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애트우드의 <고양이 눈2>도 혼자 읽어볼게요.

D-29
그 그림에 남자는 없지만 내용은 남자에 관한 것이다. 여자들을 추락하게 하는 그런 부류의 남자들. 나는 그들이 어떤 특정한 의도를 가진 것으로 묘사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날씨 같은 존재다. 그들은 아무 생각이 없다. 상대방을 흠뻑 젖게 만들거나 번개처럼 일격을 가한 후, 눈보라처럼 전혀 개의치 않고 자리를 옮겨 간다. 또는 그들은 가장자리가 거친 날카롭고 미끄러운 일련의 바위들이다. 발걸음을 신중히 디디며 이 바위들 사이를 조심해서 걸을 수 있다. 미끄러지면 떨어져 다치게 된다. 그러나 바위를 원망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타락한 여자'라는 말도 이런 뜻일 것이다. 즉 타락한 여자는 남자 위에 추락해 상처를 입은 여자다. 그 단어는 아래로 향하는 행동을 암시한다.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일어나는, 그 어느 누구의 의지에 의한 것도 아닌 움직임. 타락한 여자는 '아래쪽으로 잡아당겨진 여자'도 아니고 '뒤에서 떠밀린 여자'도 아니며, 단순히 '떨어진' 여자다. 물론 이브와 타락에 대한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 속에는 추락이나 타락에 대한 것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저 대부분의 동화처럼 먹는 것에 대한 언급만 있을 뿐이다. 「추락하는 여자」에는 사고 때문인 것처럼 다리에서 떨어지는 세 여자가 그려져 있다. 치마는 바람 때문에 종처럼 펼쳐지고, 머리카락은 위쪽을 향하여 나부끼고 있다. 그들은 저 깊이, 아래쪽에 보이지 않게 누워 있는, 거칠고 어둡고 아무 의지 없는 남자들 위로 떨어진다.
고양이 눈 2 p.134-135,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정확하게 긁어주는 글이다. 자주 떠올릴 거 같다. 어제 지인과 나눴던 이야기 주제도 남자였다. 신나게 떠들고 난 뒤 이 문단을 떠올리며 후회했다. 이야기 속 남자들은 개의치 않은 일화를 가지고 신경 쓰고 있는 내 에너지를 생각하니, 내 손해가 막심하다. 남자는 날씨 같은 존재라는 점에 공감했다.
그들은 날씨 같은 존재다. 그들은 아무 생각이 없다. 상대방을 흠뻑 젖게 만들거나 번개처럼 일격을 가한 후, 눈보라처럼 전혀 개의치 않고 자리를 옮겨 간다.
고양이 눈 2 p.134,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즉 타락한 여자는 남자 위에 추락해 상처를 입은 여자다. 그 단어는 아래로 향하는 행동을 암시한다.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일어나는, 그 어느 누구의 의지에 의한 것도 아닌 움직임.
고양이 눈 2 p.135,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그들은 저 깊이, 아래쪽에 보이지 않게 누워 있는, 거칠고 어둡고 아무 의지 없는 남자들 위로 떨어진다.
고양이 눈 2 p.135,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몇 살이죠?" 흐르비크 씨가 물었다. "열일곱 살요. 거의 열여덟 살이에요." 나는 말한다. "아." 그는 짧은 소리를 내며 마치 나쁜 뉴스라도 된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지금까지 뭘 했지요?" 이 질문은 마치 어떤 일에 대해 나를 비난하는 것처럼 들렸다.
고양이 눈 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나는 까만 파일에 보관해 두었던 그 그림들을 꺼냈다. 흐르비크 씨는 눈살을 찌푸리고 연필을 만지작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의시소침해고 그가 두려웠다. 그는 나를 내쫓을 힘이 있다.
고양이 눈 2 p.140,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그는 낮은 목소리로 덧붙인다. "당신은 미완성의 녀자예요. 그러나 이곳에서 완전히 끝나게 될 거예요." 그는 끝난다는 말이 못 쓰게 되고 끝장이 난다는 의미라는 것을 모른다. 그는 나를 격려하려고 한 것이다.
고양이 눈 2 p.143,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그들은 그 모델들과 자러 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치 그 여부가 자신들의 의향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듯이.
