉽게 다가오지는 않아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천천히 한 편씩 읽어나가 보겠습니다:)
김새섬
시집은 보통 제목이 길고 거의 문장 형태를 많이 봤는데요, <가능주의자>는 제목이 짧습니다. 이런 단어가 있었던가? 묘한 느낌에 갸우뚱해 하다가 시집 읽기 이제 시작합니다. 제목이 독특한 느낌이 들어 좋습니다.
가능주의자
@스케쥬리님, 반갑습니다. 저는 고등학교에서 7년 정도 국어교사를 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문학과 입시를 위한 교사의 역할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었지요. 내일과 모레 먼 지방에 다녀와야 해서, 우선 인사 나누고 갑니다. 일요일 저녁에 돌아올 예정이니, 그 사이에 몇 편씩이라도 생각 나누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가능주의자
@고쿠라29님, '가능주의자'라는 말은 제가 만든 단어예요. 그 함축적 의미는 표제작을 읽어보시면 아실 것이고요. '---주의자'라면 흔히 어떤 신념이나 이데올로기에 갇히기 쉽지만, '가능주의자'는 다양한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는 말이라 독단적 폐해가 덜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팬데믹으로 세계 전체가 답답하고 힘든 시기를 넘어왔는데, 그 속에서 ' 낙관적 가능성' 이 아니라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싶었어요.
김새섬
100페이지에 실린 '가능주의자' 표제작을 읽었습니다.
작년과 올해 제가 고민하고 생각했던 지점과 이 시가 많이 맞닿아 있어 조금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시절이, 시대가 그러했던 것일까요...
마치 꼭 제 마음 속에서 꺼낸 것만 같은 '가능주의자' 시구절을 이 곳에 조금 옮겨 적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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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무언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떤 어둠에 기대어 가능한 일일까요
어떤 어둠의 빛에 눈멀어야 가능한 일일까요
승언
안녕하세요 시인님! 한동안 시집을 읽지 못했는데 시인님 덕분에 오랜만에 시집을 펼쳐보았네요. 저는 시를 필사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아주 느리게 읽게 될 것 같아요. 그래도 시인님과 이렇게 소통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김새섬
저는 필사는 해 본 적이 없지만, 시를 방에서 소리 내어 가끔 읽곤 하는데요, 눈으로 읽을 때와 너무 다른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플레인송> 함께 읽기 독서모임에서 정용준 소설가님이 '시를 읽어내려고 하지 말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듯 언어를 감각적으로 통과시키길'이라고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글을 읽고 어쩌면 저도 모르게 이미 그렇게 목소리라는 형태로 시를 느끼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거든요.
@승언 님처럼 필사를 하시는 분들은 언어를 손가락으로, 손바닥의 감각으로 통과시키는 방식을 쓰시는 걸까 싶기도 하고, 시를 읽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네요.
가능주의자
@승언님, 반갑습니다. 시를 필사하면서 천천히 읽으시는 것이 좋은 독법입니다. 글씨체가 궁금하군요.
가능주의자
@고쿠라29님, 표제작 <가능주의자>가 평소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니 다행입니다. 지난 몇 년 우리가 지낸 몇 년이 그러했지요.
그리고 시를 읽는 방식 중에 낭독도 좋은 방법입니다. 시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일종의 목소리니까요.
중경삼리
안녕하세요, 책을 읽기 시작한지 일주일 되었는데 어떤 글을 써야할지 썼다 지웠다 반복하고 쓰게 됩니다. 소설을 좋아했던 제가 시를 좋아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고심 끝에 첫번째 기록을 남깁니다. 또, 나희덕 시인님과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음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우선 이번주에 읽고 느낀 점은 이 시집의 곳곳에 '피'라는 소재가 묻어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붉은 거미줄'부터 '매혈'이 담긴 소재 뿐만 아니라 시체와 시신 그리고 죽음에 대한 단어들을 시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으며, 그 사이사이에 '동사'에 대한 쓰임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흐르다', '지나가다' 등의 시에서도 그렇습니다.
특히 '흐르다'라는 시를 읽고 마음에 와닿았던 점은 '흐르다'라는 단어를 제가 떠올렸을 땐 곧바로 수직성을 띈 단어로 생각을 했었는데, 수평적인 흐르다에서 '흘러내리다'로 단어가 확장된 동사라는 점과 시인님이 마지막 단락에 작성해주신 수직성으로 가는 흘러가지 못한 '그때'가 무엇인지 궁금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외면해왔던 여러 사회 문제들을 시집 내에 다뤄주신 것 같습니다. 직접적인 어휘를 사용하신 시도 있고, 동사를 통해 개인에서 단체로 확장하여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의 배치 또한 그런 형식으로 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빵과 누룩같이 시들이 붙어있는 것이 연관성이 있게 배치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한 점이 시를 읽으면서 감정이나 시적 느낌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길고 좁은 방'에서는 정말 뜬금없이 입시 시절 노량진에서 거주할때의 집을 떠올렸는데요,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는 제가 느낀 것의 이상의 '방'을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점도 궁금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느낄 수 있게 다시 책을 찬찬히 살펴보며 '시인의 말' 속 작성하신 글을 보았습니다. 저의 짧은 생각으로는 <가능주의자>에서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 맺힌 자리를 한없이 외면하지 않고 내려다보는 자세 속에서 시가 갖춰야할 덕목과 위치를 고민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반절 밖에 읽지 못해, 더 읽고 의견을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가능주의자
@중경삼리님, 로그인이 잘 되지 않아 답변이 늦었네요. 시를 좋아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셨지만, 시집의 중요한 면면을 잘 짚어주셨어요. '피, 땀, 눈물' 같은 체액이 시집에 자주 보이는 것은 우리가 죽음과 고통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겠지요. 시란 기쁨이나 행복보다는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들에 더 마음을 기울이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특히 '흐르다'라는 시를 자세히 말씀해 주셨군요. 저는 '흐르다'라는 동사를 수평적 이미지로 떠올리곤 했는데, 어느날 눈물이 천천히 볼을 타고 흘러내릴 때 '흐르다'가 '흘러내리다'의 동의어라는 생각이 들면서 수직성의 기울기를 체감하게 되었지요. 마지막 연의 '그때'는 2연의 '그때'를 받는 말이기도 한데요. 특정한 시기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슬픔이나 죽음(인생의 하류)에 대해 깊이 숙고하지 않았던 과거를 말한 것이에요. 그리고 마지막 연은 '흐르다'라는 말의 기표가 눈물과 같은 물질성을 지니지 못한다는 것, 슬픔과 소멸에 대한 자각이나 표현이 지닌 근원적 한계 같은 것을 얘기한다고 할까요.
