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2.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D-29
개인적으로 불교의 매력포인트 4가지를 읽으면서 천주교 시어머니와 개신교 친정엄마 사이에서 항상 전도의 시도를 받으면서 꿋꿋이 무신론자로 남아있는 제가 만약 굳이 종교를 택해야 한다면 불교를 택하겠다고 했을 때 개신교인 엄마가 불교는 실은 정확히 말하면 종교가 아니라고.. 했을 때 오히려 좋다고.. 대답한 게 생각났어요. ㅎㅎㅎ
오늘 월요일(7월 15일)은 3부 13장 '마르크스에게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읽습니다. 이번 장에서 센은 자기 대학 시절 가장 인기 있었던 사상가 마르크스를 회고하면서, 지금의 시점에서(경제학과 정치 철학의 대가가 된 상황에서) 마르크스 사상을 재평가하고 있습니다. 제가 근래 읽은 마르크스 바깥에서 마르크스 사상의 의의를 짚는 가장 훌륭한 에세이가 아닌가, 싶어요. 마르크스주의자의 벽돌 책(『화석 자본』)을 힘들게 읽으신 @장맥주 작가님께 특별히 권하는 장입니다. 나중에 읽으시면 토론해요. :)
@YG 님이 예상하신 대로 13장을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1. 노동가치설에 대해 여태까지 읽은 글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고, 노동가치설에 대해 제가 품고 있던 복잡한 감정도 조금 수그러들었어요. 가격 이론으로서는 쓸 만하지 않고, 도덕 규범적 이론으로서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데에는 매우 동의합니다.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에서 인간 노동이 수행하는 역할을 드러내주는 묘사적 이론’이라는 말은 제가 제대로 이해한 건지 모르겠어요. 저기서 ‘이론’이라는 단어를 빼고 그냥 ‘묘사’라거나 혹은 ‘우화’라고 적어야 더 정확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책에 나오는 표현을 빌면 저 역시 마르크스라면 통째로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옛 소련이나 중국에 압제란 존재하지 않고 민중의 민주적 의지만 작동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요. 마르크스주의가 경제학이 아닌 일종의 사회비평 이론으로서 가치가 있지 않나 하는 정도 생각을 해요(문화비평으로서는 아닙니다).
2. 공교롭게도 지금 그믐에서 저자인 박주용 교수님과 동아시아 출판사의 편집자님과 함께 『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를 읽는 모임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제가 했는데요. 그냥 옮겨와 볼게요. 과학계와 사회과학계에서 쓰는 이론은 저한테는 확연히 다른 의미이고, 아예 다른 용어로 구별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도발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는데, 사회과학계에서 ‘이론’의 권위가 지나치게 높이 평가되고 있지 않나, 그것이 과학계에서 ‘이론’이 가지는 위상 때문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1)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A는 B다. (2) 암흑물질 이론에 따르면 A는 B다. (3) 마르크스 이론에 따르면 A는 B다. (4) 아도르노의 이론에 따르면 A는 B다. 여기서 (1)을 듣는 사람은 ‘상대성이론은 아직 검증 중이기는 하지만 이제 거의 법칙이나 다름없어, A는 B이겠군’이라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2)를 들으면 ‘암흑물질 이론은 아직 구멍이 좀 있고 검증이 더 필요하니 A가 B일 가능성이 있겠군’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이는 상대성이론이나 암흑물질 이론이 기본적으로 검증 가능한 가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르크스 이론과 아도르노의 이론도 검증 가능한가? 저는 아닌 것 같습니다. (3)이나 (4)를 듣고 ‘A는 B군’ 혹은 ‘A는 B일 가능성이 있겠군’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마르크스와 아도르노의 권위에 짓눌려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말하자면 (3)과 (4)에서 이론은 검증 가능한 가설이 아니라 어떤 관점 아닐까요? (3)과 (4)를 읽은 사람의 온당한 반응은 ‘A를 B로 해석할 수도 있겠군’ 정도 아닐까요? 그리고 저는 이 차이가 엄청나게 큰 거 같습니다. 특히 사회과학이 다루는 분야에서 ‘A는 (C나 D로 해석할 수 있지만) B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말은 어떤 사안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정도 역할만 하겠지만 ‘A는 (C나 D가 아니고) B다’라는 말은 일종의 강령이 되어버리기 쉽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앞으로 사회과학 분야에서 이론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대신에 관점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어떨까요? ‘마르크스의 관점에 따르면’ 혹은 ‘아도르노의 관점에 따르면’ 하는 식으로요.
3. 저는 마르크스 이론을 하나의 관점으로서는 유용하다고 봅니다. 특히 한 사회의 구조 자체가 특정 그룹의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지 살피기 위해 갖춰야 할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이론을 바탕으로 경제 정책을 짜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현실적이거나 정교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노동가치설에 대해서도 하나의 도덕적 관점으로서는 유용하지만, 실제 시장 가격을 분석하는 데에는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고요.
