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2.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D-29
그런데, 그렇다고 인도의 사회 개혁을 위한 에너지나 혹은 영화 산업의 위상이 지금 우리나라와 비교해봤을 때 그 시차만큼 나은지를 따져보면 그것도 아니고. (물론, 인도의 고유한 영화 산업 발리우드가 있지만요.) 아무튼, 저는 괜히 이 대목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답니다.
프레지던시 칼리지에 다니는 동안, 아니 사실은 그 전부터도, 나는 사회에서 반대와 불일치가 수행하는 건설적인 역할과 관용과 다원성을 실천하려는 의지의 중요성을 국데 믿고 있엇다. 그런데 이 생각은 당시 칼리지 가에서 학생 정치의 주류였던 좌파 운동가들의 활동 형태와 합치시키기가 매우 어려웠다. 또한 나는 서로를 이해하고 건설적인 시민 사회를 짓기 위해서는 계몽주의 시기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떠오른 근대 자유주의 정치 담론도 중요하지만, 인도를 비롯해 수많은 문화권에서 수세기에 걸쳐 강조되어온 '다원성에 대한 관용'에도 반드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치적 관용을 단순히 서구 자유주의자들의 성향이라고 보는 것은 커다란 오류로 보였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307~308쪽,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제가 대학 다닐 때 이른바 주류 운동권 학생들과 똑같은 이유로 불화해서 이 대목에서도 웃었어요.
기억하시나요? 311쪽에 나오는 '불가능성 정리'는 『앨버트 허시먼』에서도 비판적으로 언급되었죠.
애로우는 일견 경악스런 결론으로 보이는 '불가능성 정리'를 제시했다. 불가능성 정리는 (가령 위에서 예로 든 공리적 조건들처럼) 명백하게 합리적인 기본 절차를 충족해야 할 경우에 독재 이외의 사회 선택 메커니즘으로는 일관성 있는 사회적 의사 결정이 산출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불가능성 정리는 강력하고 의외이고 우아하고 비범한 수학적 정리였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311쪽,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민주적 일관성은 가능한가? 아니면 그 개념 자체가 환상인가? 애로우의 개념은 당시 캘커타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학문적 논쟁에 아주 많이 등장했다. 애로우의 정리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민주적 일관성이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잘 동의가 되지 않았다.) 특히 애로우가 설정한 (자명해 보이는) 공리적 조건들이 정말로 합리적인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애로우의 공리적 조건들 못지않게 합리적이면서도 독재 메커니즘이 아닌 사회적 선택의 규칙이 성립될 수 있는 또 다른 공리적 조건들이 정말로 없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313~314쪽,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Kimjin @유니크 저는 13장이 제가 근래 읽은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가장 우아하고 현실성이 있는 옹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3장은 아예 따로 팸플릿으로 내놓아도 될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대가!!!
동감이요. 이걸 읽고 이거야말로 Marxist Manifesto같습니다. 급 맑스의 책들을 읽고 싶어졌어요.
동감2 입니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녔지만 마르크스를 멀리 했던 저는 노동가치설 외 마르크스의 주장 중 아는 게 없어요. <사람을 위한 경제학>에서도 마르크스의 주장은 '이제 됐다'고 결론 내린 주류 경제학자들의 입장이었지요. 13장은 좌파 경제학자가 마르크스에게 보내는 찬사라는데 동의합니다. 그의 주장에 한계는 있지만 필요의 법칙, 객관적 착각, 노동자의 다양한 정체성에 대한 센의 해설을 보고 마르크스 관련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동감입니다. 가장 우아하고 현실적인 옹호라는 말씀도, 13장만 따로 소책자로 내도 될 거 같다는 말씀도요. ^^
저도 요즘 정신이 없어서 13장부터 15장까지 메모했던 내용은 내일 금요일 점심 때 시간 나면 다시 공유해볼게요. :)
15장 영국으로 아마르티아의 이야기를 읽으며 부모로서 살짝 찔리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15장에서는. 아마르티아의 입장보다는 그가 영국 생활에 적응하도록 보이게, 보이지않게 도와주는 부모님의 역할이 더 크게 와 닿았다. 모든 살림 쥐어짜서 영국으로 떠나 보내는 부모, 자신의 인간관계를 동원하여 아이의 낯선 생활을 지원하는 부모의 세심함이 크게 느껴졌는데, 나는 아이의 자주성, 독립성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다구치지도 않았고, 열심히 지원하지 도 않은 무심하고 무능력한 부모 같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유색인종과 처음 접하는 하숙집 아주머니의 변화처럼, 우리는 새로운 것을 만나고 적응하면서 나의 사고나 마음이 커지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피하면서 크게 생활하고 크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많이 있는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것을 만나고 싶어도 현재 사는 위치나 공간이 그러하지 않아서 욕심, 욕망만큼 커 질수 없는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나의 삶은 어느쪽이었을까? 나는 낯선 것에 얼마나 도전하고 살았는지 . . . 나는 완전 새로운 세상에 떨어지면 어떻게 적응하면서 살아냈을까 즐거운 상상을 해 보았다.
