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단편> 나는 인성에 비해 잘 풀린 걸까?

D-29
지친 삶 속에서도학습된 무력감에 빠져 방관자가 되지 않는것. 굉장히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말씀이시네요. 종종고민하는 건데도 @거북별85 님이 쓰신 걸 보니 또 생각에 빠지네요.
초단순 노동은 그저 시간과 돈을 상호 교환하는 작업이며, 고통은 행동하는 육신이 아니라 지루함을 견디는 정신의 몫이었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천현우의 <빌런>, 남궁인 외 지음
“아이고 참, 지금 나가시면 다음부터 출근하기 힘드실 텐데……” 꼬박꼬박 출근하는 일용직에겐 대체로 급한 사정이 있기 마련. 당장 내일부터 출근 못 할 수 있다는 공포심만 심어줘도 대부분 저항을 포기한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천현우의 <빌런>, 남궁인 외 지음
퇴근할 무렵엔 이미 안색이 싸구려 BB크림 떡칠한 듯 온통 흙빛이었다. 혹사당한 종아리는 파르르 떨려댔고 온통 쑤시는 전신은 다음날의 몸살을 예고하고 있었다. 너덜너덜해진 몸뚱이보다 더 큰 고통은 설움이었다. 죽도록 일해도 일당 십만원도 못 버는 신세가, 이딴 회사조차 때려치울 수 없는 자신이 한심해 죽을 지경이었다. 천현우의 <빌런> 중에서
디시인사이드에서 ‘아르바이트’를 검색해 들어가보니 웬걸. 이름과 달리 그야말로 구빵 전용 갤러리였다. 비트코인 갤러리가 한탕에 미친 인간들을 모아놨다면 여긴 사회성을 로켓배송해버린 인간들이 우글댔다. 그야말로 인터넷 고물상 같은 곳이어서 유용한 정보도 있었지만 주로 신세한탄, 관리자 욕, 여직원 외모 품평이 필터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신기한 마음에 눈팅을 시작했을 뿐인데, 상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갤러리에 점점 더 동화되어갔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게 아니었구나. 다들 이 악물고 참는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풀고 살았구나. 어느새 도지윤은 울분에 북받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천현우의 <빌런> 중에서
천현우 작가님은 송구스럽게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ㅜㅜ그런데 이번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의 앤솔로지 중 가장 거칠게 잡아끌더라구요 ^^ 그래서 찾아보니 '쇳밥일지'란 산문집만 보이던데 혹시 다른 소설도 집필하셨을까요?? 아주 개인적 소견이지만 전 이번 앤솔러지에서 최유안 작가님의 작품과 천현우 작가님의 작품이 가장 색깔이 반대 지점에 있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너무 좋구요 최유안 작가님 작품 속 주인공은 왠지 고급 인력임에도 느껴지는 좌절 슬픔이 천현우 작가님은 거친 바닥같은 느낌이예요 빌런 소설 속 당사자는 크게 슬퍼하지 않는거 같은데 보는 저는 너무 불안하고 위태롭게 느껴집니다 전 두 분이 장강명 작가님의 <산자들>처럼 월급사실주의에서 다루는 주제를 다양한 단편집으로 한권으로 집필해주시면 좋겠다는 바램이 듭니다 작년 월급사실주의에 참여하신 정진영 작가님의 작품은 감정이 거칠게 훅 올라오는 느낌이 드는데 천현우 작가님 작품은 인물의 모습과 상황이 거칠게 느껴져서 신기합니다 김동식 작가님이 오랫동안 주물공장에서 일하신 경력이 있으신데 오히려 그분 산문집은 순수한 느낌이 들거든요 멋진 작가님들이 계속 알아가게 되어 반갑고 마음이 바쁘네요~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적인데 읽고 싶어지는 책들이 늘어나는~~^^;; 전 최유안 작가님의 단편(얼리지/ 쓸모있는 삶)을 읽고 20대 작가님께서 크리스탈 같은 느낌으로 사회적 문제를 세련되게 집필하셨나 보다 상상했는데~ 지금 최작가님의 <보통 맛>을 읽으며 무겁고 처절한 주제를 다루시는 강렬한 매운맛에 놀라면서 재미있게 읽고 있는 중입니다^^(절대 '보통 맛'이 아니예요~^^;;)
