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무척 흥미로운 질문이라 좀 더 생각해 보느라 답이 늦어졌습니다. 제가 학부 때 들었던 진화심리학 수업에서는 상대방이 내 도움을 갚을 수 없는데도 베푸는 친절을 ‘평판’과 관련지어서 해석할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사심 없는 선행에는 평판이 상승하는 이득이 따라오기 때문이라는 건데요, 인간 사회는 언어를 통한 입소문이 빠르기 때문에 평판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겁니다.
이를 ‘간접 상호성’이라고 하는데, 평소에 평판을 높여 놓으면 나중에 다른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논리를 통해 협력이 진화했다고 합니다.(1998년 수리 생물학자 마르틴 노바크와 카를 지그문트가 수학적 모델을 만들면서 대세로 자리 잡은 이론이라고 하네요) 이를테면 ‘지켜보는 눈’이 있을 때 더 착하게 행동한다던가, 자신의 선택이 다른 참여자들에게 공개되는 상황에서 기부를 많이 한다는 실험 결과가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합니다.
사실 간접 상호성 이론에 완전히 납득이 가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이 이론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인간이 평판을 높이기 위해 계산적으로 선행한다는 게 아니지만,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처럼 이기적으로 구는 인간이 있는 반면 희생적으로 헌신하는 인간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이렇게 보면 모든 걸 진화로 환원해서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선행을 베푸는 누구에게나 진정한 이타적 동기가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진화한 마음 - 전중환의 본격 진화심리학진화심리학이 우리에게 어떠한 쓸모가 있는지, 인간의 마음과 행동, 본성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본격적으로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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