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지언은 확률의 기본 정의에서 한 줄로 유도할 수 있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공식인데도, 새로운 데이터를 처리해서 추론할 때 더할 수 없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조차 신기해할 때가 있습니다. 길 위에 돌멩이가 보일 때 돌아갈 길을 찾는 자율차나, 바다에 추락한 여객기(말레이항공 MH370 등)를 찾는 수색대 모두 베이지언 공식에 의존하니까요. 괴테의 색채론도 눈에 단순히 보이는 대로 기록하는 일로부터 시작했는데 지금은 레티넥스(RETINEX)라는 강력한 현대 시각인지론의 뿌리가 되었고요. 과학에서도 일상에서도 '단순함'이 약점이 아니라 발전의 씨앗이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도서 증정]《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 저자,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
D-29
박주용
하뭇
“ 나는 과학과 문화의 진정한 연결고리는 그것들의 의미를 깊이 탐구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깨닫고, 이로부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즉 우리가 살아가는 이 한 조각의 시공간을 끊임없이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모습으로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 - 포스트 AI 시대, 문화물리학자의 창의성 특강』 7쪽, 박주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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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뭇
사람의 이야기에서 찾아야한다면 결국 과학도 인문학의 영역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슈가북
46 진실은 닫힌 마음에게는 영원히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바질무침
1-1
1장만 읽은 시점입니다. 문화물리학이란 뭘까, 아직 궁금합니다.
우리의 직감과 감각은 환원주의적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 위력을 빌휘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위대한 업적으로 유명한 피타고라스 학파, 아인슈타인, 뉴턴 마저도 과학이 신념이 되어 미래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들이 인상깊습니다. 환원주의로는 복합적 현상들을 설명하기 어렵다는걸 몰랐던 것도 아니면서 나도 그런 시도를 하고 있었다는걸 깨달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미드 ‘빅뱅 이론’의 쉘든이라는 인물은 모든 학문과 우주의 근본이 이론물리학이라 여겨 다른 학문은 천대합니다. 이런 장면이 코미디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물리학을 근원으로 안정하더라도 다른 학문의 가치와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에 다들 공감하기 때문 일 것입니다.
위인들의 사례와 환원주의의 어려움이 대한 설명은 우라의 샹각을 틀에 가두지 않는것이 중요하다는 말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틀을 만들면서 틀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직감만을 믿고 뛰어들어 실패한 사례는 너무 많습니다.
다음 장애서는 어떤 아야기가 이어질지 얼른 읽어봐야 겠습니다.
요시
@박주용 안녕하세요. 덕분에 “과거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려는 삶의 자세”(p.320)를 여러 측면에서 점검해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책에서 다루시는 “아름다움”이라는 개념, 그러니까 제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과연 지식 생산과 삶의 방식 전반에 있어 보편적인 기준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예를 들어 자비네 호젠펠더(Sabine Hossenfelder)라는 이론물리학자는 <수학의 함정: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물리학자들>(Lost in Math)라는 책에서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수학을 고르는 과정에서 미학적 기준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경고”했는데요. 저는 책으로만 읽었지만. 과학자들이 이론의 아름다움에 정신이 팔려 ‘이론’의 과도한 미학적 이상을 추구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비단 과학계에만 해당하지는 않는 얘기 같기도 하고요. 이와 관련해 저자께서 생각하시는 “아름다움”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박주용
@요시 님, 안녕하세요. 이곳에서 처음 뵙겠습니다. 정말 깊고 중요한 질문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아름다움의 정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제 개인의 연구사에서 아름다움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호젠펠더 박사의 강연/토론 영상을 찾아보면서 제가 드리고 싶은 대답을 스케치해보았습니다. 시공간만 허락한다면 끝없이 방대한 대답을 낼 수도 있는 큰 질문이기 때문에 여기서 저는 정말 표면만 긁는 수준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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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연구도 목적을 가진 의도적인 활동이기에 매순간 연구자를 이끌고 가는 원칙(guiding principle)은 있을 것입니다. 길을 잃어서 헤매거나, 다음 단계를 구상할 때 갈 길을 골라야 할 때도 중요한 내적 지침이 됩니다. 그 가운데 간결성, 대칭성을 가진 '수학적 아름다움'은 분명히 큰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예로는 천체의 움직임과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 지동설이 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계 행성들이 태양을 정중앙으로 하여 완벽한 원운동을 한다고 주장했는데, 최고 수준의 간결성(모든 행성이 완벽히 닮은 궤도를 지니므로 이론이 단순해짐)과 대칭성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수학적 아름다움이 이론의 정합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증거도 되고 말았습니다. 행성들이 완벽한 원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관측되면서 조금 더 낮은 수준의 대칭성으로(타원, 포물선을 포함하는 “원뿔곡선 운동”을 한다는) 내려앉을 것을 시작으로 이제는 원뿔곡선으로서 영원히 규칙적인 운동을 하지도 않는,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는 혼돈(카오스)의 다체계라는 것이 되었으니까요.
