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2.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D-29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열정을 경계하고 있어요. 그 마음이 ‘세상을 빨리 구원해야겠다’로 바뀌는 순간, ‘수많은 사람을 구하는 일인데 그 과정에서 조금 피를 흘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금방 따라오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마르크스 한번 제대로 읽어보고 싶습니다.
최근에 페르세폴리스를 읽었는데 주인공이 어린아이답게 자기는 장래 prophet가 될 거라고 당당하게 선언하면서 할머니에게 나는 노인들이 고통받지 않게 할거라고 해서 할머니가 '어떻게 그렇게 할 거니?'라고 묻자 '고통받는 걸 금지시킬 거야!'라고 대답하는 주인공의 유아기적 발상이 어쩌면 그런 열정에 앞서 억지스러운 강제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비슷할 것 같네요.
마르잔 세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는 저도 좋아하는 책이에요. (감동적이니 안 읽어본 분들에게 강추!) @장맥주 @borumis 님 말씀을 듣고 보니, 이 책이야말로 특정한 정체성 지상주의가 한 세계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생생히 보여준 책이네요. 서남아시아에서 가장 세속적이었던 한 나라(이란)가 친미 성향의 권위주의 왕국을 무너뜨리자는 열정에 사로잡혀서 이전의 권위주의보다 더한 종교 근본주의 권위주의를 받아들이게 된 사정을 보여주니까요.
페르세폴리스이란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한 후 다시 이란으로 돌아와 결혼과 이혼을 한 작가 마르잔 사트라피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그래픽노블.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과 전쟁을 겪고 이란과 유럽 사회에서 방황하면서도 유머와 존엄을 잃지 않으며 성장하는 주인공 마르지의 모습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페르세폴리스 2 - 다시 페르세폴리스로이슬람 혁명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소녀가 보여주는 흥미롭고도 가슴 졸이는 기억들은 아트 슈픽겔만의 <쥐>와 비교될 만하다. 헌신적인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이란 왕조의 위대한 후손임을 자부하는 한 소녀가 거침없이 쏟아낸 증언은 강렬한 흑백이미지와 더불어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저두 꽤 오래전에 읽은 책, 소장하고 있는 책, 딸들과 함께 읽은 책입니다. 강추입니다. 편하게 읽으면서 깊게 다양하게 생각해볼 꺼리가 많은 책입니다.
@YG@borumis 님 제가 굉장히 좋아할 거 같은 책이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픽 노블 잘 몰라서 제목도 처음 들어봅니다. 그래픽 노블은 전자책으로 보기 애매하다는 게 저한테는 조금 걸림돌입니다. (여러 뷰어를 전전하다가 휴대폰으로 전자책 보기에 정착했거든요.)
1권만 읽으셔도 됩니다. 흠... 저는 읽으면서 몇몇 대목에서는 눈물 흘렸었던 기억이;
저는 펑펑 울면서 읽을지도 모르겠네요. 4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남성호르몬이 잘 분비가 안 되어서 그런 거 같습니다. 피부도 매끈해지면 좋을 텐데...
저도 그래픽노블 등은 이제 그냥 종이책으로.. (그래서 서재에 갈수록 독립출판물과 만화책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OTT 구독을 안 하고, 여행이나 출장(지방 강연) 가서 넷플릭스 서비스하는 모텔에 묵고 그날 밤 맥주 마시며 영화를 보고 있어요. 앞으로 만화카페에 가면 그래픽노블을 좀 볼까 싶네요.
@장맥주 작가님의 의견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저는 어떤 관점이든 이데올로기가 되는 순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조심스럽게 말씀하신 5번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작가님을 위해서 공개 발언하실 때는 수위 조절하시기를 권합니다. :( ) 저는 오히려 2에 조금 이견이 있어요. 저는 심지어 1이나 2도 의심을 하는 게 진정한 과학적 태도라고 생각하거든요. 오랫동안 과학자의 중력파 연구를 대상으로 연구해온 해리 콜린스는 과학자 사이에 중력파인 것과 중력파가 아닌 것을 판단하고자 경쟁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흔히 우리가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과학 개념조차도 상당 부분 구성된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거든요. 저는 과학자 여러분과 교류하는데, 오히려 현장 과학자는 이런 견해에 오히려 반감이 없는데(실제로 그러니까요.) 대학에서 공식화된 자명한 과학만 배우고 나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는 분들 중에서 이런 관점을 낯설어 하거나 거부감을 가지시는 분들이 많은 것도 흥미로웠어요. :) 장 작가님께는 해리 콜린스의 『골렘』과 『닥터 골렘』(사이언스북스)도 권합니다. 분명히 마음에 드실 거예요.