4. 아쉽게도 저의 희망과 달리 일부 마르크스 이론 추종자들은 이것을 하나의 관점 이상으로, 심지어 경제학 가설 이상으로 보는 것 같아요. 제 눈에는 하나의 종교가 되지 않았나 싶고, 실제로도 마르크스 이론이 불러일으키는 열정은 종교의 그것과 꽤 닮았습니다. 그래서 교조주의화하기 쉽고, 사실상의 신정국가나 다름없는 독재체제를 이루곤 합니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마르크시즘을 문자 그대로 종교라고 봤지요. 하라리의 분석이 상당히 설득력 있더라고요.
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인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의 후속작. 역사의 시간 동안 인류의 가장 큰 과제이던 굶주림, 질병 그리고 전쟁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무엇인가? 10만 년간 지속되어온 호모 사피엔스의 믿음을 한순간에 뒤엎은 역사 탐구서이다.
5. 여기서부터 좀 조심스러운 이야기인데요, 제가 마르크시즘과 비슷한 태도로 보는 것이 최근의 정치적 올바름, 그리고 정체성 정치예요. 두 개념 모두 마르크시즘의 방계 후손인데, 소수자들에 대한 배려를 생각하게 만드는 하나의 관점으로서는 유용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현실적이지도 않고 정교하지도 않기에, 거기에 근거해 정책이나 입법, 사법이 이뤄져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나 추종자들은 저 개념들을 강령이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거기서도 종종 종교적 열정을 느껴요.
실은 저도 대학교 입학 당시 들어간 많은 동아리 중 하나가 약간 사회주의 경향이 있었어요. 저는 그냥 별 생각없이 농촌에 가서 봉사활동하는 것에만 끌려서 들어갔는데 마르크스나 사회주의 관련 도서를 많이 읽더라구요. 책을 읽고 토론하는 건 전 워낙 좋아하지만 저도 제 친구도 좀 너무 맹신적인 분위기에 거부감을 느껴서 결국 다른 동아리로 갔는데요.. 그런 열정에 이끌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히려 반발해서 들어볼 만한 주장도 무시하거나 거부하게 되는 단점이 있는 듯합니다. 저는 아직도 마르크스에 관해서는 많이 읽었지만 그의 글을 직접 읽어본 적은 없어서 이번 기회에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열정을 경계하고 있어요. 그 마음이 ‘세상을 빨리 구원해야겠다’로 바뀌는 순간, ‘수많은 사람을 구하는 일인데 그 과정에서 조금 피를 흘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금방 따라오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마르크스 한번 제대로 읽어보고 싶습니다.
최근에 페르세폴리스를 읽었는데 주인공이 어린아이답게 자기는 장래 prophet가 될 거라고 당당하게 선언하면서 할머니에게 나는 노인들이 고통받지 않게 할거라고 해서 할머니가 '어떻게 그렇게 할 거니?'라고 묻자 '고통받는 걸 금지시킬 거야!'라고 대답하는 주인공의 유아기적 발상이 어쩌면 그런 열정에 앞서 억지스러운 강제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비슷할 것 같네요.
마르잔 세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는 저도 좋아하는 책이에요. (감동적이니 안 읽어본 분들에게 강추!) @장맥주 @borumis 님 말씀을 듣고 보니, 이 책이야말로 특정한 정체성 지상주의가 한 세계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생생히 보여준 책이네요. 서남아시아에서 가장 세속적이었던 한 나라(이란)가 친미 성향의 권위주의 왕국을 무너뜨리자는 열정에 사로잡혀서 이전의 권위주의보다 더한 종교 근본주의 권위주의를 받아들이게 된 사정을 보여주니까요.
페르세폴리스이란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한 후 다시 이란으로 돌아와 결혼과 이혼을 한 작가 마르잔 사트라피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그래픽노블.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과 전쟁을 겪고 이란과 유럽 사회에서 방황하면서도 유머와 존엄을 잃지 않으며 성장하는 주인공 마르지의 모습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페르세폴리스 2 - 다시 페르세폴리스로이슬람 혁명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소녀가 보여주는 흥미롭고도 가슴 졸이는 기억들은 아트 슈픽겔만의 <쥐>와 비교될 만하다. 헌신적인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이란 왕조의 위대한 후손임을 자부하는 한 소녀가 거침없이 쏟아낸 증언은 강렬한 흑백이미지와 더불어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저두 꽤 오래전에 읽은 책, 소장하고 있는 책, 딸들과 함께 읽은 책입니다. 강추입니다. 편하게 읽으면서 깊게 다양하게 생각해볼 꺼리가 많은 책입니다.
@YG@borumis 님 제가 굉장히 좋아할 거 같은 책이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픽 노블 잘 몰라서 제목도 처음 들어봅니다. 그래픽 노블은 전자책으로 보기 애매하다는 게 저한테는 조금 걸림돌입니다. (여러 뷰어를 전전하다가 휴대폰으로 전자책 보기에 정착했거든요.)