물론 수학적 아름다움의 추구가 중요한 물리학 이론들을 찾아내는데 큰 역할을 한 것도 역사적 사실이기에(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고안할 수 있도록 머릿속을 잘 정돈해주었지요) 여전히 그에 매료된 물리학자들이 있는 것은 백분 이해 가능합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실험(검증)가능성을 핵심으로 삼는 과학 연구의 기본을 지킬 수 없게 되어버린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 요즘은 더 일반화시킨 membrane theory라고도 합니다)도 탄생하긴 했는데, 실험으로 검증할 수 없으니 유일한 원칙으로 수학적 아름다움(논리의 정합성을 증명할 수 없는)만 남아버린 상황이 오긴 했고, 호젠펠드 박사 등은 이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분야에 일하던 친구의 말에 따르면, 초끈이론을 검증하려면 태양계보다 큰 입자 가속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니…)
물론 그런 방향으로 가버린 일부를 제외하면 다수의 물리학자들은 수학적 아름다움과 실험/관측의 두 가지 원칙 모두에게 인도를 받고 있고, 어느 하나만이 옳다고 주장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완벽한 대칭, 간결성을 갖진 않았을지어도 수학적 모델이 실제 관측과 맞아떨어질 때는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 연구에서 제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의 개념은 여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쓰다보니 머릿속에 계속 이야기라 떠오르는데, 오늘은 일단 이 정도만으로도 약간의 답변이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D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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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으로 이 문제를 두고 대립했던 두 명의 물리학자 이야기가 떠올라 적어보겠습니다. 쿼크(quark) 소립자 이론의 머리 겔만과 고체물리학(solid-state theory) 이론의 필립 W. 앤더슨인데요, 겔만은 단 몇 개의 쿼크 입자로 완성되는 “깔끔한” 이론에 대비하여 정확한 해법도 잘 안 나오는 solid state physics를 대놓고 squalid(더러운) state physics라고 비하했는데, 앤더슨은 이에 대해 more is different 라는 말을 들고 나와서 solid state 같은 복잡성은 이상적인 “깨끗한” 상태에 대비되는 “더러운” 상태가 아니라, 복잡하다는 것 자체를 본성으로 하는 새로운 상태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쿼크(quark)와 같은 소립자 이론으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면서 소립자 이론의 한계를 보여주며 다체계 물리학(many-body physics)의 이론적 토대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과학 이론의 “아름다움” 관점에서 생각하면, 앤더슨은 아름다움을 “수학적”이라 불리는 아주 좁은 정의의 영역으로부터 해방시켰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요시
이렇게 자세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역시 교수님께서 현장에서 연구하셨던 물리학자이신지라 재미난 이야기가 넘치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움”은 문학이나 건축 같은 예술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과학에서도 못지 않게 오래도록 “guiding principle”로 작용해 왔겠구나…라는 부분을 교수님 말씀에서 확인한 것도 같고요. 이것이 표면만 긁는 수준이라면, 다음에 아예 이 주제로 책을 써주셔도 너무 좋겠는데요. 저는 특히 아름다움과 이론, 객관성의 관계에 대해 다각도로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생성되었습니다.
‘이론’으로 조금 빠지면, 앞서 장맥주 님께서도 그에 대한 생각을 공유해 주셨는데요. 과학 이론이든 철학이든, 언어를 바탕으로 세우는 ‘이론’이라는 존재는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미래를 생성”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구성하고 테스트하고 사회와 함께 조율해나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야에 따라 실용주의자들은 이론을 극구 폄하하는 일도 빈번하지만요. 하지만 “이론이란 것은 도대체 뭐 하는 것이고 어떻게 만드는가!”라는 지점을 놓고 봤을 때, ‘관점’ (장맥주 님께서 언급하신), ‘원칙’ 또는 ‘가이드’ (교수님께서 언급하신), ‘인식적 덕목’(epistemic virtue), ‘합의’, 그리고 또, 이론의 ‘가독성’, ‘소통력’, ‘쓰임’, ‘미학적 덕목’, 그리고 이론을 구성하는 언어와 시각적 support의 성격들 등에 대해서도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마련된다면, 다양한 분야의 thinker들이 세상을 유연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도 듭니다.
다시 한 번 말씀 감사드리고요. 특히 사족, 너무 재밌습니다! 앞으로도 교수님 책을 통해 만나뵙고, 많은 이야기 들려주시기를 고대하겠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동아시아
1-2. 여러분이 예측하는, 혹은 기대하는 미래에는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요? 각자의 '멋진 신세계'를 소개해 주세요.
하뭇
제가 아직 AI의 한계라고 느끼는 부분이 이 모임 시작 전에 기대평(?)으로 남겼던 '번역, 통역'에 대한 문제인데요. 현재 최고 수준의 번역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고 하는 갤럭시 폰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문장이 조금만 길어지거나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내용이 아니면 번역 결과가 좋지 않더라고요. 파파고가 그나마 나은 것 같고. 구글번역기도 영어, 중국어는 안 써봐서 모르겠지만 몽골어, 베트남어 등의 외국어 번역을 하면 아주 간단한 단어나 문장도 번역이 안 될 때가 많아요.
