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단편> 나는 인성에 비해 잘 풀린 걸까?

D-29
예, 등대는 중의적으로 썼어요. 어두운 곳을 밝히는 조명의 의미도 있고, 길을 비추는 역할로도 쓰이죠. 설희는 등대에서 일터를 찾았다는 의미와 과거의 어둠에서 벗어나 희망을 보았다는 뜻으로 등대어서 일해요. 시시티브이로 감시당하는 요즘의 현실이 안타깝지만 실제 공장이나 식당, 평범한 회사에서도 보안이나 안전 같은 여러 이유로 공개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 뭐가 나은지 고민해볼 문제예요. 저는 대학 때 파견직으로 몇달 일한 적 있어요. 그때 시시티브이까지는 아니지만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했고, 업무에 관해 상세 보고서를 써야 했죠. 설희와 같지는 않았으나 제 모든 걸 내보야 했으니 그 자체가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복어로 복수는 안 했겠지만 부당한 상황이 반복된다면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을까요?
<등대>를 읽고 설희의 불안한 마음이 내내 느껴졌습니다. 전자상가에서 일하다 도둑으로 몰리고 돈까지 물어주고 나갔을 때까지는 그 기간 내내 일상을 잃고 지옥처럼 살았겠지요. 일단 지옥은 벗어났지만, 등대에서 일하는 모습도 매우 불편하고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잠자는 시간을 빼면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 직장인데, 이렇게 정서적으로 힘든 상황이면 마지막 장면에서 '어떤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등대는 설희에게 희망이자 고문이었어요. 희망 고문, 어쩌면 많은 이가 그런 일터에서 일하지 않나 해서 소설로 그렸습니다. 설희와 많은 노동자가 일터에서 고문이 아닌 희망을 보았으면 하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천현우 작가의 <빌런>에서 인상적인 문장이나 감상을 답글로 나누어 주세요.
오늘도 통근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센터에 도착. 문밖으로 나오니 몸에 더덕더덕 붙은 꽃잎을 마구 털어내는 벚나무가 보였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170 페이지 - 천현우, <빌런>, 남궁인 외 지음
지금까지 읽은 어떤 글에서도 벚꽃 떨어지는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 건 처음입니다! 통근버스에서 졸다가 내린 화자 대신 벚나무가 기지개를 펴주듯이, 기분에 어울리지 않는 화사한 벚꽃풍경이 주는 짜증을 이리 묘사하다니, 박수를 보냅니다.
천현우 작가님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번 <빌런>은 이번 작품들 중 제게가장 거칠고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브랜드명과 그곳 알바의 모습(일반적인 주변 직장인들이 회사 해고 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을 이렇게 그려내시다니!
이 초단순 노동은 그저 시간과 돈을 상호 교환하는 작업이며, 고통은 행동하는 육신이 아니라 지루함을 견디는 정신의 몫이었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168p, 남궁인 외 지음
'빌런' 읽으면서 남편과도 이야기를 했는데, 왜 우리 나라는 지방 캠퍼스를 그렇게 무시?하다 못해 조롱거리로 삼는 걸까요? 요즘에는 모르겠지만, 제가 수능 봤을 때도 아무리 지방캠퍼스라고 해도 성적이 서울에 있는 꽤 괜찮은 대학에 갈만한 성적이 아니면 못가는 곳이었는데 말이죠. 그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같은 성적의 다른 대학들에는 그런 편견이나 차별이 없는데 말이죠. 분석해 보신 분 계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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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형 작가의 <식물성 관상>에서 인상적인 문장이나 감상을 답글로 나누어 주세요.
비건주의를 보면 마치 유럽의 중세시대에 종교가 인간을 억압하던 게 떠올라요. 이상주의는 좋지만 그게 과연 인간의 생물학적 요구에 우선한다면 과연 추구할 만한 '선'인가 싶거든요. 사실 비건이라는 것도 인도의 Jainism이라는 종교에서 나온 수행방법이잖아요. 요즘들어 비건주의가 인기를 끄는게 과연 소셜 미디어가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한은형 작가님께서 <식물성 관상>에서 '패션 비거니즘'을 해부해주셔서 반가왔어요. 이 글에는 '실체'와는 상관없이 '실속'을 위해서 서로서로 이용하는 사람들만 나와서 참 불편했습니다.
