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2.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D-29
저도요
오늘 읽은 4장에서 고전연구가인 센의 외할아버지가 구전문학을 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어느 시점에 문자화된 것에 지나친 권위를 부여하기보다 현재까지 민중 사이에서 구전중인 버전을 중시하는 태도였는데, 단지 문학 뿐만이 아니라 사상이나 전통 여러가지에 적용가능한 시각이라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수집가와 편저자들은 문자로 기록되어 고정된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것들 각자도 과거의 이런저런 시점에 구전되던 것을 기록한 것일 터이다. 외할아버지는 이 논쟁 전체에서 논라운 점은 수세기 전에 살았던 구전 시인의 시에 여러 버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많은 수집가와 편저자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실천 속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전통에는 공간을 주지 않고서" "문자 안에서 응결되어버린"것에만 집착하는 경향이라고 하셨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4장,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네, 뒤(4부)에서 센이 역사학자 라나지트 구하와의 인연을 소개하면서, 그가 주도했던 '서발턴(subaltern) 연구'와 외할아버지의 연구가 겹침을 언급하고 있어요. 서발턴 연구는 1982년 구하를 중심으로 인도에서 시작하고 나서 새로운 역사학의 한 흐름에서 새로운 문예 운동 전반을 지칭하는 학술 운동으로 확장했습니다. 그 확장에 공을 세운 연구자가 유명한 가야트리 스피박입니다. (물론, 스피박의 연구가 오히려 이 운동이 애초 가졌던 저항성을 없애고 아카데미 프로그램으로 축소시켰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스피박이 1988년에 라나지트 구하와 그 동료의 서발턴 개념을 비판하면서 확장적 재구성을 제안한 글이 바로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Can the Subaltern Speak?)」입니다. 철학자 진태원 선생님은 이 글을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철학 에세이(논문) 가운데 한 편이라고 소개하기도 했었죠. (다른 중요한 논문은 발터 베냐민의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1936), 이사야 벌린의 「자유의 두 개념」(1958), 루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1970) 등입니다. 이 중 벌린은 센도 나중에 중요하게 언급합니다.)
서발턴과 봉기서발턴(subaltern). 하층민이나 군대 내에서 서열이 낮은 자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이다. 그런데 영국의 지배를 받는 식민 인도에서의 민중들의 저항운동을 ‘서발턴 연구’라는 이름으로 수행해 온 집단이 있었다. 그 대표자는 라나지트 구하(Ranajit Guha)이다.
역사 없는 사람들 - 헤겔 역사철학 비판역사학자 라나지트 구하의 '헤겔 역사철학 비판'.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 통치와 지배 구조, 인도 농민의 봉기 등 구체적인 연구를 통해 '서발턴' 이론을 정초한 라나지트 구하가 마침내 자신의 사상을 세계사와 역사철학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결과물이다.
스피박 넘기해체 전략, 서발턴 개념, 제3세계 여성과 서구 페미니즘 비판,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의 마르크스 다시 읽기, 식민 담론과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에 대한 공헌 등 스피박의 핵심 사상과 그것이 탄생한 배경, 그리고 그 전개과정과 수용을 알기쉽게 정리한다.
가야트리 스피박주디스 버틀러, 알랭 바디우, 도나 해러웨이 등 동시대 주요 이론가들의 삶과 지적 활동, 나아가 생생한 인터뷰를 적정한 분량에 담은 ‘라이브 이론’ 시리즈의 《가야트리 스피박》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의 문제의식을 간파하며 그의 사유가 그려온 궤적을 조망하게 해줄 것이다.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 서발턴 개념의 역사에 관한 성찰들1988년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글을 발표해 전 세계 지성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를 기념하고 다시 읽자는 취지로 구상되었다.
스피박의 대담 - 인도 캘커타에서 찍힌 소인포스트식민 비평가 스피박을 읽기 위한 필독서! 스피박이 자신의 책들과 생각에 대해 쉽고 친절하고 또 날카롭게 설명하는 책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페미니스트, 문화비평가, 정치활동가들의 물음에 답하면서 펼쳐지는 가야트리 스피박의 세밀한 사유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대담집.