마지막으로, 시집의 시들을 배치할 때 말씀하신 사항들을 염두에 두고 4부로 나누었고요, 시들이 서로 연관되어 앞의 이야기나 질문을 받는 느낌으로 순서를 정해보았어요. 각 시편을 쓸 때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시집을 구성하면서 보니 그렇게 시들이 조금씩 누룩을 나누어 갖듯 어떤 단어나 생각들을 공유하고 있거나 서로 기대고 있더군요.
<길고 좁은 방>은 서울로 이사와 이직을 한 직후의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 관료적 사회에 대해 느끼는 답답함, 그러면서도 그 방을 벗어나지 않은 채 다소 자폐적으로 보내던 나날 속에서 쓰여졌어요. 이제는 그 길고 좁은, 햇볕이 거의 들지 않는 연구실에서 남향의 새 건물로 이사를 했답니다. 그 사이에 각박한 서울살이도 조금씩 적응을 했고요. 중경삼리님의 노량진 집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네요.
남은 시들도 천천히 읽으시면서 소감과 질문 나누어 주세요. 고맙습니다.
중경삼리
안녕하세요 시인님 이렇게 긴 답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답변을 읽고 단어의 확장에 대해 더욱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4부에 있는 시 몇편을 읽었습니다. 그 중, '이별의 시점'이라는 시를 읽어보아 짧게 그 느낌을 남겨보려고 합니다.
"언제 헤어졌냐는 질문에 손에서 으깨진 나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한다"
라는 구절을 읽고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꼭 서류로 헤어진 이별이 아니어도, 수많은 이별의 종류가 있는데 그 이별이 언제, 왜 헤어졌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이런 복합적인 말을 하지 않아도 단지 "으깨진 나비"로 이 모든 이야기들이 설명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이후 '찢긴 날개'와 '진액과 인편으로 더러워진 손가락' 등 이별의 이야 기가 "이제 이별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하자"라는 이야기를 이렇게 섬세하고 표현했다는 점이 인상깊었습니다.
그리고 노량진에 거주했을 때는 북향의 반지하방에 살았는데요, 당시 반지하방으로 어린아이들이 장난으로 물총을 쏜적도 있을 만큼 슬펐던 시절입니다(ㅠㅠ). 취직 후 지금은 남향의 햇빛이 쨍쨍한 집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돈은 없지만요! 저도 각박한 서울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시인님!
김새섬
'시인의 말' 중에 아래와 같이 써 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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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기우는 대로
피와 땀과 눈물이 흐르는 대로 가보면
통증과 배고픔과 추위를 느끼는 영혼들 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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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을 한다. 라는 문장을 아무리 읽어도 별반 감흥이 없는데요, 결국엔 우크라이나에 사는 어떤 "사람"이 피를 흘려 죽고 러시아의 한 "인간"이 슬픔과 죄책감에 눈물을 흘리는 거겠지요.
결국 고통은 오롯이 우리 영혼의 몫이라는 사실이 처연하게 느껴집니다.
까만콩
안녕하세요 나희덕 시인( @가능주의자 )님. 오늘 아침부터 <가능주의자>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두워진다는 것>도 참 좋았어요. '시인의 말'부터 한 장씩, 한 장씩 넘기며 시의 공간과 시간 속으로 잠입하는 중입니다.
특히 어떤 시는, 제가 근래 쓴 단편에서 인물이 맞닥뜨린 상황과 시의 정서와 시어들이 묘사하는 상황이 유사해서 무척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제 단편이 발표는 된 것이나, 조금 더 수 정해서 다시 발표 할 예정이라, 당장 소개를 못 드려 아쉽습니다.)
詩의 언어와 서사의 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 - 땅 속 깊은 곳에 동굴 같으면서도 우주처럼 펼쳐진 듯한 그 공간을
선생님의 시집에서, 시에서 만난 기분이 들어요. 남은 시들도 읽는 쾌락에 빠져 천천히 읽어가보렵니다. 좋은 작품, 감사드립니다! ❤
대왕만두
2부 "얼룩을 지우는 얼룩들"을 읽고 그냥 3부로 넘어갈 수가 없어요. 자동으로 그려지는 장면들 속에서, 살갗이 벗겨진 유령들이 저를 보고 있어요. 뉴스같기도 하고 삽화같기도 한 장면들을 보고 있자니, 제 피에 사는 거미들이 우글거려요. 화염과 검은 연기가 솟구치던 날, 나는 그 자동차 공장 옆을 나는 무심하게 지나 회식에 갔어요. 부서진 얼굴들을 지나 나는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죽음의 무진장을 지나쳤어요. 이 마음 속 얼룩 때문인가봐요. 3부로 건너가지 못하고 앉아 있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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