오, 거북별님 이런 해석은 정말 재밌네요. 두 작품이 앞뒤에 있는데 두 소설의 색깔이 완전히 다르군요! 저도 말씀주신 것 보면서, 월급사실주의의 주제로 만든 각각의 단편집을 상상해봤답니다. 재밌을 것 같아요. 기회가 닿으면 시도해볼게요! 저를 20대로 착각해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보통 맛> 읽고 계신 것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 읽고 계시려나 궁금하네요. 보내드릴 것은 제 넘치는 애정 뿐인 것이 아쉬운 것을요.... :)
ㅎㅎ 팬이라면 좋아하는 작가님의 관심이 가장 큰 선물이지 않을까요?? ^^ (학생 때는 외국작가님 작품들만 주로 읽어서 몰랐는데, 정말 어릴 때부터 아이돌 덕후 아니라 작가님들 덕후인 점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작가님들을 좋아하니 이런 관심도 받구 ^^) <보통맛> 은 마지막까지 밋밋한 느낌이 한번이 없네요^^;; 단편소설인데도 각 작품들이 모두 색깔이 강렬합니다. 전 최작가님이 크리스탈 느낌인 줄 알았는데 <보통맛>에서는 마지막까지 얼얼하더라구요. <심포니>에서는 여성들의 심리를 어떻게 이렇게 잘 묘사했을까? <집 짓는 사람>에서는 집짓는 과정을 어떻게 이렇게 잘 알고 계시지? 그리고 결혼생활에서 상대방이 좋아하는 방법이 아닌, 내가 편하고 좋은 방법으로만 애정을 전달하려다 보니 서로 오해가 더 생겨 갈등이 깊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부차적인 일들을 챙기느라 정작 중요한 일들을 놓치거나, 일과 삶의 우선순위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까운 경우가 많더라구요.(저도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집 짓는 사람>을 읽는 동안 참 안타깝더라구요. <보통맛>의 고은양 같은 사람을 보신 적이 있으신걸까요? 읽는 동안 울화가 치밀어서 이런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보통맛이 아니라 마라맛이라고 해야 하나? 이 외 다른 작품들은 제목만 생각해도 먹먹해서 다른 분들도 직접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
@거북별85 님 정말이지 애정합니다 ㅠ_ㅠ 그럼요, 관심이 가장 큰 선물이에요.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진심이에요. 제가 요즘 겨울에 발표한 단편을 작업 중인데, <보통 맛> 때랑 느낌이 새삼 달라진 것 같아서 새삼 놀라요. <쓸모 있는 삶>은 제가 정말 어렵게 썼는데요, 이따 여유가 좀 더 있을 때 쓸모 없는 삶의 에피소드를 풀어보겠습니다! <보통 맛>은 등단 직후부터 3년 반정도 발표했던 작품들의 모음집이었어요. 그때 뭔가 시선에 대한 고민이 깊었어요. 작가적 시선이라는 게 뭘까, 생각을 많이 했고, 그러면서 인물들의 시선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회적인 이슈들도 많이 등장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보통 맛>의 등장인물도 '내가 좋은 선배일까?'를 고민하면서 일련의 일들을 겪게 되는데요, 제가 직장을 다니면서 자주 했던 고민이었어요. 내가 좋은 선배일까? 좋은 사람일까? 그런 고민들을 하면서, 여러 인물들을 주인공들에게 다가오게 했었나봐요. 마라맛 느끼셨다니, (이 덥고 궂은 날씨에) 죄송하고..감사해요. 그리고 진한 저의 마음을 보내봅니다. ♥
난 U대 과잠 입고 출근함 ㅇㅇ 왜 그러냐고? 구빵 다니는 니네랑 선 긋고 싶어 그러지. 휴학하고 알바하러 왔는데 같은 취급 받으면 억울하잖아? 과잠만 입었을 뿐인데 아줌마들이 알아서 물고 빨고 난리더라. 못 배운 놈년들이 더 학벌 따지는 거 실화냐. 모쪼록 재밌게 놀다 간다, 풉. 학교 인증하라는 놈 있을까봐 학생증도 깐다. 평생 카트 끌고 상하차나 하렴, 루저들아. 천현우의 <빌런 > 중에서
