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동안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의 역사, 특히 인종갈등의 역사를 인터넷도 찾아보면서 그나마 조금은 공부한 느낌이었습니다. 그저 영화나 책으로만 간간히 접해서 제대로 공부해본적도 알아보려고 해본적도 없었는데 이번기회에 제대로 미국의 민낯을 본느낌이에요. 물론 저자는 '이것이 미국이다'라며 미국의 역사중 오로지 인종적 갈등과 백인우월주의에 젖어 사리분별 못했던 무식한 조상들의 창피한 과거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 하고 있으니 미국인들 입장에서는 다소 불편하고 억울함도 느낄수 있겠지만 인종차별은 여전히 진행중이며 오히려 요즘처럼 극우보수성향이 점점 짙어지고 있는 미국(만의 일은 아니지만)에게 인류학자로서 다시한번 경종을 울리려는 도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워낙 미국이라는 나라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기도 하고 극우나 극좌들도 거리낌 없이 말도안되는 거짓선동이나 뻔뻔함을 시전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수준이니 이 글이 아무리 그들에게 뼈때리는 직언를 던질지언정 뭐가 바뀔까 싶기도 했구요. 그래도 그런 오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은 초강대국, 초선진국으로서 전세계의 수장역할을 하고 있고 인종차별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가장(?) 개방적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정치적 올바름(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을 실현하고있는 나라라는게 참 아이러니 한것 같아요.
시종일관 신나게 미국을 창피주다가(물론 미국을 향한 진심어린 염려와 걱정에서 라고 하셨지만) 마지막에 미국이라는 나라는 분명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나라다 라고 급하게 포장하신 듯한 느낌도 나고 그렇네요. ㅎ
[도서 증정] <사물의 표면 아래>를 함께 읽어요.
D-29
타피오카푸딩
타피오카푸딩
아, 그리고 위에 책 표지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고 저도 궁금해서 찾아봤어요. 왜 얼굴을 수국으로 가린 그림일까..
어디까지나 제 추측이지만 찾아볼수록 연관성이 우연처럼 눈에 띄네요.
수국은 미국 앨라배마주의 주화(state wildflower) 라고 합니다. 첫 챕터만 우선 읽어봐서 다른 챕터들의 내용은 아직 모르겠지만 특히 첫 챕터이자 유명한 '이것이 미국이다'의 내용과 연관이 있을것 같았어요. 앨라배마는 미국 남부의 주로 책에서도 인종차별이 심했던 주이기도 했고 책에 나온 로자 파크스의 '몽고메리 버스보이콧 운동'이나 마틴루터킹이 주도했던 '셀마-몽고메리행진', '피의 일요일' 등이 벌어진 주이기도 하니 상징적이기도 하구요. 아 름다운 수국과 앨라배마주에서 일어난 참혹한 인권탄압이 대비되면서 보여지는 이면에 감춰진 어두운 이야기가 제목과도 일맥상통하기도 해서 생각해봤습니다.
..
아 그런데 찾아보니 이 표지 커버는 한국어판이네요. ㅎㅎ 책커버 선택을 어떤분이 하셨느지는 모르겠지만 저만의 지나친 추측인것 같지만 뭔가 제 나름의 해석을 곁들이고 기억할거리를 만드니 더 흥미롭고 오래기억에 남을것 같네요. ㅎㅎ
아고라
사실 저희는 수국이 앨라배마의 주화인 줄은 몰랐어요. 타피오카푸딩 님이 써주신 글을 보고 '오, 이렇게도 연결되다니?' 하고 놀랐어요.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시고 또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타피오카푸딩
아ㅋㅋ제가 하나에 꽂히면 이것저것 찾아보고 조사하면서 읽는 스타일인데 서치하다보니 연결점이 있어서요^^ㅋ 전 첨엔 원래 있는 그림이 아닌 책을 위해서 디자인된 그림인줄 알았거든요ㅎㅎ 근데 그게 아니라니 제가 너무 확대해석 한거 같네요 ㅎㅎㅎ 그래도 우연치고는 연결점이 꽤 의미가 있어서 재밌는 우연인것 같아요 ㅎㅎㅎ
새벽서가
사실 앨라바마는 도심을 벗어나면 여전히 외국인, 흑인, 성소수자들은 따가운 눈초리 받는건 예사인 곳이긴 합니다. 그래서 한국어판 표지 디자이너의 의도가 궁금해지긴 합니다.