요새 뭐가 됐든 비건을 갖다 붙이는 것이 맘에 안 들었는데, 그런 걸 '패션 비건'이라 부른다는 걸 이 작품을 통해 알게 됐어요. 어떠한 것들에 대한 진정성 없이 유행이라고 좋은 의도라고 대세를 따르는 것에 고개가 갸우뚱해져서요.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한 번씩 생각해 보고, 내가 진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 아니라면 왜 그런 건지 생각해 보는 자세들이 필요한 거 같아요.
패션 비건이 뭐? 꼭 진정성 있는 비건만 있어야 된다는 법칙이라도 있어? 아니다, 진정성이라는 건 낡은 가치야. 진정성 없는게 이 시대의 진정성이라고 해도 되겠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한은형 <식물성 관상> 258 페이지, 남궁인 외 지음
하지만 말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다. 일어날지도 모를 갈등을 미리 해결하는 게 매니저의 일이라는 보이사의 말 때문은 아니었고, 뭐라고 할 근거가 없었다. 민지의 마음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스태프를 잡도리할 수는 없으니까.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244p, 남궁인 외 지음
이런 일을 벌이게 해서 자신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보이사가 민지는 원망스러웠고, 이런 쪽팔림이 월급을 받는 대가라는 생각에 이르자 얼굴에 이어 귀까지 달아올랐다. 하지만 민지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여야 했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254p , 남궁인 외 지음
예전에 정말 말도 안 되는 시급을 선생님들께 공지하라던 대표님의 명령에 -> 같은 직극의 직원에게 이건 말이 안 된다고 토로했더니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라며 같이 대항하기를 피하길래 -> 혼자 대표님께 한 마디 했다가 모멸감 느낄 소리를 듣고 패배하여-> 결국 선생님들께 공지했다 선생님들께 엄청난 항의 메시지를 받았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가끔 '월급의 영역'은 어디까지인가를 종종 생각하곤 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첫 주에 함께 읽을 작품으로는 비교적 생소한 직종의, 딸린 식구가 없는 젊은 사람이 주인공인 듯한 글들을 묶었습니다. - 내가 몰랐던, 가장 생소한 모습은 어떤 일의 어떤 부분이었을까요? - 세 명의 주인공들에게 어느 순간,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 부분이 있으셨나요?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이나 다른 감상을 자유로이 답글로 남겨주세요.
세 작품 모두 제가 모르는 직업들을 다루어서 참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가장 생소한 모습은 <등대>에서 그려진 복어 손질하는 주방 장면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런>에서 그려진 물류센터 일이 들어보기만하다가 실제로 그 안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가장 인상깊었어요.
<등대>의 설희와 <식물성 관상>의 민지에게는 '어서 빠져나와!'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둘 다 성실한 사람이니 어디서 일해도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을 결국 찾게 될텐데, 등대처럼 불법이 이루어지는 곳이나 보이사같은 이중성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놓는 사람 밑에서 굳이 일할 필요가 없다고. <빌런>의 도지윤은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 거에 더 나아가 맘에 안 드는 인간을 쫓아낼 정도로 일터를 장악해버리는 <빌런>이 되었으니 별로 해 줄 말이 없는데, 어찌보면 '월급사실주의'의 생활에서 주도권을 쥐고 살아남으려면 '빌런'이 되어야 할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등대>의 설희와 <식물적 관상>의 민지에게는 카페에 데리고 가서 토닥여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분명 성실하고 곧은 마음이 있으니 좋은 사람들만 만나면 새로 시작하면 될 듯 합니다 그런데 <빌런>의 도지윤과 그 장소는 물론 어디서든 많이 계시겠지만 아찔합니다! 마주할 일 없길 바라며 오늘도 뚜벅뚜벅 제길을 가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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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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