타자로서의 서구 - 가야트리 스피박의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 읽기와 쓰기‘우리시대 고전읽기 질문총서’첫 번째 책 <타자로서의 서구>. 가야트리 스피박의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을 해제한다. 인도의 문화정치학자이자 페미니즘 이론가인 스피박은 1999년에 출간한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을 통해, 철학 · 문학 · 역사와 같은 학문 영역들이 서구(유럽)의 ‘세계 구성’을 어떻게 정당화하고 이론화했는지를 연구했다.
5장에서 타고르에 대한 서구의 인식을 정정하는 이 작가의 마음을 상상해 봅니다, 할아버지때부터 알던 분이 왜곡된 알려진 오랜 시간동안 많이 답답하셨을 것 같아요. 전 워낙 잘 모르고 살던 사람이지만 이 기회에 잘 알고갑니다
끝까지 읽어보면 초반에 이렇게 타고르를 배치한 이유가 더 또렷해지더군요. 센이 계속해서 강조하는 이성과 자유에 대한 옹호, 세속주의, 분절적 관점이 아닌 포용적 관점에 대한 옹호가 모두 센이 강조하는 타고르의 사상에 맞닿아 있거든요.
오랫동안 오도의 소지가 있는 해석이 타고르의 사상에 대한 이해를 안개처럼 가리고 있었다. 그의 사상에서 중요한 측면 하나는 많은 질문이 우리가 최선을 다해도 해소될 수 없을 것이고 우리가 답을 하더라도 그 답은 불완전하리라는 사실을 그가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 타고르는 이 광대한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했다. 패배로서가 아니라 아름답고 겸손한 인식으로서 말이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154~155쪽,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아, 센이 타고르에서 계승한 것들 가운데 이것도 중요합니다.
타고르에 대한 오해의 대목을 저도 관심있게 읽었어요. 너무 유명한 작품 하나로 그 사람을 규정하는 문제, 그리고 언어의 문제도 크지 않았을까 짐작해요. 타고르는 잘 몰랐는데, 이 책을읽고보니 '신비주의자' 라니 전혀 아니시구만요.
저도 읽으면서 띠용~ 내가 어떤 대상에 대해 막연히 갖고있는 이미지, 느낌이 어쩌면 오해나 의도적인 왜곡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구나.. 역시 같은 장 어디선가 나오는 말처럼 "세상의 모든 곳에서 자유롭게 지식을 가져올 수 있어야하지만, 그다음에는 이성과 논증으로 그것들을 검토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주말에 4장, 5장 즐겁게 읽으셨나요? 오늘 월요일(7월 8일)은 6장 ' 과거의 현재'를 읽습니다. 이 장까지 읽으면 1부가 마무리됩니다. 이번 장에서 센은 고대 인도 전통 문화에 대한 애정을 강하게 드러냅니다. 저는 6장을 읽으면서 심사가 여러 가지로 복잡했어요. 성장기 때부터 고민했던 대목인데 저는 한국 전통 문화에 대해서 정말 관심이 전혀 없었거든요. 한국에 도대체 우리가 다시 살펴보고 습득하고 또 계속해서 곱씹어볼 전통 문화라는 게 있는가?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불교에서?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유교에서? 혹은 민간 무속 신앙에서? 아무튼, 이것저것 뒤적여봐도 저는 문학, 철학, 종교 모두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는데. 6장을 읽으면서 부럽기도 하고, 나의 과문함과 편협함 탓에 나도 한국 역사 속의 소중한 전통을 알지 못하고 있나, 이런 생각도 들고. 아무튼 그랬습니다. :)
6장에서 저는 ‘베다 수학’에 대한 비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뭔가 우리로 치면 역사학과에 환단고기 과목이 생기는 것 비슷한 일일까요. 제가 마지막으로 ‘자랑스러운 한민족 문화’를 믿고 제 행동을 교정해보려고 했던 게 2005년의 일이었네요. 당시 황모 교수라는 분이 자신의 ‘연구 업적’이 한민족의 젓가락질 문화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저는 여전히 젓가락질을 잘 못하는 사람인데, 그 얘기를 듣고 철들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젓가락질을 바꿔보려고 시도했어요. 그러나 제가 젓가락질을 제대로 배우기 전에 강모 과학전문기자님이 황모 교수의 실체를 폭로했고, 저는 그냥 예전에 하던 방식으로 대충 반찬을 집어먹게 되었습니다. (손으로 집어먹는 건 아닙니다. 젓가락 쓰기는 씁니다.)