아고라
사실 저희가 표지 이미지를 선택할 때는 수국이 앨라배마의 주화라는 걸 몰랐어요. 그래서 생각하신 '의도'를 갖고 마그리트의 그림을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
@타피오카푸딩 님께서 말씀해주신 덕분에, 이 책의 표지가 또 하나의 의미를 갖게 된 것 같아요. '이게 집단 지성의 힘인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greeny
오 저도 미국의 민낯을 조금은 더 적나라하게 바라보게 된 것 같아요. 인종이 미국사라니.... 인종차별이 매우 심했고, 지금도 여전히 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단순히 권력의 싸움이라고만 생각했던 제가 신기할 정도로요. 음지로 노예제도가 활성화되면서도 산업이 더 커지기 위해서 외면하기 위해서 미국 남동부 전역에 이들의 존 재를 깡그리 지우기 위해 나타난 앤드루 잭슨, 채찍질로 얻은 세계 시장의 원동력, 평등의 가능성을 부정한 대법원 등...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연방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리라 믿기에 하는 일이라는 자기합리화까지. 어찌보면 이것 또한 히틀러처럼 자기암시가 백인 모두의 믿음으로 뻗어나간 상황이 아닐까요. 남북전쟁이 노예제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주를 수호할 남부인의 권리를 위한 싸움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똑같은 상황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게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는 현실이... 과거를 직시할 수 없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주신 것이 아닐까.....ㅎ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고라
"직시한다고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직시하기 전에는 그 무 엇도 바뀌지 않는다."라는 말을 곱씹게 돼요.
윈도우
저도 제임스 볼드윈의 이 언사가 가장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 1881년 테네시에서 흑인은 열차를 탈 때 백인과 떨어져 앉아야만 했다. 10년 뒤 조지아에서는 이 법이 모든 교통수단에 적용되도록 확대되었다. 곧 우체국과 은행에서 창구가 분리되었다. 놀이터에서는 음수대와 그네가 나뉘었다. 법원에서는 성경을 따로 뒀다. 구역을 구분해 동네 전체에 흑인 출입을 금지하는 법이 여러 도시에서 통과되었다. 작은 가게에는 유색인 손님을 거부할 권리가 생겼다. 앨라배마에서는 흑인 어린이가 백인 어린이와 공원에서 체커 게임을 하는 것이 범죄가 되었다. ”
『사물의 표면 아래 - 너머를 보는 인류학』 p.42, 웨이드 데이비스 지음, 박희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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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2024년 여전히 어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한편, 인종차별적 발언을 일삼는 트럼프가 유력 대통령 후보인 나라, 미국의 민낯은 어찌보면 19세기와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입니다. 다양성과 공존을 외치는 한편에서는 모순적인 차별과 혐오가 존재하는 미국의 이중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일상에서 느끼고 있는 요즘입니다. 그럼에도 첫번째 챕터 말미에 '우리는 이결낼 것입니다.' 라며 미국의 가능성에 희망을 거는 저자의 시각은 여전히 미국 중심중의적 시각에서 비롯된 공허한 메아리로 느껴지기도 하네요....
윈도우
첫 글부터 제목과 같이 "사물의 표면 아래"를 확실하게 드러내 주어 아주 통쾌했습니다! 세상에 으뜸가는 자유와 평등의 나라처럼 행세하지만 서구의 그 어느나라보다도 인종적, 계급적 차별을 보이고 있는 미국의 모습을 간략한 역사와 함께 잘 서술하고 있는 것 같네요. 1963년 행해진 유명한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연설 중 한 대목을 옮겨 적어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은 기회의 평등과 특권과 재산이 널리 분배되는 나라;
소수의 사치를 위해 다수가 필요한 걸 빼앗지 않는 나라;
피부색이 곧 인격을 결정짓는다고 주장하지 않는 나라;
우리의 모든 재능과 자원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해 유용하게 쓰이는 나라;
모든 사람이 모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형제와 다름없이 살아가는 나라에 대한 꿈입니다.
