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2.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D-29
똑똑함과 지적 매력에도 여러 종류가 있나 봐요. 면도날처럼 예리하게 똑똑한 사람도 있고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반짝반짝 빛나지만 푸근하게 똑똑한 사람도 있고...
@장맥주 @borumis 오펜하이머는 자기와 불화한 지도교수(심지어, 그도 노벨상을 수상한 훌륭한 과학자 패트릭 블래킷)에게 (말 그대로의) 독사과를 먹이려고 했잖아요. 센이 자기와 불화했던 조앤 로빈슨과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과 대조적이죠. 작가님 말씀을 듣고 보니, 둘의 차이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생각해봤어요. 저는 이 책의 중요한 키워드 가운데 하나인 정체성이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유대인-백인-미국인-주류 정체성을 평생 고수할 수밖에 없었던 오펜하이머와 반대로 수많은 정체성이 교차하는 상황에서 자기를 상대화하며 특정한 정체성보다는 다양한 정체성이 중첩되는 상황에 익숙한 센이 차이가 한 원인이 아닐까요?
음 안그래도 성장배경을 읽으면서 약간 스스로 정체성에 얽매일 수 밖에 없는 교육을 받아온 것 같더라구요.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유대인들을 만날 때 orthodox냐 아니냐에 따라 매우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이런저런 유전과 다른 환경 차이도 작지 않았겠지만 말씀 듣고 보니 두 사람의 자아정체감이 무척 달랐을 거 같습니다. 오펜하이머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면에서 경계인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는데 결국 겉보기로는 ‘유대인-백인-미국인-주류’라는 정체성에 딱 들어맞았지요. 반면 센은 어렸을 때 가족과 모국 문화와 튼튼한 유대 관계를 맺고, 그 이후 영국과 미국에서 선명한 타자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주로 어울렸던 사람들이 그에게 무례하게 대했을 거 같지는 않고요. 실제로 오펜하이머와 센이 그런 위치들을 어떻게 여겼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더러 선택하라고 하면 센의 위치가 더 나을 거 같아요. 그 편이 덜 외로울 거 같습니다. 가끔 배척당하는 일이 생기는 게, 늘 오해받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지도교수 독살 시도 건은... 그냥 오펜하이머 뭔가 기질적으로 경미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에요. ^^)
맞아요. 사실 인간관계에서 센은 안정적이었지만, 오펜하이머는 모든 관계에서 불안정했죠. 심지어 너무 친밀했던 동생, 연인, 부인과의 관계에서도요.
E. M Forster 좋아해서 20장 더 재밌게 읽었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금요일(7월 26일)은 22장 '돕, 스라파, 로버트슨'을 읽습니다. 이 장에서는 센이 진짜 스승이라고 생각하는 세 경제학자 돕, 스라파, 로버트슨과의 인연과 그들에게서 센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가 나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은둔의 경제학자' 스라파가 항상 궁금했거든요. 20세기 중반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경제학자 가운데 천재 소리를 들었던 경제학자이면서도 딱 한 권의 저서를 내놓고 리카도 전집을 편집하는 데에만 몰두해서 정작 저서는 거의 없는 경제학자라고만 알고 있었어요. 이 책을 통해서 그에 대해서 좀 더 풍성하게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모리스 돕의 대표작은 1946년에 펴낸 『자본주의 발전 연구(Studies in the Development of Capitalism)』입니다. 이 책의 한국어판은 1986년 동녘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서지 사항이 검색되는데요. 사실, 이 책은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힌 운동권 대학생의 필독서였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그렇게 청년 시절에 돕의 이 책을 만나서 영국사 특히 산업 혁명기를 연구한 걸출한 역사학자가 고 이영석(1953~2022년)입니다. 그가 펴낸 『삶으로서의 역사: 나의 서양사 편력기』(아카넷) 4장 '역사 연구의 길잡이'에는 자기에게 영향을 준 세 명의 역사학자가 나옵니다. 모리스 돕(1900~1976), 돕의 제자 에릭 홉스봄(1917~2012), 에드워드 톰슨(1924~1993). 홉스봄이야 길게 설명할 것도 없고, 에드워드 톰슨은 영국의 대표적 신좌파 지식인으로 『영국 노동 계급의 형성』으로 유명한 역사학자입니다.
