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2.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D-29
아마르티아 센 회고록이라니 저도 책 주문하고 참여합니다. <사람을 위한 경제학>에서 알게 된 이분의 사상에 감동(!)하여 도서관에서 <세상은 여전히 불평등하다> <정체성과 폭력>을 빌려 읽었어요. 뭐랄까, 저세상 인격과 능력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서전이라니 기대됩니다.
나는 새로운 삶을 즐겼지만, 그렇다고 옛삶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빠르게 깨달았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1장, 49쪽,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강의 양면적인 속성은 사회 안에서 안정적인 역할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고투에 대한 매력적인 비유로 제격이다. 사회 역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목숨을 쓸어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2장, 56쪽,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저도 인상적인 문자이였어요
지금 막 문장을 올려놓고 보니 김진님께서 올리신 문장이네요. :)
같은 구절 공감하면서 읽는 것도 같이 읽어 가는 매력 중의 하나인 것 같아요~^^
세계의 문명을 바라보는 데 매우 상이한 두 가지 방법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분절적’인 관점으로, 관찰되는 다양한 현상과 특징들을 꽤 명백히 서로 구별되는 각기 다른 문명들의 발현이라고 파악하는 것이다. 이 접근은 서로 다른 문화권 사이의 적대가 더해진 상태로 최근에 상당히 유행하고 있으며, 장기적인 ‘문명의 충돌’을 불러올지 모른다는 위험을 드리우고 있다. 다른 하나의 접근 방식은 ‘포용적’인 관점으로,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문명(세계 문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이 서로 다른 형태로 발현된다고 보고 그것을 파악하고자 한다. 그 문명은 상호 연결된 뿌리와 가지를 통해 하나의 생명을 이루고 있으며 가지 끝에서 서로 다른 꽃을 피운다. (…) 내가 분절적 접근보다는 포용적 접근 쪽에 더 공감하고 있다는 점을 이 책에서 명백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19~20쪽,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제가 생각하는 이 책의 핵심은 '서문'의 이 부분입니다. 센이 굳이 자기의 마지막 책이 될지도 모를 이 회고록을 쓴 이유도 바로 이 부분의 문제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저번 '나쁜 교육' 읽는 모임에서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지만 그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tribalism에 대한 경고 및 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으로 제시한 부분에서 달라이 라마의 말도 인상적이었죠. "I'm Tibetan, I'm Buddhist and I'm the Dalai Lama, but if I emphasize these differences it sets me apart and raises barriers with other people. What we need to do is to pay more attention to the ways in which we are the same as other people." 웬지 일맥상통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세트] 바른 마음 + 나쁜 교육 - 전2권도서 '바른 마음'과 '나쁜 교육' 세트 상품이다.
저도 서문의 이 문장 보면서 아! 하고 감탄했었어요. 더불어 이 책의 핵심이 이렇게 친절히 설명되었다면 크게 긴장하거나 힘들어하면서 읽어야하는 건 아니겠구나 싶어서 안도하면서 시작랄 수 있기도 했구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금요일(7월 5일)과 주말(7월 6일, 7월 7일)은 3장 ' 벽이 없는 학교', 4장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5장 '논쟁의 세계'를 읽습니다. 이 3개 장에서는 센의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장소(산티니케탄 학교)와 두 인물(라빈드라나트 타고르)와 외할아버지(크시티 모한 센)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물론, 외할머니도 함께! 저는 특히 5장을 읽고서 지적 충격을 받았어요. 제가 평소 알았던 타고르가 사실 서구가 만들어낸 오리엔탈리즘의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을. 타고르와 간디의 충돌도 이 책을 접하고서야 처음 알았답니다. 여러분도 센이 어떤 지적 토양 속에서 성장했는지를 확인해 보세요.
