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성북구 비문학 한 책 ② 『공감의 반경』

D-29
그저 친숙한 추천에 더 편하게 동의를 할뿐이다
공감의 반경 - 느낌의 공동체에서 사고의 공동체로 P 107, 장대익 지음
위글에서 말씀 하셨습니다만 친숙한 추천이 더 편하게 느꺼지는것은 사실입니다 유튜브도 보면 추천 알고리즘으로 영상을 추천해주조
[공감의 반경]을 읽어보며 진정한 공감이란 무엇인지 배워보려 합니다^^
공감은 일종의 인지 및 감정을 소비하는 자원이므로 무한정 끌어다 쓸 수 없다.
공감의 반경 - 느낌의 공동체에서 사고의 공동체로 p.11, 장대익 지음
바야흐로 공감 예찬의 시대. 무조건 공감이 좋은 줄 알았던 사람입니다. "너 T야?" 라는 인터넷 밈에서도 알 수 있듯 사안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조롱이 일상화되었는데요, '공감'이 그렇게나 중요하다면 함께 진지하게 알아보고 따져보고 요모조모 살펴보아야겠습니다. 들어가는 말에 나오는 것처럼 세상 만사 모든 것에 공감할 수는 없으니까요.
<공감의 반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책이 단지 '공감'에 대한 과학적, 사회적 문제제기임을 넘어 윤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른바 내 가족에게 내 집단에게만 공감하는 것을 '선택적 공감'이라고 한다면 왜 나는 낯 모르는 타인의 고통보다는 내 가족을 더 챙기려 하는가, 이것은 올바른가? 라고 질문하게 되니까요. 공감이 인지 및 감정을 소비하는 자원이라면 그것이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을 쓰여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윤리적 질문과 연결되죠.
1-1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도 중요한지만 혹시 나의 행동이나 실천을 이끌어내는 공감에 대한 분류나 공감이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가끔 전혀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볼때 그 상황이 이해는 되지만 내가 행동으로 나서지는 못할때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 인권운동이나 자연보존운동은 정서적 인지적 공감은 가지만 저는 그런 행동까지 나서지 못할때 그것은 공감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 설명이 될까요
정말 중요한 지점을 지적해 주신 것 같아요. 우리가 공감에 대해 논의하며 무의식적으로 공감하면 가족이나 타인을 도울 것이다, 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단지 공감에 그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그렇다면 우리의 행동을 이끌어 내는 기제는 공감과 전혀 다른 기제가 아닐까? 특히 우리의 행위 동기는 감정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이성적으로 공감하는 것이 어떻게 그 사람을 도우려는 행위로 이어질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하는 것 같아요. 우리 자신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어떨 때 어떤 사람을 돕는 행동에 나서게 되는 걸까요?
1-2 저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상황애 노출되다 보면 인지적 공감도 훈련될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종의 배경지식을 쌓아가는거죠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양한 노출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변에 대한 호가심과 관심을 가지고 배우려는 자세로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과거의 알고리즘에 빠져 확증편향만 되풀이 하고 이렇게 되면 절대 인지적 공감 능력도 넓어지지 않겠죠.