삶으로서의 역사 - 나의 서양사 편력기이영석의 <삶으로서의 역사>. 어느 서양사학자의 생애사이자 역사가로서의 연구 궤적을 보여주는 지성사다. 자신이 고민하고 방향 전환하고 몰두했던 연구대상과 자신의 탐구의 열망을 젊은 연구자와 일반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의도가 진솔하고 촘촘하게 배어 있다.
영국노동계급의 형성 -상이 책이 다루는 시기는 1780년대부터 1830년대 초반까지다. 최초의 민중적 급진파 협회였던 런던교신협회의 창립에서부터 서술을 시작해 요원의 불길처럼 번졌던, 노동자들의 선거권 쟁취 투쟁인 차티스트운동에서 멈춘다. 이 50여년 간의 역사에서 노동계급이 어떻게 형성돼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한겨레신문 고명섭 기자
영국노동계급의 형성 -하이 책이 다루는 시기는 1780년대부터 1830년대 초반까지다. 최초의 민중적 급진파 협회였던 런던교신협회의 창립에서부터 서술을 시작해 요원의 불길처럼 번졌던, 노동자들의 선거권 쟁취 투쟁인 차티스트운동에서 멈춘다. 이 50여년 간의 역사에서 노동계급이 어떻게 형성돼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한겨레신문
대표작은 없지만 모리스 돕의 '임금에 대하여'가 아직 절판되지 않았네요.
임금에 대하여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케임브리지 경제학 편람’이라는 제목으로 기획, 편집한 것으로 일반 독자와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대학생들에게 경제학자들이 현재 경제 문제들에 사용하는 이론의 일반적 원리를 담고 있는 개념들을 전달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스라파의 책도 돕과 비슷한 사정인데요. 1986년에 비봉 출판사에서 거의 유일한 저서 『상품에 의한 상품 생산』 한국어판이 나온 것으로 검색이 됩니다. (당연히 서점에서는 구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스라파의 경제 이론은 특히 케인스 연구자에 의해서 지금까지 계속 연구되고 있습니다. 국내 케인스 사상 전문가 가운데 한 분이 경제학자 박만섭 선생님이신데, 그분이 『스라파와 가격 이론』(아카넷)이라는 이론서를 번역하기도 하셨네요. 심지어, 2010년에는 당시 국내의 비주류 경제학 이론 잡지였던 <사회경제평론>에서 『상품에 의한 상품 생산』 출간 50주년을 기념해서 국내 학자의 논문 네 편을 싣는 특집을 기획하기도 했던 기록이 검색에 나옵니다. (이때도 박만섭 선생님께서 두 편의 논문을 쓰셨어요.) 22장에서 스라파와 비트겐슈타인의 인연을 언급한 책은 유명한 레이 몽크의 『비트겐슈타인 평전』입니다. 스라파의 친구였던 이탈리아 반파시스트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유명한 『옥중수고』로 유명하죠. 그의 삶은 주세페 피오리의 평전 『안토니오 그람시』를 통해서 살필 수 있어요. (아, 저는 학부 때 열심히 읽고서 나름 감동 받았던 책입니다.)
스라파와 가격이론아카넷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561권. 이 책은 현대 경제학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신고전학파 경제학과는 전혀 다른 이론 체계를 제시한 스라파의 경제학을 간결하지만 심도 있게 소개한 세계 첫 해설서이다.
비트겐슈타인 평전 (리커버 개정판) - 천재의 의무20세기 최고의 천재 철학자로 평가되는 비트겐슈타인 전기의 결정판, 레이 몽크의 《비트겐슈타인 평전》이 비트겐슈타인 탄생 130주년을 기념하여 <리커버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됐다. 난해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 흐름 속에서 꼼꼼히 재구성해낸 전기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안또니오 그람쉬 - 이매진 올더피플 02그람쉬의 일생을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과 연결시켜 서술하고 있으며, 탁월한 이론가이자 사상가였을 뿐 아니라 정치가, 혁명가, 언론인이었던 그의 면모를 다채롭게 비추고 있다.