중력의 키스 - 중력파의 직접 검출중력파로 확증된 ‘그 신호’ GW150914가 검출된 2015년 9월 14일부터 시작해, 2016년 2월 논문이 발표되기까지 라이고 협력단 내부에서 발견이 참으로 확정되는 과정, 또 논문이 세상에 공표되고 중력파의 실재가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과정을 현장 연구한 영국의 저명한 과학사회학자 해리 콜린스의 역작이다.
중력파,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 - 중력파를 찾는 LIGO와 인류의 아름다운 도전과 열정의 기록라이고 과학협력단에 참여하며 중력파 검출 실험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 기여했던 현장의 과학자가 지난 55년간의 중력파 검출의 역사와 함께 오늘날 그 과학적 성공을 이루어낸 눈물겨운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낸, 중력파 검출 실험의 역사서이다.
닥터 골렘 - 두 얼굴의 현대 의학 어떻게 볼 것인가?의료와 의학의 문제를 지식 사회학의 문제로 다루는 책이다. 의료와 의학에서 ‘전문성’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형성되는지 해명해 나간다. 결국 의학과 의료의 전문성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만들어져 왔고, 앞으로도 만들어질 것임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골렘 - 과학의 뒷골목골렘은 유대 전설에 나오는 괴물로, 온순하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언제라도 미쳐 날뛸 수 있는 존재이다. 저자들은 과학은 골렘 같은 것이라고 말하며, 흥미진진한 일련의 사례들을 통해 이런 구축 - 관측과 실험 - 이론의 확증이라는 전통적인 과학상의 허구를 낱낱이 파헤친다.
아흑.. 지금 책 정리해야하는데 자꾸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이 눈에 들어오네요;;; 맞아요.. 실제로 저는 이론적인 순수과학 쪽도 아니고 응용 쪽이지만 학회에서 가끔 교수님들이 거의 투지에 불타올라 토론하거나 논쟁하는 걸 보면 '상당부분 구성된' 것이라는 점이 와닿아요. 그래서 계속 저 노교수님들처럼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구요.
과학 개념조차도 구성된 것이다라는 주장에 동감합니다. 당연히 사회과학, 심리학 이론, 개념들은 모두 구성된 것이겠지요. 마르크스 이론도 아주 작은 부분만이지만 같은 맥락으로 저는 이해하고 수용합니다. . . . 유발 하라리의 주장도 논거가 분명하니까 우리가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대부분의 과학, 경제, 정치, 사회이론 들 모두 사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주는가에 따라서 그 이론이 지배적 이론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듯하니까 이해하고 믿는 것이지, 내 눈으로 확인되고 사실로서 증명되었기 때문에 믿는게 아니거든요. 하라리 말대로 인간은 추상개념, 상상을 공유할 수있기 때문에 인지 혁명이 일어난 것처럼 . . . 아직도 진화론을 수용하지 않는, 창조론을 굳게 믿는 분들이 있지요. 종교적 측면이 있어서 함부로 말하기 어렵지만, 그 어느 쪽도 반드시 옳다, 틀리다 말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오! @YG 님 책 추천 감사합니다. @borumis 님 설명도 정말 감사합니다. 2번은 사실 제가 좀 궁금하게 여긴지 오래된 질문인데 설명 곱씹고 추천해주신 책들 읽으면서 공부해보겠습니다. 제가 이 주제에 관해서는 사실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입니다. (토머스 쿤과 존 그리빈의 책을 한 권씩 읽고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이 흥미롭지만 아무 거나 패러다임으로 설명할 건 아닌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하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저는 『중력의 키스』를 왜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5번 관련해서는 실은 내년에 현대문학에서 PIN 시리즈로 중편소설을 발표할 건데 그게 PC에 대한 거예요. 그 외에도 ‘나는 왜 PC를 반대하는가’ 같은 책도 몇 년 안에 쓰게 될 거 같습니다. @YG 님이 추천해주신 생각의힘 출판사에서 낼까 하는 생각도 좀 있습니다. ^^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이 생각의힘에서 나왔잖아요. 좋은 출판사, 라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출판사도 불매 운동 겪을 각오는 좀 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