가끔 궁금한 점이 있다~왜 치열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돕지 못할까?? 아마 각자의 생존이 우선이기에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서일까? 그렇다면 우리를 낭떠러지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몰아가는 상황이, 내 발 밑만 보고 내 옆의 사람과 온기를 나눌 수 없는 환경이 더 문제인걸까?? 내 발 아래 낭떠러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외줄을 타는 사람들이라면 내 옆의 사람의 고통이, 슬픔이 보일까? 오늘 오전 뉴스에 택배기사의 죽음이 보도됐다 그 택배기사님과 같은 환경에 있던 사람들에게 그의 슬픔이, 그의 고통을 함께 느낄 여유가 있을까? 출근을 못 할 경우 벌어질 다음 단계에 대한 공포심이 더 강력하지 않을까? 난 예전부터 원세준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정말 싫어했다 힘든 환경 속에서 좌절감을 더 배가시키는 사람들~ 강약약강!! 그런데 요즘은 단지 그들이 문제일까?? 그런 사람들을 본인들의 이익때문에 끊임없이 배출하는 환경을 만드는 사람들이 더 문제인걸까?? 점점 우리 사회에 늪이 늘어나는 느낌이다 나도 내 발아래 낭떠러지에 대한 공포로 나의 사고가 마비되는 환경에 떨어지지 않길... 바라며 ...
공채에 합격했지만 계약 형태는 프리랜서 아나운서였다. 프리랜서 주급은 프로그램 개수대로 매주 입금되었다. 입사하고서야 뉴스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를 하시는 분까지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었다. 방송국이란 비정규직이라는 살로 굴러가는 커다랗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수레바퀴였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27, 남궁인 외 지음
앉은자리에서 가난해지는 방법은 너무 쉬웠다. 부동산의 전화에 몇 번 네네, 라고 대답하고 처음 보는 사람과 마주앉아 사인을 휘갈긴 것만으로 삶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불을 끄기 위해 혜심은 시도 때도 없이 약을 입안에 털어넣었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42, 남궁인 외 지음
벽과 바닥에 피아노가 그림자를 남기고 간 것처럼 어둡고 음울한 음영이 남아 있었다. 그곳에 시선이 갈 때면 혜심은 피아노가 남긴 네모난 그림자가 자신의 마음속 그늘의 크기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53, 남궁인 외 지음
비정규직 이야기가 나오면 가슴이 먼저 답답해집니다. 제가 오래도록 비정규직으로 일했었기 때문일 거예요. 정규직보다 더! 많이! 더! 잘! 해야 그나마 계약직으로 전환되고, 거기서 더! 많이! 더! 열심히! 더! 일찍! 더! 늦게까지! 일해야 정규직으로 전환될까 말까 였으니까요. 방송국만이 아니라 대기업은 대부분 다 그런 거 같아요. 일은 많이 시키고 월급은 적고 아주 사소한 실수가 계약 파기로 연결되고 정규직 전환을 담보로 개인적인 생활조차 없게 만드는 거요. 제가 일을 안 한지 4년 정도 되었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아서 마음이 더 아픕니다. 재취업을 하지 못하는 이유도, 아니 안 하는 이유가 나이 문제도 있겠지만 제가 했던 직군에 다시 들어가려면 또 비정규직으로 들어가야 할텐데, 과연 나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오래 했습니다. 못 할 것 같아요. 나약한 인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10년 넘게 당했는데 다시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네요. 아~ 그리고 저도 피아노를 이사하면서 처분했던 적이 있어서 피아노가 있던 자리에 남은 자국이 어떤 건지 너~~~~무 알겠더라고요. ^^ 매 단편마다 저와 연결되는 부분이 하나씩은 꼭 있어서 마음은 아프지만 신나서 읽었습니다.
