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애트우드의 <고양이 눈2>도 혼자 읽어볼게요.

D-29
나도 그렇다. 그러나 그럼에도 감정 노출이 많은 편. 매번 마음이 분분하다. 긍정하고 싶을 때도, 부정하고 싶을 때도 있다. 다른 사람의 감정 노출이 부담스러울 때도 많고 모르겠다.
독일군의 런던 야간 폭격이 시작되고, 폭탄은 사악한 은색 천사들처럼 공중에 떨어지고, 런던의 골목, 집, 벽난로, 굴뚝 모두 와해되어 버린다.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된 수공 새김 장식의 이인용 침대는 폭파되어 불타는 장작이 되고 역사는 파편으로 화한다. "이것은 한 시대의 종말이었다." 선생은 말한다. "너희로서는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이제 그 어떤 것도 예전과 똑같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기 말에 깊이 감동받는다. 그가 자기 말에 도취한 모습을 보는 것은 당혹스럽다. '어떤 면에서 같지 않다는 거지?' 나는 생각한다.
고양이 눈 2 p.79,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그는 자기 말에 깊이 감동받는다. 그가 자기 말에 도취한 모습을 보는 것은 당혹스럽다. '어떤 면에서 같지 않다는 거지?' 나는 생각한다.
고양이 눈 2 p.79,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이 부분 재밌었다. 자기 말에 도취된 누군가를 볼 때마다 대리 수치. 나도 자주 그래서 더 싫다.
이 모든 분필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이 모든 죽음의 통계 수치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무척 놀랍게 느껴진다. 여자들이 커다란 어깨심에 졸라맨 허리선, 거꾸로 맨 앞치마처럼 보이는 주름이 달린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다닐 때도 나는 살아 있었다. 나는 어깨가 넓고 챙 넓은 모자를 쓴 여자를 그린다. 내 손을 그린다. 손은 가장 그리기 힘든 부분이다. 소시지 덩어리처럼 보이지 않도록 그리는 것은 매우 어렵다.
고양이 눈 2 p.80,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여성의 옷차림에서 보이는 시간의 흐름. 여성의 사회적인 잣대도 달라졌지. 나도 라떼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바지는 다 스키니진인 줄 알고 청소년기를 보냈다. 진짜 끔찍.
나는 남자 친구들을 사귄다. 의식적으로 계획한 것이 아니라 그냥 일어난 일이다. 남학생들과의 관계는 너무나 쉽다. 내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내가 불편함을 느끼고, 자신을 방어할 필요를 느끼는 것은 항상 여자아이들과의 관계에서다. 남자아이들과는 그렇지 않다.
고양이 눈 2 p.80,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남자아이들은 본래 이런 침묵을 필요로 한다. 지나친 수다나 빠른 말로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부분은 말 사이의 침묵에 놓여 있다. 나는 우리가 공통적으로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것은 바로 도피다. 그들은 어른들과 다른 남자아이들에게서, 나는 어른들과 다른 여자아이들에게서 도피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일시적이고 비현실적이지만 어딘가에 존재하는 사막의 섬을 찾는다.
고양이 눈 2 p.80-8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맞네. 도피네. 나도 그랬다. 도피였다. 어른들과 다른 여자아이들에게서 도피.
나는 남자아이들에 대해 알고 있다. 그들의 머릿속에 오가는 생각들, 소녀들과 여자들에 대한 생각들, 다른 남자아이들이나 어느 누구에게도 인정할 수없는 일들에 대해 알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 몸을 두려워하며 자기들의 말에 대해 수줍어 하고, 비웃음을 당할까 조바심 낸다. 나는 그들이 탈의실에서 장난치거나 체육관 뒤에서 몰래 담배 피울 때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안다. '계집애', '개같은 년', '호박꽃', '화냥년' 같은 말은 여자아이들을 지칭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물론 더 심한 말도 쓴다. 나는 이런 말 때문에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이런 말이 황소 눈알 표본과 콧물 먹기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자신이 강하고 놀림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서로 주고받는 일종의 증거이기 때문에 곧이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런 용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그들이 진짜 여자아이들을, 아니면 특정한 여자아이를 싫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 여자아이들은 때로는 이런 단어의 대용물이고, 때로는 그 단어들이 구체화되어 나타난 것이며, 때로는 그저 배경 소음에 불과하다. 나는 이런 말 중에 어떤 것도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다른 여자아이들, 남학생들을 무시하며 복도를 걷는 여학생들, 자기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듯 머리를 흔들고 작은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다니는 아이들, 너무 큰 소리로 부주의하게 이야기하면서 아무도 속이지 못하는 여학생들, 아니면 부드럽고 순결하고 상큼한 척 행동하는 위선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그리고 계집애, 개같은 년, 호박꽃, 화냥년 같은 소리 없는 단어의 구름은 언제나 그들을 둘러싸고 있으면서, 그들을 지적하고, 축소시키고,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크기로 작게 잘라 버린다. 이 소리 없는 단어들을 다루는 비결은 단어들 사이의 공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 머릿속에서 몸을 돌려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마치 벽을 통과해 걷는 것처럼.
고양이 눈 2 p.81-8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우리 부모님은 때 묻은 얼굴을 하고 예측이나 통제가 불가능한 창피한 말들을 불쑥 뱉어 내는 장난꾸러기 동생들 같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최대한 잘해 보려고 노력한다. 내가 부모님보다 더, 훨씬 더 나이를 많이 먹은 느낌이다. 아주 늙어 버린 느낌.