저두요. 이분이 비트겐슈타인과 이런 관계였다니..! 게다가 그람시의 옥중수고는 예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책인데 그람시와의 관계가 다뤄진다는 24장을 어서 읽어보고 싶네요. 돕이 뚜껑없는 찻주전자에 대해 언급 안 했던 일화도 그렇고 그 전에 기숙사 규칙을 어긴 것에 대해 (그나저나 옥스포드 캠브리지 등이 남학교였던 건 알았지만 꽤 늦게까지도 여성을 안 받아들였군요;;) 간접적으로 엄격히 혼냈던 것도 그렇고 뭔가 말을 절제하는 신사다운(?) 모습도 보이네요..
『옥중수고』에 도전하실 거면 차라리 영어판을 읽기를 권해요. 한글판은 완역도 아니고, 번역 상태도 권할 만한 수준은 아니랍니다. 그리고, 『옥중수고』를 바로 읽기 보다는 앞에서 언급한 주세페 피오리의 평전부터 시작하면 훨씬 맥락을 이해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을 거예요. 피오리의 평전 이후에는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 이전』이라는 책이 있어요. 그람시가 감옥에 갇히기 전까지 어떤 활동을 했고, 당시의 정세에 어떤 입장과 사상을 견지했는지를 따져보기 좋답니다.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 이전 - 개정판'시민사회의 이론가', '실패한 서구의 혁명가', '지성의 비관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공산당 창설자 안토니오 그람시. 그람시는 1926년에 이탈리아 파시스트 당국에 체포되었는데, 11년 간의 감옥 생활기간 동안 이 책을 집필하였다. 세계 역사의 격동기를 헤쳐나간 젊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혁명적 사유가 담겨 있는 책이다.
@borumis 님, 참고하시라고 영어판 서지도 알려드립니다. Gramsci: Pre-Prison Writings (Cambridge Texts in the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Prison Notebooks (Volumes 1, 2 & 3)
22장을 읽는 동안 은사(恩師)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했어요. 저에게는 은혜로운 스승은 고사하고 ‘그 분께 너무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는 선생님조차 없네요. 제가 겪은 선생님이나 교수님들 잘못은 아니고 제가 겉돌며 학교생활을 한 탓이지만요. 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아니고,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고, 그 전공을 살리지도 않았으니 센처럼 학계의 권위자로부터 지도를 받고 대화나 토론을 할 기회 자체가 없었습니다.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은 무척 소중한 경험인 듯한데 이 책 읽으며 자주 쓴 표현이지만, 부럽습니다.
저에게는 그와 가장 유사한 인간관계가 언론계 선배들과의 관계일 거예요. 그런데 롤모델로 삼고 싶거나 존경할 만한 커리어를 이루고 있는 선배가 거의 없네요. 언론업이 망하면서 언론계에 남아 있는 선배들은 진지하게 노후를 걱정해야 할 처지이고, 기업계로 간 선배들은 잘 된 사람이라 하더라도 홍보나 법무 쪽 임원 정도입니다. 부럽진 않습니다. 정치권으로 가서 국회의원 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분들은 자기가 잘 풀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만. ‘커리어를 따라가고 싶은 선배가 없다’는 점은 요즘 젊은 기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가끔 후배 기자들 모임에 초청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열렬한 환영을 받습니다. 저는 잘 모르는 후배들, 젊은 기자들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저한테는 이중으로 부담스러운 자리입니다. 첫째로는 나 그렇게 괜찮은 사람 아닌데 하는 심리적 부담감, 둘째로는 술값 내야 한다는 경제적 부담감. (한때는 술값을 낼 때 진지하게 김영란법 위반 아닌가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아닌 거 같더군요.)