며칠 전에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옆 칸에서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때리고 있어, 옆 칸에서 말리고 있겠지 하고 몇 정거장을 통과했는데 아직도 때리고 있어 제가 옆 칸으로 가서 때리지 말라고 소리 치니 때리는 일이 끝났습니다. 왜 사람들은 그 현장에서 때리지 말라는 소리를 안 하고 구경만 하는지 그런 부분에 우리 사회는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 다른 사람이 있으면 남이 나서겠지, 굳이 왜 나까지 나서야할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이것 역시 우리의 감정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지도 자원이라서 소모되고 고갈된다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걸까요? 굳이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세상을 조금은 불행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침 출근길, 가슴을 쓸러내리며 그믐에 들어왔는데 이 글이 딱! 있어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같은 일은 아니지만 비슷한 일을 겪었거든요. 나름 이른 시간이라 지하철에 좌석도 꽤 있었는데, 70대 노인(A)이 탑승하는 찰나 비슷한 연배 B가 순식간에 새치기를 했던 모양입니다. B가 탑승하면서 대각선으로 꼬구라지듯 넘어졌는데, 새치기한 B가 못마땅했던 A가 출입문이 열리면서 밀어버린거죠. 꼬꾸라진 B는 일어나자마자 A의 멱살을 잡으며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왜 새치기를 하냐 xx놈아", "사람을 왜 미냐. 개xx야"... 하며요. 다가서서 중재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다른 승객들도 모두ㅠㅠ 어찌해야하나 안절부절 어쩌지 못하고 있는데 1~2분 가량 지난후 50대쯤으로 보이는 C가 다가와 두분을 중재하며 B를 다독이기 시작했습니다. 덩치가 있고 흥분한 남자(B)라 C가 밀리는듯도 했지만. 그래도 C 덕분에 B는 다른 좌석에 앉고, A는 또 C의 다독거림에 다른 칸으로 이동해가며 일이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었네요ㅠㅠ - 저는 왜 나서지 못했을까... 무서웠습니다. 키로보나 덩치로 보나 흥분해 싸우고 있는 두 남성에게 중재하고자 다가설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ㅠ 괜히 끼었다가 제가 맞을 것 같았거든요... (속으로 빨리 건장한 남성분이 나서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간절한채) 공감을 하더라도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행동을 해야하는 나의 안전에 위협이 되거나, 나의 이익이 대치되는 상황에 맞닥들이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함께 행동할 그 사건(?), 일(?)이 크든 작든... 직접적으로 내게 피해가 온다거나 안전을 보장 받지 못하면 선뜻 나아가기가 어렵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이들의 기제는 저 또한 궁금한 지점입니다.
지하철에서 생존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고 있는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보면서 일어났던 감정이 책에서 말한 두 가지 감정 정서적 감정, 인지적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보면서 감정이입과 동시에, 서로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다를 때는 인지적 감정은 쉽지는 않았다. 짜증상태가 되어 왜 나에게 하필 내 앞에서. 천천히 되돌아보면 내 몸의 상태는 영원하지 않을 테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며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데 집단으로 구분하여 '우리'가 아닌 '그들'만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일자리. 이동할 수 있는 이동권의 권리 등등 무엇이 필요하고 다 같이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이상의 범위에서는 정말 자동적으로 감정이입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몇 권의 책을 읽고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자만심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다시 한번 깨우치게 해주고 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안녕하세요! 모두들 책을 잘 읽고 계신가요? 원래 여름은 책을 피하는 '피서'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늘 책을 가까이 하는 독자분들이야말로 이성의 화신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ㅎㅎ 이제 <공감의 반경> 2부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2부에서 저자는 공감의 성격을 구별했던 논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공감을 좁히는 힘으로 작용하는 감정을 지양하고 공감을 넓히는 이성적이고 인지적인 판단을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걸 잘 표현해 주는 문장이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한 '느낌의 공동체에서 사고의 공동체로'인 것 같습니다. 2부 전반에 걸쳐서 저자는 감정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것을 제어하고 이성을 발휘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강조합니다. 독자분께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1. 5장 '내 혐오는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믿음'은 공감의 문제가 그 근원에는 결국 도덕의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장입니다. 저자는 아주 도발적으로 감정에 기반한 도덕 판단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 라고 주장하죠. 저자는 도덕 판단의 시초에는 우리 조상의 생존과 번식에 중요했던 적응적 문제와 감정이 연결되어 있다는 도덕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의 이론을 소개합니다. 