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5개의 고전을 현대의 시대상을 반영하여 각색한 작품을 읽고 나니 우리 시대의 문제점들을 정말 잘 찾아서 각색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읽으면서 중간중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현실 반영이 잘 되어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런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작품이라 좋았던 것 같아요.
[장르적 장르읽기] 3. 고전의 재해석 <모던 테일> 옛 추억 떠올리며 읽기
D-29
나르시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독갑
@모임
드디어 전혜진 작가의 <수경- 나선 미궁 속의 여자들>을 완독했습니다.
이 작품은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 <숙영낭자전>을 재해석하고 있는데요. 조선시대에 지어진 고전소설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소설도 출생의 비밀(주로 선계의 존재였던 과거)을 가진 먼치킨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비롯해 여러 여성을 차지하며, 두 주인공 사이에 집안의 반대와 같은 전형적인 장애물이 생기지만, 둘은 완전한 사랑으로 모든 위기를 뛰어넘어 마침내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경-나선 미궁 속의 여자들>은 그런 고전소설의 전형적인 플롯을 벗어나, 그 옛날 이야기들을 여성의 서사로 다시 써나가려는 의지가 담긴 작품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고전소설 <숙영낭자전>에 나오는 시어머니 정씨, 정실부인 숙영과 후실 임 소저 세 사람의 이야기를 현대로 가져와 예희, 수경, 희원의 이야기를 새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들이자 남편인 현중의 역할은 거의 보이지 않죠.
하지만 예희, 희원은 지겹도록 이어지던 환생의 고리를 끊고 소멸하고 수경은 제자리를 찾는다는 결말이 다소 아쉽습니다. 또, 작품 속에 맥거핀이 너무 많아 시선이 분산된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세 여성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것을 보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할애된 지면이 조금 좁았나 싶기도 했습니다.
아,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수경의 반지를 끼고 있는 예희의 손가락이 묘사되는데요. 저는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더라고요. 예희는 왜 수경의 반지를 훔쳤고, 어째서 그 자리에 예희의 손가락만이 남아있었을까요?
나르시스
저도 마지막 장면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해요. 그건 작가님만 아시겠죠.
화제로 지정된 대화
독갑
@모임
조금 늦었지만 오늘은 네 번째 작품인 <천사는 라이더 자켓을 입는다>에 대해 이야기 해봅니다.
이 작품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저는 '당나귀 가죽'이라는 동화에 대해 모르고 있었습니다. '신데렐라'를 쓴 작가가 만든 동화, 아니 콩트, '당나귀 가죽'은 상당히 기괴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더군요. 세상을 떠난 아내를 대신해 딸과 결혼하려는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를 피해 달아나기 위해 나라의 보물을 훔쳐 떠나는 딸. <천사는 라이더 자켓을 입는다>는 이런 끔찍한 관계를 기초로 만들어진 '당나귀 가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나연은 '당나귀 가죽'의 주인공인 공주와 비슷하게 재벌가의 막내 딸로 많은 것을 가졌지만, 아버지의 성적 학대와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삶을 살았죠. 그래서 자신과 같은 일을 당한 사람들과 자기 자신을 위해 복수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는 당나귀 가죽 대신 라이더 자켓을 입습니다. 이 모든 내용은 추리소설 형식으로 쓰여져, 마지막까지 독자의 호기심을 사로잡습니다.
어릴 적 '어린이 동화'로서 읽었던 수 많은 해외 원작들은 사실 대부분 어린이가 아닌 어른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각색되지 않은 원전을 읽으면 잔혹하고 기괴한 경우가 많죠. '당나귀 가죽'도 그런 이야기들 중 하나이다 보니, 이를 재해석한 작품도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설정이나 스토리 전개방식이 상당히 흥미로웠던 작품입니다.
모시모시
“ 모두가 알고 있듯 부유함이 선량함으로 일대일 환산되지는 않지만, 부유함은 때로 한 사람을 어떤 악의와 적의로부터 완벽하게 차단해 주기도 한다. 어떤 살인에나 동기가 있게 마련이다. 하다못해 사이코 패스의 연쇄 살인에도 쾌락이라는 동기가 있다. 동기는 곧 콤플렉스고, 콤플렉스는 결핍에서 비롯된다. 내가 아는 한 채나연에게 결핍 같은 것은 없었다. ”
『모던 테일』 천사는 라이더 자켓을 입는다, 서미애 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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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갑
'내가 아는 한 채나연에게 결핍 같은 것은 없었다'는 문장이 이 작품을 다 읽은 지금은 참 슬프게 다가오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독갑
이제 [장르적 장르읽기] 세 번째 모임은 15일까지 단 3일 남았습니다. 혹시 그동안 읽은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놓치고 계셨다면, 7월 15일 자정 전까지 여러분의 감상을 들려주세요~ 저도 마지막 작품인 심너울 작가의 <나의 퍼리 대통령님>까지 열심히 읽고 정리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장르적 장르읽기]는 16일부터 네 번째 모임으로 넘어갑니다. 네 번째 모임은 SF 단편집, <제7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으로 함께 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나르시스
밀리에 있네요. 전혀 몰랐던 작품들을 만나는 재미가 솔솔 하네요.
독갑
책을 벌써 찾아보셨군요? 다음 모임에서도 뵐 수 있길 빕니다 ^^
화제로 지정된 대화
독갑
@모임
심너울 작가의 <나의 퍼리 대통령님>, 이 작품을 읽고 저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설화에 대해 다시 떠올려봤습니다. '내가 알던 그 설화가 무슨 내용이었더라?' 사실 설화 자체는 복잡한 인물, 사건, 배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당나귀 귀를 가진 임금님은 이를 숨기려 함구를 명했으나, 혼자 비밀을 간직하지 못했던 신하는 비밀을 대나무 숲에게 알리고, 결국 임금님의 비밀은 대나무 숲을 통해 만백성에게 알려진다는 내용이죠.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교훈을 주는 내용입니다.
그럼 <나의 퍼리 대통령님>은 어떤가요? 표면적으로 이 작품은 원전인 설화의 줄거리를 거의 그대로 따라갑니다. 대나무 숲이 온라인 커뮤니티로 바뀌었을 뿐이죠. 하지만 반전이 있습니다. 바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아니다'가 진실이라는 것이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아니었지만, 대나무 숲을 통해 일파만파 퍼져 나간 '거짓' 소문을 바로잡기 보다는 그걸 '진실'이라고 인정하고 넘어가는 게 더 효율적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사람들은 '진실'과는 관계없이 저마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며 살아갑니다.
얼핏 결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이 작품은 현대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러니이기도 하고 패러독스이기도 합니다. 서둘러 결론 맺기 전에 조금 더 친절히 설명해줬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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