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익 교수님 <다윈의 식탁> 책을 재밌게 읽었어요. 공감은 주고받는 사람이 서로 교감하는 기분이 들게 하지만 그 외의 사람들을 배제시키는 속성이 있다는 지적에 공감(또!) 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방향성을 갖고 서로의 감정을 주고받으며 사는 것이 바람직할까 매우 궁금해집니다.
2024 성북구 비문학 한 책 ② 『공감의 반경』
D-29
유자차
여뀌
공감이 동감은 아니니까요.
이해 할 수 없어도.
어떤 부분이나 전부에서 그런 기분이나 느낌일수는 있겠다.. 하는 마음들을 공감이라고 생각해요. 이 마음이 모이면 반경은 넓어지고 그러면 우리는 조금 더 안전하고 수용적인 곳에너 살게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신청해 보았어요.
지호림
평소 눈여겨 봐왔던 책이었는데 마침 그믐 모임이 진행 중이어서 반가운 마음에 신청합니다! 이번 여름에 읽으려고 했던 책들도 우연찮게 진화와 관련되어서 더 흥미롭네요.
이기적 유전자 - 40주년 기념판과학을 넘어선 우리 시대의 고전, 『이기적 유전자』 40주년 기념판. 진화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이 책은 다윈의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을 유전자 단위로 끌어내려 진화를 설명한다.
다윈의 사도들 - 최재천이 만난 다윈주의자들다윈주의의 길을 함께 걷는 도반(道伴)들이 세계 곳곳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다윈의 진화론 적 통찰이 계몽주의 이래 과학에서부터 경제학과 철학에 이르기까지 학문 세계 전반에 깊이 스며들어 있음을 보여 주는 세계 다윈주의자 인터뷰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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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츄베베
공감을 통해 골목을 광장으로 만들었다면 반경은 나 스스로 적극적으로 넓혀가야할 마음의 깊이가 아닐까 합니다. 내가 어떠한 일을 하고자 할 때 얼마나 그 일에 집중하며 나아가는가는 우리 각자의 삶 가운데 숙제이자 딜레마이기도 하지요. 나 스스로 보다 주변의 상황을 살피고 나아가는 반경의 크기를 키워 밝은 세상을 이끄는 우리 모두가 되길 희망합니다.
우주먼지밍
공감 혹은 공감의 반대편에 있는 혐오와 차별에 대한 좋은 책들을 꾸준히 접했어요. 이 책들에 추천사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진화학자이신 장대익 교수님의 성함이 자주 등장했구요! 『공감의 반경』 함께 읽어보고 싶습니다.
숨둥
장대익 교수님 정말 유명하시죠. 공감에 대한 다양한 도서를 접해봤지만, 이타성과 이기적인 마음의 대립 정도로 접근해서 늘 아쉬움이 남더라구요. 장대익 교수님은 어떻게 접근 하셨을지 궁금해서 신청했습니다.
희망
오늘부터 시작이군요. 열심히 참여할게요
오늘의행복
반경이란 어떤것들의 주변, 주위라고 생각해요
아직 읽기전이지만 완독을 향해보겠습니다
라아비현
도서관에서 책이 딱 맞춰서 왔어요 책나래(장애인 도서관 책 택배서비스)를 도서관 쉬는 날인 월요일에 신청했는데 오늘 바로 왔네요 원래 내일로 예상 되었는데 말이죠 ㅎㅎ
바다출판사
안녕하세요! 저는 <공감의 반경>을 편집한 권오현 편집자라고 합니다. 모두 반갑습니다. 이와 더불어 <공감의 반경> 독서 모임에 참여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모임 전 '반경'의 의미에 대한 독자분들의 생각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사실 '공감의 반경'을 가제로 정해 놓고서는 '반경'이라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단어를 제목에 써도 될까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엄청나게 많은 제목안을 생각했었는데요, 예를 들어 '공감의 두 얼굴' '공감의 과잉' '투쟁하는 공감' '비인간화하는 공감' '공감 예찬에 반대한다' '진짜 공감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공감은 언제 폭력이 되는가' 등등... 그래도 쉼표를 넣었다가 지우고 다시 넣는다는 유명한 퇴고의 사례처럼 <공감의 반경>으로 확정을 했는데요. 독자분들의 여러 의견을 들으니 '범위' '넓이' 같은 단어보다는 훨씬 더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 같습니다. 줄어들고 늘어날 수 있다는 능동적 의미도 있는 것 같고요.
장맥주
편집자님, 반갑습니다. "공감의 반경" 정말 인상적으로 읽어서 이곳저곳에 추천 많이 했습니다. 제목 좋아요! 한 달간 잘 부탁드립니다. ^^
바다출판사
장맥주님, 반갑습니다!
장맥주
잘 부탁드립니다! ^^
김새섬
제목에 관한 일화가 재밌어요. ^^ '공감의 두 얼굴' 이랑 '진짜 공감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좋은데요.