하이트 같은 도덕심리학자는 도덕 판단의 핵심은 감정이며 이성은 기껏해야 판단이 이루어진 후 감정을 합리화하는 부수적 역할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감정의 노예로 전락한 이성을 복권해야 한다고 하죠.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우리 일상의 도덕적 직관은 늘 감정에 근거할까요? 여기에는 여러 반론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감정적 직관은 과거에 일어난 이성적 추론과 반성에 영향을 받은 것일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 사회가 이성적 추론으로서 규범화해 온 판단이 우리의 윤리적 감수성으로 자리잡아 이런저런 상황에서 직관적 판단이 나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셋째, 감정적 직관에 인지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바둑이나 체스 기사가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하는 '신의 한수'에 인지적 요소가 없을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5장은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데요, 바로 왜 저자는 이성적인 도덕 판단의 반경을 넓혀라, 가 아니라 인지적 공감의 반경을 넓혀라, 를 선택했을까요? 2. 저자는 다른 영장류와 구별되는 호모 사피엔스의 독특한 특징으로서 공동체의 선에 신경 쓰는 사회 인지 능력을 듭니다. 타인의 마음을 읽고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 사회적 압력이 우리 인지 능력의 발달을 촉발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저자도 말하듯이 이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할 수 있는 마키아벨리적 권모술수이기도 합니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다는 건 타인을 도울 수도 있지만 그를 이용할 수도 있어요. 사기꾼을 생각해 보세요. 엄청난 사회성과 눈치를 갖고 타인의 필요를 캐치해야만 사기꾼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자는 인지적 공감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일어나게 하려면 이런 이기주의자를 처벌하도록 이끄는 규범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각자도생'이라는 키워드로 설명되는 오늘날 우리 현실에 중요한 과제인 것 같아요. 우리에겐 인지적 공감을 장려하는 어떤 제도나 키워드가 필요할까요? 3. 저자는 공감의 반경이 지속적으로 확장 가능한 예로 기계에 대한 공감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영화 <그녀>를 매우 인상 깊게 봤었는데요, 인간의 공감력을 상상해봤을 때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일이 그렇게 이상해 보이지 않아요. 그런데 흥미로운 건 기계와 인간을 차별하지 않는 인간의 공감력이 매우 비도덕적인 판단에 이를 수 있지도 않을까요? 예를 들어 기계와 감정적, 인지적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가 그렇게 사랑해 마지 않는 기계와 낯모르는 어린 아이가 물에 빠진 긴박한 상황에서 그는 누구를 먼저 구할까요? 제가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저는 기계를 구할 것 같거든요. 하지만 우리 사회와 우리의 이성적 도덕 판단이 이를 용인하기는 뭔가 이상한 것 같아요. 다시 말하면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도 아이를 먼저 구하는 이성적 도덕 규칙이 필요한 것이지 이성적 공감이 필요한 건 아니지 않을까요? 4. 그외 여러분이 이 책에서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5-1. 물론 도덕적 직관에 인지적 요소도 상당부분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지적 요소가 도덕적 직관에 작용하기에는 상당히 오랜기간의 학습이나 노력이 요구된다고 생각해요 도덕적 직관의 비이성적인 면을 강조해서 우리가 늘 편견이나 아집에 빠지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되 끊임없이 인지적반경을 넓히도록 노력해스 그 중 일부라더 도덕적 직관에 녹아들기를 바리는 마음이 아닐까요?
5-2 인지적 공감의 핵심은 역지사지라고 봅니다 회사에서는 전문성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역할을 해 보면서 다양한 관점과 경험을 키우도록 장려하곤 합니드 학교에서도 단순히 공부나 시험 많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키우는 교육이 있어야 할 것 같고 사회에서도 자격증이나 시험 점수로만 사람을 뽑기 보다는 어떤 다양한 경험을 했고 거기서 무엇을 배웠는지도 같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인간과 다른 모든 동물을 구별하는 지점은 문화적, 사회적 학습의 양과 질이 엄청나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우리가 가진 직관들도 환경 자극과 문화없이 저절로 타고나는 것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인간은 어떤 사회를 만드는가, 어떤 문화를 만드는가에 따라 내집단만 챙기고 타인을 비인간화하는 어리석음을 지양할 수 있습니다. 가끔 인간 본성이 이래, 원래 그래, 하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는데 인간 본성이란 고정되어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진화적 의미에서 본성이란 시간 t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행동 유형, 즉 항상 시간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우리가 어떤 미래를 설계하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있는 비본질적인 것입니다. 오늘 인터넷 게시판에서 안타까운 캡처글을 하나 봤는데, 초등학생들이 냉소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돈을 많이 버는 일을 벌써부터 계획하고, 자기 꿈을 말하는데도 저는 성공하지는 못할 거예요, 라고 자조하는 모습이었어요. 우리 사회가 인지적 공감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경험과 학습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면 훗날 어떤 사회가 될까 걱정스럽습니다.
