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2.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D-29
옆 방에서 읽던 소설에 스치듯 산티니케탄이 등장해서 반가웠습니다. 이 자서전 안 읽었으면 그냥 흘려 읽었을듯... 아는만큼 보이네요. :D
이 책에서 언급하는 타고르를 포함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중반까지 격동의 시기를 보냈던 아시아의 지식인 이야기를 좀 더 깊이 있게 알고 싶으면 1971년생 인도 출신 지식인 판카지 미슈라의 『제국의 폐허에서』(책과함께)를 추천합니다. 저는 아주 좋게 읽었고, 가끔 곱씹어보는 책이에요. 이 책을 처음 펼치자마자 한국 독자는 아마도 혼란에 휩싸일 겁니다.
제국의 폐허에서 - 저항과 재건의 아시아 근대사일본, 중국, 터키, 이란, 인도, 이집트, 베트남이 뒤얽혔던 역사적 사건들을 능숙하고 매혹적인 서술로 펼쳐 보이며, 량치차오, 타고르, 자말 알딘 알아프가니, 쑨원 같은 아시아의 주요한 개혁가와 지식인, 혁명가들이 나눈 생생한 대화를 들려준다.
일이 잘 풀릴 때면 이 세상에 인간에게 호의적인 어떤 존재의 힘이 작동하고 있다고 믿고 싶은 유혹이 그토록 강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수많은 다른 이들의 삶이 얼마나 끔찍한지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수억 명의 사람들이 온갖 종류의 박탈을 겪고 있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3장, 101쪽,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나는 힌두교 사상의 전체 문헌 안에 불가지론, 아니 심지어 무신론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종교가 이렇게 폭넓을 수 있다면 무신론자라도 종교에서 도망칠 길이 없겠다는 점은 살짝 좌절스럽기도 했지만 말이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4장, 115쪽,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5장 논쟁의 세계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 “나 같은 사람은 이 지진이 신이 우리의 죄에 대해 내리는 신성한 징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보기에 비하르의 재앙은 (인도에서) 불가촉천민에게 가해졌던 배척과 중요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예상하다시피 타고르는 분개했다. 그도 불가촉천민이라는 계급을 없애려는 노력에 간디 못지않게 헌신했고 이를 위한 간디의 운동에 진심으로 동참했지만, 간디가 자연적인 사고, 그것도 어린 아이들까지 포함해 수많은 결백한 사람이 고통 받고 사망한 사고를 해석하는 방식에 경악했고 지진을 (자연 현상이 아니라) 윤리적인 현상으로 보는 인식론도 혐오했다. <중략> 그 이후에 오고 간 공방에서도 타고르는 간디가 “우주적 현상을 윤리의 원칙과 연결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분노와 좌절을 드러냈다. 또한 그는 만약 간디가 옳다면 과거에는 자연이 내리는 재난 없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악행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냐고 반문했다. "(138쪽)
타고르가 인도 사람들에게 맹목적인 믿음에서 깨어나 이성과 논증의 능력을 사용하라고 촉구하던 바로 그때, 예이츠는 타고르의 시를 완전히 신비주의적인 의미를 가진 작품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5장, 153쪽,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그(타고르)의 사상에서 중요한 측면 하나는 많은 질문이 우리가 최선을 다해도 해소될 수 없을 것이고 우리가 답을 하더라도 그 답은 불완전하리라는 사실을 그가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 지점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타고르의 관점이 굉장히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사상은 나의 사고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설명되지 않고 남아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는 시간이 가면서 달라지겠지만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타고르는 광대한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했다. 패배로서가 아니라 아름답고 겸손한 인식으로서 말이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5장, 154~155쪽,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인도에서 겸양의 심리학이 여성에게 불리한 젠더편견을 강화하는 요인중에 하나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p.98 /이런 생각을 하는 인도. 남자. 가 일찌감치 존재했다는데 감탄하고 지나갑니다.
실은 아마르티아 센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저도 어릴적부터 외교관인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는데 심지어 꿈에서마저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등으로 욕(남편 듣기에는 욕;; 제 주장에 의하면 잠꼬대;;)한다는 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 적이 많았어요. 내 고향이라고 할 만한 곳이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 아이 학교 문제로 인해 그나마 한국에서 가장 제일 많은 기간 살아온 곳에서 또 이사를 갈 계획 중인데.. 워낙 어릴 적부터 한 지역이나 한가지 정체성에 소속된 느낌도 없고 마음을 너무 깊이 두지 않고 살아서 그런지 약간 망설였던 남편에 비해 아쉬움보다 다소 홀가분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참, 만달레이하면 저만 Daphne du Maurier의 레베카~~~가 생각날까요? ㅎㅎㅎ
저도 만달레이하면 레베카가 떠오릅니다. 그냥 레베카라고 하면 소설이, 레베카~~~ 하면 뮤지컬이 떠오릅니다. ^^ “또다시 짙은 안개가 만달레이 전체를 집어 삼키려나 봅니다.”