사람을 안 죽이려고 독이랑 싸우는 거보다 산 사람을 상대하는 게 마음 편하지. 후, 우리가 뭐라고 사람을 살려? 그건 조리장쯤 되니까 할 수 있는 개소리라고. 애초에 저거 안 먹으면 문제될 게 없는데. 뭐, 죽이고 싶은 놈한테 딴맘 먹었다면 모를까.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77p, 남궁인 외 지음
선릉점에서 본 사람을 한 시간 후에 선릉2호점에서 보기도 했는데 정말 그 사람이 맞는지는 알 수 없었다. 유튜버 꿈나무라고 하든 신사업 구상가라고 하든 어쨌거나 그곳에는 꿈을 좇는 몽상가들이 있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들이닥칠지 모를 인생템을 찾아 그들은 런치 요가와 홈 칵테일, 향수 레이어링, 명상, 마음을 치유하는 싱잉볼 클래스를 들었다. 민지는 여자가 위워크 생태계를 구성하는 주력 인재군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몽상가거나 몽상가들을 상대로 희망을 파는 사람이거나. -한은형의 <식물적 관상> 중에서-
연출이 다르든가. 난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가 좋아 보이더라고. 어떤 식으로든 의식 있음을 보여준다면 좋겠죠. 우리는 이런 스탠스다, 이런 거. 난 내가 하는 일이 사회운동이었으면 해요.” ‘의식 있음’ ‘사회운동’ ‘스탠스’. 보이사의 말을 듣다가 민지는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 그 말들을 적었다. -한은형의 <식물적 관상> 중에서-
그저 단순한 호기심은 아니었다. 민지는 풀 먹는 호랑이의 관리자였고, 스태프 사이에 분란이 일지 않게 조정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앙투안은 시간당 얼마를 받을까? 만이천원?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 달에 백이십만원이었다. 백이십만원을 받아서 오십만원을 월세로 내고, 십오만원으로 식사 구독을 하면 오십만원가량이 남는다. 오십만원이나 남는다는 게 앙투안의 기분을 그토록이나 좋게 했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보다 이십만원을 더 받는다는 게 앙투안에게 우월감을 주었을까? 백인과 아시아인보다 우위에 섰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민지는 앙투안에게 돈을 많이 받는 이유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 네가 특별한 줄 알지? 흑인이라서 많이 받는 거야. 비건 식당의 ‘의식 있음’을 위한 액세서리라고. 인종차별이기도 하고, 이 바보야. 흑인이라는 이유로 특별 대접을 받는 건데 기분이 좋아? 정말 그래? - 한은형의 <식물적 관상> 중에서 -
“입이 있다고 해서 모두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민지씨도 알잖아. 하고 싶은 말 못 해서 민지씨도 아프고, 나도 아파. 나라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까? 혐오 발언도 금지, 차별도 금지인 이 시대에 혐오와 차별을 역으로 활용하겠다는 게 문제가 될까? 법과 제도가 엉망진창인 나라에서 그걸 활용하는 게 문제가 될까? 어디 가서 이런 말 못 하지.” 블루 오션이라서 비건을 한다는 말처럼 명쾌한 답은 없었다. 위선자가 아니라 위선을 이용하는 사업가였다니, 민지는 머리가 얼얼할 지경이었다.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관점에서 생각하게 하는 사람 곁에서 배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 뻔했다. -한은형의 <식물적 관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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