과학계에서 '이론'이 갖는 위상도 실은 그렇게 확고하지는 않은 듯합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지상 최대의 쇼'에서 보면 2장 Only a Theory라는 챕터에서 진화론을 의심하는 창조론자들이 Well, it's only a theory라고 하는 말에 발끈한 도킨스가 theory의 옥스포드 사전 정의까지 찾아보며 반론을 펼치는데요. 진화론자들이 theory라고 할 때 말하는 사전적 의미는 A scheme or system of ideas or statements held as an explanation or account of a group of facts or phenomena; a hypothesis that has been confirmed or established by observation or experiment, and is propounded or accepted as accounting for the known facts; a statement what are held to be the general laws, principles, or causes of something known or observed. (일련의 사실이나 현상에 대한 설명이나 설명으로 간주되는 아이디어나 진술의 체계나 체계; 관찰이나 실험에 의해 확인되거나 확립되었으며, 알려진 사실을 설명하는 것으로 제안되거나 받아들여지는 가설; 알려지거나 관찰된 것의 일반적인 법칙, 원칙 또는 원인으로 간주되는 진술) 이지만 창조론자들이 쓰는 theory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A hypothesis proposed as an explanation; hence, a mere hypothesis, speculation, conjecture; an idea or set of ideas about something; an individual view or notion. (설명으로 제안된 가설 즉 단순한 가설, 추측; 어떤 것에 대한 아이디어 또는 아이디어들; 개인적인 견해나 개념) 실은 사회과학 뿐 아니라 진화심리학이나 이론물리학 등 요즘 워낙 다양한 분야가 실제 실험이나 관찰로 확인 및 검증하기 어려운 분야도 있어서 이론은 결국 신박한 발견이나 기술의 발전으로 검증 절차를 밝혀내기 전까지는 '견해'만이 아니라 '가설'이나 '아이디어'에 머물거나 둘 사이에 아리송하게 겹쳐진 듯한 상태로 있을 때가 있는데요. 반대로 예전에는 확고했던 이론들이 나중에 반박하는 증거를 발견하기도 하죠. 예전에 책걸상 팟캐스트에서 나온 물리학자 황정아님이 명왕성이 행성의 지위를 잃게 된 얘기를 하면서 과학이란 파고들면 파고들 수록 애초에 우리가 알았던 지식과 많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그게 과학의 매력이고 항상 합리적인 의심을 품는 게 과학이고 과학자의 자질 중 첫번째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얘기해서 크게 공감했어요. 저만 해도 대학교 입학했을 때랑 졸업했을 때 사이 바뀐 지식이나 지론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대학원 논문 쓰며 실험하는 도중에도 '과학자의 삶은 매일매일 실패하는 것'이라는 것이 정말 피부에 와닿았거든요. 하물며 지금도 논란이 많은 '이론'들이나 '가설'들은 오죽할까요.. 어떤 이론이든 결국에는 진실을 향해 발견해 가는 여정의 여러 갈림길이 아닐까 싶어요.
참, 이 책 제목도 재미있어 보이는데 책 부제에 '문화 물리학자'라는 말이 나와서 궁금해졌습니다. 문화 물리학이라는 학문은 낯설어서요.
저도 처음 들은 단어였어요. 재미있는 학문 같습니다. ^^
@borumis 지금 ILO에 계시는 이상헌 선생님께서 제네바에 오래 사시다가 아이들 다 크고 나서 사모님과 프랑스 국경 쪽으로 넘어오셨다고 하더라고요. 매일 산길로 국경 오가면서 출퇴근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아마 비슷한 지역에서 사신 걸까요? (저는 제네바는 잠깐 지나쳐서 추억은 없고 출장 갔을 때 레만호 몽트뢰에서 머문 적이 있어요. 아주 좋았던 여행 추억입니다. 몽트뢰는 다시 한번 가보고 싶어요.)
네 맞아요. 저도 약 2-30분 자전거 타거나 걷다 보면 국경을 어느새 지났더라구요. ^^;; 국경이 이렇게 인공적인 거라는 걸 몸소 깨닫게 해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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