저도요
오늘 읽은 4장에서 고전연구가인 센의 외할아버지가 구전문학을 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어느 시점에 문자화된 것에 지나친 권위를 부여하기보다 현재까지 민중 사이에서 구전중인 버전을 중시하는 태도였는데, 단지 문학 뿐만이 아니라 사상이나 전통 여러가지에 적용가능한 시각이라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수집가와 편저자들은 문자로 기록되어 고정된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것들 각자도 과거의 이런저런 시점에 구전되던 것을 기록한 것일 터이다. 외할아버지는 이 논쟁 전체에서 논라운 점은 수세기 전에 살았던 구전 시인의 시에 여러 버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많은 수집가와 편저자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실천 속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전통에는 공간을 주지 않고서" "문자 안에서 응결되어버린"것에만 집착하는 경향이라고 하셨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4장,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네, 뒤(4부)에서 센이 역사학자 라나지트 구하와의 인연을 소개하면서, 그가 주도했던 '서발턴(subaltern) 연구'와 외할아버지의 연구가 겹침을 언급하고 있어요. 서발턴 연구는 1982년 구하를 중심으로 인도에서 시작하고 나서 새로운 역사학의 한 흐름에서 새로운 문예 운동 전반을 지칭하는 학술 운동으로 확장했습니다. 그 확장에 공을 세운 연구자가 유명한 가야트리 스피박입니다. (물론, 스피박의 연구가 오히려 이 운동이 애초 가졌던 저항성을 없애고 아카데미 프로그램으로 축소시켰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스피박이 1988년에 라나지트 구하와 그 동료의 서발턴 개념을 비판하면서 확장적 재구성을 제안한 글이 바로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Can the Subaltern Speak?)」입니다. 철학자 진태원 선생님은 이 글을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철학 에세이(논문) 가운데 한 편이라고 소개하기도 했었죠. (다른 중요한 논문은 발터 베냐민의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1936), 이사야 벌린의 「자유의 두 개념」(1958), 루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1970) 등입니다. 이 중 벌린은 센도 나중에 중요하게 언급합니다.)
서발턴과 봉기서발턴(subaltern). 하층민이나 군대 내에서 서열이 낮은 자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이다. 그런데 영국의 지배를 받는 식민 인도에서의 민중들의 저항운동을 ‘서발턴 연구’라는 이름으로 수행해 온 집단이 있었다. 그 대표자는 라나지트 구하(Ranajit Guha)이다.
역사 없는 사람들 - 헤겔 역사철학 비판역사학자 라나지트 구하의 '헤겔 역사철학 비판'.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 통치와 지배 구조, 인도 농민의 봉기 등 구체적인 연구를 통해 '서발턴' 이론을 정초한 라나지트 구하가 마침내 자신의 사상을 세계사와 역사철학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결과물이다.
스피박 넘기해체 전략, 서발턴 개념, 제3세계 여성과 서구 페미니즘 비판,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의 마르크스 다시 읽기, 식민 담론과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에 대한 공헌 등 스피박의 핵심 사상과 그것이 탄생한 배경, 그리고 그 전개과정과 수용을 알기쉽게 정리한다.
가야트리 스피박주디스 버틀러, 알랭 바디우, 도나 해러웨이 등 동시대 주요 이론가들의 삶과 지적 활동, 나아가 생생한 인터뷰를 적정한 분량에 담은 ‘라이브 이론’ 시리즈의 《가야트리 스피박》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의 문제의식을 간파하며 그의 사유가 그려온 궤적을 조망하게 해줄 것이다.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 서발턴 개념의 역사에 관한 성찰들1988년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글을 발표해 전 세계 지성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를 기념하고 다시 읽자는 취지로 구상되었다.
스피박의 대담 - 인도 캘커타에서 찍힌 소인포스트식민 비평가 스피박을 읽기 위한 필독서! 스피박이 자신의 책들과 생각에 대해 쉽고 친절하고 또 날카롭게 설명하는 책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페미니스트, 문화비평가, 정치활동가들의 물음에 답하면서 펼쳐지는 가야트리 스피박의 세밀한 사유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대담집.
타자로서의 서구 - 가야트리 스피박의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 읽기와 쓰기‘우리시대 고전읽기 질문총서’첫 번째 책 <타자로서의 서구>. 가야트리 스피박의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을 해제한다. 인도의 문화정치학자이자 페미니즘 이론가인 스피박은 1999년에 출간한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을 통해, 철학 · 문학 · 역사와 같은 학문 영역들이 서구(유럽)의 ‘세계 구성’을 어떻게 정당화하고 이론화했는지를 연구했다.
5장에서 타고르에 대한 서구의 인식을 정정하는 이 작가의 마음을 상상해 봅니다, 할아버지때부터 알던 분이 왜곡된 알려진 오랜 시간동안 많이 답답하셨을 것 같아요. 전 워낙 잘 모르고 살던 사람이지만 이 기회에 잘 알고갑니다
끝까지 읽어보면 초반에 이렇게 타고르를 배치한 이유가 더 또렷해지더군요. 센이 계속해서 강조하는 이성과 자유에 대한 옹호, 세속주의, 분절적 관점이 아닌 포용적 관점에 대한 옹호가 모두 센이 강조하는 타고르의 사상에 맞닿아 있거든요.
오랫동안 오도의 소지가 있는 해석이 타고르의 사상에 대한 이해를 안개처럼 가리고 있었다. 그의 사상에서 중요한 측면 하나는 많은 질문이 우리가 최선을 다해도 해소될 수 없을 것이고 우리가 답을 하더라도 그 답은 불완전하리라는 사실을 그가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 타고르는 이 광대한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했다. 패배로서가 아니라 아름답고 겸손한 인식으로서 말이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154~155쪽,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아, 센이 타고르에서 계승한 것들 가운데 이것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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