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2.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D-29
케인즈는 여러 가지 학문적 기여를 했지만, 그중에서도 서로 다른 진영이나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함께 일하면서’ 각자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고자 했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25장, 574쪾,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전쟁이 있기 전에도 영국은 식량, 약품 등등 많은 것이 부족했다. 그런데 전후에 진정 급진적인 무언가가 벌어졌다. 아마도 전쟁으로 사람들이 공통된 불행의 감각을 갖게 되었고, 여기에 ‘함께’ 맞서 싸워야 한다는 인식이 결합해 협업적 관점이 나올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통합과 포용을 지향하는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25장, 577쪽,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공적인 논의는 사회가 어떻게 작동할지를 정하는 데 명백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설득의 중요성을 강조한 케인즈는 좋은 정책 수립에는 대중의 이성적 논증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존 스튜어트 밀과 일맥상통한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25장, 582쪽,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민주주의가 단순히 투표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토론에 의한 통치’를 의미한다는 개념은 오늘날에도 지극히 함의가 크다.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가 국정 운영에 실패하는 이유의 상당 부분은 명백한 제도적 장벽이 있어서라기보다 공적인 토론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25장, 583쪽,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저도 이 부분에 밑줄 쫙~
저도 당연히 포스트 잇을 붙여둔 문장입니다. :)
26장에서 고갱의 그림에서 친척들이냐고 묻는 어떤 분께 '그렇긴 한데 아직 못 만났다'고 대답하는 재치와 배려를 동시에 발휘하는 센의 일화에서 지금 읽고 있는 리처드 도킨스의 책 '조상 이야기'가 생각났는데요. 이 책은 캔터버리 이야기를 모티프 삼아 인류의 great-great-great.... grandfather가 단세포까지 이어지는 조상님을 찾아 시간을 거슬러 가며 진화와 생물의 연결고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이런 책에서 생물의 종도 결국 인위적인 barrier인데 인종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더 우습죠. 그리고 저는 실은 역마살이 껴서 아기 때부터 아빠 직업 때문에 2-3년마다 외국에 나가곤 하기도 했지만 결혼 후에도 아직 제 집이 없는 채로 전세기간이 끝날 때마다 이사를 했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어디에도 '고향'이나 '내 집'이라는 고정관념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믐과 비슷한 독서 커뮤니티 Goodreads를 통해 서양고전토론 모임에서 알게된 어떤 분과 비슷한 관심사 때문에 함께 둘이서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으면서 토론을 하는 buddy read를 진행했는데요. 한번도 만난 적도 skype나 zoom을 통해 얼굴을 본 적도 없고 종교도 완전히 다르고 (그분은 굳건한 기독교, 전 무신론자) 환경도 다르지만 통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센이 말한 것처럼 'kin'까지는 아닐지라도 빨강머리 앤에서 말한 'kindred spirit'이고 아직 만난 적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또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제게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도 직접 현실에서 만난 적은 없는데 제가 아주 힘들어할 때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의 'I kin ye Bonnie Bee' 챕터를 보내주면서 I kin ye라는 따스한 말을 건네준 적도 있죠. 이처럼 한번도 만난 적도 없는 분들과도 영혼이 통하거나 kin의 따듯함을 느낄 수 있는 넓은 세상에서 고향, 집 그리고 가족을 느끼는 건 참 다행인 것 같습니다. 실은 이건 좀 부끄럽지만 아버지가 OECD등 국제기관에서 일하면서 특히 많이 관여한 국제화에 대해 저랑 좀 의견이 엇갈리곤 했어요. 아버지는 워낙 이상적이고 낙관적인 이야기만 한다고 저는 당시 좀 비판적이었는데 산업혁명처럼 다소 문제가 많이 생기긴 해도 결국 막을 수 없는 흐름이고 경제적 혜택만이 아닌 더 넓은 여파를 가지고 제대로 된 토론의 장이 가능해지면 변화의 원동력이 될 듯 합니다. 한때 여러 나라 언어를 구사하니 제가 국제기구에서 일하길 부모님은 바랐고 저도 어느 정도 생각이 있었는데 앞으론 영어나 불어가 가능한 사람만이 아니라 이제 AI의 도움 등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토론과 공유의 장이 더 넓혀질 것 같습니다.
조상 이야기 - 생명의 기원을 찾아서, 전면 개정판이번 전면 개정판에서는 최신의 유전자 연구로 인해서 초판의 랑데부 순서가 일부 바뀌고, 새로운 순례자도 등장한다. 물고기의 교본이라고 할 창고기보다 바닷가에서 고착생활을 하는 멍게가 우리와 더 가까운 친척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결과도 밝혀진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포리스트 카터의 자전적인 소설로, 이야기는 주인공인 '작은나무'가 홀어머니의 죽음으로 조부모와 함께 살게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체로키족인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산 속 오두막에 살면서 '작은나무'는 산사람으로, 또 인디언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자연의 이치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는 지혜를 배워간다.
강함만이 아니라 취약성도 사람들을 가깝게 묶어주는 데 훌륭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정말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421쪽,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저는 센의 이런 시각이 책 전체에 걸쳐서 나타나는 게 참 좋고 따뜻하더라고요.