@장맥주 그래도 저는 작가님보다는 운이 좋나 봐요. 저는 기자 생활 시작하고 나서 만난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님과 아주 깊은 친교를 나눠서 마음속의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종철 선생님께서는 근본주의자라는 오해를 많이 받으시지만, 제가 보기엔 정말 보기 드문 자유주의자-합리주의자-현실주의자이면서 근본을 사유해야 한다는 문제 의식도 놓치지 않은 분이셨거든요. 무엇보다도 함께 대화하면 유머가 넘치셔서 너무 즐거웠어요. 안타깝게도 2020년 6월에 너무 일찍 세상을 뜨셨지만요.
전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후배들이 점점 더 잘 나갈수록(?) 존경하는 사람들 중 동기나 후배가 늘어나는 것 같아요. 물론 선배들도 있지만.. 나이를 불문하고 갈수록 후배들한테 제가 더 배울 게 늘어나고 있다는 생각이..(만약 제가 술 사주면 교육비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ㅎㅎ) 그리고 실은 저랑 비슷한 환경이나 전공에서 존경할만한 사람을 찾는 것에 국한되면 비슷한 사람들만 보여서 시야(?)가 좁아지는 것 같아요. 제가 SNS에 아직도 글이나 사진 올리는 것도 잘 못해서 초딩 딸한테 혼나는데 이걸 하면서 좋은 점은 제가 바빠서 만날 집과 직장밖에 못 다니는데 실제로 거의 만나보지 못할 사람들과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점인 것 같아요. 영국의 철학교수와 쇼펜하우어와 프루스트에 대해 이야기도 가능했고 미국에서 교장을 하는 친구와 학생들에게 총기사건에 대한 예방 훈련시키는 등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 보면서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잘 나가는 것보다는 (잘 나가는 사람이야 워낙 많지만) 실은 존경하는 이유는 사회적 성공 여부나 어떤 사상보다는 자신의 일과 삶에 열심히 매진하는 모습을 보면 존경하게 됩니다. 제가 최근 제일 존경하는 분 중 하나는 교도소에서 일하시며 다운신드롬과 자폐증을 앓고 있는 자녀를 키우는 분이세요.
저는 제가 노력하지 않은 탓에 좋은 스승과 인연을 맺지는 못했지만 좋은 선배들을 많이 만났으니까 쌤쌤해야겠어요. 제가 좋은 스승이 될 기회는 없겠지만 괜찮은 선배가 될 기회는 미약하게 있을 것 같고요. 그런데 저는 저보다 젊은 소설가들이 후배로 여겨지지는 않네요(그들은 저와 대등한 동료). 저한테 ‘후배’는 기자들, 특히 신문기자들인데, 이것도 좀 더 나이가 들면 생각이 바뀔지 그대로일지 모르겠습니다. 올해 9월까지 저는 기자로 일한 기간이 전업 작가로 일한 기간보다 긴데, 그 이후로는 전업 작가로 일한 기간이 더 길어집니다. p. s. 제가 좋아하는 선배 중 한 분인 김승진 번역가님과 이 모임 덕분에 연락을 주고받게 되어 얼마 뒤 신사역 근처에서 만나 맥주를 마시기로 했습니다. 자랑입니다. ^^
@장맥주 김승진 선생님과의 맥주 한 잔 부럽습니다. 저는 김승진 선생님과는 연이 없었는데, 제가 좋아하는 선생님 한 분(연세대학교 송기원 교수님)이 그렇게 김 선생님을 칭찬하시더라고요.
번역하신 김승진 선생님과 가까우시군요. 24장 영국 케임브리지로 돌아와서 사회선택이론을 다시 들여다 보고 설명하는 내용은 우리말로 읽어도 이해가 안되어 그냥 넘어갔습니다. 이런 글을 번역하시다니... 개인적으로 welfare를 복지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일관되게 '후생'이라고 번역하셔서 새로웠습니다. 경제학계에서 사용하는 표준어인가 생각했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사전을 봐도 후생이 더 가까운 의미인 것 같아요. Welfare (후생: 사람들의 생활을 넉넉하고 윤택하게 하는 일/복지: 행복한 삶. 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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