제가 기대하는 미래는 통번역 기능이 계속 발전해서 언어의 벽이 없어지는 사회인데.....
그렇게 되면 사용자들은 외국어 학습이나 외국 여행, 원서 읽기 등에 대한 부담이 사라지니 너무 좋겠지만 관련 종사자들은 당연히 직업을 잃게 되겠지요? ^^;;
동아시아
딥엘(DeepL)도 사용해 보셨나요? 저는 주로 영한/한영 번역만 사용하기는 하는데... 기존 번역기에 비해 훨씬 자연스러운 문장을 구사합니다. 문장 구조를 분석하는 면에서는 실수가 거의 없기도 하고요. 무료 버전도 있으니 한번 써보세요 : )
https://www.deepl.com/ko/translator
번역 원고를 다루는 일이 많다 보니, 저도 통번역 AI에 관심이 많습니다. 단순한 의미 전달의 차원에서는 AI가 많은 역할을 해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자/작가 특유의 문체를 살려내는 번역가의 역할은 유지되리라 생각합니다. 통역도 발화의 미묘한 맥락을 캐치하는 유능한 통역가님들이 오히려 부각될 것 같고요(뻔한 예이지만, <기생충>의 오스카 레이스 당시 '샤론 최' 님의 통역이 떠오르네요).
번역 관련하여 글항아리 이은혜 편집장님이 최근 발표한 칼럼 한 편을 공유하겠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이 편집장님은 이 칼럼을 소개하며 "최근에는 비비언 고닉의 <끝나지 않은 일>의 번역을 맡았던 김선형 선생님이 그런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셨다. 고닉의 문체에 번역자의 글투가 스며들지 않고, 전적으로 고닉의 문장만이 남도록 끝까지"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저는 칼럼 내용 이상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8998#home
하뭇
아! 네, 말씀해주신 문체와 맥락의 문제가 지금 제가 통번역 기능이 절대 인간을 대신하지 못할 거라고 믿는 이유예요. ㅋ 그런데 기술이 발전하면 일상생활은 거의 문제가 없어질 거 같아서요. 그럼 제 직업도 위험해지는...-_-;;;; 제가 일하는 동안에는 좀 더디게 발전하면 좋겠어요.ㅎ
메롱이
크롬앱으로 적용하는 웹번역툴 https://www.biread.com/도 추천드립니다. 번역 수준이야 구글 번역이나 딥엘이나 별반 차이는 없는데 UX가 원문과 번역을 같이 노출하는 컨셉이라서 AI 번역 내용을 의심하고 보는 입장에서 한번 더 검증하기가 용이하더군요.
박주용
저도 언어나 번역에 관심이 많아서 4장에도 번역의 문제를 살짝 다루긴 하는데, 영어에 최적화된 구글 번역기조차 영어하고 로망어(Romance language) 가운데에서 영어와 제일 비슷하다고 하는 프랑스어 사이에서도 사람이라면 뻔히 알 수 있는 오류(어색함 포함)를 범하는 것을 자주 보고 났더니, 의미가 통하는 것과 사람이 말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기계로 극복 가능한지 여전히 의문이 남더군요.
하뭇
역시나 그렇죠? ^^
특히나 문학 작품의 경우는, 저는 현재도 번역서를 읽는 것이 과연 '그 문학작품을 진짜로 읽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서요.
나무가되고싶은늘보
저는 무엇이라는 자리에 학교 또는 교육을 넣어보고 싶습니다. 이른바 AI 시대는 우리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겠지만 그 중에서도 교육 시스템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점을 꼽자면 지식의 평준화, 평균화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로 인해 선행 학습의 필요성이나 그 효과는 지금보다는 약해지지 않을까요.(개인적으로는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빈부의 격차로 인한 교육의 격차는 지금보다 더 심화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체험과 경험의 차이를 예를 들면 체험은 일회성으로, 시간과 조건이 된다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지만 경험은 물리적 능력, 조건, 환경이 어느 정도 충족되어야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빈곤한 환경에 놓인 학생들의 교육은 체험으로 그칠 가능성 이 높고, 반대로 부유한 환경에 놓인 지식을 경험으로 확장해나가며 스펙을 쌓아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봅니다.
동아시아
AI와 교육에 대한 늘보 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AI가 바둑에 미친 영향이 떠오릅니다. 바둑 AI가 보급된 이후로,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많이 흐려졌습니다. 프로바둑계 안에서만 가능하던 최신 정석-포석 연구가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가능해진 영향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한중일 3국 출신이 아닌 대만의 쉬하오훙 9단이 세계적 강자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난해 논란이 됐던 '킬러 문항' 풀이법 등) 일부 강남 학원에서만 진행되던 입시교육은 '평준화'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말씀대로 입시 영역에서 문화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