1. 저도 말씀해 주신 두 번째 반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최근 스쳐 가듯 읽은(도서관에서 빌렸으나 두께에 압도당해 대출 기간 내에 다 읽지 못한…) ‘기독교가 어떻게 서구의 세계관을 지배하게 되었는가’에 관한 책 『도미니언』의 한 대목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저자인 역사학자 톰 홀랜드는 이전에 스파르타와 로마 관련 역사서를 썼는데, 그들의 역사는 매력적이었지만 그들이 보였던 냉담함과 잔인함은 자신의 도덕과 윤리에 비추어볼 때 당혹스러움을 느꼈다는데요. 그 자신이 스파르타인이나 로마인이 아닌, 천 년 이상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세계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성장한 세계의 전제조건들이 '인간의 본성’이 아닌 서구 문명 속에 들어 있는 기독교의 과거에 있으며, 그 영향은 너무나 깊고 커서 숨 쉬는 공기처럼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당연한 것이 되었다고 표현합니다. 5장에서 나온 ‘이중 과정 이론’에도 언급이 되지만 제 생각에도 우리의 도덕적 직관을 이루는 건 감정과 인지 둘 다인데, 여기서 인지는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지켜온 보편적 윤리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장대익 선생님께서 인지적 공감의 반경을 넓히자고 제안한 까닭은 인간의 도덕적 직관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진화 심리학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메커니즘이 진화할 겨를도 없이 수렵/채집 사회에 머물러 있을 테니까요.
도미니언 - 기독교는 어떻게 서양의 세계관을 지배하게 되었는가세계적인 역사 저술가 톰 홀랜드 책으로, 기독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서구 사회와 서양인의 세계관을 지배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로 세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과감하면서도 우아하게, 역설적이면서도 균형 있게 다룬다.
2. 사기꾼을 처벌하기 위해 진화한 강한 호혜성 역시 ‘규범적 공감’으로 정의한 대목이 흥미로웠습니다. 요즘 연극을 많이 보러 다녀서 그런지 몰라도 지금 떠오르는 건 ‘무대’라는 키워드입니다. 배우들의 호흡을 느끼며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면 저도 모르게 공감하게 되는 것 같거든요. 적어도 연극을 보는 동안에는 정서적, 인지적 공감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인물에 대해 감정적으로 이끌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계속 이런저런 생각이 지나가니까요. 인지적 공감을 위해선 타인의 입장이 되어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무대가 이 사회에 많아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연기는 대상에 가장 강력하게 이입할 수 있는 방법일텐데요, 갈등이 발생했을 때 무작정 법정으로 가기보다 연기 워크숍을 통해 중재하는 다소 엉뚱한 아이디어를 제시해 봅니다. (<무한도전> 정신감정 특집 에피소드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eUkGWXA_WJc)
3. 동의합니다. 『로봇의 자리』를 쓴 과학기술학자 전치형 교수님의 강연을 지난달에 들었는데요, 비슷한 문제 제기를 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인간 여성의 모습을 한 인공지능 로봇 ‘소피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피아는 로봇 최초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명예 시민권을 받으며 굉장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여성 인권에 폐쇄적인 사우디가 여성형 로봇에게는 개방적인 입장을 취한 것에 대해 많은 세계 언론이 유감을 표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인간이 로봇이나 인공지능 같은 신기술에는 굉장히 우호적이지만 오히려 같은 인간에게 있어서는 마음을 닫고 있는 모습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사람을 닮은 로봇에게 공감할 능력을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쏟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여담이지만 강연에서 전 교수님은 ‘트롤리 딜레마’를 자율주행 인공지능에게 물어보는 것에 대해, 그건 윤리적 딜레마라기보다는 기계적 결함에 가깝다는 지적을 하셨습니다. 자율주행이 고민해야 할 일은 애초에 트롤리 딜레마처럼 사람을 쳐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이라면서요. 재미있는 지적이었습니다. 이 내용은 책에 「'도전 골든벨!' 유감」이라는 글에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로봇의 자리 - 사람이 아닌 것들과 함께 사는 방법미래 테크놀로지와 관련된 전치형의 에세이 모음이다,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 페이스앱 등 최근에 이슈가 되었던 테크놀로지 관련 주제들을 꼼꼼하게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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