고양이 눈 2 p.84,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그들을 심각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바로 그들의 몸이다. 수화기를 귀와 어깨 사이에 끼고 복도에 앉아서 나는 그들의 몸을 듣는다. 나는 말보다는 침묵에 귀를 기울인다. 이 침묵 속에서 이 몸들은 스스로를 재창조하고, 나에 의해 창조되며, 형태를 갖추게 된다. 남자아이들이 없어 심심할 때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들의 몸이다. 나는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담배를 들어 올리는 그들의 손을, 어깨의 경사를, 엉덩이 각도를 관찰한다. 곁눈으로 살펴보며 그들을 여러 관점에서 점검한다. 그들에 대한 나의 사랑은 시각적인 것이다. 내가 소유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속으로 말한다. '움직이지 마. 그대로 있어. 내가 가질 수 있도록.' 나에 대한 그들의 지배력은 눈을 통해 유지된다. 내가 그들에게 싫증을 느끼게 되는 것은 한편으로는 신체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시각적으로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고양이 눈 2 p.86,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여성이 남성을 시각적으로 탐하는 소설을 잘 본 적이 없어서 새롭고 와닿았다.
우리는 다리 위 가로등에서 비치는 희미한 불빛 아래 서서 난간에 몸을 기댄다. 그들의 팔은 내 몸을 감싸고 내 팔은 그들의 몸을 감싼다. 우리는 서로의 옷을 들추고 서로의 등뼈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나는 상대방의 등뼈가 부서질 듯 팽팽하게 긴장하는 것을 느낀다. 나는 몸 전체의 길이를 느끼고 얼굴을 만지고는 경탄한다. 남자아이들의 얼굴은 너무나 많이 변한다. 그들은 부드러워지고, 활짝 열리며, 아파한다. 그들의 몸은 순수한 에너지, 결정화된 빛이다.
고양이 눈 2 p.87,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협곡 아래쪽에서 한 소녀가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쪽이 아니라 벽돌 건물을 지나 협곡이 남쪽으로 넓게 뻗어 나간 곳이다. 그곳에는 양쪽에 버드나무가 서 있고, 쓰레기가 마구 버려져 지저분한 돈강이 호수를 향하여 천천히 굽이쳐 흐른다. 뒷문을 잠그지 않은 채 두고 밤에도 창문을 걸어 잠그지 않는 토론토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 사건은 모든 신문의 1면을 장식한다. 그 소녀는 우리 또래다. 근처에서 그녀의 자전거가 발견되었다. 그녀는 교살당했으며, 외설 행위를 당했다. 우리는 '외설 행위를 당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신문에는 그녀가 살아 있을 때의 사진들이 실려 있다. 그녀의 사진에는 몇 년이 지난 사진에나 생기는 사로잡힌 듯한 표정, 회복할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사라져 버린 시간의 표정이 서려 있다. 그 옆에는 그녀가 입고 있던 옷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다. 그녀는 앙고라 스웨터와 요즘 유행인 털방울이 달린 작은 털 깃을 입고 있었다. 나는 이런 깃이 없지만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녀의 것은 흰색이지만 암갈색도 구할 수 있다. 그녀는 스웨터에 빨간 보석 눈이 달린 두 마리 새 모양의 핀을 달고 있었다. 어느 소녀나 학교에 달고 다닐 만한 것이다. 옷에 대한 이러한 자세한 묘사를 보면서, 비록 그 묘사를 탐독하면서도, 나는 그녀가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평범한 옷을 입고 밖에 나갔다가 아무 경고 없이 살해당한 후,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보고 나를 점검한다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살해는 보다 엄숙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고양이 눈 2 p.88-89,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87쪽에 일레인과 남자아이와 섹슈얼한 스킨십에 대한 묘사가 아름다웠는데, 바로 다음 장에서 시작되는 이야기가 살해 당한 소녀다. 여자아이들은 마음 놓고 남자아이들을 사랑할 수 없지. 공존하는 현실이다.
코딜리어도 남자아이들과 사귀기는 하지만, 나와는 다른 식이다. 이따금 나는 내가 사귀는 아이를 통해 더블 데이트를 주선하기도 한다. 코딜리어의 상대는 항상 매력이 덜하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남자 친구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고양이 눈 2 p.9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그러나 코딜리어가 지닌 그 무엇인가에 남자아이들은 불편함을 느낀다. 그들에게 지나치게 집중하거나, 지나치게 공손하거나, 계산적이거나, 정도가 지나치게 행동해서 그런 것 같다. 코딜리어는 남자아이들이 농담을 했다고 생각하면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정말 재치가 있는 걸, 스탠." 남자아이들이 웃기려고 하지 않은 때조차 그렇게 말하곤 한다. 그러면 그들은 그녀가 자기를 조롱하는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 때로는 조롱하는 것이고 때로는 아닐 수도 있다. 부적절한 단어들이 흘러 나오는 경우도 있다.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다 먹고서 코딜리어는 남자아이들을 향해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너희들 충분히 포복했니?" 그러면 그들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쳐다본다. 그들은 냅킨 고리를 사용하는 부류의 아이들이 아닌 것이다.
고양이 눈 2 p.9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포복 2 抱腹 1. 배를 그러안음.
마지막 문장 냅킨 고리를 사용하는 부류의 아이들은 무슨 뜻이지.. 일단 앞에 부분은 재밌었다. 어릴 때 나도 그랬던 거 같다. 남자아이들이 낯설어서 낯을 많이 가렸다. 초등학교 중학교 땐 고장 나서 굳어 있었고, 고등학교 땐 발전했는지(?) 수줍음으로 발현돼서 오히려 인기가 생겼다. 갓 성인이 됐을 무렵엔 편해지면서 예쁨 받고 싶음에 발랄하게 다가갔고, 지금은 잘 보여야 할지 말지 고민하며 간 본다. 별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듯하지만 뇌가 팽팽 돌고 있다. 다가가야 할지, 거리 둬야 할지. 혼내줄지, 감싸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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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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