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애트우드의 <고양이 눈2>도 혼자 읽어볼게요.

D-29
그가 아니라 그의 욕구에 사랑에 빠진 거. 그럴 수 있겠다. '수박 과육처럼 무기력' 하다니. 이런 표현은 정말 어떻게 쓴 거야...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나와 부모님이 생각하는 나는 더 이상 일치하지 않는다.
고양이 눈 2 P.18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조제프는 마치 문제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수지 이야기를 내게 털어놓는다. 그는 말한다. "걔는 결혼하고 싶어해." 그녀가 비이성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과, 그런데도 그녀에게 이것, 이 엄청나게 비싼 장난감을 주지 않으면 그가 깊은 상처를 입을 것이라고 암시하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똑같은 범주에 집어넣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비이성적이며 변덕스러운 여자라는 범주. 나는 조제프와, 아니 그 누구와도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결혼이란 천한 짓이며, 대가 없는 선물이 아니라 저속한 거래라고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결혼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조제프는 위축되고 상처받을 것이다. 이 세계의 전체 구도 속에서 결혼은 그가 맡은 역이 아니다. 그의 역할은 비밀스러움과 거의 텅 빈 방, 그리고 해로운 기억과 악몽을 지닌 연인이 되는 것이다.
고양이 눈 2 P.183,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한 남자보다는 두 남자가 낫다. 아니 적어도 내 기분은 더 좋다. '나는 그 둘 다와 사랑에 빠졌어.'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리고 그 둘과 사귀고 있다는 것은 그들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마음을 정할 필요가 없음을 의미한다.
고양이 눈 2 P.214,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조제프는 이제까지 내게 항상 주어 왔던 것에 공포를 더해 준다. 그는 어떤 사람 머리에 총을 쏜 이야기를 해 주던 때처럼 대수롭지 않은 투로, 이 나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속한 존재라고 말한다. 만일 자기 여자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하면, 남자는 그 둘을 모두 죽이고 사람들은 그를 변호한다는 것이다. 자기 남자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경우 여자가 어떻게 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조제프는 손으로 내 팔을 타고 어깨까지 어루만지고, 가볍게 목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나는 그가 무엇을 의심하는지 궁금해한다. 그는 자주 내게 말을 하라고 요구한다. 그럴 때가 아니면 손으로 내 입을 막아 버리기도 한다. 나는 눈을 감고 그를 막연하고 변화하는 힘의 근원으로 느껴 보려 한다. 객관적 시선으로 보면 그에게서 무슨 바보 같은 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다.
고양이 눈 2 P.214,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아, 조제프 좀 더 짱난다. 이상하게 왜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조제프가 그리 싫지 않았지? 일레인이 조제프를 뜨겁게 미워하지 않아서 그럴까.
드디어 조제프의 소재를 파악하여 소식을 알리자 그는 완전히 넋을 잃는다. "그 불쌍한 아이, 그 불쌍한 아이. 그녀는 왜 내게 말하지 않았을까?" 그가 말했다. 나는 차갑게 말한다. "그녀는 당신이 화낼 거라고 생각한 거야. 자기 부모처럼 말이지. 임신 때문에 당신이 자신을 걷어차버릴 거라고 생각한 거야." 우리 둘은 그것이 가능성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조제프는 얼버무리며 말한다. "아니, 아니야. 나는 그녀를 돌봐주었을 거야."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말이다.
고양이 눈 2 P.22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여러 가지 해석이 뭐지? 결혼은 하지 않고 혼자 낳게 시킨 후 돌봐주기? 아니면 낙태 수술 시키고 돌봐주기?
조제프는 자신이 수지에게 저지른 짓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사건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자신이 수지에게, 그녀의 저항하지 못하는 순수한 육체에 무슨 짓을 가한 것이라고. 동시에 그는 그녀에게서 상처받았다. 그녀의 삶에서 그를 도려내 버리다니. 어떻게 그를 이런 식으로 대할 수 있는가?
고양이 눈 2 P.223,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아우, 진짜 꼴사납다. 그런데 뭔 줄 알겠다. 이랬던 남자들 몇몇이 떠오른다.
수지가 사라지자 우리 사이의 균형을 유지시켜 주던 것이 없어져 버렸다. 조제프의 무게가 통째로 내게 실려 있고, 그는 내게 너무 무거운 존재다. 나는 그를 행복하게 할 수 없고, 그런 자신의 실패에 분노를 느낀다. 나는 그에게 충분하지 못하다. 나는 부적절한 존재다. 이제 조제프가 약한 사람으로 보인다. 내게 매달리고, 창자를 들어낸 물고기처럼 무기력한 사람. 나는 여자 때문에 그렇게 무너져 버리도록 자신을 방치하는 남자를 존경할 수 없다. 그의 구슬픈 눈을 보며 경멸을 느낀다.