고양이 눈 2 p.154,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나는 그런 것을 혐오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특권을 부여 받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규율에서 예외적인, 규정조차 되지 않은 존재다.
고양이 눈 2 p.154,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일레인이 원하는 게 '나는 규율에서 예외적인, 규정조차 되지 않은 존재'인 것 같다. 대체로 예술가는 이런 욕망이 강하지 않을까. 나 또한 현실이나 시스템 바깥의 자유로움에 항상 목 말라 있고, 예술은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주니까. 모임에서 페미니즘 작품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일레인과 마거릿 애티우드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이런 마음이 이래서 그런 것 같다고, 그 마음을 안다고 자꾸 말했다. 그냥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분석되지 싶지 않은 마음. 울컥 뱉어진 것들이 여성의 성별이라고 이런 저런 이론으로 갇히는 느낌... 나도 이 마음이 가장 커서 독서모임에도 이걸 계속 말했는데... 페미니즘 바탕으로 논의하고 공부하려는 독서모임에 이런 소리가 얼마나 물에 술 탄, 술에 물 탄 말이었을까. 지금 나는, 그냥 잘 모르겠다. 선 바깥에서 놀고 싶다.
"넌 정말 너무해!"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다리를 꼬고 팔꿈치를 탁자에 올려놓는다. 나는 이렇게 사소한 일로 여학생들을 괴롭히는 것을 즐긴다. 그것은 내가 그들과 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고양이 눈 2 p.16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이런 욕망에 종종 사로잡히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욕설이다. 다른 사람들이 꺼려하고 삼가는 욕을 굳이 한다. 주변에서 뭐라 해도 한다. 재밌다. 밖에선 잘 안하고 집에 있을 때 자주 해서 가족들한테 혼난다. 안 할 생각은 없어서 맨날 하고 혼나는 중.
"정말 그렇죠?" 내가 말했다. 조제프는 전혀 귀 기울이지 않는 눈치였다. 좁은 실내 계단을 올라가면서 그는 내 목덜미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그가 손을 대는 곳은 다 무겁게 느껴졌다.
고양이 눈 2 p.178,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좁은 실내 계단을 올라가면서 그는 내 목덜미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그가 손을 대는 곳은 다 무겁게 느껴졌다.
고양이 눈 2 p.178,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이 부분 표현에 감탄했고 섹시하다고 생각했다. 조제프가 쓰레기가 맞긴 하지만 나도 그한테 매료되지 않았을까. 그의 불안, 혼돈, 난민이 되어 지반을 잃은 뿌리에 동질감(나는 내 존재나 유년기의 기억을 부정하고 싶어서 안전하게 디딜만한 지반이 없다고 느낀다) 느껴서 마음을 줬을 수도. 그래서 조제프와 일레인의 이야기에서 나는, 그냥 일레인이 되어서 읽었다. 일레인의 행동을 비판하거나 조제프를 욕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발생했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제프는 이번에는 선 채로 키스했다. 하지만 거북한 느낌이 들었다. 누가 창문으로 들여다볼까 봐 두려웠다. 그가 나보고 직접 옷을 벗으라고 요청할 것이 두려웠고, 나를 이리저리 돌려 보고 멀리서 감상할 것이 두려웠다. 나는 누가 내 뒷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시선이다. 그러나 조제프가 부탁했더라면 나는 그렇게 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주저하면 그의 고려 대상에서 제외될 테니까.
고양이 눈 2 p.179,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위에서 조제프를 욕하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이 마지막 문장을 메모하면서는 좀 화났다. 호호.
"나를 떠나지 말아 줘." 조제프는 언제나 사랑의 행위 후가 아닌 전에 나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견딜 수가 없었어." 이런 식의 말은 한물간 것이다. 다른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면 나는 우습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조제프는 다르다. 나는 그의 욕구와 사랑에 빠졌다. 생각만 해도 붉게 달아오르고 수박 과육처럼 무기력해지는 것 같다.
고양이 눈 2 p.18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나는 그의 욕구와 사랑에 빠졌다. 생각만 해도 붉게 달아오르고 수박 과육처럼 무기력해지는 것 같다.
고양이 눈 2 p.18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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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무라카미 하루키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앨리슨 벡델 - 펀 홈시무라 타카코 - 방랑소년 1저메이카 킨케이드 - 루시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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