어떤 분이 자기는 선재업고튀어 드라마에서 청춘 로맨스보다는 기껏 유학 준비했던 선재 아버지의 노고를 내던지고 좋아하는 여자 쫓아가는 걸 보고 부모 입장이 되서 속터지는 줄 알았다는데..;; 애를 키우다보니 자꾸 부모 입장에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사교적 외교관 타입인 남편과 극도의 내향인인 저는 아이들을 키우고 도와주는 방식도 완전히 반대인데요. 남편은 아이나 집안에 무슨 어려운 일이 생기면 온갖 지인들의 인맥을 이용해서 컴퓨터가 고장나면 어떤 친구가 와서 고치고 법률 문제가 생기면 저 친구가 도와주는 등으로 지원해주는 반면 저는 아이가 공부하거나 인생에서 고민이 생길 때 같이 대화하고 검색하고 알아봐주는 유형이에요. 어제 남편은 술자리에서 친구가 검정고시 본 아이가 가볼 만한 수시관련 전시회에 대해 알려줘서 남편이 아이한테 그거 가보라고 하는 반면 저는 이미 한 달 전에 그 전시에 대해 검색을 통해 알아보고 전시 티켓 예매도 했다고 해서 남편이 좀 허탈해졌는데요.. 각자 다른 지인들의 영향 속에서 내 자신이 형성되는 것처럼 각자 다른 부모의 영향도 아이를 좀더 다채롭게 크게 해줄 거에요. 전 첫번째 하숙집에서 신도 안 믿는다고? 놀라는 것도 웃기고 두번째 하숙집 아주머니가 목욕하면 색이 빠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도 너무 웃프더라구요. 얼마나 그 당시 무지와 편견으로 중무장했을지.. 뭐 지금도 가끔 외국인이 동양인을 보는 시선도 그리고 가끔 한국에서도 외국인을 보는 시선도 만만치 않겠지만요. 그래도 그걸 일일이 발끈하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tongue-in-cheek 식으로 대처하는 작가가 참 매력적이었습니다.
양육방식과 사고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진짜 밤을 새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닌가? 그전에 싸워서 일찍 돌아누워 자게 될까? ㅋㅋ . . .자기가 접하지 않은 세상에 대한 무지, 어떻게 드러내는가의 문제인것 같아요. 생각하는대로 살아간다는 말이 어찌보면 참 무서운 말이지요. 무지를 무지로 인식하지 못한채 편견속에 살아가게 되는 거니까 ~~
무지와 편견으로 중무장했지만 마음이 나쁜 건 아닌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깨닫게 해주는 에피소드였어요. 센 박사님도 부들부들 떨면서 억지로 참으며 행어 부인을 대한 것 같지 않아서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센 박사님 정말 (글로만 뵌 거지만) 따뜻하고 어른스러운 분 같습니다. 겨우 20대였을 때인데도 지금의 저보다 더 점잖으십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금요일(7월 19일)은 17장 '친구들과 동아리들'을 읽습니다. 어제(7월 18일) 읽은 16장의 연장 선상에 놓인 장이에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센의 학교 생활과 교우 관계를 알 수 있게 하는 장입니다. 이 장을 읽으면서, 아 1950년대 초반의 케임브리지 대학교는 사실상 전 세계 엘리트(유럽과 미국 그리고 과거 영국 제국의 우산 아래 있었던 나라들)의 요람이었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만약 센이 케임브리지 대학교가 아니라 미국 대학교로 유학을 갔었다면 또 그의 학문과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런 생각도 해봤고요.
17장을 읽으면서 이 축복 받은 (것처럼 보이는) 대학생활, 교우 관계를 내가 부러워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존경해야 하는 걸까 싶었어요. 어쩌면 그렇게 자기 친구들의 초상을 구체적으로 그리면서 다 좋게 묘사할 수 있을까요. 분명히 이때 싫어했거나 질투했거나 다퉜거나 하는 동기들이 있었을 텐데요. 저는 돌이켜보면 어느 조직에 있을 때나 늘 몇 퍼센트의 사람들하고는 격렬하게 사이가 나빴거든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고요.
자전거로 시작하는 17장은 수 년 전 1년간 머물렀던 케임브리지를 떠올리게 하면서(아침이면 자전거 타고 학교로 가는 학생들이 대학가로 들어가는 길목쯤 되는 횡단보도에서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죠) 동시에 만나는 모든 사람과 찬구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대학 1학년 시절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만남과 우정(그런데 두 장째 읽지만 다른 장도 거의 이런 분위기인 듯)! 일본 전범재판소에서 반대 의견을 냈던 인도 판사 라다비노드 팔 얘기가 인상적이었고 마지막 부분에 구강암 치료를 받고 1년만에 영국으로 왔다는 얘기에 깜짝 놀랐어요. 이번 주말에 4부를 마치고 빨리 처음부터 읽고 싶습니다.
우리는 주류 경제학에 대해 불평하곤 했다. 왜 주류 경제학은 인간의 삶에 관심을 거의 갖지 않는가? 마붑과 나는 친구로서도 죽이 잘 맞았지만 학문적인 관심사도 비슷했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17장, 397쪽,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권리 자체가 매우 적은 사람들을 보호하려면 물론 입법이 필요하지만, 존재하는 법률조차 어떤 사람들에게는 문맹이나 극빈곤 등의 장애물 때문에 도움이 되지 못할 수 있다. 그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법이 있어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17장, 412쪽,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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