저도요. sns에서 너무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꾸미는 요즘 중요한 메시지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화요일(7월 30일)은 마지막 장 26장 '가깝고도 먼'을 읽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이고, 에필로그이고, 어쩌면 센의 나이를 염두에 뒀을 때 마지막 책의 끝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마저 읽고서 내일 이 모임이 닫힐 때까지 감상 나누는 걸로 해요. :)
25, 26장 다 읽었습니다. 저는 25, 26장이 약간 아쉬웠어요. 유년기를 다룬 앞부분의 밀도대로 한 300페이지쯤 더 중년기와 노년기 이야기가 더 펼쳐져야 할 거 같은데 말이죠. 1970~1980년대 동아시아 국가들의 ‘아시아적 가치’ 운운하는 개발독재 논리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합니다. 저희가 『경제학자의 시대』에서 본 것처럼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에 경제학의 위상이 그토록 커졌다면, 인간과 사회에 많은 이 경제학자는 그 현상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도 들어보고 싶고요. 노벨상을 받으면 어떤 일들이 생기는지도 유머러스하게 듣고 싶네요. 오바마처럼 자서전을 두 편 낼 생각은 없는 걸까요. 그래도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지식인이자 휴머니스트인 한 인간의 충만한 삶이 (벌써 몇 번째 쓰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부럽기 그지없네요.
마지막 장에서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인용하면서 '지리와 시대의 경계를 넘어 발휘되는 합리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는 마무리는 의도적이겠지요. 분열과 결핍이 넘치는 세상에 희망을 가지는 센에 동조하고 싶기는 합니다만 마음 한 켠으로는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제가 어제 이사를 하느라 못 들어온 사이 많은 분의 주옥같은 덧글들이 달렸네요..!! @Beaucoup 님, @개와고양이 님, @ 유니크 님, @Kimjin @토끼풀b 님 감사합니다. 책에서 뿐만 아니라 저보다 훨씬 더 비판적이고 다각적으로 읽으신 분들의 덧글로 저도 더 생각이 확장되고 제 정체성도 다른 각도로 생각해보게 된 듯.. 제가 피곤하고 바쁘지 않았다면 좀더 여유있게 토론을 계속 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남네요.
정의의 경계는 사람들이 가진 견해의 폭과 상호 연결의 힘에 비례해 한층 더 넓어질 것이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588쪽,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저는 이 두 문장이 26장에서 굳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보려는 센의 간절함이 담긴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건 '2024 성북구 비문학 한 책' 후보 도서인 국내 저자 장대익 선생님의 『공감의 반경』의 메시지와도 통합니다! (공감의 반경을 넓히기 위해서, 정서적 공감에서 인지적 공감으로!)
공감의 반경 - 느낌의 공동체에서 사고의 공동체로인간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문화와 환경 조건은 어떠해야 하는지 살피고 의식적으로 인간의 공감 수준을 바꾸려 했던 과학 연구들을 조명하면서 공감 본능의 변화를 일으키는 해법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많이 언급한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본능적인 공감과 논증에 의한 설득 둘 다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실로 옳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603쪽,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장맥주 @유니크 두 번째 부인에게 영향을 제일 많이 받았던 듯해요. 에바가 죽고 나서 센이 그의 이름을 딴 장학 기금 신탁 같은 것도 만들었나 보더라고요.
정의에 대한 감각이 닿는 범위는 우리가 누구를 알게 되고 누구에게 익숙해지느냐에 달려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의에 대한 감각은 다른 이들과 마주치게 되는 기회에 의해 촉진될 수 있고 여기에는 거래와 교환도 포함된다. 반대로 타인이 익숙하게 여겨지지 않으면 그들을 내 생각에서 멀리 두게 되고 정의를 고려할 때 배제하게 될 수 있다. 타인과의 접촉은 더 큰 규모에서 도덕을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26장, 589쪽,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저도 마지막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너무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요즘 책걸상 모임과 YG님의 추천 덕분에 센의 책을 틈틈이 몰아읽고 있는데, 이 책이 아주 좋은 배경이 된 것 같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 중 한 권의 옮긴이 서문인가 에서 공부하던 때에 센을 만날 기회가 있었고, 우리나라의 개발독재에 대해 센이 긍정적으로 말해서 논쟁을 했던 짧은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오히려 그런 부분에 대한 정리된 생각들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특히 센의 성장기의 일들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의 교육이 잊히지 않을것같아요. 뒷부분으로 갈수로 약간 흥미를 잃었는데 (아니 이건 좀 신변 잡기가 아닌가 ㅎㅎㅎ 하면서 ) 급 마무리 되어서 더 아쉬웠어요. 오래 사시면서 또 좋은 책을 한권 써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입니다:) 언제나 좋은 책 추천과 남겨주시는 이야기, 그리고 같이 읽으시는 분들의 의견들 감사합니다! 책걸상 모임덕분에 (한권을 읽으면서 추천도서 백권을 임보(?)하게 되는효과) 독서량이 훅훅 늘고 있어서 보람차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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