현준아사랑해
"인류학은 사물의 표면 아래에 있는 것을 드러낸다"고 그분은 종종 말씀하셨다.
『사물의 표면 아래 - 너머를 보는 인류학』 -서문 중 (15쪽), 웨이드 데이비스 지음, 박희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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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준아사랑해
"인류학은 사물의 표면 아래에 있는 것을 드러낸다"고 그분은 종종 말씀하셨다. <사물의 표면 아래> (서문, 15쪽)
팬데믹에 대한 기억이 이렇게도 빨리 사라지고 일상이라 부르는 혼잡한 인류의 이동이 다시 시작 된 지금, <사물의 표면 아래- 너머를 보는 인류학>이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베르
17년전에 텍사스로 와서 작음 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그때 아프리칸 아메리칸 특히 젊은 남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바지가 -엉덩이 에 걸치는, 팬티 보이는- 그런거 였는데 그걸 볼때마다 “ 저건 다른 모양의 사슬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답답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바지를 입고 어그적 어그적 걷는 그런 모습이 제눈에 좋아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3센티 넘는 손톱으로 동전잡기 곡예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긍정적인 말은 나오지가 않습니다. 인종의 다름이 아니고 문화의 다름인데 저에게는 그런것들이 자꾸 되풀이되고 있는 다른 모양의 억압, 자유를 짓누르는 사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수단중 문화가 , 유행이, 가장 위험없어 보이는 가식인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이 인류학과 어떤 연관성이 있냐고 물으면 답은 못하겠지만 첫장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생각하게
하네요.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이 혹은 유색인종들이 선거에 참여하고 같은 공간 에서 밥을 먹을수있게 된것이
불과 100 년도 되지 않았다는것을요. 모든것이
너무 빨리 변하는 한국 사람인 내 눈에는 “ 아직도?” 라고 보이지만 복종하게 만드는건 한세대면 충분하지만 다시 독립되고 온전해지려면 많은 세대에 걸친 피나는 노력이 필요함을 다시 되새깁니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 가장 최선을 다합니다
아고라
길들여지는 건 한순간이지만 그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많은 세대에 걸쳐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는 말씀 정말 맞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 가장 최선을 다"한다는 마지막 말씀이 묵직하게 다가오네요.
새벽서가
텍사스 주(?)민이시군요! 같은 주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 반갑습니 다! 그 똥바지는… 여전히 유행(?)입니다. 저는 일하는 곳에서 매일 봐요. 학생들 의복규정이 느슨해진 후로는 정말 볼꼴 안볼꼴 다 봅니다. 그런 바지가 유행하게된 이유를 설명해줘도 오히려 더 좋다고! 할 말을 잃게하는 10대 청소년들의 답변은 더 가관이구요. ㅠㅠ
아고라
오늘은 어제에 이어 '서문'과 '이것이 미국이다'를 읽습니다.
'이것이 미국이다'에서 우리는 미국의 민낯을 들여다보며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끼게 되는데요.
그렇다면 과연 우리 자신의 모습은 어떤지 돌아보는 건 어떨까요? 인종 문제와 소수자 차별에 대해 말하자면 대한민국은 과연 몇 점이나 받을 수 있을까요? 차별받는 대상이자 차별하는 존재이기도 한 '우리'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베르
한국의 친구들과 이야기중 한 친구가 나주에 가게를 열었고 손님들이 재한 외국인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른 한 친구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단 말을 하더군요“ 어머 , 위험하지 않아 ? 무섭다.” 그래서 .. 내가 그 무서운 외노자야 라고 했습니다. 외노자의 입장에서 생각할때 한국은 30점 쯤되지 않을까요?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있음은 알지만요. 미국과 한국의 차이점을 생각해보면 미국은 (적어도 지금) 시스템은 갖춰져있으나 개인의 의식이 뒤쳐진것이라고 생각하고 한국은 개인들의 의식은 나아가고 있는데 시스템이
전혀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러고 보니 저는 외노자에 성소수자의
부모네요.
Alice2023
독일로 중동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되어 일을 했던 우리지만
요즘 우리나라에 부족한 일손을 도우러 온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일부 사람들 의 태도를 보면 민망하고 속상할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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