산티니케탄은 학교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해본 방식으로 재미있었다.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데 굉장히 많은 자유가 주어졌고,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친구들과 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며, 교과목과 관련 없는 것도 부담 없이 질문할 수 있는 친절한 선생님도 많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규율이 많이 부과되지 않았고 체벌이나 가혹한 처벌이 전혀 없었다. 체벌 금지는 타고르가 강하게 견지하고 있는 규칙이었다. 외할아버지 크시티 모한 센은 이것이 ‘우리 학교와 이 나라의 다른 모든 학교’ 사이에서 얼마나 중요한 차이점이며 왜 이것이 교육에, 특히 아이들을 배움에 동기부여되게 하는 데 큰 차이를 가져오는지 설명해주셨다. 외할아버지는 저항할 길이 없는 아이를 때리는 것이 마땅히 혐오해야 할 야만적인 행위이기도 하거니와, 학생들이 그저 아픈 것과 모멸감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 일인지를 합리적으로 이해해서 옳은 일을 하도록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체벌 금지 원칙에 백번 동의하고 늘 충실히 지키셨던 외할아버지가 이 원칙과 관련해 모순적인 상황에 직면하셨던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대학 강의를 주로 하셨고]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은 잘 안 하셨지만 드물게 그런 수업을 맡으셔야 했던 적이 있었는데, 여섯 살짜리 아이들에게 수업을 하시는 도중에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한 아이가 막무가내로 자꾸 앞으로 나와서 샌들을 교탁 위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알아듣게 합리적인 설명으로 이해시키는 것을 포함해 온갖 방법을 써보았지만 아이가 샌들 장난에 흥미를 잃게 하는 데 실패하고서, 외할아버지는 한 번만 더 하면 맞을 줄 알라고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이렇게 대꾸했다. “오, 크시티다, 구루데브(현자를 뜻하는 말로, 여기에서는 라빈드라나트를 의미한다)께서 산티니케탄의 땅에서는 어떤 학생도 체벌받지 않는다는 규칙을 정해두셨는데요, 모르셨어요?”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외할아버지는 아이의 옷을 잡고 아이를 번쩍 들어올리고서 이제 아이가 산티니케탄의 ‘땅에’ 있지 않다는 데 쌍방 동의를 한 뒤 상징적으로 살짝 때리는 시늉을 하고서 샌들 말썽꾼을 산티니케탄의 땅에 다시 내려주었다고 한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교권 침해, 교권 추락 관련해서 교사가 체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자주 듣는데요. 그럼에도 체벌에 동의하지 않는 저에게 타고르의 체벌 금지에 대한 이유도 공감했고, 외할아버지의 모순적인 상황도 재밌었어요.
산티니케탄의 수업은 독특했다. 실험실 수업이거나 비가 오는 경우가 아니면 수업은 야외에서 이루어졌다. 우리는 정해진 나무 아래의 땅바닥에 앉았고(작은 방석을 가지고 다녔다) 선생님은 옆에 칠판이나 교탁을 두고 우리를 마주 보게 되어 있는 곳에 시멘트로 만들어진 자리에 앉으셨다. 벵골어, 벵골 문학, 산스크리트어 선생님이던 니트야난다 비노드 고스와미Nityananda Binod Goswami(우리는 고사인지Gosainji라고 불렀다)는 타고르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장벽을 싫어하며 벽으로 제한되지 않는 야외 공간에서 수업을 하는 것은 이러한 태도를 상징한다고 설명해주셨다. 더 폭넓은 수준에서, 타고르는 우리의 사고가 자신의 속한 공동체(종교적인 것이든 다른 것이든) 안에 갇히거나 국적의 주형틀에 끼워맞추어지는 것을 경계했다(그는 민족주의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또한 그는 벵골어와 벵골 문학에 애정이 있었지만 하나의 문학 전통에 갇히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의 전통에 갇히면 책벌레적 애국주의로 빠지기 쉬워질뿐 아니라 세계의 다른 전통들에서 배울 기회를 방기하게 된다고 보았다. 또한 고사인지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타고르는 학생들이 바깥 세계가 보이고 들리는 와중에서도 집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을 환영했고(그는 이것이 습득 가능한 능력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방식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교육을 인간 삶과 유리되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매우 심오한 이론이었고, 나와 친구들은 때때로 이를 두고 토론했다. 이 이론에 매우 회의적인 친구들도 있었지만, 우리 모두 야외 수업이 매우 즐겁기는 하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설령 그것이 주는 교육적 이득이 없다 해도 야외 수업을 주장할 근거가 있다고 결론내렸다. 또한 우리는 간혹 집중해서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울 때가 있긴 해도, 벽에 둘러싸여 있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니라는 데도 의견이 일치했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너무 재밌었을 거 같고 또 부럽습니다...