저도 @YG 님과 비슷한 생각과 반성을 했습니다. 저도 한국 전통 문화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높지 않은 사람입니다. 한국의 전통 문화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독창적인 색깔이나 분위기, 업적도 있다고는 생각하는데 그게 뭔지는 잘 모릅니다. 이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닌데, 정신 차리고 보면 저 빼고 주변이 다 엄청난 민족주의자들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반발심도 가끔 느껴요. 콤플렉스가 강한 문화에서 자랐고, 그 바람에 바로 그 문화를 콤플렉스 없이 이해하고 감상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네요. 이게 한국만 이런 걸까, 아니면 국가와 자기 정체성을 동일시하곤 하는 동북아 국가들의 특징일까, 혹은 세계 모든 나라가 다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는 걸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안그래도 요즘 문소영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전 딱히 '한국적'인 게 뭔지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 너무나도 당연히 K-를 아무데나 다 접합시키는 걸 보면 신기합니다. 전 제가 어릴적부터 외국에서 살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분들도 그렇게 느끼셨나봐요.
저는 최근에 엽편을 한 편 썼는데 거기서 ‘K-’의 본질은 성공을 예찬하는 거라고 시니컬하게 적었어요. 한국인이 한 일인데 성공하기만 하면 뭐든지 ‘K-’가 붙는다고요. 그런 ‘K-’들 사이에는 성공 외에 다른 공통점은 없고, 뿌리를 찾는 노력 같은 거 안 해도 된다는 의미였어요. ^^
@장맥주 작가님과 악연이 있는 창비에서 출판사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한국 사상사 시리즈를 인물 중심으로 내더라고요. 정도전부터 김대중까지 40편을 해당 연구자가 쓰는 식인가 봅니다. 그 리스트를 쭉 살피면서, 제가 진지하게 숙고하고 싶은 사상가가 김대중 정도 빼놓고는 없더라고요. (네, 저는 김대중을 '정치인'이자 '사상가'로 존경하는 편입니다.) 뿌리 없는 'K-'의 한 본보기가 저의 모습과 겹친다는 생각도 들고요.
정도전 - 백성을 위한 나라 만들기전지구적 위기와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맞서 어떻게 살 것인지 묻는 질문이 절실한 때다. ‘창비 한국사상선’은 창비 60주년을 앞두고 한국사상의 거목 59인의 사유와 철학에서 우리 앞에 닥친 이 거대한 질문의 답을 찾아보려는 특별기획이다.
악연은 있지만 좋은 책 많이 내는 출판사이고, 40명의 사상가로 어떤 분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정치인 김대중을 굉장히 존경하는데, 사상가로서의 측면은 솔직히 잘 모릅니다. DJ의 사상이라고 하면 대중경제론을 말하는 건가요?
저는 대중경제론 같은 그의 명명된 사상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현실 정치에서 해결해보려는 그의 지난한 시도 자체가 일관성 있는 사상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 공장에서 그의 평전 연재 담당을 한 적이 있었고, 자서전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더욱더 굳히게 되었답니다.
아, 그런 의미에서라면 저도 완전히 동의합니다.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이라는 그의 말도 좋아하고, 그 말을 가장 잘 실천한 분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분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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