7월3일 어제 성북구 중간공유회에서 강양구 기자님이 <공감의 반경> 소개를 해주셨는데 아주 흥미롭더라구요. 오늘부터 독서 시작합니다.
강츄베베
제목 선정에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니 몰랐던 사실이네요.
이런 어려움 속에서 다시 '공감의 반경'이라는 제목을 보니 영화를 볼 때 열린 결말로 끝맺음하듯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많은 것들을 끌어낼 수 있다는 자유성에 그 의미가 있네요🙂
지혜
'반경'이 "훨씬 더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 같"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바다출판사
앞으로 한 달동안 여러분과 함께 <공감의 반경>을 꼼꼼히 읽으며 우리 자신의 공감의 반경을 넓히는 작업을 하고자 합니다.
첫 주에는 1부를 읽으며 공감이 역설적으로 혐오를 만드는 이상한 상황과 공감에 대한 통념에 대해 돌아보고 둘째 주에는 감정적 공감을 넘어서는 이성적 공감의 본성과 왜 이성적 공감의 발휘가 어려운지를 얘기하고 셋째 주에는 협소한 우리 공감의 반경을 넓힐 수 있는 방법과 오늘날의 혐오, 갈등의 문제를 논의하며 마지막 주에는 2024년의 우리와 미래의 공감에 대해서 자유롭게 토론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독서 모임의 첫 시작으로 독자 여러분께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1. 이 책의 저자 장대익은 공감에 대한 포괄적 정의를 제시한 후 공감을 가장 크게 감정적 반응인 정서적 공감과 역지사지인 인지적 공감으로 나눌 수 있다고 선언하며 논의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공감을 정의하는 방식은 연구자 수 만큼, 다양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는 있죠. 여러분이 생각하는 공감은 무엇인가요? 공감은 반드시 정서와 인지로 나뉠까요? 현실에서는 둘이 혼합되어 나타나지 않을까요? 혹은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요소도 포함되지 않을까요?
2. 정서적 공감 반응이 매우 자동적으로 일어난다는 건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것 같습니다. 아픈 아이를 보고 마음 쓰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인지적 공감은 정말로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만 일어나는 과정일까요? 여러분은 의식적으로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인지적 공감을 발휘해 보신 적 있나요? 어떨 때 그렇게 하셨나요? 그게 습관처럼 반복되면 인지적 공감도 자동적으로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3. 저자는 인간의 정서적 공감이 사회적 무리에 들어가지 못하면 살 수 없었던, 자기 집단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하면 번식하지 못했던 호모 사피엔스 조상의 사회성을 대물림한 것이라는 점을 여러 가지 사회 심리학 실험을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내집단이 아니어도 정서적 공감을 하는데요, 옥스팜에 기부금을 보내는 나, 멀리 떨어진, 가본 적도 없는 국가가 받은 재난에 아파하는 나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진화한 성향의 오작동일까요?
4. 이 외에도 1부를 읽으며 떠올랐던 생각이나 질문을 마구마구 나눠주세요!
우주먼지밍
책 잘 받았습니다+_+
어제 받자마자 <들어가는 말>과 1장을 읽었어요
문장 수집할 문장들이 가득하네요.
왜 제목이 공감의 ‘반경’인 것인지
이 책의 핵심 단어인 ‘원심력’과 ‘구심력’의 차이 등등요!
그리고 그간 읽어왔던 책들과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제가 한때 열심히 읽었던 주제가 사피엔스가 무리짓는 이유 + 사피엔스의 내집단 편향과 외집단 배척 등등 이었거든오!!
그리고 아침에 출근길에 ‘공감’과 관련된 책들을 책장에서 몇 권 꺼내서 한번 찍어보기도 했답니다.
바다출판사
반갑습니다! 이 책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산물인 호모 사피엔스의 내집단 편향과 외집단 배제가 얼마나 무서운지, 얼머나 파괴적인 결과를 만들어 냈는지 잘 보여주고 있죠. 하지만 우리는 또한 다른 동물과 다르게 반성적 능력과 이성을 갖춘 드문 존재로서 진화한 본성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죠. 이 책의 핵심이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호림
(책 잘 받아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1. 책을 열며 공감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깊이 공감을 잘하는 사람은 어쩌면 외집단에게는 누구보다 잔인해질 수 있겠구나, 지나친 팬덤 문화가 바로 이런 데에서 비롯된 것이겠다, 하는 생각이요. 그렇다고 공감을 너무 경계할 필요도 없겠죠.
기존에 제가 공감에 갖고 있던 생각은 항상 경청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먼저 잘 듣고, 잘 보아야 이해와 공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경청에서 비롯된 공감에서 많은 위로를 얻기도 했지만, 어쩌면 제가 정서적 공감을 어려워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ㅎㅎ… 자동적인 공감보다는 충분히 듣고 이해한 후에 뒤늦게 인지적 공감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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