1권만 읽으셔도 됩니다. 흠... 저는 읽으면서 몇몇 대목에서는 눈물 흘렸었던 기억이;
저는 펑펑 울면서 읽을지도 모르겠네요. 4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남성호르몬이 잘 분비가 안 되어서 그런 거 같습니다. 피부도 매끈해지면 좋을 텐데...
저도 그래픽노블 등은 이제 그냥 종이책으로.. (그래서 서재에 갈수록 독립출판물과 만화책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OTT 구독을 안 하고, 여행이나 출장(지방 강연) 가서 넷플릭스 서비스하는 모텔에 묵고 그날 밤 맥주 마시며 영화를 보고 있어요. 앞으로 만화카페에 가면 그래픽노블을 좀 볼까 싶네요.
@장맥주 작가님의 의견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저는 어떤 관점이든 이데올로기가 되는 순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조심스럽게 말씀하신 5번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작가님을 위해서 공개 발언하실 때는 수위 조절하시기를 권합니다. :( ) 저는 오히려 2에 조금 이견이 있어요. 저는 심지어 1이나 2도 의심을 하는 게 진정한 과학적 태도라고 생각하거든요. 오랫동안 과학자의 중력파 연구를 대상으로 연구해온 해리 콜린스는 과학자 사이에 중력파인 것과 중력파가 아닌 것을 판단하고자 경쟁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흔히 우리가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과학 개념조차도 상당 부분 구성된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거든요. 저는 과학자 여러분과 교류하는데, 오히려 현장 과학자는 이런 견해에 오히려 반감이 없는데(실제로 그러니까요.) 대학에서 공식화된 자명한 과학만 배우고 나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는 분들 중에서 이런 관점을 낯설어 하거나 거부감을 가지시는 분들이 많은 것도 흥미로웠어요. :) 장 작가님께는 해리 콜린스의 『골렘』과 『닥터 골렘』(사이언스북스)도 권합니다. 분명히 마음에 드실 거예요.
중력의 키스 - 중력파의 직접 검출중력파로 확증된 ‘그 신호’ GW150914가 검출된 2015년 9월 14일부터 시작해, 2016년 2월 논문이 발표되기까지 라이고 협력단 내부에서 발견이 참으로 확정되는 과정, 또 논문이 세상에 공표되고 중력파의 실재가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과정을 현장 연구한 영국의 저명한 과학사회학자 해리 콜린스의 역작이다.
중력파,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 - 중력파를 찾는 LIGO와 인류의 아름다운 도전과 열정의 기록라이고 과학협력단에 참여하며 중력파 검출 실험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 기여했던 현장의 과학자가 지난 55년간의 중력파 검출의 역사와 함께 오늘날 그 과학적 성공을 이루어낸 눈물겨운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낸, 중력파 검출 실험의 역사서이다.
닥터 골렘 - 두 얼굴의 현대 의학 어떻게 볼 것인가?의료와 의학의 문제를 지식 사회학의 문제로 다루는 책이다. 의료와 의학에서 ‘전문성’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형성되는지 해명해 나간다. 결국 의학과 의료의 전문성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만들어져 왔고, 앞으로도 만들어질 것임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골렘 - 과학의 뒷골목골렘은 유대 전설에 나오는 괴물로, 온순하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언제라도 미쳐 날뛸 수 있는 존재이다. 저자들은 과학은 골렘 같은 것이라고 말하며, 흥미진진한 일련의 사례들을 통해 이런 구축 - 관측과 실험 - 이론의 확증이라는 전통적인 과학상의 허구를 낱낱이 파헤친다.
아흑.. 지금 책 정리해야하는데 자꾸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이 눈에 들어오네요;;; 맞아요.. 실제로 저는 이론적인 순수과학 쪽도 아니고 응용 쪽이지만 학회에서 가끔 교수님들이 거의 투지에 불타올라 토론하거나 논쟁하는 걸 보면 '상당부분 구성된' 것이라는 점이 와닿아요. 그래서 계속 저 노교수님들처럼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구요.
과학 개념조차도 구성된 것이다라는 주장에 동감합니다. 당연히 사회과학, 심리학 이론, 개념들은 모두 구성된 것이겠지요. 마르크스 이론도 아주 작은 부분만이지만 같은 맥락으로 저는 이해하고 수용합니다. . . . 유발 하라리의 주장도 논거가 분명하니까 우리가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대부분의 과학, 경제, 정치, 사회이론 들 모두 사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주는가에 따라서 그 이론이 지배적 이론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듯하니까 이해하고 믿는 것이지, 내 눈으로 확인되고 사실로서 증명되었기 때문에 믿는게 아니거든요. 하라리 말대로 인간은 추상개념, 상상을 공유할 수있기 때문에 인지 혁명이 일어난 것처럼 . . . 아직도 진화론을 수용하지 않는, 창조론을 굳게 믿는 분들이 있지요. 종교적 측면이 있어서 함부로 말하기 어렵지만, 그 어느 쪽도 반드시 옳다, 틀리다 말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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