그의 교육 방법이 취하고 있는 원칙은, 모든 것이 평화롭고 자연의 모든 요인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환경 속에서 학생들이 절대적으로 자유롭고 행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미술, 음악, 시, 또 그 밖의 모든 학문을 교사로부터 직접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수업은 규칙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의무적이지는 않으며 야외의 나무 아래에서 교사의 발 앞에 앉아 이루어진다. 학생 각자는 저마다의 재능과 기질이 있어 자연스럽게 자신이 적성과 소질이 있는 주제와 과목들에 끌리게 된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산티니케탄에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유의 행사는 이성의 역량과 함께 발달해야 한다는 타고르의 개념이 내게 점점 더 분명하게 다가왔다. 자유가 있으면 그것을 행사해야 할 이유를 갖게 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일종의 자유의 행사가 될 수 있다. 단순 암기 교육을 주입식으로 받는 학생들이 흔히 그렇듯이 이성의 자유를 두려워하게 되는 게 아니라, 이성의 자유를 잘 사용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 타고르가 그의 독특한 학교에서 가장 크게 노력한 부분인 것 같았다. ‘자유와 이성의 조합’의 막대한 중요성은 그 이후로도 내내 내 삶에서 큰 교훈으로 남아 있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나는 풀이가 잘 알려진 수학 문제를 특이한 방법으로 접근하곤 했는데, 그러면 선생님은 기존의 방식도 아니고 내 방식도 아닌 또 다른 방식을 제시하셨다. 그러면 나는 선생님의 새로운 논증을 다시 나의 새로운 논증으로 능가해보려 노력했다. 꽤 여러 달 동안 날마다 학교가 끝나면 선생님 댁에 가서 몇 시간씩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은 내게 내어줄 시간이 무한한 것처럼 대해주셨고 아내분도 가정생활을 이렇게나 침해하는 학생을 너그럽게 참아주셨다(그리고 종종 “두 사람 대화 계속하라”며 차를 내어주시기도 했다). 나는 자가반두다 선생님이 내가 몰랐던 논증 방식을 보여주기 위해 책과 논문을 찾아보시는 것에 매우 고무되었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저도 5장을 읽으며 제가 대충 알고 있던 것과 다른 내용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아직 안 읽은 분들에게 스포일러일 것 같아 조심스럽긴 하지만, 주말엔 글 남기기 힘들 것 같아 미리 구절 남겨 봅니다. 신비주의적인 시인인 줄 알았던 타고르가 이성에 우위를 두었다는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더 충격적인 건 간디님이 지진을 바라보는 시각이었습니다.
3장에서 몇 번 크고 유쾌하게 웃었는데, 하나는 외할아버지가 체벌 금지 원칙에 예외를 두고 여섯 살짜리 장난꾸러기 녀석을 번쩍 들어올린 뒤 때리는 시늉을 했다는 대목에서였습니다. 또 하나는 센이 한 달 동안 노래 연습을 한 뒤 “음악 수업에는 안 와도 되겠다”는 말을 듣는 대목, 마지막으로는 군 생활에서 뉴턴 역학으로 원사에게 개기는 대목이었습니다. 노래 못 부르고 운동 못하고 약간 똘끼 있는 좋은 집안 도련님의 모습이 그려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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