고양이 눈 2 P.224,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나는 존과 사랑에 빠졌다고 결론 내린다. 그러나 드러내지 않고 속마음을 감춘다. 그는 그 단어에 반감을 보이거나 속박되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고양이 눈 2 P.226,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내가 어울리는 화가들은 그저 마약이나 술에 취해 있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내게 말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서툴게, 움찔거리고 멈칫거리면서, 짧게 말을 꺼낸다. 그들의 문제는 대부분 여자 친구에 대해서다. 곧 그들은 내게 양말을 기워 달라거나 단추를 달아 달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들과 있으면 내가 그들의 이모쯤 되는 기분이다. 나는 질투에 허우적거리는 대신 이런 역할을 맡는다. 질투에는 미래가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고양이 눈 2 P.228,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작은 여동생이 항상 따라다니는 것을 오빠가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해진다. 내게 있어 그는 당연한 존재다. 내 삶에서 그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 나는 당연한 존재가 아니다. 한때 그는 단독으로 존재했고 나는 침입자였던 것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 오빠가 날 미워했는지 궁금하다. 어쩌면 나를 귀찮게 여겼는지도 모른다.
고양이 눈 2 P.243,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족하> 떠올랐음. 그래서 언니가 내 존재를 귀찮아하는 이유를 다시금 납득. 나도 동생이 이렇게 귀찮았겠지. 그런데 나도 동생이기도 하니 동생의 마음도 이해가 가서 또 잘 챙겨주고 귀찮아하고 미워하고 안타까워하고 뭐 그런 거 같다. 그냥 둘째로 태어나서 이렇게 양가감정 속에 빠져 살 수밖에 없는 듯. 왠지 친구들에 비해 내 세상은 뚜렷하지 않고 획일화된 느낌이 없어 항상 불안했는데... 어중간한 위치로 태어나고 존재하게 되어서 그런 가보다. 형제 순서에 따른 성격 이론이 있다는 데 요즘 들어 자주 곱씹어본다. 어릴 때부터 둘째라서 억울해!를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언급했는데 이젠 둘째라서 그래.로 궁서체 점 찍는 중. 진심 90프로.
족하들개이빨의 조카 관찰기. 비혼주의자 고모의 시선으로 조카를 바라보며 이 시대의 육아에 대해 생각한다. 언니를 올케라 부르라 하는 세상 속에서, 좋은 사람이 되고픈 욕심은 크지만 매일 좌절하는 작가가 그려낸 만화이다.
존이 들어와서 세라를 안아 올려 뽀뽀해 주며 수염으로 얼굴을 간질이고, 빽 소리를 지르며 웃는 그녀를 거실로 안고 간다. "엄마 몰래 숨자." 그는 말한다. 존은 항상 나를 대항해 가상의 동맹을 상정하고 둘이서 같은 편이 된다. 그것은 필요 이상으로 내 신경을 거스른다.
고양이 눈 2 P.254,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그러나 그 역시 세라를 사랑한다. 그것은 뜻밖의 일이었고, 나는 그에 대해 끝없는 감사를 느낀다. 그러나 아직까지 나는 내가 그에게 세라를 선물로 준 것이 아니라 그가 나에게 그녀라는 선물을 허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양이 눈 2 P.254-255,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우리는 어른들로부터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제 바로 우리가 어른이다. 그게 바로 가장 큰 쟁점이다. 우리 둘 다 어른이 된 것에 대해 완전히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우리는 누가 더 아픈가를 두고 경쟁한다. 내가 두통이 있으면 존은 편두통이 있다고 우긴다. 그가 허리가 아프다고 하면 나는 목이 쑤셔 죽을 지경이라고 맞선다. 어느 누구도 반창고 사 오는 일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린아이로 남아 있을 권리를 두고 싸우는 것이다.
고양이 눈 2 P.256,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이 부분 읽으면서 놀랐다. 그럴 수 있겠다. 언니랑 나랑 싸울 때 대체로 어린아이로 남아 있을 권리를 두고 뒤지게 싸운다. 그런데 이상하게 동생은 어른의 위치를 기꺼이 맡는다. 동생은 어른의 위치를 맡으면서 자신을 어리다고 배제하지 않는 것에 안도하는 것 같다. 이상하다..
근데 막내 같은 막내가 있고 오히려 막내라서 막내 안 같은(?) 막내가 있을 수 있고... 어떤 특징이 순작용을 하고 반작용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네. 인간의 어떤 공통적인 특성을 알아내고 싶은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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